'자뻑'인 사람이 회사의 CEO가 된다면?   

2012. 4. 1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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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트가 우리 회사의 가장 높은 지위인 CEO에 오른다면 회사 성과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요? 시쳇말로 '자뻑'인 사람이 조직의 리더가 된다면 회사가 좋아질까요, 아니면 나빠질까요? 몇몇 연구 결과들은 나르시스트들이 공상가적인 기질이 있기 때문에 조직의 혁신가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그에 따라 회사 성과도 좋아질 거라 암시합니다. 하지만 나르시스트들이 누구보다 아이디어가 뛰어나고 능력이 출중한 인물이라 스스로를 가리켜 평가한다면, 그리고 성공적으로 조직을 이끈 소수의 나르시스트적 리더(예 : 스티브 잡스)를 보며 나르시스트적 성향이 성공의 핵심요소 중 하나라는 믿음이 든다면,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데이터를 통해 그들이 조직 내 최상의 위치인 CEO 지위에 오른 후의 재무적 성과를 실제로 따져보는 일이 의미가 있을 겁니다.


펜실베니아 대학의 애리지트 채터지(Arijit Chatterjee)와 도널드 햄브리크(Donald C. Hambrick)는 이런 의문을 가지고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업계에 종사하는 111명의 CEO(105개 업체)를 연구 대상으로 삼은 다음 그들이 이끄는 회사의 성과 데이터를 폭넓게 수집했습니다. 나르시스트적 성향의 수준을 측정하는 직접적인 방법이 있지만(통상 NPI라는 설문법이 많이 쓰임), CEO들을 일일이 만나 설문을 수행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탓에 그들은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먼저 그들은 매년 발행되는 연례 보고서(annual report)에서 CEO의 사진의 얼마나 크게 나왔는지, 해당 회사에 대한 언론 기사에서 CEO의 이름이 얼마나 많이 언급되는지를 일일이 측정하여 점수를 매겼습니다.



또한 CEO가 행하는 연설에서 '나'라는 1인칭 대명사를 '우리'라는 대명사에 비해 얼마나 많이 하는지를 헤아렸습니다. 자기자신에 몰입하는 성향이 나르시시즘의 특징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죠. 채터지와 햄브리크는 조직 내에서 금전적, 비금전적 보상을 두 번째로 많이 받는 사람에 비해 얼마나 많은 보상을 받는지도 측정하여 나르시스트적 성향을 측정하기 위한 하나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나르시스트는 스스로를 '존귀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그 결과가 2인자와의 보상 차이로 나타난다는 것이 다른 연구에 의해 증명됐기에 이 지표는 CEO의 나르시스트적 성향을 측정하기에 적당하리라 판단됐죠. 이런 간접적인 지표는 별도로 진행된 테스트를 통해 나르시스트적 성향을 측정하는 데에 적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체터지와 햄브리크는 CEO가 이끄는 회사의 광고비 비율, 연구개발비 비율, 판관비 비율, 부채 비율을 가지고 '전력적 활력'을 측정했습니다. 또한 각 회사가 얼마나 많이 다른 기업을 인수했는지, 그 인수 규모는 얼마나 컸는지에 관한 데이터를 수립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총주주수익(Total Shareholder Return)과 자산수익률(Return on Asset)를 측정하여 매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살펴봤죠.

CEO의 나르시스트적 성향과 회사의 성과 지표를 대비하여 분석해 보니 흥미로운 결과가 도출됐습니다. 먼저 CEO가 나르시스트일수록 겉으로 보이는 전략적 활력이 상대적으로 컸습니다. 또한 나르시스트적 CEO들은 남들보다 기업 인수에 적극적이고 그 규모도 크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나르시스트가 남들에게 과시하고 떠벌리는 성향이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당연한 결과죠. 하지만 여기까지는 나르시스트적 CEO가 특별히 문제가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나르시스트적 CEO가 총주주수익과 자산수익률 측면에서 매우 높은 수준을 달성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동시에 매우 낮은 값을 기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자산수익률의 연도별 변화를 살펴보면 그 변동폭이 컸습니다. 성과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들쭉날쭉한다는 의미입니다. 크게 얻기도 하지만 크게 잃기도 했단 말이죠. 나르시스트가 CEO에 오르면 경영의 부침이 심할 것이라는 예측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입니다. 몇몇 기업의 경우 언론이 앞다투어 그 회사의 특출한 성과를 칭송하자마자 곧바로 고꾸라져서 투자자들을 실망시키고 다시 언론으로부터 맹공을 받는 사례가 드물지 않습니다. 그런 회사들의 영락은 어쩌면 CEO의 나르시스트적 성향과 관련이 있을지 모릅니다.

헌데 나르시스트적 CEO가 이끄는 회사가 다른 기업에 비해 비록 부침이 심하지만 기본적으로 성과가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체터지와 햄브리크는 심화된 분석을 통해 CEO의 나르시스적 성향과 회사 성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점을 알아냈습니다. 이 결과는 CEO의 나르시스트적 성향이 성과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적어도 나르시스트를 조직의 리더로 올린다고 해서 좋을 것은 없다는 뜻이죠. 나르시스트는 스스로 자신이 리더가 되어야 회사가 좋아진다고 주장하겠지만 말입니다. 

채터지와 햄브리크는 자신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은 컴퓨터 하드웨어와 스프트웨어 산업이기에 다른 산업에 이런 결과를 다른 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마코비(M. Maccoby)가 나르시시즘이 다이나믹하게 변화하는 산업에 종사하는 경영자들에게는 가치 있는 특성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는 점을 인용하면서, 만일 안정적인 산업이라 한다면 나르시시즘이 회사 성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추론합니다. 나르시시즘이 중요한 특성으로 인정 받는 산업에서조차 나르시시즘과 회사 성과 사이에 체계적인 상관관계가 없다면, 다른 사업에서는 둘 간의 부정적인 관계가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겠죠. 물론 추후 연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문제이지만, 적어도 나르시스트 성향이 높은 리더들은 그들 스스로의 주장과는 달리 회사 성과에 '체계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경영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만은 수용해야 할 겁니다.

앞서 올린 글에서 살펴봤듯이 나르시스트적 리더는 정보 흐름을 막고 자신의 창의적일 것 없는 아이디어를 창의적이라고 강요함으로써 조직의 성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채터지와 햄브리크의 실험으로 짐작하건대, 나르시스트적 리더는 성과 창출의 체계적인 구조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기보다는 과시욕과 명예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 때문에 조직의 성과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어쩌다 특출한 성과를 기록했다고 해서 그들의 경영능력을 칭송하고 그들을 본받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죠. 엔론을 망가뜨린 케네스 레이와 제프리 스킬링이 한때 위대한 경영자로 칭송을 받았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말입니다.

과감한 의사결정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과감한 의사결정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과감한 결정이 나르시스트에게서 나왔다면, 그 과감한의 기저가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조직에서 나르시스트는 누구이며 그들의 결정은 지금까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한번 돌아보기 바랍니다. 


(*참고 논문)
It’s All About Me: Narcissistic CEOs and Their Effects on Company Strategy and Perfor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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