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총대 메기를 원합니까?   

2010. 11. 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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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가시고기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이 물고기들은 몸의 크기가 작은 탓에 포식자들에게 잡아먹히기에 딱 좋습니다. 그래서 큰가시고기는 단독으로 행동하지 않고 무리를 지어 다니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게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죠.

무리를 지어 다니다가 앞에 이상한 물체가 나타나면 그것이 자기들을 잡아먹을 포식자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 무리 중에 한 마리가 앞으로 나선다고 합니다. 그 물체가 포식자라면 잡아먹힐 위험이 있지만 무리 전체의 안전을 위해서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죠. 쉽게 말해서 '총대를 메는' 겁니다.


그런데, 총대를 맨 물고기가 보이는 이타성이 과연 순수한 희생정신에 기반한 걸까요? 큰가시고기의 생태에 흥미를 느낀 M. 밀린스키는 한 가지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그는 유리로 된 기다란 수조에 한 마리의 큰가시고기를 넣었습니다. 그런 다음 유리벽 너머에 덩치가 큰 물고기(포식자 역할을 하는)를 한 마리를 집어넣었죠. 그리고 수조 옆에 거울을 나란히 설치했는데, 포식자 물고기 쪽으로 기울여 놓았습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모양입니다.


거울을 비스듬히 설치하니까 거울을 평행하게 설치할 때와는 달리 큰가시고기는 앞으로 나아가길 주저했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큰가시고기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동료 물고기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거울을 평행하게 놓으면 포식자 물고기를 향해 동료와 함께 다가간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거울을 비스듬하게 설치하면 동료(실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가 자신보다 한발 뒤에서 따라온다고 여깁니다.

큰가시고기는 자기가 한번 앞서 나가면 다음에는 동료가 앞서 나가길 기대합니다. 헌데 자신만 계속 앞장을 서고 있으니 억울하거나(혹은 불안하거나) 할 테죠. 그래서 포식자 물고기에게 접근하기를 주저하고 맙니다.

정리하면 "내가 이번에 용기를 보여줬으니 다음에는 네 차례다"란 "상호성"이 큰가시고기의 본능에 자리잡고 있다고 밀란스키는 말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죠. 내가 호의를 베풀었는데 호의를 받은 그 사람이 다음에 입을 싹 씻어버리거나 나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는다면 상호 호혜가 깨져 사이가 나빠집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누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었는지 기억했다가 나중에 호의로 갚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원칙을 따르죠.

기업에서 큰가시고기의 행동 양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무엇일까요? 꼭 해야 하지만 나서기를 주저하는 일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회사가 어려워져서 인력을 감축해야 하거나 실패 확률이 매우 큰 신사업을 계획할 때 '내가 하겠다'고 나서지 않은 채 서로의 눈치만 봅니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의 문제처럼 잘 해서 얻는 이득이 적거나, 못했을 때 당하게 될 피해가 크다면(큰가시고기의 경우엔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선뜻 총대를 메고 나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시도와 변화가 필요하다면 조직에서 누군가가 총대 메기를 기다렸다가는 큰가시고기의 사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맙니다. 경영자는 직원들이 나서주길 원하고 직원들은 경영자가 선봉에 서주길 원하는 조직이 가끔 눈에 보이는데, 그런 기업은 포식자(경쟁자 등)가 다가와 잡아 먹을 때까지 꼼짝없이 기다리는 것과 같죠. 다행히 누가 총대를 메고 나서도 그런 기업일수록 총대 멘 사람이 실패하고 돌아오면 그를 희생양으로 삼는 경향이 있습니다. 등을 토닥여 줄 망정 가차없이 비난을 쏘아대죠.

변화는 다같이 가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외로이 총대를 멘다고 가능하지 않습니다. 변화에 대한 막연한 공포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모두 다 동참하는 '상호성의 힘'이 발휘돼야 함을 큰가시고기의 사례가 일깨웁니다. 누군가가 한발 앞서 나가면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앞장서야 변화의 추동력이 강력해지고 오래갑니다.

총대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같이 나눠 메야 합니다. 지금 혹시 '누군가가 대신 해주면 좋겠다', '나는 절대 총대 못 메'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포식자가 여러분을 향해 다가오는 그림자가 곧 드리울지 모릅니다.

(*사례 출처 : '이타적 인간의 출현', 뿌리와이파리)
(*참고논문 : Tit for Tat and evolution of cooperation in stickleback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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