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 말할 자격이 있다는 사람에게   

2010. 11. 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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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1월 23일) 오후 2시 30분 경 서해 연평도에서 불행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북한이 민간인 거주 지역인 연평도를 향해 포 사격을 감행해서 우리 측 병사 2명이 사망하고 주민들이 부상 당한 사건(이를 사건이라고 해야 옳은지 모르지만)이 발생했습니다. 사람들은 혹시라도 전면전으로 확대될까 두려운 마음으로 TV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웠지요. 저도 일을 하다 말고 TV와 트위터를 살펴보느라 마무리지어야 할 원고를 제쳐 두었습니다.


트위터는 이런 위급한 상황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필 수 있는 매체입니다. 사람들은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순식간에 여러 의견을 냅니다. 그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이기심을 나타내는 의견이든, 상황을 조롱하는 의견이든, 난국을 개탄하는 의견이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사태를 이겨내자는 의견이든 다양한 의견들이 트위터에 쏟아집니다. 지난 천안함 사태 때 그랬지요.

이번에도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흘러가는 의견들은 정말로 각양각색이었습니다. 당장에 북한을 응징하자, 아니다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 등 사태를 풀어가는 나름의 해법을 말하는 의견도 있었고, 대북정책에 무능한 정부의 책임이다, 진보세력이 오늘의 사태를 야기했다 등 사태의 책임 소재를 주장하는 의견도 타임라인의 한 축을 이뤘습니다.

그러다가 흥미로운 현상을 하나를 알게 됐습니다. 사람들이 서로의 트윗에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현상이었습니다. 공격의 유형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눈길을 끈 유형은 "어떻게 이같은 상황에 그런 태평한 소리를 할 수 있느냐"와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이번 일로 주가가 급락하겠군"이라는 트윗을 올리면 "지금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상황에서 주식 떨어지는 게 대수냐?"며 즉각 상대에게 강한 핀잔을 주는 트윗들이 많았지요. "부동산 가격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는 어디선가의 보도 내용에는 "때가 어느 땐데 그런 소리냐? 상황 파악 좀 해라"고 강하게 반응하는 형국이었습니다.

게다가 누군가가 북한의 포 사격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축포라고 SNS에 올린 글을 캡쳐해서 RT를 통해 퍼나르면서 당사자의 '무뇌아적인' 생각에 비난을 퍼붓는 일도 있었습니다. 일종의 마녀사냥과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서로 언팔과 블락이 오고 갔습니다. "무서워서 트윗 하나 제대로 올리겠어?"라고 느낀 사람이 저뿐만은 아닐 겁니다.

저도 트위터에 "왜 연평도에서 우리 측이 훈련을 한 걸까?"라는 짧은 트윗을 올렸습니다. 북한의 앞바다에서(지도를 보면 북한의 시각에서 연평도 주변 해변은 북한의 앞바다로 느낄 만합니다) 북한을 자극하는 훈련을 꼭 해야만 했을까란 생각에 올린 트윗이었죠. 제딴엔 나름 '중립적인' 트윗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트윗 역시 몇 명으로부터 "상황이 다급한데 이상한 트윗 올리지 마라"는 공격을 이끌어(?)냈습니다. 저로서는 좀 당황스러운 일이었죠. 

"상황파악 잘하라"는 말은 존중 받을 의견입니다. "할 말, 안할 말 가려서 하자"는 충고는 100% 수용할 만한 의견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어떤 의견을 내는지 보다가 "상황이 어느 땐데 그런 소리냐"라고 거의 무조건적으로 반응하는 의견처럼 하기 쉬운 말이 또 어디 있을까 싶은 생각은 지우기가 힘듭니다. 

어제 몇몇 사람들이 보인 "떠들지 말고 입 닥치고 있어!"라고 윽박지르는 모습은 완장 찬 이의 폭력까지 연상시킵니다.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자신들만 이야기할 자격이 있다는 듯 보였습니다. "범인(凡人)들은 떠들지 말고 잠자코 있어라. 차분히 사태를 관망이나 하라"라는 '선도부원'의 엘리트 의식까지 엿보였습니다.

또 하나 느낀 점은 급작스러운 사태나 상황의 악화는 다양성을 억압하는 메커니즘의 좋은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지나치게 앞서 나가거나 유언비어를 생산하는 발언에는 제동을 걸어야겠지만,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소란'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을까요? 오히려 이런 민감한 반응과 억압이 자신들이 바라는 '차분한 대응'에 역행하는 것은 아닐까요?

기업에서도 성과가 나빠지면 직원들의 불만을 "상황이 어느 땐데"란 말로 묵살하는 광경을 간혹 봅니다. 직원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못 내는 분위기가 돼 버리죠. 위기를 창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입으로 말은 하면서 누군가가 심사를 건드리는 말을 하면 돌팔매를 날립니다.

이렇게 주변의 사람들이 돌을 하나씩 들고 노려보는 상황에서 직원들의 창의적 발상이 나올 수나 있을까요? 위기일수록 상황에 어긋난 듯이 보이는 의견에 관용을 베푸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기업의 창의성은 다양성에서 나오고 다양성은 관용에서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방금 위 문단을 보고 "연평도 사태를 가지고 기업의 이야기로 투영시키다니, 사람이 죽어나간 상황을 가지고 어떻게 이런 글을 쓰는가"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군요. 하지만, 본인이 설정한 '할 말, 안 할 말'을 지나치게 남에게 강요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누구나 봐도 '안 할 말을 하는 사람'에게나 비난할 일입니다. 

'할 말 하는 사람',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까지 상황논리를 갖다대는 무조건적인 대응은 서로를 불신하고 반목케하고 다양성을 억압하는, 일종의 폭력입니다. 악명 높았던 매카시즘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요? 조금씩 관용을 가지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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