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욱과 나   

2008. 4. 2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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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시기 전에) 이 글은 홍종욱씨에 대한 정치적인 지지나 호감을 표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그와 관련한 어릴 적 기억과 감정에 관한 사변(私辯이오니, 정치적으로 해석하시거나 오해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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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욱과 나' 라는 제목을 보고 내가 개인적으로 홍정욱과 잘 아는 사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와 그는 일면식도 없없던, 전혀 모르는 사이다. 하지만 나와 그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서로 동갑이라는 별것도 아닌 공통점 말이다.

그가 하버드대를 수석졸업했다는 잘못된 뉴스가 인구에 회자되고 젊은 나이에 쓴 '7막 7장'이라는 자서전이 밀리언셀러에 등극했을 때, 나는 이제 막 군대를 제대해서 긴 머리칼이 왠지 어색했던 쉰내나는 복학생이었다. 군대 가기 전에 학업을 소홀히 한 탓에 여기 저기 빵꾸가 난 학점을 매우느라 여념이 없던 가난한 시절이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출처:네이버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혹은 나이가 적은 사람이 출세 가도를 달리거나 유명세를 타는 모습을 보면 '그냥 능력이 좋아서 그런가부다' 라고 부러운 생각 밖에 들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나와 동갑인 사람이 유명해져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기분이 좀 야릇해지곤 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질투가 생겼다.

나와 동갑이었던 홍정욱은 그래서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불타는(그러나 부질없는) 질투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탓에 그의 존재는 나에게 조금은 특별하다. "쟤는 벌써 저렇게 잘 나가는데, 난 아직 대학도 졸업 못 하고 이게 뭐람?" 난 그를 보면서 초라한 내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언제 공부해서 홍정욱처럼 되나 싶었다. 과연 내가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지도 매우 의심스러웠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십수년 전 그가 어느 TV 토크쇼에 나왔던 장면이 기억난다. 반짝반짝 잘 빗어 넘긴 머리, 숯검정 같이 짙은 눈썹, 바이톤의 굵은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는데, 무엇보다 몸 전체에서 나이보다 성숙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그때도 역시 나는 질투와 부러움이 반반씩 섞인 감정의 칵테일에 취해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었다. "휴우~~" 그때 내쉰 한숨이 얼마나 땅이 꺼지도록 무거웠는지 지금도 느낌이 생생하다.

사회자가 "장래에 어떤 일을 해보고 싶습니까?"라고 묻자, 홍정욱은 또박또박 이렇게 답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공적인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공적인 일'이라는 게 정치를 뜻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걸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렇게 공부를 잘하고 고작 정치를 할 생각인가?' 나는 그가 미국 주류사회에서 성공적인 지식인의 반열에 오를 것을 기대했었다.

그랬던 그가 이번 총선에서 노회찬이라는 거물을 물리치고 국회의원이 됐다. 23~4세 때 TV토크쇼에서 밝힌 바대로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이다. 그가 철저한 계획과 수순에 의해 정치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인지 그렇지 않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젖살이 덜 빠진 젊은 나이에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정해 놓은 점과 이제 그것을 기어이 이루어낸 사실만을 본다면, 그가 대단한 사람이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역시 질투가 무지하게 나긴 하지만, 치하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내가 그래도 이 정도의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건 아마도 내가 홍정욱에게 가졌던 질투심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D마이너스를 받은 과목을 재수강해서 기어이 A플러스로 만든 힘은 어쩌면 그가 나의 질투심을 통해 선사해 준 선물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에게 조금 고마운 마음이 든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이 있듯 그와 같이 해 보려다가 '내 탓 반 남의 탓 반'으로 이렇듯 범인(凡人)으로 남고 말았지만.

사회생활을 좀 하다보니 동갑인 사람이 성공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어 이제 예전처럼 치기 어린 질투심 따위는 생기지 않는다. 세상엔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그냥 내 주제에 맞게 사는 게 최고라고 여기기로 했다.

이제는 성공한 나의 동갑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홍정욱에게도 마찬가지다. 사실 그가 지향하는 정치적 신념은 나와 맞지 않는다. 정치적으로는 나와 상극이다. 그러나 정치적 호불호를 떠나 그가 부디 성공한 정치인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기성 정치인을 향한 환멸 섞인 시선을 그에게는 던지지 않게 되길 바란다.

보수면 어떻고, 진보면 또 어떤가? 홍정욱 의원, 부디 잘 해주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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