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은 '버림의 예술'이다   

2012. 2. 2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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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전 독일의 참모총장을 지낸 알프레드 폰 슐리펜(Alfred von Schlieffen)은 일명 '슐리펜 계획'을 전쟁 승리의 전략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독일은 서쪽의 프랑스와 동쪽의 러시아와 대치 중이었는데, 슐리펜은 상대적으로 군사력이 약하고 병력 소집이 더디던 러시아보다는 강대국인 프랑스를 신속하게 제압하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와 면한 서부 전선에는 79개 사단을 배치하고 러시아 쪽의 동부 전선에는 10개 사단만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거의 8대 1의 차이로 서부 전선에 병력을 집중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러시아로부터 반격을 당해 독일의 동쪽 지방(동프로이센)을 잃는다 해도 좋다는 과감한 결정이었습니다.

또한 슐리펜은 프랑스와 대치하기 위해 서부 전선에 투입한 79개 사단 중 68개를 전선의 북쪽에 두었고 나머지 11개 사단을 전선의 남쪽인 알자스, 로렌 지역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7대 1의 병력 집중도 차이는 슐리펜이 전쟁이 승리하기 위한 관건이 서부 전선의 북쪽(독일 입장에서 봤을 때 우익)인 지금의 벨기에 지역에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알자스, 로렌 지역이 산악지역이라 지형적 이점을 최대로 살리면 그만큼 병력을 적게 운용해도 된다고 판단했죠. 슐리펜은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직전인 1913년에 사망할 때 자신의 계획을 유언으로 남기기까지 했습니다. 프랑스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독일이 승리하려면 병력을 분산시키지 말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집중 배치해야 한다고 그는 믿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슐리펜이 1906년에 퇴임하고 후임자로 임명된 헬무트 폰 몰트케는 슐리펜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많은 병력들이 프랑스와 면한 서부 전선의 북쪽으로 쏠려 있으면 러시아와 대치 중인 동부 전선이 약해질까 두려웠습니다. 독일군이 프랑스를 상대하는 동안 러시아가 급습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몰트케는 슐리펜이 중요도를 낮게 여겼던 동부 전선과 서부 전선의 남쪽 지역에 병력을 크게 보강하여 7대 1이었던 병력 집중도를 3대 1로 변경하는 조치를 취하고 말았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서부 전선의 북쪽으로 프랑스를 공략하기로 했던 슐리펜의 계획이 옳았던 것으로 판명 났습니다. 서부 전선의 북쪽에서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의 반격을 뚫지 못한 채 마른(Marne) 전투에서 패해했고 독일군이 가장 원하지 않았던 참호전을 벌이며 서로 대치하는 국면이 형성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물론 학자들 사이에서 슐리펜 계획의 효과에 대한 논란이 있긴 합니다).

연합군의 입장에서 슐리펜 계획을 무산시킨 몰트케에게 감사할 일이지만, 병력을 분산시켜 모든 전선을 지키려 한 몰트케의 실패는 기업들의 전략 수립과 실행에 있어 '집중'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웁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입장처럼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기업일수록 전략의 집중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자신들의 강점에 자원을 최대한 집중하고 약점이 되는 부분은 무시하려는 배짱이 필요하죠. 시장 전체를 상대하려고 하기보다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세그먼트를 선택하고 나머지 세그먼트는 미련 없이 희생시켜야 승리의 돌파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적은 병력을 모든 전선에 고루 배치하면 방어력이 높아지키는커녕 경쟁자에게 취약한 부분을 더 많이 노출시키고 맙니다.

위험에 처하면 과감하게 버리기보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확장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전략가들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단순한 전략을 결행합니다. 2000년에 심각한 경영난에 처한 P&G의 구원투수로 임명된 앨런 래플리가 핵심 성장 동력을 4개 부문으로 설정하고 식품업을 과감하게 포기함으로써 P&G를 두 자리 수 이상의 성장으로 이끌었고 위기로부터 구한 사례는 집중의 가치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래플리는 “CEO가 어느 분야를 포기할지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M&A만큼 중요한 문제이다”라고 말하며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힘든 과정과 고통의 시간을 감내하라고 조언합니다.

1997년 9월에 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애플에 쫓겨났던 창립자 스티브 잡스를 임시 CEO로 복귀했습니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사업의 규모와 범위를 축소하는 일이었습니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와 손을 잡고 첨단제품 개발에 나설 거라던 언론의 예상이 빗나가 버린 것이죠. 잡스는 경영전략가인 리처드 루멜트(Richard P. Rumelt)와 나눈 대화에서 "제품군이 너무 복잡했고 회사는 자금이 부족했습니다. 가족의 친구 중 한 명이 어떤 제품을 사야 하는지 저에게 물어볼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수많은 제품의 차이를 알 수가 없었던 거죠. 저도 명확하게 차이를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잡스는 여러 종의 데스크탑 PC를 하나로 줄이고 프린터와 같은 주변기기 부문을 없애버렸습니다. 또한 거래하던 여섯 개의 유통업체를 하나로 줄임으로써 까다로운 요구로 인해 제품 모델이 다양해지는 근본적 원인을 제거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버리기 전략'으로 잡스는 쓰러져 가던 애플을 회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가능한 한 많은 고객의 요구를 수용하려고 고집하는 경영자들은 “전략의 본질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올바로 선택하는 데 있다. 전략은 곧 버림의 예술이다”라고 말한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의 충고를 유념해야 합니다. 어떤 고객, 상품, 시장을 버릴지를 결정하는 일이 어떤 고객, 상품, 시장을 선택할 것인가란 문제보다 선결되어야 할 의사결정 사안입니다.

일본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고전하다가 과감하게 메모리 사업을 철수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주력사업으로 전환시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인텔(Intel), 빅(Bic)과의 소모적인 경쟁을 피하기 위해 라이터 시장을 철수하고 면도기에 집중한 질레트, IBM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슈퍼컴퓨터에 총력을 기울이 CDC, 휠체어에만 역량을 집중하는 모션디자인스, 검은 양말만 판매하는 블랙삭스닷컴 등은 전략의 집중이 거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의 성공 포인트임을 일깨웁니다.

무언가에 집중하려면 필연적으로 선택의 과정을 거쳐야 해야 합니다. 선택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select는 라틴어인 selectus에서 유래했는데, ‘어딘가로부터(from) 무언가를 분리해서(apart) 취한다’는 뜻을 지녔습니다. 선택이란 무언가를 취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집중이란 취해진 무언가에 모든 힘을 쏟아 붓는다는 의미겠죠.

중국 속담에 "크게 버려야 크게 얻는다"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규모가 작거나, 열세에 있거나,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에게 술리펜 계획 같은 '창조적 파괴'의 실행을 주문합니다. 창조적 파괴는 무엇을 얻을까란 질문보다 무엇을 버릴까란 진지한 고민에서 시작함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어려운 선택을 피하려는 리더는 전략은 버림의 예술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참고도서 : '손자, 이기는 경영을 말하다')
(*참고도서 : '전략의 적은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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