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는 좋은 리더가 아니다   

2012. 3. 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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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팀에 외부로부터 새로운 팀장이 부임했습니다. 그가 말하고 행동하는 스타일을 보아하니 어딘가 모르게 자신감이 넘치고 남을 지배하고 이끌고자 하는 성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자신만만함이 넘치다 못해 독단적이고 자아도취적인 면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결정이나 예측이 옳다는 강한 확신을 나타내고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도 확실하게 가지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팀장이 드러내는 리더십에 마음이 끌릴 것 같습니까? 그가 여러분의 팀을 훌륭하게 이끌 뛰어난 리더라는 좋은 인상을 받을까요? 아마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하겠지만, 실제로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리더로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토론 과제를 부여하면 그렇게 '나르시스트적'인 사람이 스스로 그룹의 리더로 나서거나 자연스레 그룹의 리더로 인식됩니다. 또한 리더십에 관한 평가를 내리라고 하면 나르시스트적인 사람이 다른 이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얻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르시스트적인 리더로 전형적인 인물이 바로 얼마 전 타계한 스티브 잡스입니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평전 '스티브 잡스'를 읽어보면 애플을 처음 창업할 때부터 그가 동료들에게 드러낸 말이나 행동에서 강한 나르시시즘(narcissism)이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맨발로 회사를 돌아다니던 것, 몸에서 냄새가 진동하지만 자신은 채식만 하는 사람이라서 몸을 씻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던 것, 자신의 의견이 동료들에게 수용되지 않으면 눈물을 자주 보이던 것 등이 단적이 사례입니다.




아이작슨은 평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현실 왜곡장'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는 잡스가 거짓말 하는 성향이 있다는 사실을 수사적으로 그럴듯하게 표현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거짓말보다 훨씬 더 복잡한 유형의 조작 행위를 가리켰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이어갑니다. "세계 역사와 관련된 특정 사실이든,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누구였듯이 대한 기억이든, 그는 진실은 고려하지 않은 채 단언하듯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스티브 잡스가 전형적인 나르시스트였음은 평전에 등장하는 옛동료들의 말에서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부하직원이었던 브루스 혼은 "한번은 제가 생각하던 아이디어를 그에게 이야기했더니 미친 소리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다음 주에 찾아와서는 굉장한 아이디어가 있다면서 제가 야기한 아이디어를 들려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한 거잖아요'라고 했더니 그는 '그래, 그래, 그래.'하고는 그냥 넘어가 버리는 겁니다."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나르시스트적인 리더들은 조직의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까요? 아마도 스티브 잡스의 사례만 놓고 생각하면 리더의 자아도취적인 성향이 성과를 향상시키도록 구성원들을 독려하고 때로는 몰아붙임으로써 종국엔 높은 성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잡스가 이끌었던 애플은 지금 '잘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르보라 네비카(Barbora Nevicka) 등 암스테르담 대학의 심리학자들은 이를 부정하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네비카 등은 조직 성과를 높이고 '질 좋은' 성과를 얻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보의 공유와 이를 통한 시너지 창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다른 학자들의 선행 연구에서 이미 입증된 사실입니다. 네비카 등은 나르시스트적인 리더가 이끄는 조직의 정보 공유가 과연 원활하게 이루어질지를 실험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네비카는 실험 참가자들을 3명씩 무작위로 뽑아 모두 50개의 팀을 구성한 다음, 컴퓨터를 통해 무작위로 3명 중 1명을 리더로 선정했습니다. 그러고는 각 팀에게 가상의 비밀조직에서 일할 요원 1명을 3명의 지원자 중에서 선발하라는 의사결정 과제를 부여했죠. 모두 15가지 요소로 계량화하여 평가된 지원자들의 특성 정보(강약점 모두 포함)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배포되었는데, 참가자 각자는 15개 정보 중에서 9개씩만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3명의 참가자에게 똑같이 주어진 공통 정보와, 한 사람의 참가자에게만 주어진 고유 정보가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를 들어, 'F-16 비행기 조종 실력'이란 항목은 3명의 참가자에게 모두 주었고 '성급하고 다혈질적인 면'이란 항목은 3명의 참가자 중 한 사람에게만 정보를 주었습니다. 참가자 각자에게 지원자들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주지 않은 것이죠.

네비카는 의도적으로 지원자 A가 3명의 지원자 중 상대적으로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특성 정보를 구성했습니다. 만일 참가자들이 지원자 B나 지원자 C를 합격자로 선정하면 의사결정의 성과가 좋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이겠죠. 실험에 들어가기에 앞서 참가자들은 40개의 질문을 통해 각자가 얼마나 '나르시스트적'인지를 측정 받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누구를 합격시킬 것인가를 선정하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각자가 가진 정보를 과연 공유하는지, 공유를 통해 좋은 의사결정을 이끌어내는지, 리더의 나르시스트 적인 성향이 의사결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실험 결과, 리더의 나르시스트적 성향이 높을수록 다른 참가자들로부터 리더로서 권위를 인정 받고 리더의 리더십이 그룹의 성과에 긍정적일 거라는 인식을 얻었습니다. 선행된 다른 연구에서도 이런 경향이 발견된 바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정보의 공유 정도였습니다. 리더가 나르시스트적일수록 구성원 간의 정보가 덜 공유된다는 것이 정량적인 분석 결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의사결정의 질은 어땠을까요? 리더가 나르시스트적일수록 좋지 않은 의사결정(지원자 B나 C를 뽑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결국 나르시스트적인 리더가 다른 구성원들이 가진 고유 정보가 서로 공유되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형성했고 그에 따라 좋은 의사결정(지원자 A를 뽑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 밝혀졌죠. 나르시스트적 리더가 조직의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는 처음의 인식과는 반대되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자신만만하고 때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강하게 밀고 나가는 리더는 좋은 리더라는 인상을 다른 이들로부터 받겠지만, 그것이 좋은 성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입니다. 바꿔 말하면, 직원들은 나르시스트적인 성향을 보이는 리더를 그렇지 못한 겸손한 리더들에 비해 자신의 의견을 포기해도 좋을 만큼 믿고 따를 만하다는 긍정적인 인상을 가지기 쉽지만, 그런 인상과 실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나르시스트적인 리더들은 이 실험에서 봤듯이 자신이 가진 정보나 지식이 가장 우수하고 고유하다고 인식함으로써 정보 공유를 어렵게 만듭니다. 또한 공감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감수성이 요구되는 일의 성과를 저해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르시스트 리더들은 겸손한 리더들에 비해 압박 받는 상황을 즐기고 그 상황에서 일을 잘 수행하는 경향이 있기에 다른 직원들에게도 물리적이고 시간적인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 또한 조직의 성과를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겠죠. 나르시스트적인 리더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는 처음에는 굉장히 독창적이고 뛰어난 것으로 평가 받기도 합니다. 천천히 살펴보면 다른 직원들의 아이디어보다 나을 것이 별로 없는데도 말입니다. 이 점은 여러분도 종종 경험했을 겁니다. 처음엔 리더의 아이디어가 정말 그럴싸해 보여서 감동하기도 했지만 막상 실행하려고 들면 막막해지고 왜 아이디어를 처음 들었을 때 가슴이 뛰었는지 의아했던 경험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나르시스트적인 리더를 좋아하고 그가 조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하는 걸까요? 사람들은 '리더는 이러한 모습이어야 해'라는 공통적인 리더상(像)을 가지고 있습니다. 리더라는 말을 들으면 역사 속에 등장하는 제왕들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를 자동적으로 연상됩니다. 나르시스트들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지닌 리더상과 일치되는 면이 많기 때문에 좋은 리더로, 좋은 성과를 낼 리더로 인식되는 것입니다. 면접으로 직원을 채용할 때도 나르시스트적인 면모를 보이는 지원자가 합격될 확률이 높은 이유도 동일합니다.

나르시스트들이 조직에서 실제로 좋은 성과를 낼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 팀장은 유약해. 팀원들의 생각을 너무나 존중해. 강하게 주장하는 법이 없어.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이 팀장이 되면 우리 팀이 달라질 텐데 말이야'라는 생각은 조직의 성과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어떤 과정을 통해야 의사결정의 질이 높아지는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듯, 나르시스트적인 리더의 겉모습이 성과의 전부를 말해주지 못합니다.

스티브 잡스 같은 나르시스트는 일반적인 팀의 리더로 그리 적당한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여러분의 팀장, 여러분의 임원은 얼마나 나르시스트적인가요?


(*참고 논문)

Reality at Odds With Perceptions:Narcissistic Leaders and GroupPerformance


(*추신) 스티브 잡스 평전을 읽으며 '이런 사람이 내 상사라면 회사를 당장 그만 뒀을 거야'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더군요. 여러분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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