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아는 것이 독(毒)이다   

2013. 1. 2.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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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은 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어떤 사안에 대한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뛰어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다양한 소스에서 가능한 한 많은 데이터와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이 일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 중 하나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정보의 양과 질에 집착하거나 부족함을 느껴 더 많은 정보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올바른 의사결정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스탠포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앤소니 바스탈디(Anthony Bastardi)는 일부러 한 가지 정보를 모호하게 만들어 그 정보에 집착하게 만들면 의사결정의 질이 나빠진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바스탈디는 참가자들을 둘로 나눠 첫 번째 그룹에게 대출심사자의 입장이 되어 누군가의 대출 신청건을 심사하는 상황을 상상하라고 요청했습니다. 막 대학교를 졸업한 신청자는 안정적이고 고소득의 직업을 취득했으며 과거의 신용 이력도 괜찮아서 충분히 대출 받을 자격이 됐습니다. 하지만 최근 3개월 동안의 신용 상태를 살펴보니 카드 회사에 5천 달러의 카드값이 연체되어 있다는 게 문제였죠. 첫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 71퍼센트가 대출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에게도 똑같은 이야기를 전했지만 한 가지만 달랐습니다. 대출 신청자의 카드빚이 5천 달러인지 2만5천 달러인지 모른다는 것이었죠. 두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은 대출 승인 혹은 기각 결정을 바로 내릴 수도 있었고 대출 신청자가 얼마를 빚지고 있는지 확실하고 충분한 정보를 얻기 전까지 결정을 연기할 수도 있었습니다. 예상했겠지만, 카드빚 액수를 모호하게 전달 받은 두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 75퍼센트가 결정을 미뤘고 23퍼센트만이 대출 신청을 기각했죠.


그 후, 바스탈디는 두 번째 그룹에게 대출 신청자의 카드 연체액이 5천 달러라고 밝혔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대출 승인/기각 여부를 결정하라고 요청했죠. 이렇게 되면 첫 번째 그룹이나 두 번째 그룹이나 모두 대출 신청자에 대해 동일한 정보를 갖게 되므로 두 그룹의 대출 승인률이 비슷하게 나와야 하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그룹 참가자들은 21퍼센트만이 대출 신청을 기각했죠(첫 번째 그룹은 71퍼센트가 기각). 즉 더 많이 대출을 승인해줬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요? 이는 두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이 처음에는 모호했지만 나중에 확실해진 정보에 의해 '휘둘렸다'는 증거입니다. 즉 그 확실해진 정보에 지나친 가중치를 부여하는 바람에 대출 신청자의 신용 상태를 올바로 평가하기 힘들어지는 것이죠. 누락되거나 모호한 정보가 발견되거나 확실해지면 의사결정의 질이 오히려 떨어진다는 사실은 정보의 양과 질을 추구하는 자세를 긍정적으로만 보기 어렵게 만듭니다. 정보를 찾기 위해 '기다렸다'는 것 자체가 찾아낸 정보의 가중치를 필요 이상으로 높이기 때문이죠. 바스탈디는 대출 심사 실험 이외에 다양한 상황에서 비슷한 조건으로 실험하여 이를 증명했습니다.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아직 몇 가지 정보가 모호하여 결정을 미루고 있다면 나중에 알게 될 그 정보로 인해 오히려 나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을 필히 경계하기 바랍니다. 개인적인 결정이나 조직에서의 전략적 결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때론 아는 것이 독일 수 있으니까요.



(*참고논문)

Anthony Bastardi, Eldar Shafir(1998), On the pursuit and misuse of useless informa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Vol. 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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