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팀 직원들에게 드리는 부탁 말씀   

2017. 6. 1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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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6일(금) 유정식의 경영일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지난 박근혜 정부 때 강행됐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가 1년 만에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따른 것으로서 환영할 만한 조치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경영평가에서 3점이 감점되어 이에 따라 임금에 불이익을 받고 직원들의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것이 성과연봉제의 골자였다. 그간 공무원노조와 사측이 성과연봉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했었는데, 이제 그 갈등이 해소되리라 생각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난 3년 간, 나는 보험사 노조, 카드사 노조, 지자체 노조, 중앙부처 노조 등 이런 저런 노조들로부터 강의와 자문 의뢰를 받았다. 주로 사용자 측에 ‘복무’하는 것이 컨설팅의 특성인데, 나는 어느새 노조들이 찾아와 상의하는 컨설턴트가 됐고 노조의 입장에서 컨설팅하고 강의를 몇 번 진행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마도 2012년 무렵부터 지금까지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제고하라’ 혹은 ‘평가를 버려라’는 메시지를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 계속 주장해 왔던 것이 이유였을 것이다. 어제는 지인이 내가 2시간 가량 강의한 유튜브 동영상을 모 노조에서 교육 자료로 사용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평가를 없애라는 나의 주장이 제법 여러 곳에 전파되고 있는 모양이다.




성과연봉제를 없앤다고 하면, 혹은 평가를 없애라고 하면 그 대안을 무엇이냐는 소리가 항상 뒤따라 붙는다. 나는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폐지하면 그 빈 자리를 다른 것으로 메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물론 대안이 필요하다는 말을 전혀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안이 없기 때문에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폐지할 수 없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그 소리가 무책임하게 들리고 변화에 저항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문제가 많은 것이라면 그걸 없애는 것 자체가 대안 아닌가? 다른 무엇을 만들어서 억지로 끼워 넣으려 할까? 문제가 크다고 모두가 인정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그 문제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얼른 폐지부터 한 다음에 대안을 차차 논의하는 것이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성과주의 인사제도의 문제, 평가보상의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밝혔기에 다시 언급하지 않으련다. 내가 기존의 평가를 없애라는 주장을 할 때마다 연봉은 어떻게 결정하냐, 승진은 어떻게 결정하냐, 직원들이 일 안 하고 놀면 어떻게 하냐, 동기부여가 안 될 것이다, 등등 어떤 반론과 의문이 제기될지도 거의 안다.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기가 힘들어서 Q&A집을 만들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이미 여러 매체(책, 웹사이트 등)에서 평가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이야기했으며 몇몇 기업들의 사례가 있기에 굳이 그래야 하나 싶어진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인사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이 공부를 참 안 한다 싶은 의심에 이른다. 문제가 있는 걸 본인들이 이미 알면서 대안 찾기를 두려워(혹은 게을리) 하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5대 기업 안에 드는 모 인사팀 직원들에게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소개된, 평가를 없앤 외국기업의 사례를 읽은 적이 있냐고 물으니 다들 금시초문인 표정이었다.




어떨 때는 고작 1~2시간 강의를 하러 간 나에게 평가의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대안과 함께 여러 사례를 이야기해 줘도 꼭 이렇다!) 강짜까지 놓는 직원을 본다. 강의평가에서도 ‘대안이 부족했다’란 코멘트가 보일 때면 1~2시간 강의에서 컨설팅까지 바랐는지 섭섭한 마음이 들곤 한다. 1~2시간 내에 해소될 문제라면 굳이 나를 불러 강의를 듣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물론 그런 직원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왜 스스로 연구할 생각은 하지 않는지 되묻고 싶어진다. 왜 대안 마련엔 손을 놓으려 하는지 따지고 싶기까지 하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어떤 분야에서 1만 시간(혹은 10년) 이상 훈련하면 전문가의 위상을 갖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어느 부서에 10년 이상 근무했으니 ‘나는 전문가야’라고 생각하면 이 법칙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인사팀에 10년 이상 근무했더라도 밖에 나가 고객에게 자문할 실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조직 내의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전문가가 아니다. 그저 인사팀에 오래 근무한 고참직원일 뿐이다. 공부하고 연구해서 대안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치열함이 밑바탕이 돼야 10년 후에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서두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폐지로 시작했지만, 사실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이 글을 빌려 분명히 말한다. 모든 기업에 공통적으로 쓸 수 있는 대안은 없다. 각자의 기업 특성과 현실에 맞게 평가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사례는 참고만 하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외부에 있는 컨설턴트가 들어와서 만들어 주길 기대하지 마라. 컨설턴트에게 묻지 말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해답을 찾아 나가라. 적어도 ‘대안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며 문제 해결을 미루려는 자기합리화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시원하게 정답을 제시해 주지 못하는 부족한 컨설턴트의 부탁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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