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에게 잘해주는 것은 잘해주는 것으로 끝내라   

2017. 8. 2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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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3일(수) 유정식의 경영일기 


장면 1.

“내가 네 월급을 어떻게 주는지 알어? 내가 은행 대출 받아서 너한테 월급을 주는 거야. 그런데 네가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어떤 업체에서 사장과 직원 사이에 회사의 사업과 관련하여 다툼이 있었나보다. 토론이 격해지다 못해 감정 싸움으로 번지자 사장은 직원에게 이런 말을 쏟아냈다. 사업 방향에 대해서 이견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어쩌다 이야기가 서로를 비난하고 잘못을 추궁하는 쪽으로 빠지다 보니 사장은 울컥하는 심정으로 직원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꺼낸 모양이다. 그 직원은 며칠 후에 퇴사했다.



장면 2.

“그런 거 사줄 바에야 차라리 돈으로 주지. 사장님은 돈이 남아도나 봐.”


작은 개인회사의 대표는 몇 안 되는 직원을 근사하고 맛있는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서 직원들이 맛본 적이 없을 듯한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을 즐겼다. 직원들은 신기해 하면서 그런 이벤트를 즐기는 듯 했지만, 식사가 끝나고 나면 대표를 집으로 보내고 자기네끼리 모여서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좋은 레스토랑에서 좋은 음식을 먹었지만 자기네들 입맛에는 삼겹살이 최고라고 말하며, 고급 음식을 사 준 대표를 고마워 하기보다 자기네들 취향을 모르고 헛돈 쓰는 사람으로 평했다. 그런 돈 쓸 바에 삼겹살 사먹으라고 돈으로 주지 그게 뭐냐며 자기네끼리 대표를 비난하는 뒷담화는 밤늦도록 계속됐다.




장면 3.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고 걸어 주십시오.”


역시나 작은 회사의 이야기이다. 업무에 열의를 보이는 ‘똘똘한’ 직원이 있었다. 사장은 그 직원을 마음에 들어했고, 그 직원을 잘 교육시키면 훌륭한 인재로 조직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 회사나 여유자금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사장은 직원에게 돈이 꽤 드는 외부교육을 수강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교육이 끝나고 그 다음 날, 그 직원은 출근하지 않았다. 아무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 전화를 걸어도 ‘없는 번호’라는 안내멘트만 나왔다.



장면 4.

“그렇게 잘하시면 사장님이 직접 하시지 그래요?”


어떤 직원이 작업을 느리게 하고 늦게 가져온 결과물도 오류 투성이였다. 사장은 속으로 화가 났다. 아주 기초적인 사칙연산조차 틀린 채로 가져왔고 회사에서 기본적으로 통용되는 포맷에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사장은 포맷을 일러주고 ‘이렇게 저렇게 하면 오류를 범하지 않고 작성할 수 있다’를 직원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직원도 알아듣는 듯 했다. 하지만 그 후에 가져온 직원의 결과물은 별로 나아진 게 없었다. 몇 차례 이렇게 ‘다시 해 와’란 공방이 오고가다보니 양측 모두 신경이 곤두설 대로 곤두선 모양이다. 사장이 “왜 그렇게 내 말을 못 알아 들어?”라고 쏘아붙이자 직원도 물러서지 않고 이렇게 맞섰다고 한다. “그렇게 잘하시면 사장님이 직접 하시지 그래요?” 사장은 후에 나를 만나 하소연했다. “내가 직접 만들 거면 왜 걔를 직원으로 고용해야 하죠?”라고.



장면 5.

“이 회사는 시스템이 없어요.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거 같아요.”


오랫동안 같이 일한 직원이 퇴사를 하겠다면서 퇴사 사유를 사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직원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규칙을 만들지 않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사장의 경영방침이었는데, 이렇게 시스템이 없다, 주먹구구식이라는 말을 들으니 사장은 좀 어이가 없었다. 목표 설정도 없고 매출이 떨어져도 별로 채근하지 않았다.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쪽으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런 걸 보고 주먹구구라고 하다니... ‘작은 회사의 강점은 체계적인 규칙 없이도 그때그때 잘 대응하는 능력 아닌가? 시스템이란 게 과연 뭐지?’ 사장은 혼란스러움과 섭섭함으로 한동안 마음이 상했다.




내가 컨설팅을 하면서 그간 보고 들은 바에 따르면 이 다섯 가지 장면은 여느 회사의 여느 사장의 입장에서 벌어질 법한 전형적인 상황이다. 소위 ‘사장은 잘해줬는데 직원은 딴 생각을 하는’ 상황.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똑같은 장면이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사장의 입장을 보고 듣노라면 ‘사장 노릇’이 어쩌면 직원들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특히 사장과 직원들이 항상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소기업의 경우가 더 그렇다. 소기업 사장은 경영의 압박과 함께 직원들의 이런 행태도 견뎌내야 하는 자리이다. 


사장이 직원에게 갖는 ‘인간적인 섭섭함’의 근원은 ‘기대감’과 ‘계정의 불일치’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해줬는데 네가 그럴 수 있니?’ 내가 이만큼 줬으니 너도 이렇게 해주길 바란다, 라는 건 인지상정이지만, 서로의 마음 속에 기록하는 ‘주고 받은 양과 질’의 계정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직원 입장에서는 사장이 잘해주는 것이 ‘당연’하기에 그 계정에 (+)로 잡히지 않는다. 복지가 엄청나게 좋다는 여러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좋은 레스토랑에서 좋은 음식을 먹이는 게 하찮은 걸로 여겨진다. 사장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잘해준 항목을 (-)로 기록하고 언젠가 직원이 그 (-)를 채울 만한 기여를 해주길 기대한다. 은행 대출로 직원 월급을 지급했으니 자신의 말을 잘 따라주고 열심히 일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사장의 마음 속엔 이런 식의 대차대조표가 있다. 대차대조표의 차변과 대변을 맞추려는 감정의 싸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처음부터 대차대조표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기대를 말라’는 것이다. 사장은 자신이 법정 요건과 사규를 넘어서서 직원에게 추가적으로 지출을 하거나 배려하는 행동을 할 경우에 자신의 마음 속에 저절로 만들어지는 대차대조표를 경계해야 한다. 그냥 해주고 그걸로 무엇을 얻겠다는 기대를 버려라. 좋은 음식을 직원들과 함께 먹으러 갈 경우에는 그런 배려로 무언가를 얻겠다고 여기지 말고 ‘내가 그걸 먹고 싶어서. 하지만 혼자 먹으면 재미없으니까’라고 생각하는 게 서로 속 편하다. 은행 대출을 받아서 월급을 주는 건 특별한 배려는 아니다. 사장의 할일이고 의무라서 아예 대차대조표를 만들어서는 안 될이건만 그걸로 직원 잘못을 공격하는 건 신사적인 행동이 아니다. 


매몰비용이란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일컫는 말이다. 오해할까 분명히 말하는데, ‘법정요건과 사규를 넘어서서’ 복지 프로그램을 통해서나 사장이 개인적으로 직원들에게 지출하는 물적, 심적 비용은 회수할 수 없는 매몰비용으로 인식하는 게 좋다. 그 비용으로 ‘편익’을 얻을 생각을 하지 말하는 뜻이다. 쉽게 말해, 직원들에게 잘해주는 것은 잘해주는 것으로 끝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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