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유정식)


“우리가 2주일 이내에 시급히 프로젝트를 론칭해야 하는데, 늦어도 3일 이내에 제안서를 제출해 주시겠습니까?”

만약 이렇게 요구하는 고객이 있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앞뒤 볼 것 없다. 나는 그들에게 “No!” 라고 말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시간도 주지 않고 제안서를 요청하는 고객들은 십중팔구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 그들은 컨설팅 받을 생각이 없을 확률이 90% 이상이다. 그런데 왜 제안서를 달라고 할까? 단기간 안에 그런 요청을 해 오는 고객은 개인적으로 공부하려는 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마 고객 내부적으로 컨설팅 받지 말고 자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라고 지시가 떨어졌을 공산이 크다. 윗사람은 빨리 계획을 세우라고 독촉하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은 안 오지, 이런 상황에서 아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 바로 컨설팅펌이다.

제안서에는 프로젝트 수행에 필요한 절차와 단계별로 사용되는 컨설팅 방법론 및 도구 등이 잘 기술되어 있다. 서너 개 회사로부터 제안서를 받아두면, 그것만 읽어봐도 꽤 많은 공부가 된다. 괜히 여기저기 관련자료를 찾으러 다닐 필요가 없다. 전화 한 통만 걸면, 프로젝트 수주에 목마른 컨설팅펌들이 득달같이 제안서를 보내주기 때문이다. 진짜 누워서 떡 먹기 아닌가?

한번 컨설팅을 받으려면 적어도 몇천만원 이상의 비용이 지출되는 것이 보통이므로, 내부적으로 상당기간 검토를 통해 컨설팅 진행을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당장 며칠 만에 제안서를 받아 컨설팅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고객 본인의 개인적인 공부를 목적으로 할 때도 그렇지만, 경쟁입찰의 요건을 맞추기 위해 부랴부랴 들러리용 컨설팅펌에게 단기간 내에 제안서를 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나쁜 의도를 가진 고객은 제안서를 제출하고 나면 감감무소식이다. 요청할 때는 아주 시급한 것처럼 말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제안서를 내고 일주일이 혹은 한 달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다. 답답한 컨설턴트가 먼저 전화를 걸면, “의사결정자가 출장을 가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고 핑계를 댄다든지, “결정이 되면 연락을 할 테니 진득하게 기다려 달라.” 고 핀잔을 준다든지, 좀 시간이 지난 뒤에 “갑작스러운 상황이 발생해서 프로젝트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다음에 꼭 연락하겠다.” 라고 둘러댄다.

이 글을 읽고 있는 클라이언트가 있다면, 제발 그러지 말기 바란다. 개인적으로 공부하고 싶거나 자체 프로젝트 실행에 참고하고 싶다면, 솔직하게 도와달라고 요청하라. 1인기업 컨설턴트의 순수한 열정을 이용하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Tip] 나쁜 의도를 가진 고객을 알아내는 몇 가지 방법

 - 제안요청서가 없거나, 있어도 아주 부실하다.
 - 하드카피보다 소프트카피(파일)를 원한다. 왜냐하면 Copy & Paste가 쉽기 때문이다.
 - 방법론을 충분히 기술해 달라고 한다. 왜냐하면 보고 따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 - 제안서 제출 이후에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관한 계획이 불분명하다.
 - 고객사에 아는 사람이 근무하고 있다면 진위여부를 알아봐 달라고 요청하라.

고객들의 이런 부당한 요구에 1인기업 컨설턴트는 희생되기 싶다. 빅펌이야 어느 정도의 인적 네트워크가 있어서 그 회사가 진짜 컨설팅을 받을 생각이 있는 것인지의 진위 여부를 알아차리곤 한다. 만약 고객이 개인적인 목적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면, 투입할 인력이 없다는 등의 핑계를 대 피해 가거나, 고객과의 향후 관계를 고려하여 비슷한 내용의 다른 제안서를 조금 고쳐서 내버리고 만다. 그러나 1인기업 컨설턴트는 네트워크가 약하기 때문에 고객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고객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확실한 심증을 얻으려면, 제안요청서(Request for Proposal)을 달라고 말해보라. 만약 고객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제안요청서가 특별히 없다고 우물쭈물 말하거나, 아니면 급조한 티가 팍팍 나는 제안요청서를 이메일로 보내올 것이다. 전혀 컨설팅 받을 생각이 없었으니, 제안요청서를 제대로 만들었을 리 만무하다.

이제 첫발을 내딛는 1인기업 컨설턴트는 고객의 제안 요청자체가 고맙게 느껴지기 쉽다. 고객사가 대기업일수록 더 그렇다. 그래서 고객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밤을 새서라도 기쁜 마음으로 제안서를 작성한다.

중국 고전 중의 하나인 '귀곡자'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궁지에 몰렸을 때 내리는 결정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냉철하게 판단하라. 주는 먹이를 덥석 물었다가 그것이 그저 미끼라는 것을 아는 순간, 피해는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해야 하는 1인기업 컨설턴트에게 고스란히 쌓이고 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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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Favicon of http://underdog.tistory.com BlogIcon 언더독 2008.10.01 15:05

    궁지에 몰렸을때 하는 협상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죠. 좋은 경험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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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10.01 20:58 신고

      네 옳은 말씀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궁지에 몰려서 벌인 협상은 대개 후회막급이더군요. 개안적으로 그것 때문에 고생(?) 중입니다. ^^

  2. Favicon of http://withman.net BlogIcon man 2008.10.01 16:12

    절대동감입니다. 딱히 1인기업이 아니라도 중소기업들과 대기업간의 갑/을 관계에서도 자주 발생하는 일이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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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10.01 20:58 신고

      갑과 을의 관계... 거의 '을'로 살아 온 저는 '갑'이 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집니다. ^^ 고맙습니다.

  3. Favicon of http://songkang.tistory.com BlogIcon 구월산 2008.10.02 01:03

    실제 갑의 입장에서 컨설팅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례를 저도
    수없이 봐왔습니다만..좀 너무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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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10.05 22:49 신고

      네. 정말 너무한 경우가 종종 있죠. 차라리 솔직하게 부탁하면 좋겠습니다.

  4. 푸른하늘 2008.10.02 16:11

    외부 컨설팅을 안받기로 내부 결정을 했는데 이를 감추고 제안서를 요청하는 인간이라면 쓰레기라고밖에 할 수 없죠.
    그런데 외부 컨설팅을 받을지 안받을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안서를 요청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요. 이럴 때는 한 번 안됐다가 다음 기회가 오면 그 때는 우선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의뢰한 사람도 미안한 감정이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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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10.05 22:50 신고

      컨설팅 받을지 안 받을지 확정되지 않았다면, 제안서 요청을 하지 않아야겠죠. 그리고 제 경험상 그 '우선권'은 별 의미가 없더군요. ^^ 댓글 감사합니다.

  5. Favicon of http://j.net BlogIcon 박양인 2009.02.19 03:07

    저는 최근 에또 한번 당했습니다
    ㅎㅅ기획 이라고하는 수원장안동에 위치한 렌탈전문화사 입니다
    대표 이승~이구요
    현재 광양의 매화축제에 들어간거 같습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정말 죽고 만싶습니다.
    저는2급 지체장애인 입니다 본인이 약간의 언어장애와 우측팔을 못쓴다는 약점을 이용한것같구요 혹시 궁굼하신분들은
    070-8186-2709 로 문의 하시면 ㅎㅅ 업체에 대하여 설명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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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BSS 2009.08.27 11:45

    저는 소규모기업에 다니던 시절에 경영상의 어떤 대 주제로 경영프레임을 짜기 위한 컨설팅을 발주 한 적이 있습니다. 회사에서의 제 position을 걸고 시도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최소한 제 차원에서의 진정성은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다만 Top에서 적잖은 돈이 드는 컨설팅을 받고자 최종 결정할 지에 대해서는 좀 많이 불안하기는 했습니다.

    종합 컨설팅 사들은 아니었고 그 변방(?) 주제의 컨설팅사 Big 3를 제안에 초청였습니다. (Big 3이라 봤자 절대 규모는 Small, Small, Extra Small이었습니다...)
    규모와 지명도가 더 컸던 두 회사 중 한 회사는 과거의 다른 제안서를 열심히 짜집기 해서 아름답게 만들어 와서 다섯명이나 와서 프레젠테이션하였고, 다른 한 회사는 왜 그 프레임이 필요한 가만 역설하는 '서비스소개서'를 갖고 프레젠테이션 하였습니다.
    규모상 가장 취약한 나머지 한 회사는 앞의 두 회사에 비해서 형식이 많이 소박하였지만, 마치 우리회사에 사활을 건다는 뉘앙스가 담긴 제안서를 꾸며서 사장님이 프레젠테이션을 하였습니다. 그 소박한 느낌이 마치 우리회사를 위해서 제안서를 따로 만들었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회사 Top은 컨설팅 발주를 승인하였고 Big 2의 60%가격에 제안한 가장 작은 업체가 수주를 하였습니다. 물론 실제 프로젝트에 투입된 Total Hour도 그 만큼 작기는 했습니다.

    세 회사 모두 그 제안작업에 임함에 있어 각자의 상황에 맞게 Risk Management를 한 것 같습니다. 다만 세상에는 다 맞는 짝이 있는 것이고 이런게 내게 맞는 짝일지도 모르겠다 싶을 때는 한번 성심성의껏 질르면 의외의 쉬운 승리도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는 을로서 업을 시작하고자 하는 제가 지금 다시 새겨봅니다.
    아무튼 실무담당자인 제가 발주에 엄청난 진정성이 있었고 Top도 어느정도 진정성이 있었다는 것은 적어도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기적(?)이었다고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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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9.08.31 21:10 신고

      BSS님이 경험하신 일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안서를 보면 어떤 회사가 돈만 노리는지, 진정한지 알 수 있죠. 그런 거 무시하고 무조건 제안사의 네임밸류만 보려는 고객이 아직은 많은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