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임금 깎아 일자리 늘리겠다고?   

2009. 4. 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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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공기업에서 시작된 잡 쉐어링(job sharing) 운동이 모든 기업으로 확산되는 중이다. 기존 직원이나 신입사원의 임금을 삭감하여 그 재원을 사용해 고용을 유지하고 신규채용을 늘리겠다는 아이디어다.

아이디어 자체만 본다면, 임금의 삭감 방식을 통한 잡 쉐어링이 작금의 경제 위기를 타개할 묘책 중의 묘책이 될 만하다. 정부가 금 모으기 운동에 이어 잡 쉐어링을 국가적인 브랜드로 양성할 포부까지 밝히고 있다 하니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아마 정부는 다음과 같은 인과고리(causal loop)처럼 임금 삭감을 통한 잡 쉐어링의 효과를 잔뜩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 정부가 기대하는 잡 쉐어링의 효과


정부의 희망사항은 이렇다. 삭감된 임금만큼 일자리가 많아지면 실업이 감소하고,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커져 기업의 수익도 증가할 것이며, 기업가치(주가)도 상승한다. 그래서 일자리가 증가하고 경기가 회복하는 선순환 고리가 완성된다. 이 얼마나 완벽한가?

그러나 나는 정부의 이같은 기대가 헛된 꿈에 불과함을 지적하고 싶다. 결론적으로 말해, 임금 삭감에 의한 잡 쉐어링은 결코 일자리를 늘리지 못한다. 오히려 실업(특히 청년실업)을 가중시키고 거품경기를 야기할 뿐이다. 그 이유는 다음의 인과고리가 설명해 준다.

* 임금 삭감식 잡 쉐어링의 진짜 효과(?)

건전한 수준의 임금은 근로자가 기여하는 생산량(혹은 생산성)에 기초해야 한다. 일한 시간이나 생산량만큼 임금이 지급됨으로써 실질임금이 생산성 증가를 따라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야 소비자의 수요와 기업의 공급이 균형을 이루어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들이 시도하는 잡 쉐어링은 임금은 깎고 노동자 1인에게 기존과 동일한(아니 그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의 일자리 나누기는 노동자 생산성을 실질임금으로 나눈 값인 '임금격차(wage gap)'을 확대시킨다.

임금격차가 커지면 노동자들은 현재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는데 애를 먹게 된다. 임금이 깎인 만큼 소비지출을 줄이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불황에다 물가가 오르는 상황(스태그플레이션)에서는 결코 녹록치 않다. 주택담보대출금, 교육비, 양육비 등과 같이 덩어리가 큰 고정지출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대출을 받아 현재의 구매력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요즘에 경기 부양을 위해 인위적으로 금리를 내리고 있는 것도 더 많은 대출을 일으키도록 부추긴다.

이렇게 되면 당장은 기업의 수익은 늘어나고 주가가 상승하여 경기가 호전된다. 그러나 늘어난 기업의 수익은 삭감된 임금을 예전 수준으로 회복시키거나 신규채용을 늘리는 데 사용되지 않고 기업 내부에 유보되거나 주주에게 배당금으로 빠져 나가기 십상이다. 그 증거가 여기 있다.

생산성은 증가했지만 임금은 그대로이니 임금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구매력 보존을 위해 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언뜻 보면 경기가 호전되는 듯 보이지만, 실은 '거품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전조이다. 결국 임금 삭감을 통한 잡 쉐어링은 '88만원 세대'를 더욱 양산하는 꼴이 되고 만다.

삭감된 임금 재원이 일자리 확대 이외의 용도로 쓰이지 않도록 정부가 감시를 철저히 하겠다지만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까지 감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주식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기업들이 포기할지 역시 의문이다. 아마 기업들은 정부가 주는 인센티브만 취하고 일자리 확대는 뒷전이지 않을까? 기업이 일자리 확대 약속을 위반한다고 정부가 딱히 제재할 방법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대안은?

정부와 기업이 건전한 경기 회복을 바란다면, 임금 삭감을 생각하기 전에 회사 내에 존재하는 불요불급한 코스트를 먼저 줄여야 한다. 비용의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된 재원을 고용 안정에 활용해야 한다. 따져보면 비용을 줄일 만한 요소가 한두가지가 아닌데 왜 임금 삭감과 같이 간편한 방법에 의존하려 하는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란 인력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나머지 영역에서 창조적으로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을 의미하지, 근로자의 뼈를 진짜로 깎아내라는 말이 아니다.

그래도 잡 쉐어링을 해야 한다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나머지 시간을 인력 양성에 투자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유한킴벌리의 문국현 전 사장이 실행해 효과를 본 4조 2교대 방식과 같은 잡 쉐어링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내부역량의 향상을 통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임금만 삭감하면 잠깐은 좋을지 몰라도 취약한 경쟁력은 나아질 기회가 없다.

백번 양보해서, 그래도 임금을 삭감해야겠다면 경영진이 먼저 솔선해야 한다. 경영진은 일반직원들보다 잉여소득이 많으니 구매력이 훼손되지 않는다. 기업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에 처해 당장 비용을 줄여야 한다면 모든 직원의 임금을 일괄적으로 깎는 방식을 써야 한다. 노조가 반대한다고 해서 힘없는 신입사원의 임금만 깎는 건 너무 염치없는 일이다. 세대 간 갈등만 더욱 키워서 나중에 큰 역풍을 맞을 것이다.

그리고 깎아서 모아 놓은 재원이 엉뚱한 데 쓰이지 않도록 노/사/정이 머리를 모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의 이익은 대주주와 경영자들에게 돌아가서 소득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뿐이다. 만약 이를 간과한다면, 이명박 정부의 잡 쉐어링 캠페인은 머지 않아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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