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사람들은 내가 창업을 한 계기가 특별히 무엇인지, 간혹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딱히 답해줄 말을 찾기 어렵다. 거창한 계기와 계획을 가지고 창업을 한 게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의 창업은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택한 차선책에 불과했다.

몇 년 전, 다니고 있던 컨설팅펌은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로 얽혔다. 회사를 그만 두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타인과의 갈등 문제라고 했던가? 그래서 과감히 회사를 그만 두기로 마음 먹었다.

때마침 개인적으로 알던 사람들과 의기투합이 되어 동업으로 벤처기업을 해보기로 했다. 리스크 관리시스템, 특히 운영리스크에 관한 어플리케이션 패키지를 주력으로 전개하겠다는 포부로 시작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시장이 무르익지 않았는지, 아니면 우리의 마케팅이 영 시원치 않았는지 3개월도 못 가서 접기로 했다.

갑자기 백수가 된 나는 몇 달 동안 하릴없이 도서관과 집을 오가며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깊은 시름으로 날마다 살이 쪽쪽 빠지는 느낌이었다. 말은 점점 없어지고 툭 하면 아내에게 화를 냈다. 아마 그 때가 사회생활 중 가장 힘들었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정말 싫었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몇몇 컨설팅 펌에 지원서를 냈다. 허나 지원서를 낸지 한 달이 지나도 응답이 없었다. 몇몇 지인들이 옮겨간 컨설팅 펌에도 입사를 요청해 봤으나, 차일피일 미루거나 핑계를 대기 일쑤였다. 컨설팅 시장이 위축되면서 인력에 대한 수요도 급감하긴 했으나, 나에게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섭섭함을 너머 배신감까지 느껴졌다.

간혹 관심을 보이는 곳이 있었으나 제시하는 연봉과 대우가 전보다 못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부끄럽지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인지 그것만은 수용하기 싫었다.

(1인기업과 수박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맞히신 분에게 선물 드립니다. ^^)


그러던 어느 날, 예전에 같이 일하던 분이 컨설팅을 해보지 않겠냐며 제안을 해왔다. 처음엔 그냥 프리랜서 마인드로 되는대로 그분과 이것저것 일도 했는데, 불쑥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나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살았어. 하지만 지금부터 혼자만의 힘으로 해볼까? 까짓 것 돈이야 밥 먹을 정도만 벌면 되지 않겠어?'

이렇게 얼렁뚱땅 나의 사업은 시작됐다. 처음 몇 달간은 진짜 배가 고팠다. 당연했다. 달랑 이름뿐인 내게 누가 컨설팅을 맡기겠는가? 컨설팅 시장의 불황이 지속되면서 컨설팅 펌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이어지기에, 나같은 작은 기업의 존재감은 매우 미약하기 그지 없었다.

힘들었다. 매일매일 힘이 빠졌다. 그러나 아무런 꿈도 없이 도서관이나 왔다 갔다 했던 시절보다는 나았다. 도서관 시절은 대책 없는 ‘제자리 걷기’였지만, 초창기 시절은 고객에게 한걸음씩 다가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이름도 제법 알려져 고객사도 늘고 경제적으로도 나아졌다. 경기에 따라서 부침이 심한 업종이 컨설팅이지만, 이제는 최소한 앞날을 걱정하지 않는다. 계획할 여유가 생겼다.

만약 내가 창업할 생각을 못했거나 지레 겁먹고 실행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가끔 해 보곤 한다. 예전처럼 컨설팅 펌에 들어가 남들이 따낸 프로젝트에 수동적으로 임하고 있으리라. 돈이야 안정적으로 벌겠지만,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자만이 만끽하는 성취감은 알지 못했을 거다.

나는 스스로 성공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려면 멀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에게 '사업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훈수를 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그저 조그만 회사를 꾸려온 경험만을 이야기할 수준 밖에 되지 못한다.

무언가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분들이 많은 줄로 안다. 탈출의 도구로 창업을 꿈꾸는 분들도 많다. 그분들은 나에게 자금과 사무실, 마케팅 방법 등의 문제를 의논해 온다. 그러나 기술적인 부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런 분들에게 위기를 기회로 바꿔 생각하는 계기를 스스로 찾으라고 말해 드리고 싶다. 그러지 못하면 창업은 실행되지 못할 꿈에 불과하다. 창업을 꼭 해야 하는 이유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지 못하면, 뛰어들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혹시 지금, 자신만의 회사를 만들어 세상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면, 힘찬 격려와 축복을 보낸다.

* 덧붙임 1 : 거창하게 '창업기'라 이름을 달았는데, 그저 옛날 이야기로 읽어 주십시오. ^^
* 덧불임 2 : 엄밀하게 말하면 제가 시작한 창업 형태가 1인기업은 아니기에 제목을 바꿔 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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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Favicon of http://hbflying.net BlogIcon hb 2009.06.08 18:04

    딱딱한 껍질 속에 들어있는 달콤함이려나요? 홀로 우뚝 선다는 점에서 1인기업이란 참 매력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이름 석자를 걸고 하는 일인 만큼 책임감과 성취감도 엄청날 것 같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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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9.06.08 21:57 신고

      매력적이죠. 하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견디느냐 마느냐가 관건인 듯합니다. ^^

  2. Favicon of http://namu42.blogspot.com BlogIcon 나무 2009.06.08 18:23

    시나리오 플래닝을 세우시고 시작한 것은 아니시네요.ㅎㅎㅎ 무모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시작한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이야 창업기가 아니라고 하시지만 차고에서 시작한 기업도 출발은 거창하지 않았지만 열정이 있어 지금에 이르지 않았나 합니다.

    1인 기업은 블루오션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레드오션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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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9.06.08 21:59 신고

      네..시나리오를 세우고 한 창업은 아니었죠. 소 뒷걸음 치다가 쥐 잡은 격이랄까요? ^^ 1인기업 자체가 레드오션이라기보다는 업종에 따라 블루오션인 1인기업도 분명 있을 겁니다. 컨설팅은 레드오션이지만요. ^^

  3. Tuna 2009.06.08 19:05

    말씀하신 고객에게 한걸음씩 다가가는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무척 도움이 될 듯 합니다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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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9.06.08 21:59 신고

      고객에게 한걸음씩 다가가는 과정은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발품 파는 게 최선인 듯 합니다. ^^

  4. Favicon of http://www.heybears.com BlogIcon 엉뚱이 2009.06.08 19:21

    저도 언젠가 1인지식기업을 하겠노라고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분야는 '이러닝' 분야로요. 아직까지는 회사에서 해야할 일도 많고, 마무리해야 하는 학교 공부도 있고, 내공도 부족하고, 가족(마눌님)께서 반대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유정식님께서 걸어온 그 길로 들어서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옛날 이야기 많이 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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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9.06.08 22:01 신고

      조직에 몸담고 계시면서 늘 탐색하시기 바랍니다. 지식산업 분야의 1인기업들은 고정자산에 투자할 필요가 없으니 실패해도 리스크가 적습니다. 물론 그만큼의 시간을 소모하니 리스크일지 모르지만, 많은 걸 배우므로 무용한 시간은 아닐 겁니다. ^^

  5. Favicon of http://inuit.co.kr BlogIcon inuit 2009.06.08 22:57

    아.. 지금 완전 1인 기업이셨나요.
    전 소규모 펌인줄 알았네요.
    예전 러스xx 와 유사한줄 알았거든요.

    그럼 시간 좀 내기 편하시겠네요. 언제 찾아뵈어야 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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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9.06.08 23:31 신고

      러XXX는 벤처 망하고 놀다가 잠시 했었지요. 히스토리가 좀 있습니다. ^^ 근데, 거길 어떻게 아시는지요? 궁금하군요. ^^ 1인기업이긴 한데, 컨설팅이다보니 2~3명의 associate와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인기업과 펌의 중간형태라고 해야 하나요? ^^ 시간 나실 때 찾아오십시오. ^^ 환영합니다.

  6. 2009.06.09 01:58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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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Favicon of http://rainblue.egloos.com BlogIcon 레블 2009.06.09 14:14

    시작했다는 것 만으로, 그리고 스러지지 않고 이렇게 성공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저처럼 꿈만 꾸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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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9.06.09 20:58 신고

      고맙습니다. 시작이 가장 어렵죠. 잘 시작했으니 자찬할 만한 일이지만, 요새 들어 유지하는 일도 꽤 힘들군요. ^_^

  8. Favicon of http://www.myeducator.co.kr BlogIcon 김봉윤 2009.06.16 11:55

    글 잘 봤습니다.

    수박과 1인기업의 공통점은 속이 꽉! 차야한다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여기와서 엉뚱이님이 쓴 댓글을 뵙게 되다니 세상은 정말 놀랍네요.

    저는 예전에 엉뚱이님께 조언을 받은 적 있습니다.

    지금 저도 준비중이기 때문에 유정식님께 문을 두드릴 수도 있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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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9.06.16 13:27 신고

      반갑습니다. 말씀하신 답도 옳지만, 제가 생각한 답은 '수박은 잘라봐야 잘 익은지 안다'...'1인기업도 의뢰해봐야 실력을 안다'입니다. 브랜드가 약해서 선택 받는 데 불리함이 있거든요. ^^ 부디 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9. Favicon of http://gujustory.com BlogIcon Guju 2009.10.01 11:19

    차선책에 불과했다고 하셨지만, 직장 생활 중(?)인 제게는 도전하신 용기가 부럽습니다. 저도 길게 보고 꿈을 더 크게 가져야겠습니다. 도전을 주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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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9.10.04 18:20 신고

      네, 어떤 식으로든 용기가 필요한 일이죠. 그만큼 책임이 뒤따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지나고보면 별것 아니죠. 원하시는 꿈, 꼭 이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0. Favicon of http://mbastory.tistory.com BlogIcon 5throck 2009.10.01 15:15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보는 일이지만, 쉽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찾아뵙고 좋은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추석 이후에 시간을 내주시면 한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한가위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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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9.10.04 18:18 신고

      네, 한가위 잘 보내셨느닞요? 언제 한번 뵙지요.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근데 5throck님이 워낙 바쁘셔서... 연락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11. Nautes.One 2010.10.19 19:38

    브랜드 인지도가 생명줄과도 같은 컨설팅업계에서 지금의 위치까지 오시느라 정말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그만큼 직접 발로 뛰시고,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셔서 이룬 결과물(=Customer Intimacy 구축??)이라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겠네요.

    시나리오 플래닝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들 많이 보고 갑니다. 앞으로 더욱 더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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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Favicon of http://lr.am/Ak6SvH BlogIcon Yong Ju Lee 2012.12.24 07:10

    저 역시 상황이 많이 비슷하게 하여서 창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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