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亡)하는 책을 쓰는 5가지 방법   

2008. 1. 29.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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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근처의 책방에 가니, 내 책이 신간 코너에서 빠졌다. 검색해 보니, 몇권 남겨두고 반품돼 버렸다.  출판계에서 흔히 말하는 '3천권의 벽'을 이번에도 넘지 못했다. 내 딴엔 열을 다한 작품이 쓸쓸히 퇴장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나의 네번째 책 역시 이번에도 망해 버렸다.

생각해 봤다. 내 책이 왜 망했는지. 다음 책도 안 망하리란 법은 없지만, 분석을 좀 해야 덜 망할 것 아닌가? 또는 망하더라도 위안이 될 것 아닌가?

1. 어려운 말을 제목에 넣어라
내 책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 일단 '과학'이라는 말 자체가 독자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진다. 과학이라고 말하면 머리 속에 수학이 떠오르고 복잡한 방정식이 머리를 쥐어짜는 느낌이 든다.

요즘 '경제학'이란 말이 책 제목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대부분 잘 팔란다. 경제학은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교양학문이 됐고 지근거리에서 대중에게 어필하는 학문이 됐기 때문이다.

반면 과학은 늘 어렵고 골치 아프다. 왠만하면 멀리하고 싶은 '그들만의 학문'이다. 경영과 과학의 연결을 강조하고 싶어서 넣었던 '과학'이라는 말이 나에겐 족쇄가 된 듯하다.

2. 두꺼운 책을 써라
모 편집장의 말에 따르면, 250 페이지가 넘어가면 독자들이 지치기 시작한다고 한다. 책을 들어보고 묵직하고 두꺼운 느낌이 들면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어렵다. 물론 어떤 책은 겨우 200페이지 넘는 분량을 '있어 보이려고' 일부러 두꺼운 종이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책 두께가 2센티가 넘어가면 독자의 거부감을 불러 일으킨다.

내 책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는 388쪽이다. 적정 페이지수를 130페이지나 오버했다. 내 책을 어떤 사람이 "와, 책 두꺼운데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이 많은 내용을 담았음을 칭찬하는 말인 줄 알았다. 허나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부담스럽다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3. 40대 남자에 초점을 맞춰라
통계상 책을 가장 읽지 않고 구입하지 않는 계층이 40대 남자라고 한다. 따라서 그들이 관심 있어 할 만한 주제로 책을 쓰는 건 어쩌면 자선행위일지도 모른다. 반면 가장 책을 많이 구매하는 계층은 20대 초반의 여자들이다. '마시멜로' 류의 책들이 공전의 히트를 치는 이유는 그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 책은 딱 전자의 경우이다. 기업의 리더급들이 40대 남자들이니까 말이다. 망하기 딱 좋은 타겟이다.

4. 국내 저자로 책을 써라
이것은 나로서도 어쩌지 못한다. 난 한국사람이니까. 어제 만났던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사대주의적인 생각인지 모르지만, 국내 저자보다 외국 저자(특히 미국 저자)가 쓴 책이 더 신뢰가 간다"  억울하지만 이해가 가는 말이다. 나 또한 그런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저자 중에 히트를 치는 사람이 분명 있지만, 통계적으로 볼 때 국내 저자들은 외국 저자들에 밀리는 것이 사실이다. 만일 내 책을 'Jeffrey Johnson'이란 가명으로 냈으면 어땠을까? 모르긴 해도 독자로부터 받는 대접이 좀 달라졌을 것 같다. 또 책이 두껍고 제목이 어렵게 보이는 것도 양해 받을 것 같다. "외국 저자가 썼으니 당연히 내용이 심오하고 양도 두꺼운 것 아니겠어?"라고 말이다.

5. 돈이 금방 안되는 주제를 써라
세상이 빨리 돌아가다 보니, 쉽게 읽히고 바로바로 내 생활에 적용이 가능한 책에 손이 간다. 재테크와 우화류의 책이 잘 팔리는 이유다. 별 거 아닌 내용에도 '돈' 이야기를 풍기면 기본은 한다. '경제학 콘서트'류의 책이 잘 나가는 이유도 경제학이 돈을 다루는(꼭 그렇지도 않지만) 학문이기 때문이다.

알면 좀 도움이 되지만, 모른다고 해서 손해 볼 것 없다는 느낌을 독자가 갖는다면 책 내용이야 좋든 나쁘든 일단 1쇄 넘어가기는 애초에 글렀다고 봐야 한다. 내 책의 주제인 '경영과 과학의 통섭' 역시 시급할 리가 없는 주제 아닌가?

무엇보다 책 내용이 좋아야 잘 팔리겠지만 위 내용 모두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망하기 딱 좋은 책이 된다. 사전에 예상하지 못하고 경험한 뒤에야 깨달으니, 괜히 헛웃음이 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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