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원주의'의 늪에 빠졌나요?   

2010. 12. 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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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만은  피실험자들에게 신문 한 부씩을 나눠주면서 신문에 나온 사진의 개수를 전부 세어보라고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피실험자들은 와이즈만의 지시를 듣고 2분 내에 사진의 개수를 모두 헤아렸습니다. 헌데, 와이즈만이 신문의 2면에 "세는 것을 중단하시오. 이 신문에는 모두 43개의 사진이 있습니다."라고 대문짝만하게 써놓은 것을 본 참가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사진의 개수를 세는 것과 같은 세부적인 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전체를 바라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던 것이죠.

와이즈만의 실험은 우리에게 '환원주의적'인 관점이 얼마나 우리의 시각을 좁게 만드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환원주의(reductionism)는 전체를 잘게 쪼개 각 부분의 메커니즘을 밝혀내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패러다임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부분을 모두 합하면 전체가 되고 전체는 다시 부분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사물과 현상을 환원주의적으로 이해하면 와이즈만의 실험에서 피실험자들이 빠졌던 '전체를 보지 못하는' 오류에 빠질 뿐만 아니라, 부분들 간의 상호작용을 무시하고 넘어가고 맙니다. 즉, 전체는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크다'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죠.

생명체를 이루는 물질을 잘게 쪼개 나가면 단백질에 이릅니다. 하지만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모든 단백질을 플라스크에 넣고 섞는다고 해서 생명이 탄생할 수는 없습니다. 단백질을 이해한다고 해서 생명 현상 전체를 이해할 수 없듯이 환원주의적 시각은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환원주의는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기 때문에 생명체나 지구 전체와 같은 시스템에서 창발적인 능력을 왜 나타내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죠.

이처럼 환원주의는 전체를 기술하고 전체를 깨닫는 데에 부적절한 패러다임이지만, 기업 경영의 철학이나 방식들은 환원주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환원주의 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의 자동차업체 제너럴 모터스입니다. 1981년에 로저 스미스(Roger Smith)가 회장에 취임하면서 소비자 지향의 마케팅 전략을 접고 수익성을 강조하는 경영방침을 밀고 나갔습니다.

회계 전문가 출신인 그는 회사의 경영지표가 수익성 하나로 모두 환원될 수 있다고 믿는 대표적인 'Bean Counter'(숫자 계산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였습니다. 그의 조치로 회사 전체의 수익성은 향상됐지만 그것 때문에 사업부간 경쟁을 부추기는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각 브랜드가 서로 시장을 잠식하고 말았습니다. 경쟁자는 포드나 크라이슬러가 아니라, 바로 한 회사 아래에 있는 타 사업부였던 것이죠.

환원주의적인 경영 방식은 비단 GM 뿐만 아니라, 여기 저기에 만연돼 있습니다. 업무를 직무 단위로 쪼개 철저하게 직무 중심으로 인력을 운영하려는 것, 조직 전체의 성과를 중시하지 않고 개인 중심의 성과를 오직 계량적으로만 측정해내려는 것이 환원주의적 경영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환원주의의 반대는 전일주의(Holism)입니다. 전일주의는 사물과 현상을 구성요소의 합계가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전체로 이해해야 한다는 관점입니다. 전일주의 경영으로 유명한 회사는 일본의 자동차업체 도요타입니다.

사회 물리학자인 던컨 와츠는 그의 저서인 'Small World'에서 전일주의적 경영철학이 위기에서 도요타를 구해냈다고 말합니다. 1997년 2월 1일 오전에 협력회사인 아이신의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도요타와 수백 개 협력업체의 공장이 올스톱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태를 지켜 본 많은 사람들은 도요타의 뛰어난 생산시스템(TPS)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한다고 비판을 가했습니다. 하지만 도요타는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5일 만에 공장을 다시 가동시켰고 열흘이 지나자 예전의 생산능력을 회복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200여 개의 납품업체들은 아무 지시도 없었는데도 협력 체제에 돌입했습니다. 자동차 부품이라곤 만들어 본 적도 없는 재봉틀 제조업체도 기꺼이 복구에 동참했는데요, 중앙의 주도나 공식 계약서도 없었는데도 사흘 만에 아이신이 만들던 부품을 생산해 냈습니다. 이것은 업체들의 자발적인 협력과 자기 희생을 통해 이루어 낸 창발(emergence)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하나의 기업 안에서도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부서들이 하나처럼 행동하는 경우는 그다지 흔하지 않습니다. 특히 직무 영역과 업무분장을 무 자르듯 엄격하게 관리하려는 환원주의적 기업일수록 부서가 담당한 업무 이상의 것을 관여하지 않으려 합니다. 관여했다가는 책임을 뒤집어 쓸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요타의 협력업체들은 평소에는 각자의 생산활동을 영위하다가 위기가 발생하면 이기주의를 버리고 ‘도요타 왕국’의 일원으로서 전일주의적인 행동에 돌입한 것입니다. 도요타의 협력업체들은 고유한 정체성을 가지면서, 때로는 전체(whole)로서 때로는 부분(alone)으로 행동하는 홀론(Holon)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각 업체가 ‘그것은 너희들의 문제이지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혹은 우리가 나설 일이 아니다, 라는 환원주의적인 태도로 방관했더라면 도요타의 생산 중단 사태는 쉽게 회복되지 못했겠죠.

이랬던 도요타가 2009년부터 발생한 대량 리콜 사태로 인해 경쟁력이 급격히 하락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글로벌 경쟁의 심화로 마음이 급해져서 성장과 수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환원주의적 경영으로 눈을 돌린 탓에 있습니다. 원가절감(환원주의)을 무리하게 진행하는 바람에 전사적 품질관리(전일주의)를 외면했던 겁니다.

그렇다고 환원주의적인 사고가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껏 이룬 놀라운 과학 성과의 많은 부분이 사물의 본질을 부분으로 쪼개 들어가는 환원주의적인 접근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경영도 환원주의적인 방식이 없었다면 회계나 인사와 같은 경영시스템이 완성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문제가 있겠죠. '관리'는 기본적으로 환원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조직에는 환원주의적인 경영방식이 얼마나 만연되어 있습니까?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고 유지하려면, 경영철학이나 경영방식이 환원주의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전일주의적 경영이라는 밧줄로 항상 끌어당겨주는 '중용'의 힘이 필요합니다.


(*참고도서 : 'Small World', 세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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