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은 '조금 알 때' 커진다   

2011. 3. 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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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모 방송국에서 '신입사원'이라는 오락 프로그램이 방송됩니다. 알다시피 공개 오디션을 통해 아나운서를 채용한다는 포맷의 프로그램입니다. 평소 TV 오락물은 잘 보지 않는 편이지만 일본 대지진 관련 뉴스를 보려고 채널을 돌리다가 그 프로그램을 보게 됐죠. 수많은 사람들이 방송국 로비에 모여 자신의 오디션 차례를 기다리는 광경을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저 사람들은 떨어질 줄 알면서도 오디션에 왔을까?"

물론 많은 사람들이 재미삼아 잠깐이라도 TV에 얼굴을 비추고 싶어서 나왔겠죠. 하지만 아나운서로 최종 선택되기는커녕 1차 오디션에서 바로 떨어질 만한데도 진지한 표정으로 오디션에 임하는 사람들도 꽤 많더군요. 그들 대부분은 우리가 아나운서에게 기대하는 바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발음이 꼬이거나 말이 너무 빠르거나 긴장감에 말을 떨거나 하는 지원자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발하려고 했겠지만, 저는 시청하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특히 "나의 꿈을 실현해보고 싶어서 나왔다"면서 눈물까지 흘리는 지원자를 볼 때 그 모습이 측은하게 여겨지기보다는 실력이 미치지 못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왜 나와서 저렇게 눈물을 흘릴까란 생각이 앞섰습니다. 정말 자신의 꿈이라면 왜 실력을 연마하지 않은 채 나와서 '잘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란 말을 변명처럼 내뱉는 것일까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 지원자의 말을 들을 때도 TV에 잠깐 나오는 걸 과대포장하는 것은 아닌가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 시각이 좀 비뚤어진 걸까요?

떨어질 줄 알면서도 오디션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자신감 착각' 때문입니다. 자신감 착각은 꽤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미국에서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63퍼센트의 미국인들은 자신의 지능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특히 남성은 71퍼센트가 평균적인 사람보다 똑똑하다고 자부합니다. 이와 유사한 연구 결과는 많습니다. 스웨덴 대학생의 69퍼센트는 자신의 운전실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평가했고, 자신이 평균보다 더 매력이 있다고 자평했습니다. 미국의 대학교수들은 자신감이 더 커서 자신의 연구 능력이 다른 교수들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사람이 무려 94%에 달했습니다.

특히 객관적인 실력이 하위에 속하는 사람들의 자신감이 더 컸습니다. 코넬 대학교의 저스틴 크루거와 데이비드 더닝은 먼저 학생들의 유머 감각을 테스트해서 상위자부터 하위자까지의 '유머 감각 서열'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 다음 코미디 작가들이 쓴 우스운 이야기 30개를 골라서 코미디언들에게 메일로 보냈죠. 코미디언들이 30개의 이야기를 읽고 전혀 재미있지 않음(1점)부터 아주 재미있음(11점)까지 평가해 주길 요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8명의 코미디언이 답변을 보내왔는데 이야기의 재미에 대한 그들의 의견은 거의 일치했습니다. 일관성이 있다는 뜻이었죠.

크루거와 더닝은 학생들에게 똑같은 30개의 이야기를 평가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유머 감각 테스트에서 고득점을 얻은 학생들은 코미디언들의 판단과 78퍼센트 정도 일치했습니다. 하지만 유머 감각 테스트에서 하위 25%에 해당하는 저득점자들은 코미디언들이 재밌다고 평가한 이야기 중에서 44퍼센트만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재미없는 이야기 중 56퍼센트를 재미있다고 평가 내렸습니다. 본래 유머 감각 테스트에서 하위 그룹에 랭크됐으니 이같은 불일치는 예상된 결과였습니다.

흥미로운 결과는 그 다음에 나왔습니다. 크루거와 더닝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유머 감각이 평균보다 얼마나 높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66퍼센트의 학생들이 다른 사람보다 유머 감각이 좋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이것도 예상된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유머 감각 테스트에서 하위 25%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자신의 유머 감각을 평균보다 높게 평가한다는 결과는 뜻밖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객관적으로 능력이 처지는 사람들이 '자신감 착각'을 더 강하게 보인다는 의미였으니까요.

실력이 모자랄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현상은 체스 선수들에게도 나타납니다. 체스 선수들은 경기 전적을 통해 점수를 부여 받는데, 이 점수는 실제의 체스 실력을 꽤 객관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점수가 낮은 선수가 점수가 높은 선수를 웬만해서는 이기기가 어렵죠. 하지만, 점수대가 평균 이상인 선수들은 50점 정도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하위에 속하는 선수들은 자신이 '응당' 받아야 할 점수보다 150점 정도 덜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실력이 약할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는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크루거와 더닝은 유머감각 뿐만 아니라 논리력, 추리력, 영어 문법 능력 등에서도 이런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실력이 안 되는데도 오디션에 구름 같이 모여드는 현상을 설명해 줍니다. 사람들은  뻔히 떨어질 줄 알고 오디션에 오는 것이 아니라, 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 때문에 오디션에 몰려드는 것이죠. 또한 이 연구 결과는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이 더 큰 자신감을 보이며 저돌적으로 돌진하거나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 마찰을 일으킬 확률이 높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물론 항상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짐작케 합니다.

몇몇 조직의 직원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누가 봐도 능력과 성과가 평균보다 못한 직원들이 더 불만이 크다는 사실을 종종 발견합니다. 여러 직원들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 저절로 '크로스 체크'가 되기 때문이죠. 그들은 성과가 저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기보다는 조직이나 다른 직원들에게서 찾는 경향을 보입니다. 물론 회사의 평가보상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서 불만이 크겠지만, 똑같은 조건인데도 일 잘하는 직원들보다 일 못하는 직원들의 불만이 더 잦고 목소리가 더 큰 현상은 흥미롭습니다.

그들이 자신이 응당 받아야 할 연봉보다 적게 받는다면서 목소리를 높이거나 노조를 찾아가 자신의 억울감을 토로하는 모습을 보면 씁쓸한 마음마저 듭니다. 인사제도의 개선 방향이 자칫 불만이 큰 하위 직원들에게 끌려가지는 않을까 경계할 정도입니다.

지나친 자신감으로 벗어날 때 자신의 실력을 오히려 더 키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실력을 높일수록 겸허해집니다. 크루거와 더닝의 실험에서 유머 감각이 상위 25%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자신보다 덜 재미있는 학생들의 비율을 더 적게 잡았습니다. 자신의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다른 학생들보다 덜 가졌다고 합니다.

일찌기 찰스 다윈은 '지식보다는 무지가 자신감을 더 자주 불러일으킨다'고 말했습니다. 자신감은 무지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진정한 자신감은 실력에서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참고도서 : '보이지 않는 고릴라')
(*참고논문 : Unskilled and Unaware of 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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