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스트는 부정을 저지르고 잘못을 모른다   

2012. 4. 4. 11:27
반응형


지금까지 이 블로그를 통해 나르시스트적인 리더는 조직의 정보 흐름을 막고 독창적이지 않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성원들에게 수용토록 함으로써 조직 성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이번엔 나르시스트들의 도덕성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학자들이 정의하기를, 나르시스트는 권력을 추구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자신을 과시하려 들고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나르시스트의 특징들은 부정(dishonesty)을 저지르려는 동기와 어떤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르시스트적인 성향이 강할수록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부정한 방법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을지 모른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오클라호마 대학의 라이언 브라운(Ryan P. Brown) 등은 비록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수행하긴 했지만, 이런 가설이 옳음을 밝혔습니다. 브라운은 심리학 강의를 수강하는 93명의 학생들에게 연구의 목적이 수학 방정식으로 인지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라고 둘러댔습니다. 학생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10개씩 두 세트로 이뤄진 문제를 풀어야 했는데 정답을 말할 때까지 문제 풀기를 반복해야 했죠. 브라운은 경쟁심을 유발하기 위해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학생들에게 30달러의 상금을 주겠노라고 알렸습니다.



헌데 이 프로그램에는 연구자들에 의해 의도된 '버그'가 있었습니다. 바로 모니터 상에 정답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었죠. 브라운은 이런 버그가 다른 연구에서 쓰던 프로그램을 가져다 쓰는 바람에 어쩔 수 없다고 학생들에게 거짓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제시된 후에 10초 안에 스페이스바를 누르면 답을 쓸 수 있는 칸이 바로 나타나기 때문에 정답이 화면에 나오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고 자세히 일러줬습니다. 브라운은 학생들이 스페이스바를 누를 수 있는 10초라는 긴 시간 동안 정답을 보고자 하는 욕구를 억누르고 정직하게 문제를 푸는지를 보려한 것이었죠.

10개의 문제를 다 풀고 나서 브라운은 학생들에게 또다른 10개의 문제를 제시하면서 이번엔 스페이스바를 1초 안에 눌러야 정답이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제가 나오자마자 순발력 있게 스페이스바를 눌러야 했던 거죠. '10초 조건'과 '1초 조건' 중 어떤 조건 하에서 학생들은 스페이스바를 누르지 않는 부정행위를 더 많이 저지를까요? 당연하게도 1초 조건에서 스페이스바를 누르는 경우가 적었습니다. 이는 부정행위를 하려고 했다기보다는 스페이스바를 누를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0초 조건에서 스페이스바를 누르지 않은 것은 고의적인 부정행위라고 간주할 수 있겠죠.

학생들은 이 실험에 참여하기 3주 전에 나르시스트적 성향이 얼마나 되는지 이미 측정 받았습니다. 나르시스트적 성향 중 대표적인 것은 '떠벌리기'와 '명예욕(entitlement)'인데, 이 중 학생들의 명예욕과 고의적인 부정행위 사이에 유의미한 관련이 있음이 나타났습니다. 나르시스트들은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정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나르시스트들은 이런 부정행위를 계획하거나 고의적으로 저지를 때 죄책감을 느끼긴 할까요? 만일 나르시스트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해서 그렇게 부정행위를 감행하는 것이라면 과연 남들이 저지르는 부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런 의문에 답을 하기 위해 이번엔 에이미 브루넬(Amy B. Brunell) 등이 연구에 나섰습니다. 브루넬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시험을 보면서 부정행위를 저지를 때 어느 정도의 죄책감을 느낄 것 같은지를 물었습니다. 어려운 시험을 치를 때, 친구가 강의노트를 빌려주기를 거부할 때, 친구가 '컨닝을 하자고' 부추길 때 등 다양한 상황을 상정하며 답하도록 했죠. 또한 학생들은 최근에 자신이 몇 번이나 부정행위를 저질렀으며, 앞으로 30일 동안  한 번 이상의 부정행위를 저지를 것 같은지도 응답해야 했습니다. 

분석 결과, 나르시시즘은 부정행위와 연관이 있었습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니 나르시스트의 성향 중 과시욕과 권력욕이 부정행위와 관련이 있었고, 특히 과시욕이 클수록 자기 자신의 부정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덜 느끼는, 자신을 관대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또한 과시욕이 큰 나르시스트일수록 부정행위를 더 많이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과시욕이 큰 사람은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 부정행위를 고의적으로 저지르고 또한 자신을 합리화함으로써 죄책감을 덜 느낀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브루넬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동일한 질문들을 학생들에게 던졌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과시욕의 정도는 부정행위의 빈도와 관련이 없었고 죄책감과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나르시스트들은 나르시스트가 아닌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는 동일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로써 나르시스트들이 고의적으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도덕적 기준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부도덕적인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덜 느끼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나르시스트들은 부정을 저지르고도 자신이 잘못한 줄 잘 알지 못합니다. 나르시스트가 리더이든 아니면 팔로워(부하직원)이든, 권력욕과 과시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죄책감을 덜 느끼면서 부정행위를 더 많이 저지른다는 것, 그 부정이 크건 작건 조직의 성과와 건강한 문화에 나쁜 영향을 미칠 거라는 것을 위의 두 연구를 통해 헤아릴 수 있습니다. 비록 합법적이라 해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그들을 누르고 올라서려 하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비도덕적인 행위는 나르시스트를 둘러싼 사람들의 사기를 꺾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자신을 과장해 내보이는 나르시스트 특유의 능력으로 인해 내막을 잘 알지 못하는 의사결정자에 의해 나르시스트가 리더로 발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나르시스트가 장악한 조직의 의사결정 성향은 어떨까요? 나르시스트가 조직의 중요한 위치에 올랐을 때, 그가 내리는 결정은 과연 얼마나 합리적일까요? 이 주제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루겠습니다.


(*참고논문)
On the Meaning andMeasure of Narcissism
Narcissism and academic dishonesty: The exhibitionism dimension and the lack of guilt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