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2일(목) 유정식의 경영일기 


“싸나이답게, 시원하게 용서를 구합니다. 아량을 베풀어 거둬 주십시요.”

BBQ가 16,000원이었던 치킨값을 20,000원으로, 3주 사이에 25퍼센트나 올렸다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결정 후 급철회하고 어제(2017년 6월 21일) 공식 블로그에 올린 사과문 중 일부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나 역시 이 사과문을 보자마자 ‘장난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싸나이답게 시원하게?’ 사나이도 아니고 싸나이라니! 2만원으로 인상했다가 철회하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대단한 아량이라도 베푸는 듯한 뉘앙스가 강하게 풍겼다. ‘그래, 너희들이 불만이라고 하니까 마음씨 좋고 아량 넓은 내가 봐줄게. 난 싸나이니까!’


BBQ 공식 블로그 캡쳐



이 얼마나 오만한 태도인가? 사과를 하는 건지 시혜를 베푸는 건지 헛갈리는 사과문구는 대체 누가 쓴 건가? 필시 홍보부서에서 사과문을 작성했을 텐데, 사과문 작성의 기본은 사과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사과의 진정성이 느껴지는지 충분히 검토하고 토씨 하나까지 면밀하게 살피는 것 아니겠는가? 홍보 책임자가 이런 사과문을 썼고 블로그에 버젓이 게재까지 했다면 그 사람은 홍보쪽 일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진정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는 최악의 문장이기 때문이다. 


BBQ의 오만한 사과문은 직원 개개인의 역량의 총합은 절대 리더의 수준을 넘을 수 없다는 또 하나의 단적인 사례다. 나는 이 사과문의 홍보 책임자의 결과물이 아니라고 추측한다. 필시 그 위에 군림하는 리더(다 알 것이다)가 사과문을 ‘이렇게 저렇게 써라. 싸나이라는 말이 들어가게’라고 먼저 지시를 내렸거나, 홍보부서에서 결재를 올린 사과문을 본인이 직접 고쳐 써버렸을 가능성을 짐작해 본다. 홍보부서가 제대로 된 역량이 있는 곳이라면 리더가 고쳐 쓴 사과문이 진정성 없음을 대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걸 알아차렸더라도 리더에게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가 아니었겠는가? 반론 제기가 건전한 의견 주장이 아니라 ‘항명’으로 받아들여지는(혹은 그렇게 느끼도록 만드는) 조직문화가 좀 많은가? 리더가 고쳐쓴 사과문을 보고 속으론 ‘이거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활짝 웃으며 ‘정말 명문이십니다’라고 리더를 칭송하고서 ‘뭐, 리더가 하라는 대로 해야지 어쩔 수 있겠어? 리더가 다 책임지겠지’라는, 요즘 말로 ‘웃픈’ 광경이 사과문 게시 전의 상황은 아니었을까? 나는 사과문 속 싸나이는 BBQ라는 회사 전체가 아니라 바로 리더 자신이었을 것이라고 강하게 추측해 본다. 




‘싸나이’이란 단어 속에는 권위주의와 오만함 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무시와 절대적인 남성 위주의 시각도 내재돼 있다. 현실적으로 많은 회사가 그러하듯 BBQ 역시 남자직원들이 여자직원들보다 많을 것이고 관리자 레벨에서는 남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거라고 짐작된다. 그렇다 해도 여자직원들도 엄연한 조직의 구성원인데 ‘싸나이답게’라니! BBQ는 남자들만의 조직인가? 여자직원들은 남자직원들의 부속품인가? 은연 중 여성을 무시하고 비하하며 여성은 그저 치킨 판촉을 위한 모델로만 여기는 내부 문화가 존재하기에 자신들도 인식하지 못한 채 자기 회사를 남성으로 지칭하고 만 것이다. 


BBQ 공식 블로그에 올라온 사진에는 직원들이 BBQ 로고가 등에 적힌 빨간 티셔츠를 입고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이 나온다. 사과에 직원들이 동원된 것이다. 가격 인상 결정은 고위 경영자가 해놓고 사과 퍼포먼스는 직원들이 한다? 왜 자신들의 잘못을 직원들이 대신 사과해야 하는가? 왕자가 잘못을 하면 매를 댈 수 없기 때문에 매맞는 아이에게 회초리를 가하는 것처럼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경영자가 자기 대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이유라고 말한다면 그에게서는 ‘직원 만족’이나 ‘직원 존중’은 절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사과의 기본은 잘못을 저지른 자가 직접 하는 게 옳듯이 최종 결정을 내린 책임자가 직접 머리를 숙이는 게 기본 중 기본이다. BBQ는 이런 측면에서 기본이 전혀 없다.


리더 1인 체제라는 비민주적 문화 속에서 탄생한 이번 사과문은 잘못된 사과의 ‘모범(?) 사례’로 교과서에 실릴 것 같다. 이번 사건이 홍보부서의 최종적인 실책이 아니라고 이해하더라도 ‘주십시오’를 ‘주십시요’로 잘못 쓴 맞춤법 오류(‘싸나이’는 사나이를 강조하기 위한 애교로 봐주더라도)는 좀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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