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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3일(금)


“여기에 왜 이렇게 쓰레기를 버리는지 모르겠네!”

연희동 서연중학교 앞을 지나던 H군은 눈살을 찌뿌리면서 이렇게 짜증을 냈다. H군이 멈춰선 곳을 쳐다보니 서연중학교 교문에서 내려오는 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인 코너였는데, 늘 무단투기된 쓰레기로 지저분한 곳이다. 언덕 아래의 코너라서 깊이가 깊어서 거기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도 안심(?)이 될 것 같은 곳이다. 무단투기된 쓰레기 뿐만 아니라 정상적으로 쓰레기를 내놓는 날(연희동은 화, 목, 일)에도 그곳에는 쓰레기봉투가 가득하다. 쓰레기봉투는 자기집 앞에 놓으라고 구청에서 그렇게 홍보하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그렇게 쌓아놓는 이유는 역시 쓰레기를 갖다 놔도 버려진 쓰레기들이 아늑(?)하게 머물다 갈 만한 곳이기 때문인 듯 하다.


“여기에 화분을 갖다 놓으면 뭘 해! 여기에 쓰레기를 쑤셔 넣는데.”

여전히 짜증을 내는 H군의 어깨 너머로 보니 구청에서 안 되겠다 싶었는지 설치해 놓은, 붉은 꽃이 대형 화분 세 개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틈으로 자질구레한 쓰레기들이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쓰레기를 무단투기하는 곳에 꽃을 심어 놓으면 쓰레기를 버리러 왔다가 예뻐진 그곳을 더럽히는 게 미안해서 그냥 돌아간다는 심리를 어디서 보긴 했나 보다.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를 갖다 두면 차가 갈수록 파괴되고 쓰레기로 가득해진다는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작용하는 걸 막기 위해서 나름 고민한 흔적이었다.




하지만 화분의 형태를 보면 쓰레기를 갖다 버려도 안심이 될 만하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대형 화분의 높이는 배꼽까지 올라올 만큼 높았고 아래로 갈수록 아래로 좁아지는 모양이었다. 게대가 세 개의 화분을 밀착시키지 않고 두뼘 정도 떨어뜨려 놓아서 사이 사이에 빈 공간 훤히 드러났다. 거기에 커다란 장난감 자동차를 쑤셔 박아놓은 걸 보고 H군이 열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사진을 보면 대걸레 자루가 벽에 기대어 있고 벽과 화분 사이에 대형 플라스틱 뚜껑과 자질구레한 쓰레기가 엉켜 있는 걸 볼 수 있다. 배출하는 날이 아닌데도 쓰레기봉투가 화분 앞에 떡하니 누워 있는 건 그렇다 하더라도 말이다.


화분을 가져다 놓으려면 벽에 확실이 밀착시켜 쓰레기를 숨길만 한 공간을 최대한 없애고 사각형으로 된 화분을 사용하여 그 사이에도 빈 공간이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진처럼 빈 공간을 만들어 두면 아무리 꽃이 예뻐도 쓰레기를 버리고자 하는 욕구를 이겨낼 수 없다. 그냥 화분만 갖다 놓으면 쓰레기를 무단투기하지 않겠지, 하며 안일하게 생각하면 곤란하다. 문제는 겨울에 더 커진다. 지금은 날씨가 여름이라 꽃을 심어둘 수 있지만 꽃이 없는 겨울에는 이게 화분인지 쓰레기통인지 언뜻 구분하기가 어렵다. 지난 겨울에 보니 화분 안까지 지저분한 쓰레기가 넘쳐났다.




사람의 심리를 활용한 조치는 끊임없는 관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아주 미묘한 차이에 따라 원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움직일 수도 있고 아예 생각하지도 못한 행동을 자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도 여러 가지 제도나 크고 작은 규칙들이 아주 작은 차이로 직원들의 행동을 다르게 만들 수 있으니 면밀한 모니터링이 반드시 필요하다. 구청 관계자들은 이를 간과한 모양이다. 화분을 갖다 놓는 것만 생각했지, 화분의 형태와 설치 방식까지 고민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리고 화분을 심은 후에 무단투기가 줄었는지 계속 관심을 가지고 봐야 하는데 역시 이것에도 무관심한 것 같다. 화분 설치로 무단투기를 줄였다, 라고 내부 보고서나 구정 홍보에 활용하면 그만이겠지 싶다.


“에이, 짜증나. 짜증나니까 OOO에서 팥빙수 사줘요.”

왜 내가 팥빙수를 사야 합니까, 따지려다가 나는 이렇게 말했다.

“OOO에서 팥빙수 안 한다면서요?”

H군의 얼굴에는 낙담과 분노가 어지럽게 교차했다. 나는 미팅이 있다고 황급히 그 자리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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