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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7일(금) 유정식의 경영일기 


“어디 가요?”

바삐 짐을 챙기던 나에게 H군이 물었다.

“일산에 현대모터스튜디오가 있다고 해서 한번 가보려구요.”

“그래요? 근데 혼자 가요? 그런 건 같이 가서 봐야 재미있죠. 팥빙수 사주면 같이 가 드리지요.”

H군은 내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차 있는 곳으로 먼저 향했다. 뇌의 90프로가 팥빙수로 가득찬 H군이다. 같이 가서 보면 의견을 나눌 수 있을 테니 팥빙수 하나쯤 기꺼이 선사하리다.


연희동에서 30분쯤 차를 몰아 현대모터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주차장이 어딘지 친절하게 안내되지 않아서 처음부터 약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객차량 주차 금지’라고 해놓았으면 어디로 가야 주차할 수 있는지 표시해 주면 안 되나?).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니 주차장 전체에 젠Zen 스타일의 음악이 낮게 울렸고 은색 금속으로 통일한 듯한 엘리베이터 주변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 나름 공을 들인 것이 분명했기에 어떤 컨텐츠가 우리를 맞을지 사뭇 기대되었다.


1층으로 올라가니 넓직한 공간에 현대자동차에서 판매 중인 차종들이 한 대씩 전시돼 있고 요즘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받으며 출시된 소형 SUV ‘코나(Kona)’는 대여섯 대가 사람들을 맞았다. 코나를 제외하고 다른 차종은 별 관심이 없기에 우리는 곧장 발권 데스크로 향해 12시 15분부터 시작하는 체험 프로그램의 티켓을 구입했다. 1명에 1만원이이었다. 분명 내 아이폰으로는 12시 16분인데 입장을 관리하는 직원은 아직 시간이 안 됐으니 1~2분만 기다렸다가 입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곳의 시계는 느린가? 뭐, 암튼.’ 




맨처음 나타난 전시물은 ‘철’에 관한 것이었다. 철광석 샘플과 일반강판과 초장력강판을 만져볼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자동차의 근간이 철에 있다고 본다(정확한 워딩은 아니다)’는 식의 메시지가 화면에 떴다. 아, 나는 이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이곳 모터스튜디오는 자동차의 역사와 문화와 같은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자동차라는 하드웨어에 초점을 맞추고 만들어진 ‘견학장’이라는 것을. 철광석을 만지작거리다가 앞으로 이동하니 5300여톤의 압력으로 철판을 찍어내는 커다란 프레스(정확히는 흉내내는 모형)가 있었다. 철판을 찍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사운드까지 가미해서 모르는 사람은 진짜 평평하던 철판이 찍혀서 문짝과 같은 모양이 나오는지 착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눈속임이었다. 그 후로 여러 대의 로봇이 자동차를 용접하고 도장하고 시트와 앞유리창(윈도 쉴드)를 장착하는 모습을 시현하는 전시물이 이어졌다. 사실 나는 첫 직장이 기아자동차였고 평소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터라 그런 시현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생뚱맞았다. 옆에 있던 H군은 버튼을 누르면 로봇이 움직이는 게 신기한 듯 했지만, 잠시 그러다가 싫증이 난 모양이었다. 빨리 다음 코스로 가자는 눈치였다.




그래도 뭐가 있겠지 싶어 안내를 따라 아래층으로 향했는데, 거기서 나와 H군은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벽면에 여러 개의 에어백이 붙어 있는데, 그 중에 눌러보라는 의미로 손 모양이 찍힌 에어백이 있었다. 눌러보니 그 에어백을 중심으로 빛이 퍼져 나가거나 에어백의 바람이 빠지는 퍼포먼스가 연출되었다. 더욱 웃겼던 것은 벽면을 따라 걸으면 에어백의 빛이 따라 움직이니 한번씩 해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그게 에어백이랑 어떤 상관이죠?”라고 H군은 따질 기세였다. 에어백을 가지고 만든 설치작품일 뿐이지 않나? 순서가 정확한지 모르지만, 이후 코스는 ‘스몰 오버랩(small overlap) 충돌 테스트’, 풍동 실험과 공기저항 체험, LED 빛을 이용하여 표현한 자동차의 여러 가지 사운드(엔진음, 도어 여닫는 소리, 윈도 블레이드(와이퍼) 움직이는 소리 등), 엔진과 DCT 변속기의 작동원리, 알루미늄 기둥들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만들어내는 ‘입체 쇼(내가 붙인 이름)’, 마지막으로 철광석이 철이 되고 그 철이 자동차로 변신하여 랠리에 뛰어드는 것을 4D로 경험할 수 있는 라이드(ride)관으로 이어졌다.





“……”

라이드관을 빠져나온 H군과 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눈물 나게’ 반가웠던 것은 여느 전시장 끝에 꼭 있기 마련인 기념품 매장에서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했던 포니(pony)의 모델카를 발견한 기쁨이었다. 모델카라고 하기에는 품질이 조악했고 크기도 작았지만(1:38비율) 우리가 이곳 모터스튜디어에서 현대의 헤리티지를 느끼게 해 준 것은 고작 6500원 정도밖에 하지 않는 이 작은 미니카가 유일했다. 현대가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업체가 되도록 발판을 마련해 준 자동차가 포니가 아닌가? 포니 이전에는 타 자동차 회사의 모델을 들여와 조립해서 판매하던 시절도 있지 않던가? 게다가 현대차 그룹에는 기아자동차도 있으니 기아가 1960년대 중반에 일본 마츠다 사의 삼륜차를 들여와 K-360이란 이름으로 팔았던 기억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무궁무진하지만 잊혀진 컨텐츠를 담아내는 그릇일 거라 모터스튜디오를 기대했던 게 잘못이었다. 이 글을 읽을지 모르는 현대 관계자들은 애초에 ‘박물관’을 기대한 내가 잘못이라고 지적할 것 같다.




“이곳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2100년에 초등학생들이 찾아올 법한 자동차 견학장’ 같네요.”

내부의 카페에서 샐러드를 씹으며(다이어트 중이란다) H군은 뼈아프게 지적했다. 실버 느낌으로 전체를 감싼 전시장의 내부 온도는 찌는 듯한 외부와 달리 쾌적했고 공간도 여유 있어서 그 점은 편안했지만 코엑스나 킨텍스나 다를 게 무엇이 있을까 싶었다. 완곡하게 말하면, 자동차의 여러 부분(에어백, 소리, 디자인 등)에서 모티브를 얻어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설치작품들이 전시된 장소 같다고 해야 할까? 




“왜 여기에는 현대의 헤리티지나 문화가 없나요?”

언제나 단도직입적인 H군은 직원 하나를 붙잡고 이렇게 도발적으로 물었다. 나는 그때 새로 나온 SUV 코나를 타보고 만져 보느라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알지 못했는데, 나중에 돌아온 H군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 모터스튜디오의 컨셉트는 ‘철’이래요. 자동차는 철이 기본이라고 하네요. 자기네들은 자동차를 만든 역사가 짧아서 헤리티지보다 자동차 자체에 집중했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여러 계층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전시 컨텐츠의 수준을 그리 깊게 설정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역사가 짧다니, 내 입에서는 절로 한숨이 터졌다. 그 다음 말이 더 충격적(?)이었다.

“현대의 강점은 제철회사를 가지고 있는 거래요. 다른 자동차 회사는 없지만 현대에는 있다고요. 그래서 여기도 철을 주요 테마로 삼은 거고요.”

현대자동차를 떠올리면 과연 ‘철’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 현대가 다른 건 몰라도 철판 하나는 끝내주게 만든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직원 한 명이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해서 회사 전체의 생각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말하도록 교육 받았더라면 어떤 컨셉트를 가지고 모터스튜디오를 만들었는지 짐작이 됐다. 남녀노소 모두를 만족시키려다가 대형 견학장이 되어 버린 모터스튜디오를 ‘적어도 나는’ 다시 찾을 일은 없을 것 같다. 한번 봤으면 됐지 두번 볼 이유가 없다. 좋은 제품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지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재구매율’인데,  헤리티지와 문화와 ‘사소한 스토리들’이 숨쉬고 있다면 하루도 부족해서 여러 번 찾을 듯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곳의 ‘재방문율’은 그리 높지 않을 듯 하다. 저 멀리 독일 뮌헨의 BMW박물관과 슈트트가르트의 벤츠 박물관은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그래도 카페에서 마신 커피는 제법 훌륭해서 다시 마시러 올 수는 있겠다 싶다.


주차장에서 지상으로 나오니 현대모터스튜디오의 전경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2100년의 자동차 견학장은 크기만큼은 넘버원이다. 왜 만들었을까? 현대가 표방했다는 ’체험형 자동차 문화 공간’은 어디 있지? 이곳 역시 빨리빨리 만들어 내려다가 이렇게 된 건 아닐까 의심해 본다. BMW가 영종도에 드라이빙 센터를 만들며 자동차 문화를 선도하는 모습에 급당황하여 뭐라도 만들어야겠다 싶은 게 아닐까? 그놈의 빨리빨리 문화가 이제는 지긋지긋하다.



(사족: 앞으로 현대가 인수한 구 한전 부지에 자동차 박물관을 만들 계획이라니 한번 기대를 걸어본다. 제발 누구나 만족시키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그곳은 '어깨에 힘 팍 주고' 현대차의 역사와 기술을 맘껏 뽐내는 장이 되길 바란다. 고객의 수준을 너무 낮게 보지 말라는 뜻이다.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대국의 국민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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