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얼렁뚱땅 창업기(創業記)   

2009. 6. 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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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람들은 내가 창업을 한 계기가 특별히 무엇인지, 간혹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딱히 답해줄 말을 찾기 어렵다. 거창한 계기와 계획을 가지고 창업을 한 게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의 창업은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택한 차선책에 불과했다.

몇 년 전, 다니고 있던 컨설팅펌은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로 얽혔다. 회사를 그만 두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타인과의 갈등 문제라고 했던가? 그래서 과감히 회사를 그만 두기로 마음 먹었다.

때마침 개인적으로 알던 사람들과 의기투합이 되어 동업으로 벤처기업을 해보기로 했다. 리스크 관리시스템, 특히 운영리스크에 관한 어플리케이션 패키지를 주력으로 전개하겠다는 포부로 시작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시장이 무르익지 않았는지, 아니면 우리의 마케팅이 영 시원치 않았는지 3개월도 못 가서 접기로 했다.

갑자기 백수가 된 나는 몇 달 동안 하릴없이 도서관과 집을 오가며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깊은 시름으로 날마다 살이 쪽쪽 빠지는 느낌이었다. 말은 점점 없어지고 툭 하면 아내에게 화를 냈다. 아마 그 때가 사회생활 중 가장 힘들었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정말 싫었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몇몇 컨설팅 펌에 지원서를 냈다. 허나 지원서를 낸지 한 달이 지나도 응답이 없었다. 몇몇 지인들이 옮겨간 컨설팅 펌에도 입사를 요청해 봤으나, 차일피일 미루거나 핑계를 대기 일쑤였다. 컨설팅 시장이 위축되면서 인력에 대한 수요도 급감하긴 했으나, 나에게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섭섭함을 너머 배신감까지 느껴졌다.

간혹 관심을 보이는 곳이 있었으나 제시하는 연봉과 대우가 전보다 못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부끄럽지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인지 그것만은 수용하기 싫었다.

(1인기업과 수박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맞히신 분에게 선물 드립니다. ^^)


그러던 어느 날, 예전에 같이 일하던 분이 컨설팅을 해보지 않겠냐며 제안을 해왔다. 처음엔 그냥 프리랜서 마인드로 되는대로 그분과 이것저것 일도 했는데, 불쑥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나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살았어. 하지만 지금부터 혼자만의 힘으로 해볼까? 까짓 것 돈이야 밥 먹을 정도만 벌면 되지 않겠어?'

이렇게 얼렁뚱땅 나의 사업은 시작됐다. 처음 몇 달간은 진짜 배가 고팠다. 당연했다. 달랑 이름뿐인 내게 누가 컨설팅을 맡기겠는가? 컨설팅 시장의 불황이 지속되면서 컨설팅 펌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이어지기에, 나같은 작은 기업의 존재감은 매우 미약하기 그지 없었다.

힘들었다. 매일매일 힘이 빠졌다. 그러나 아무런 꿈도 없이 도서관이나 왔다 갔다 했던 시절보다는 나았다. 도서관 시절은 대책 없는 ‘제자리 걷기’였지만, 초창기 시절은 고객에게 한걸음씩 다가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이름도 제법 알려져 고객사도 늘고 경제적으로도 나아졌다. 경기에 따라서 부침이 심한 업종이 컨설팅이지만, 이제는 최소한 앞날을 걱정하지 않는다. 계획할 여유가 생겼다.

만약 내가 창업할 생각을 못했거나 지레 겁먹고 실행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가끔 해 보곤 한다. 예전처럼 컨설팅 펌에 들어가 남들이 따낸 프로젝트에 수동적으로 임하고 있으리라. 돈이야 안정적으로 벌겠지만,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자만이 만끽하는 성취감은 알지 못했을 거다.

나는 스스로 성공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려면 멀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에게 '사업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훈수를 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그저 조그만 회사를 꾸려온 경험만을 이야기할 수준 밖에 되지 못한다.

무언가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분들이 많은 줄로 안다. 탈출의 도구로 창업을 꿈꾸는 분들도 많다. 그분들은 나에게 자금과 사무실, 마케팅 방법 등의 문제를 의논해 온다. 그러나 기술적인 부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런 분들에게 위기를 기회로 바꿔 생각하는 계기를 스스로 찾으라고 말해 드리고 싶다. 그러지 못하면 창업은 실행되지 못할 꿈에 불과하다. 창업을 꼭 해야 하는 이유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지 못하면, 뛰어들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혹시 지금, 자신만의 회사를 만들어 세상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면, 힘찬 격려와 축복을 보낸다.

* 덧붙임 1 : 거창하게 '창업기'라 이름을 달았는데, 그저 옛날 이야기로 읽어 주십시오. ^^
* 덧불임 2 : 엄밀하게 말하면 제가 시작한 창업 형태가 1인기업은 아니기에 제목을 바꿔 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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