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오래 씹어 먹는 다이어트법   

2008. 4. 2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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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몸이 점점 불어가고 체력도 점점 떨어지는 것 같다. 불과 2~3년 전에는 밤을 꼴딱 새우고나서 하루종일 연강(쉬지 않고 8시간 강의)해도 그리 힘든 걸 몰랐는데, 요샌 좀 힘에 부친다. 밤 한 번 새우면 그 여파가 3~4일을 가니 말이다.

떨어진 체력을 보강하고 살도 좀 빼고자 밤마다 공원을 1시간 가량 걷는 운동을 한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아서 요즘 날씨는 운동하기에 딱 좋다. 조금은 차가운 밤공기가 코를 통해 폐 가득 쌓일 때 정신이 상쾌하고 맑아진다. 일상의 스트레스가 호흡을 하면서 싹 날아가는 듯하다.

그런데 몸무게는 좀처럼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한 끝에 며칠 전부터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적게 먹기로 한 것이다. Output을 늘리는 방법(운동)에 Input을 줄이는 방법(다이어트)를 더하면 효과가 배증되지 않을까 해서다.

하지만 다이어트는 고통스러운 배고픔을 동반한다. 한창 일해야 할 오후 4~5시와 글을 쓰는 한 밤 중에 느닷없이 허기가 찾아온다. 그때마다 먹을 것이냐, 말 것이냐며 내 머리 양쪽에서 천사와 악마가 설전을 벌인다. 나는 중간에 앉아서 그 녀석들의 지루한 논쟁을 들을 기력도 없다. 헌데 애석하지만 매번 악마의 승리로 끝난다.

일단 배고픔을 잠 재워야 일을 할 수 있을 것 아니냐며, 합리화해보지만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고통이 별로 없는 다이어트 방법은 없는 걸까? 충분히 먹으면서 편안하게 다이어트를 할 순 없는 걸까?

고민하던 차에, 어제 틱낫한 스님이 쓴 '화'를 읽었는데 거기에서 꽤 괜찮은 방법을 발견했다. 적게 먹으면서도 배고픔을 견디는 스님만의 다이어트법은 바로 '천천히 오래 씹어서 먹는 것'이었다. 별것 아닌 듯 하지만, 어제 저녁부터 오늘 저녁까지 실천해보니까 효과를 느낄 수 있다.

'천천히 오래 씹어 먹는 다이어트'는 다음과 같이 하면 된다.

1. 음식을 한 숟가락 입에 넣고 최대한 천천히 꼭꼭 씹는다.
2. 음식의 맛을 혀 전체로 음미하면서 씹는다.
3. 50번 정도 씹는다. 그러면 입속의 음식은 거의 액체가 된다.
4. 더 이상 씹을 게 없다고 생각될 때 천천히 넘긴다.
5. 물을 마시면 잘 씹지 못하므로, 물은 식사 후에 소량 씹어서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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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오래 씹어 먹으면 예전에 먹던 음식보다 적게 먹게 된다. 위는 포만감을 늦게 알아차린다. 음식을 빨리 먹으면 위가 배부름을 느끼기 전에 이미 많은 음식을 먹은 상태라서 과식하기 십상이다. 식사를 천천히 하면 예전보다 적은 양으로 위가 포만감을 느끼게 된다. 자신에게 적당한 음식 양에서 식사를 마치려면 느리게 먹는 여유가 필요하다.

거의 액체가 될 정도로 음식을 곱게 씹으면 음식물에 포함된 영양소를 몸이 더 잘 흡수할 수 있다. 대충 씹어서 넘기면 덩어리 속 영양분이 위나 장에서 제대로 흡수되지 않고 그냥 배설되거나 몸에 찌꺼기를 남긴다. 충분히 씹으면 음식물의 영양분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적게 먹어도 배고픔을 덜 느끼게 된다.

'천천히 오래 씹어 먹는 다이어트'를 실천한지 겨우 만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체중 감량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속이 편안해지니 좋다. 그 전에는 밥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했다. 또한 머리가 맑아지는 듯해서 좋다. 음식을 천천히 씹으면서 맛에 집중하다 보니 마음이 안정되고 부드러워진다. 이유없는 불안감도 증오도 가신다. 불가에서는 공양(=식사)도 명상이라고 말하는데, 그 의미를 조금 알 것 같다.

인위적으로 조작된 좁은 사육장에서 비육과 산란만을 강요 받는 닭과 오리들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열악한 사육환경 때문에 쌓인 가축들의 스트레스는 그것들을 섭취하는 우리에게 고스란히 이전된다. 적게 먹으면 그것들의 부정적인 화기(火氣)를 적게 받아들일 수 있다. ( 요즘 조류독감 때문에 전국이 시끄러운데 어찌보면 인재(人災)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의 몸에 쌓인 부정적인 화기(火氣)가 바이러스를 창궐하게 만든 기폭제가 아니었을까? )

적게 먹고 오래 씹는 소식장작(少食長酌 ? )의 다이어트법, 과연 효과가 있을지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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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미술관'에 다녀와서...   

2008. 4. 2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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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에 잠실종합운동장에 있는 '살아있는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전시물이 모두 복제품이고 그림 종류도 많이 없었지만,
잘 알지 못했던 그림 감상법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이 될 만합니다.

포토존 이외에 사진을 못 찍게 해서 보여 드릴 만한 사진은 별로 없군요.
어차피 No Photo 라서 똑딱이만 들고 가서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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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미술관 전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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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밤의 테라스'라는 그림을 가지고 까페처럼 꾸민 곳입니다. (그림만큼 실감은 나지 않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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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경을 카메라 렌즈에 대고 찍었습니다. 인물을 대상으로 찍으니 재미있는 효과가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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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장사하라   

2008. 4. 18.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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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발송되어 온 이동통신사의 청구서를 무심코 뜯어보다가 화가 났던 일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청구서에는 신청한 적도 없는 벨소리 부가서비스 요금 2000원이 버젓이 써 있었다. 게다가 작년부터 지금까지 총 16000원이란 돈이 내 계좌에서 소리도 없이 인출된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출시될 때 휴대폰에 내장되어 나오는 벨소리만 사용해 온 나로서는 도대체 신청한 적도 없는 휴대폰 부가서비스 요금이 어찌하여 청구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동통신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항의하였다. 그러나 담당자는 벨소리 서비스를 신청한 사실이 분명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신청해 놓고 잊어버린 것이 아니냐며 나에게 잘못을 전가하려 하였다. 몇 분간의 실랑이가 있었으나 도저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전화를 끊고 말았다.

몇몇 사람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말했더니, 자신도 그러한 피해를 본 적이 있다는 사람이 제법 됐다. 처음에는 공짜로 제공하다가 통지도 없이 유료로 전환해 버린다든지, 콜센터 직원의 교묘한 질문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부가서비스 사용에 동의케 한다든지의 부당한 사례를 쏟아냈다. 가끔씩 뉴스에서 이동통신사들이 부가서비스를 통해 부당한 이득을 챙기고 있다는 사실이 실제로 우리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번 계산을 해보자. 내가 가입한 이동통신사가 보유한 가입자수는 대략 2400만명이라고 한다. 월 2천원의 부당한 요금 청구가 가입자의 5%에게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이통통신사는 한달에 24억원 (2천원 * 2400만명 * 5%) 이라는 엄청난 이익을 챙기는 꼴이 된다. 나처럼 요금청구서 내역에 무심하여 8개월이 넘도록 부당청구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고객을 속여 벌어들인 이익은 아마 수백억원 이상이 될 것이다. 벨소리 다운로드 같은 부가서비스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은 거의 고정적일 것이다. 즉, 그 서비스를 1명이 이용하건 2400만명이 이용하건 이미 소요됐고 앞으로 소요될 비용은 동일하다는 사실에 비춰보아, 수백억원의 부당이득은 이동통신사 입장에서 봤을 때 참으로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이득이기 때문이다.

왜 이러한 불공정한 행위가 발생하는 것일까? 고객을 속여 부당한 이득을 가능한 한 많이 챙기라는 것이 이동통신사의 내부방침은 아닐 텐데 - 부디 아니길 바란다 – 왜 이런 부정이 저질러지고 있는 것일까?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정말이지 순진한 생각인데, 진짜로 이동통신사의 실수일 수 있다. 수천만명의 가입자를 관리하다 보면 의도하지 않았던 실수를 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같은 부당이득 절취사건이 주변에서 꽤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로 볼 때 단순한 업무상의 과실로 야기되었다고 덮어버리기엔 뭔가 조직적인 사전모의가 있었다는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여기서 나는 '성과주의의 그늘'을 본다. 성과주의가 우리에게 가져준 폐해의 전형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벨소리 부가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부서와 직원들은 지속적인 매출 향상의 압박을 1년 내내 24시간 받고 있을 것이다. 연봉제니 BSC니 하는 것들이 안 빠지는 날이 없을 것이다. 하루 종일 전화통을 붙잡고 사는 텔레마케터 또한 매니저로부터 아침 저녁으로 귀가 따갑도록 실적을 내라는 훈화를 듣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방으로부터 성과를 향상해라, 실적을 높여라, 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고객이 동의하지 않은 부가서비스를 은근슬쩍 임의로 신청해 버리고자 하는 유혹을 견디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본인의 실적 향상 여부가 급여에 적극적으로(?) 이어질수록 유혹의 크기는 커질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화려하게 소개되어 이제는 거의 정론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성과주의, 그것이 가져다 준 어두운 그늘인 것이다.

요즘 많은 기업들이 윤리경영을 이야기한다. 윤리적인 기업이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으며 윤리적이지 않으면 잘 나가다 갑작스레 도산될 수도 있다는 것이 윤리경영이 내세우는 화두다. 이른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있어 기업의 윤리적인 경영활동은 기업생존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시장의 우월적인 지위를 악용하여 동의치 않은 이득을 취하는 것은 호주머니에서 돈을 강탈해가는 절도행위나 다름없다. 천문학적인 매출액에 비해서 ‘새 발의 피’ 정도의 불과한 액수일지는 몰라도 그와 같은 부당행위를 방치하다가 언젠가 회사 전체를 뒤흔들어 놓을 스캔들로 번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다녔던 컨설팅회사까지 망하게 만든 엔론 사태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는 성과주의 경영과 윤리경영, 이 두 개의 경영철학을 어떻게 하면 함께 추구할 수 있을까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과주의경영에 윤리경영을 접목하는 시발점은 성과를 좋은 성과, 나쁜 성과로 확실히 구분하여 이를 조직의 규범으로 정착시키는 것이다. 좋은 성과, 즉 윤리적인 틀 내에서 공정하게 달성한 성과에 대해서만 보상해야 하며, 비윤리적인 범법행위에 의해 쌓아 올린 ‘나쁜 성과’에는 절대 보상하지 말고 오히려 철저히 배척하고 엄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이 오랫동안 번영을 누릴 수 있는 윤리적 토대 위에 성과를 평가하는 지표와 잣대를 다시금 구축해야 하며, 이를 우직하게 밀고 나갈 CEO의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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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Vision)이 있어야 하는 이유   

2008. 4. 1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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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라는 말이 있다. 베트남 전쟁 중에 하노이 힐턴 수용소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미국의 장교 짐 스톡데일 장군의 이름을 딴 말이다. 그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8년간 수용돼 있으면서 4년간의 독방 생활과 수십 차례의 모진 고문을 견뎌내야 했다. 전쟁포로를 보호하기 위해 체결된 제네바 협약은 그곳에서 무의미한 선언에 불과했다. 포로로서의 권리는 무자비한 폭력 앞에 무릎을 꿇었고 정해진 석방 날짜 없이 끝도 모를 전쟁을 이겨내야 했다.

대부분의 장교들은 포로 생활 중에 숨을 거뒀지만, 그는 미국의 장성으로서는 유일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생환의 비밀을 묻는 기자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믿음을 잃은 적이 없습니다. 그곳에서 풀려날 희망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으며, 결국에는 빠져나와서 나중에 그 끔찍한 경험을 내 생의 전기로 전환시키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기자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견뎌내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그가 대답했다. “낙관주의자들은 견뎌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가 오면 나갈 수 있을 거야,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다가 크리스마스가 지나버리면 부활절이 오면 나갈 수 있겠지, 라고 말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상심하다가 차례차례 죽어갔습니다.”

비전은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우리는 보통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좋은 것을 상상하면서 지금의 고난을 잊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 잘 될 거야. 좋은 날이 올 거야.” 라며 위로하지만 결국 이러한 말은 오히려 현실의 괴로움과 어려움을 변치 않을 운명으로 굳어 버리게 만들고 현실을 개선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영원히 꺾게 만들 수도 있다. 상상만으로 좋은 날은 오지 않는다. 스톡데일이 참담한 상황을 이기고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근거 없는 희망을 버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단기적인 목표를 끊임없이 세우고 하나씩 이루어 낸 것에 있다. 

이처럼 비전이란 멋들어진 몇 마디의 문구로 꾸민 장밋빛 미래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낙관주의로 비전을 치장해서는 안 된다. 스톡데일의 사례처럼, 올바른 비전은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현재 처한 상황에서 최대한의 노력으로 달성이 가능한 미래를 설정하도록 한다. 이것이 비전의 힘이다.

비전은 원칙을 제시한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생애 동안 무수한 난관에 접한다. 비전은 우리에게 가능한 한 그러한 난관에 접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여러 난관에 부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를 알려주기 위해 필요하다. 갑작스러운 경기 추락으로 매출과 이익이 급감하고 있는 위기 상황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때 우리 회사의 비전 선언서를 들춰보라. 가격을 낮춰라, 공급업체를 바꿔라, 등등 당장에 실행할 묘책은 분명 그곳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전에는 이러한 위기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준수해 가야 할 원칙이 명기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비전의 힘이다.

델타 항공의 비전은 ‘세계인의 항공사로 선택 받는다.’ 라는 아주 짧은 말로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함의되어 있다. ‘세계인의...’ 라는 문구에는 적극적인 신규노선의 개척과 타 항공사와의 제휴 영업이라는 사업의 방향이, ‘항공사로...’ 에는 다른 사업에 눈을 돌리지 않고 항공 수송이라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 투자할 것이라는 의지가, ‘선택 받는다...’ 에는 고객, 주주, 사원들에게 선택 받을 수 있도록 탁월한 서비스, 높은 투자수익, 성과지향의 근무환경을 제공하겠다는 목표가 숨어 있는 것이다.

비전은 행동에 몰입하도록 한다. ‘쇼생크 탈출’ 이란 영화에서 탈출에 성공한 주인공이 가석방되어 나올 감방 동료에게 돌 밑에 숨겨 둔 쪽지로 말했듯, 물론 ‘희망이란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의 희망이 감동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면서도 탈출을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매일 실천에 옮겼다는 것에 있다. 그의 희망은 본인의 억울함이 알려져 언젠가는 풀려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결코 아니었다.

영화의 압권은 속임수를 당한 교도소장이 반쯤 닳아 없어진 숟가락을 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 부분이었다. 그에게 있어 희망이란 매일매일 조금씩 숟가락으로 벽을 파내는 것이었다. 비전의 힘은 우리를 경쟁자로부터 구별 짓게 하는 맨 밑바닥의 동력, 바로 숟가락으로 벽을 파도록 만드는 동기를 부여한다는 데 있다. 때때로 비전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다. 이것이 비전의 힘이다.

사방이 깜깜한 한밤중에 길을 갈 때 가장 반가운 것은 무엇일까? 손에 들고 있는 랜턴일까? 아니다. 그것은 겨우 발밑만 비춰줄 뿐이다. 가장 반갑고 고마운 것은 바로 저 멀리 보이는 민가의 불빛이다. 비전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게 절실한 것이다. 절망을 추스르고 어둠 속을 헤쳐가게 하여, 결국은 우리를 살리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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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한 일을 칭찬해야 진짜 칭찬이다   

2008. 4. 17.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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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라는 책이 한동안 서점가를 장악했었다. 책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여기저기서 칭찬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기업과 단체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칭찬의 긍정적인 효과에 기업들이 눈을 떴다는 신호이다. 펜텍계열은 칭찬릴레이를 통해 선정된 직원들을 사보나 인트라넷에 소개하고 포상하는 등의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몇 년 전 방영됐던 TV프로그램인 ‘칭찬합시다’를 연상시킨다.

LG전자는 동료에 대한 칭찬의 말을 쪽지에 적어 ‘칭찬나무’에 걸어 두면 한 달에 한 번 수확하여 칭찬받은 직원에게 사내 매점 이용권을 준다. 또한 칭찬하고 싶은 사람에게 즉석에서 ‘칭찬쿠폰’을 발행하도록 하여 가장 많이 쿠폰을 모은 직원에게 포상을 하기도 한다. 이 기업들은 이와 같은 노력들이 회사의 성과 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칭찬문화를 뿌리 내리려는 노력이 여러 방식으로 시도되고 있으나, 공통적인 특징은 이벤트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는 칭찬하는 것에 인색하고 칭찬 받는 것에 어색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 때문인 것으로, 기업으로서는 칭찬문화를 북돋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칭찬릴레이는 한계가 분명 있다. 기존의 우수사원 포상과 같은 아니냐며 오해될 수 있다.

직원들로서는 그것과 칭찬이벤트와의 차이를 구분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칭찬이벤트에 의해 선정된 자야 좋겠지만 해당되지 않은 다수의 직원들은 오히려 소외감을 느껴 이벤트에 열을 올리는 회사 측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 볼 위험이 있다. 내가 예전에 근무했던 직장에서도 인트라넷 상에서 칭찬릴레이를 운영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칭찬릴레이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특정부문에 몰려 있었다. 알고 보니 칭찬릴레이를 처음 고안해 운영한 부서가 속한 부문이었다. 좋아보자고 한 일이 주최측의 농간이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등의 냉소만 증폭시키는 꼴이 됐다.



칭찬이벤트는 칭찬문화의 씨를 퍼뜨리는 데 일조할 수는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오래가지 않을뿐더러 이처럼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칭찬문화를 뿌리내리고 그것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데, 기업 운영의 튼튼한 허리인 관리자들에게 기대를 걸어야 한다.

관리자들이 칭찬을 자주 하도록 유도하려면 칭찬 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 칭찬할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작은 목표’를 수시로 던져줌으로써 가능하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걸어 다니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처음으로 몸을 뒤집었을 때, 무언가를 잡고 일어설 때, 드디어 제 힘으로 한 발씩 걸음을 뗄 때 부모들은 환호하고 격려한다.

관리자도 마찬가지다. 어떤 직원이 1년 동안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있다면, 1년 내내 두고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목표를 잘게 나누어 직원에게 올바르게 인지시키고 작은 목표 하나하나를 넘어갈 때마다 칭찬의 말로 격려해주고 수시로 피드백해야 한다.

보통 MBO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는 목표관리제도를 연말이 가서야 직원의 서열을 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말고, 이처럼 칭찬의 도구로 수시 활용할 것을 권한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보다 목표를 상세하고 잘게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고 그것이 관리자의 주요역할로 인식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관리자들이 직원들을 채용한 뒤 무작정 목표를 부여한 다음에 방치하곤 한다. 그리고는 일을 잘 마무리 짓지 못하면 질책부터 해대기 일쑤다. 어쩌다 일을 잘 수행한다 해도 칭찬은 미룬 채 잘못은 없는지 먼저 살핀다. 켄 블랜차드는 이를 ‘놔뒀다 공격하기’라는 말로 부르며 관리자가 하지 말아야 할 첫 번째 항목으로 이야기한다.

칭찬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될 수 있음에 유의하라. 정보통신업체의 P부장은 평소 칭찬을 잘 하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러나 칭찬을 지나치게 남발하는 것이 문제였다. 누구나 봐도 일을 못하는 직원도 그에게서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부작용이 생겼다. 칭찬을 듣는 사람은 ‘이 사람이 진짜 나를 칭찬하는 걸까?’ 의심을 하게 되고 입에 발린 소리라며 그를 비난하기까지에 이르렀다.

‘평범한 일은 칭찬은 물론 용납해서도 안 된다.’ 라고 피터 드러커는 말했다. 칭찬은 진정성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어야 빛을 발한다. 과도한 칭찬은 오히려 무관심이 아닐까? 잘한 점은 북돋아주고 잘못한 점이 있다면 따끔하게 질책하는 것이 진정한 칭찬이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바로 칭찬이었다. 햇병아리 시절, 어려운 과제를 부여받은 내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상사는 나를 믿고 칭찬해 주었다. 그가 없었더라면 당장 컨설팅을 그만뒀을지도 몰랐다. 칭찬 한마디에 개인의 삶이 바뀌고 결국은 회사의 성쇠가 좌우될 수 있음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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