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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7일(월) 유정식의 경영일기

 

날씨가 점점 더워져서 방에 작은 벽걸이형 에어컨을 설치해야겠다는 생각에 연희동 모 전자제품 대리점의 점장으로 있는 ‘왕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름 끝이 ‘왕’으로 끝나기에 우리(나, H군, 정왕씨)끼리 편의상 왕 아저씨로 통하는 그 분은 우리가 사무실을 오픈할 때 냉난방기 설치를 부탁할 때부터 알게 된, 연희동의 사실상 토박이(연희동에서 태어났는지는 몰라서)였다. 그때 동네 아저씨처럼 이것저것 우리에게 유리하게 냉난방기 구입을 ‘컨설팅’해 주었던 게 참 인상적이었다. 연희동에서는 왕 아저씨처럼 오랫동안 터를 잡고 영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서 한 마디만 하면 ‘어, 알았어.’라고 말하며 ‘알아서 해주곤’ 한다. 


사실 왕 아저씨에게 연락을 하기 전에 전화를 받을까 살짝 염려가 됐다. 왜냐하면 H군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1년 전인가, H군은 TV 하나를 살까 해서 왕 아저씨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TV의 광팬인 H군에게는 당연히 TV가 있었지만 오래 되고 화질도 변변찮고 ‘두꺼웠기’ 때문인지 기존 TV를 얄쌍하게 잘 빠진 최신 기종으로 바꾸고 싶어했다. 헌데 왕 아저씨 핸드폰으로 전화를 건 H군은 놀랐다가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왜 그래요?”라고 내가 물으니,

“왕 아저씨가 아프시다네요. 그래서 병원에 입원해 계시데요.”라고 H군이 대답했다.

“많이 아프시데요?”

“병명은 잘 모르겠는데, 꽤 오래 입원해야 한데요.”




H군은 한번 단골 관계를 맺으면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과 거래를 하지 않으려는 ‘고객 충성도’가 높다(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새 TV를 사고 싶은 욕구가 싹 가라앉았는지 그렇게 노래 부르던 ‘TV를 사야겠다’는 소리를 그 후로는 들을 수 없었다. 물어보니 아직 옛날 TV를 그대로 쓴단다. 왕 아저씨가 아니면 TV를 살 수 없는 모양이다.


어쨌든 이제는 다 완쾌되셨기를 빌며 왕 아저씨에게 전화를 거니 이제는 퇴원해서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에어컨 하나를 설치하고 싶다고 하니 왕 아저씨는 “언제 한번 들를게요”라고 바로 대답하곤 일이 바쁜지 전화를 급히 끊었다. 나는 ‘동네 영업자’의 ‘내가 알아서 해줄게’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헌데 그 후로 2주일 가까이를 기다렸지만 왕 아저씨의 ‘언제 한번’은 소식이 없었다. 나도 에어컨이 그리 급할 것 없었다. 벌써 7월 중순이니 이번 여름은 그냥 참고 넘어갈 참이었다. 그렇지만 요 며칠 한껏 높아진 습도 때문에 끈적거림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나는 왕 아저씨에게 SOS를 쳤다.


이러저러 해서 왕 아저씨가 결국 집을 방문해서 에어컨 설치 위치를 살펴 보게 됐다. “이렇게 설치하면 되겠네”라고 말하며 일이 바쁜지 급히 자리를 뜨려는 아저씨에게 시원한 매실차 한 잔을 건네며 물었다.

“아프셨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떠세요?”

“지금은 괜찮아요. 하지만 일이 너무 바빠 무리가 될까 걱정이에요.”

“오랫동안 아프셨으니 무리하지 않게 조심하셔야겠어요.”

왕 아저씨는 한숨을 쉬더니 이렇게 말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쉬엄쉬엄 할 수 있게 해주지 않네요. 월급쟁이가 그렇죠. 실적 압박도 있어서 뭐…”

왕 아저씨는 매실차를 한번에 들이킨 다음에 말을 이었다.

“병원에 있을 때도 어찌나 전화가 많이 오는지 병실 침대에 누워서 전화를 참 많이 받았어요.”

H군의 전화도 한몫했었겠군,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물었다.

“고객들이 전화를 많이 했나봐요? 워낙 영업을 잘하시니까요.”

“글쎄요, 고객들 전화도 많았지만, 직원들이 ‘이건 어떻게 하냐, 저건 어떻게 하냐’ 하는 전화를 많이 하더라구요.”

왕 아저씨는 이렇게 말하고는 한 마디 말을 덧붙였다.

“자기들이 안 아프니까 아픈 게 어떤 건지 잘 모르는 모양이에요.”




이 말은 아파도 제대로 아플 수 없는 한국 직장인들의 서글픈 단면과 ‘잔인성’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병원에 있다면 요양을 한다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남들은 바쁘게 일하는 데 팔자 좋게 혼자 휴양한다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아주 간혹이지만 주변에 있다. 고용주가 아니라 바로 옆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말이다. 누군가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야겠다면 ‘빨리 건강해져라’는 측은지심과 ‘이렇게 바빠 죽겠는데 왜 지금?’이라는 감정이 야릇하게 혼합된 표정이 느껴진다.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아픈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너의 일을 내가 떠맡아야 하는구나’하며 한숨을 쉰다. 잘 모르는 게 있다는 이유로 병원에 있는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지만, 이것저것 묻는 말의 행간에는 ‘너 때문에 내가 아주 힘들다’라는 푸념이 들어 있고, 그 부정적인 감정은 고스란히 병자에게 제대로 아프지 못하게 만드는 부담으로 전달된다. 추측컨대, 왕 아저씨의 경우에도 그랬을리라.


얼마 전, 갑작스러운 허리 디스크 수술로 일주일 동안 입원했던 지인도 그랬다. 마치 허리 디스크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동료들과 부하 직원들이 병실로 전화해서 ‘팀장님이 빨리 오셔야 해요. 일이 진행이 안 돼요.”라는 죽는 소리를 여러 번 하더란다. 퇴원 후에 집에서 며칠 간 요양을 해야 한다고 의사가 조언했지만 그런 직원들의 등쌀(?)에 못이겨 바로 회사로 출근할 수밖에 없었단다. 주말에도 말이다. ‘빨리 오셔야 해요’란 말은 ‘빨리 나으세요.’라는 위로의 뜻이었다고 변명할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이런 변명은 자신의 말이 아픈 자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무감하다는 증거다. 생각해 보라. 아픈 자가 어떻게 빨리 나을 수 있겠는가? 그건 의사가 할 일이다. 아픈 자는 오롯이 병에 집중하고 충분히 아플 ‘여유’를 가져야 한다. 낫는 것에도 그 지긋지긋한 ‘빨리빨리’를 외치며 스트레스를 주는가?


아픈 것이 죄가 되는 세상이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잔인’해졌는가? 경쟁과 성과 창출이 미덕이 된 세상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는 버려진 연탄 재처럼 이리저리 채인다. 마음 놓고 아플 수 없는 직장이 직장인가? 급히 떠나면서 던지는 왕 아저씨의 말이 아프게 박힌다.


“아프면 자기만 손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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