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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5일(화) 유정식의 경영일기 


“신입사원을 채용해서 한달 만에 현업에 투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달 만에요?”

“교육을 하든 어떻게 하든 빠르게 업무능력을 높여서 현장에 투입해야 한다는 게 CEO의 지시사항입니다. ”


몇 년 전에 모 고객사로부터 이런 의뢰를 받았다. 난감했다. 1999년부터 그때까지 컨설팅 일을 하면서 그런 의뢰는 처음 받아 봤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 온 이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떤 이유로 신입사원을 그렇게 빨리 투입하려고 하십니까?”

“단독으로 스스로 알아서 업무를 수행하기까지 적어도 시간이 2~3년 걸리는데, 그게 회사로서 비용이 많이 든다고 생각합니다. 채용하자마자 한두 달 교육을 시켜서 바로 그 인력을 활용해야(정확히는 “써먹어야”라고 표현함) 비용도 확 줄이고 다른 회사보다 경쟁력 있는 인력을 운용할 수 있는 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 획기적인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전문가이시니까 다른 회사의 사례를 알고 계실 테고, 뭔가 방법을 찾으실 수 있지 않을까요?”




더 난감해졌다. 전문가라고 해서 답을 다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회사의 사례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럴 때는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나의 원칙이다. 못하면 못한다고, 모른다면 모른다고 말하는 게 좋다. 컨설팅 수수료를 받으려고 무조건 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 결국 끝이 좋지 않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다른 회사 사례도 저는 아는 바가 없고요. 신입사원을 한 두 달 훈련시켜서 바로 활용하신다니, 너무 급하신 거 아닌가요? 업무에 필요한 지식(이를 ‘형식지’라고 함)은 어떻게든 한 달 안에 학습이 가능하겠지만, 노하우라든지 상황대처능력이라든지 그런 ‘암묵지’는 업무를 통해서 서서히 체득되기 마련입니다. 지금처럼 선임 직원과 파트너가 되어서 적어도 2~3년은 현업에서 ‘굴러 봐야’ 스스로 업무를 맡아 일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겠죠. 2~3년도 그리 긴 시간은 아닙니다만…”

상대방은 내 말을 이해했지만 “CEO가 계속 채근하셔서…”라며 난감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짐작컨대 CEO는 어디에서 ‘즉전력(卽戰力)’이라는 말을 듣고 온 모양이었다. 바로 전장에 투입시켜도 될 만한 능력을 말하는 일본식 단어이다. 일본 구인 사이트를 보면 즉전력이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소리가 제법 자주 등장하고,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즉전력을 갖췄다는 말로 스스로를 소개하곤 한다. 이 단어는 유명한 경영 컨설턴트인 오마에 겐이치가 2007년에 펴낸 <즉전력>이란 책의 제목이 될 정도니 일본에선 어지간히 흔하게 쓰이는 말인 것 같다. 




나는 “그런 사례가 있는지 한번 찾아 보겠습니다.”라는 말로 대충 대화를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었다. 의뢰를 받아들일 마음은 하나도 없었지만, 대체 즉전력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 위해 <즉전력>이란 책을 살펴봤다. 그가  책에서 소개한 즉전력의 구성요소는 어학력, 재무력, 문제해결력, 공부법, 회의술(토론력)이었다. ‘별거 아니네?’란 느낌이 바로 들었다. 이 5가지는 분명 중요한 것이지만, 새로울 것은 없었다. 여느 자기계발서에서나 나올 법한 소리 아닌가? 5가지를 조합해서 즉전력이란 단어로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걸 고객사 담당자가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한 두 달 훈련시켜서 ‘단독으로’ 일을 수행할 만한 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으니 말이다. 아마도 그 회사 CEO는 오마에 겐이치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채 ‘바로 현장에 투입할 만한 능력’이라는 즉전력의 사전적 정의만 어디에선가 듣고서 ‘멋진 말이다. 우리 회사도 그렇게 해야겠다’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어디까지나 내 추측이다)?


신문 기사에 간혹 나오는 CEO들의 인터뷰를 보면 자기네 회사는 인재가 우선이고 인재 양성을 중요시한다는 말이 십중팔구 등장한다. 나는 약간 시선이 삐딱한지 그런 말을 접할 때마다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직원, 열심히 일하는 직원, 높은 성과를 올리는 직원을 ‘원하기만’ 할 뿐, 그런 직원들을 어떻게 채용하고 어떻게 육성시킬 것인지는 뒷전에 밀려 있지 않나 의심해 본다. 


거의 10년 전으로 기억된다. 모 대학교에서 ‘공학 교육의 방향’이란 주제로 열린 주제 발표에 연사로 참여한 적이 있다. 아마도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란 책을 썼다는 이유로 나를 초청을 한 듯 했다. 여러 연사들 중 한 사람의 발언을 아직까지도 기억한다. 모 기업에서 인사 업무를 담당하는 그는 신입사원들이 회계를 몰라서 자기네들이 회계 교육을 시키느라 얼마나 돈이 많이 들어가고 시간이 많이 드는지 아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사에서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지 않는다며 대학교육에 문제가 많다는 게 요지였다. 학생들을 회사에 취업시키고 싶다면 전공과 상관없이 회사 생활에 필요한 기본 지식을 대학에서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왜 그렇게 안 하느냐, 학생들을 취업시키고 싶은 거냐, 라는 그의 주장이 나는 상당히 불편했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왜 대학에게 떠넘기면서 비용과 시간 문제를 운운하는가? 취업문이 좁아지니까 기업이 대학에게 ‘갑질’을 하는 듯 보였다. 대학은 취업 준비를 위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기초 지식을 함양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곳 아닌가? 회계 지식이 그렇게 필요하면 자기네 회사에서 가르치면 될 일 아닌가? 그렇게 인재를 중요시하는 회사가 단지 비용과 시간이 든다고 호통을 쳐야 하는가?




즉전력이란 말을 들으면 나는 짜증이 솟구친다. 지긋지긋한 빨리빨리 문화라는 악습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인력을 공장에서 찍어낸 로봇처럼 여기고, 대학을 로봇을 제조하는 공장처럼 여기며, 그 로봇에 한 두 달 정도 지식과 정보를 ‘다운로드’하면 단독으로 업무 수행이 가능한 실전 로봇으로 만들 수 있다는 기계론적 경영방식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방식 하에서 직원들은 인간으로서 존엄을 상실하고 무기력해질 것이다(이미 그런 직원들이 제법 있다).


몇 년 전에 나에게 전화해서 즉전력을 한 두 달 안에 갖추는 방법을 의뢰했던 사람은 그 후로 한 두 번 더 연락을 해오다가 끊겼다. 다른 컨설팅사가 의뢰를 받아 들였는지, 아니면 그런 주제가 흐지부지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런 소문이 없는 걸 보니 그 회사가 즉전력 있는 직원들을 키워내는 데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다. 성공했다면 유수의 경영 잡지에 소개됐을 테니까. 만약 성공했더라도 한 두 달 만에 즉전력 있는 직원을 양성했다는 건 그만큼 자신들의 업무가치가 저급하다는 증거일테니.


“즈쩡녕이 뭐에요?"

어려운 단어를 말할 때 H군의 발음은 이렇게 꼬이곤 한다. 꼬이는 건 H군만은 아니다. 빨리빨리 ‘인력 로봇’을 찍어내려는 기업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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