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IQ를 믿습니까?   

2008. 6. 1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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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네이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의 IQ를 알고 나면 과연 그를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천재라고 부를 수 있는지, 그리고 IQ를 지적 능력의 측정치로 볼 수 있는지 의심이 들 것이다. 파인만은 운이 좋았다면 노벨상을 하나가 아니라 3개나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여동생인 존이 학교에서 실시된 IQ 검사 결과를 몰래 훔쳐 보았는데, 그녀는 124였고 오빠는 123이었다.  (여동생은 역시 과학자가 됐다)

둘 다 통상적으로 천재의 IQ에는 미치는 못하는 수준이었다. IQ 148 이상이고 상위 2%에 해당하는 사람의 클럽인 ‘멘사’(Mensa)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파인만에게 가입을 권유했을 때 평소 장난기가 많은 그는 “미안하지만 당신들만큼 지능지수가 높지 않기 때문에 가입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평소 지적 허영에 찬 집단인 멘사를 비꼬던 차였기에 그는 이렇게 말하며 아주 재미있어 했다.

프랑스의 심리학자인 알프레드 비네에 의해 처음 도입된 IQ는 원래 특별한 교육을 필요로 하는 능력이 뒤떨어지는 아이들(학습지진아)을 식별하기 위한 도구로 한정되어 있었다. 비네는 학습지진아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지적능력을 측정하고 싶어했을 뿐, IQ가 일반화돼서 모든 사람의 지능 수준을 측정하는 도구가 되는 걸 두려워했다.

하지만 IQ가 비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능 서열 매기기의 장치로 오용된 것은 미국의 루이스 터먼(Lewis M. Terman) 의 공(?)이 컸다. 그는 오늘날 범용적으로 쓰이는 IQ 테스트의 기초를 만든 사람이다. 그는 전5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 ‘천재에 대한 유전적 연구(Genetic Studies of Genius)’를 통해 이미 세상을 떠난 천재들의 IQ 테스트 결과를 과감히 발표하기도 했다. 어처구니 없게도 그는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은 135, 지동설을 주장한 천체 물리학자인 코페르니쿠스는 겨우 105 정도로 측정했다.

측정방법은 이랬다. 먼저 기본 점수로 IQ 100을 할당했다. 그런 다음, 남아있는 역사 자료를 토대로 해서 이 값에 점수를 더하거나 빼는 방식을 취했다. 이 방법의 문제는 남아있는 자료의 양에 따라 IQ 측정값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자료가 많은 사람은 IQ를 높게 받을 수 있어서 유리했다. 반면, 코페르니쿠스와 같이 유년기 정보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는 인물은 터무니없이 낮은 IQ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IQ는 지능검사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이 높게 나올 뿐, 창의력, 문제해결력, 탐구력과 같은 ‘지적 능력’과는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IQ의 창시자인 비네가 주장했듯이, IQ는 학습지진의 여부를 측정하는 도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IQ가 학교 성적, 연구 업적, 사회적인 성공 등과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걸 볼 때 IQ를 한 사람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여기는 것은 곤란하다. IQ가 높다는 것이 능력을 보장하지 않는다. 또 능력 있는 사람이 IQ가 높은 것도 아니다. 그래도 IQ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면 그저 어떤 사람이 지닌 잠재력의 크기를 나타내는 측정치 정도로만 여겨져야 한다.요즘 IQ를 대신해서 등장한 EQ니 SQ니 하는 것들도 인간의 능력을 서열화하는 도구가 될까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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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네이버

찰스 다윈은 자신의 사촌이자 지능 신봉자인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보를 제외하고, 인간은 지능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차이가 나는 것은 열의와 노력뿐입니다.”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기본적인 지적 능력은 큰 차이가 없다. 차이가 나는 것은 열의와 노력을 통해 얻어진 능력이다.”

아직도 당신의 IQ가 낮음을 책망하고 혹은 IQ가 높음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가? 그리고 인류 발전을 위해 별다른 공헌을 하지 못하는 멘사라는 '자기만족형 클럽'에 부러운 마음이 조금이라도 드는가? 그렇다면, 인간의 지적 능력은 토마스 에디슨의 유명한 말처럼 1%의 영감과 99%의 땀으로 이루어짐을 오늘 하루 가슴 속에 새겨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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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대학교 도서관에서 선정한 2008년 교양 및 양서 100권에 제가 쓴 책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가 다음과 같이 포함되었습니다.

(충북대학교 도서관의 공지사항 원문 링크 http://cbnul.chungbuk.ac.kr/board/content.asp?tb=inno_1&id=253 )


□ 2008. 교양 및 양서(良書) 100선 목록 선정 □

우리 도서관에서는 학부생의 교양 및 인성함양에 도움을 주고자 ‘2008. 교양 및 양서(良書) 100선’을 다음과 같이 선정하였습니다.

교양 및 양서(良書) 100선의 자세한 사항은
* 도서관홈페이지 → 추천도서 → 교양 및 양서 100선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 다.

* 문의 : 도서관 어문학자료실(☎ 261-2892)
 

- 다      음 -

No     출 판사 년 도
1 20대, 공부에 미쳐라 니카지마 다카시 랜덤하우스 2008
2 간디 자서전 간디 한길사 2002
3 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 나남 2003
4 강의 신영복 돌베개 2004
5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 유정식 위즈덤하우스 2007
6 고도를 기다리며(세계문학전집 43) 사뮈엘 베케트 민음사 2001
7 광장/구운몽 최인훈 문학과지성사 1996
8 구운몽(세계문학전집 72) 김만중 푸른생각 2005
9 구토 사르트르 청목사 2003
10 그길에서 나를 만나다 하페 케르켈링 은행나무 2007
11 그리스 로마 신화 에디스 해밀턴 문예출판 2005
12 금희의 여행 최금희 민들레 2007
13 꿈의 해석 프로이트 선영사 2002
14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부키 2007
15 남한산성 김훈 학고재 2007
16 내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 리인홀트 매스터 황금나침반 2006
17 노름마치(1-2) 진옥섭 생각의나무 2007
18 논어 공자의 문도 책세상 2003
19 논어금독 리쩌하우 북로드 2006
20 뇌내혁명(1-3) 하루야마 시게오 사람과 책 1996
21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이제이북스 2006
22 다시쓰는 택리지(1-5) 신정일 휴머니스트 2004
23 닥터스 씽킹 제롬 그루프먼 해냄출판사 2007
24 당신들의 대한민국(1-2) 박노자 한겨레출판사 2001
25 대중음악의 이해 사이먼 프리스외 한나래 2005
26 대학.중용(동양고전백선3) 주희 일신서적출판사 1991
27 데미안 허르만 헤세 민중출판사 2004
28 데카메론 보카치오 서해문집 2007
29 도산에 사는 즐거움 이황 돌베개 2008
30 디지털 포트리스(1-2) 댄브라운 대교페텔스만 2005
31 디지털이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커뮤티케이션북스 1999
32 뜻으로본 한국역사 함석헌 한길사 2003
33 럭키경성 전봉관 살림 2007
34 레오나르도 다빈치 토마스 다비트 랜덤하우스중앙 2006
35 리스본행 야간열차(1-2) 파스칼 메르시어 들녘  2007
36 리진(1-2) 신경숙 문학동네 2007
37 인간없는 세상 앨런 와이즈먼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38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김영사 2007
39 맹자 맹자 을유문화사 2007
40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문예출판사 1998
41 무정(베스트셀러한국문학선1) 이광수 소담출판사 1995
42 문화의 수수께끼 마빈해리스 한길사 2000
43 미국의 민주주의(1-2) A 토크빌 한길사 2002
44 미술관에 간 화학자 전창림 랜덤하우스  2007
45 바리데기 황석영 창비 2007
46 백낙청 회화록세트(1-5) 백낙청회화록간행위 창비 2007
47 백년동안의 고독(혜원세계문학 50) 가브리엘 G.마르케스 혜원출판사 1993
48 변신 카프카 문학동네 2005
49 부의 창조 매일경제 매경출판  2007
50 북학의  박제가 서해문집 2003
51 살아남은자의 슬픔 브레히트 한마당 1990
52 삼국유사 일연 한길사 2006
53 삼대(베스트셀러한국문학선 26) 염상섭 소담출판사 2002
54 생각의 탄생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에코의서재 2007
55 석유 지정학이 파헤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 윌리엄 엥달 2007
56 설국(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민음사 2002
57 전쟁의 기술 로버트 그린 웅진지식하우스 2007
58 소년병 평화의 길을 열다 사토 다다오 검둥소 2007
59 심리학의 즐거움:사람이 알아야 할 마음 의 모든 것 크리스 라반 휘닉스 1998
60 심리학의 즐거움.2: 심리활용편 - 교양으로 읽는 마음의 모든 것마틴 셀리그만 마틴 셀리그만 휘닉스(2000) 1997
61 아담의 배꼽 마이클 심스 이레  2007
62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창비 2007
63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 월터 아이작스 까치글방  2007
64 앗 뜨거워 빌 버포드 해냄 2007
65 어린왕자 생떽쥐페리 책이있는마을 2003
66 엔트로피 제라미 리프킨 세종연구원 2000
67 역사를 위한 변명 블로크 마르크 한길사 2007
68 연암산문선 박지원 거송미디어 2005
69 열하일기 박지원 2004
70 영화속의 철학 박병철 서광사 2001
71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마이클 셔머 바다출판사  2007
72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갈라파고스 2007
73 우연과 필연 자크모노 범우사 1996
74 이기는 습관 전옥표 쌤앤파커스 2007
75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을유문화사 2002
76 이슬람 이희수 청아풀판사 2002
77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마르케스 민음사 2007
78 이중나선 제임스 D. 왓슨 궁리 2006
79 인생철학51강 허유수선 황소자리 2006
80 인정받는 사람의 조건 최치영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81 일본여성 츠위화 시그마북스 2008
8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로스트 국일미디어 2001
83 자기긍정 파워 미아퇴르 블롬 북섬 2007
84 자연과 타협하기 리오 패니치 필맥 2007
85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1-6) 플라톤 이제이북스 2007
86 제3의 길 앤소니기든스 생각의 나무 2001
87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청아출판 2005
88 징비록 유성룡 역사의 아침 2007
89 채근담 홍자성 건국대출판사 2003
90 채식주의자 한강 창비 2007
91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현대문학 2007
92 천재들이 만든 수학퍼즐 1. 홍선호 자음과 모음 2007
93 카오스 제임스 글리크 누림 2006
94 카인의 후예 황순원 문학과 지성사 2006
95 컬처코드 클로테르 라파이유 리더스북 2007
96 파우스트(1-2) 괴테 민음사 1999
97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1-2) 리처드파인만 사이언스북스 2000
98 루쉰소설전집 루쉰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2
99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프리초프 카프카 범양사 2006
100 황금노트북(1-3) 도리스 레싱 뿔(웅진문학에디션) 2007

충북대학교 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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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삼미 슈퍼스타즈 감독이라면?   

2008. 6. 16.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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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들은 대기업에 비해 자금, 사업포트폴리오, 시스템(제도) 등의 측면에서 약점을 지니고 있어 상대적으로 인재관리 역량이 떨어질 수 밖에 없으며 신경 쓸 여력도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중소기업들은 인재유출에 따른 리스크가 대기업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에 CEO의 역할이 더욱 빛을 발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중소기업 CEO들은 인재들이 잘 들어오려고 하지 않고, 힘들게 뽑아 놓아도 금방 나가버린다며 인재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래서 인재를 외부에서 힘들게 모셔올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키워라, 그게 편리하고 안전한 방법이다, 라는 것이 중소기업을 위한 인재전략으로 종종 제시되곤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생각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차선책일 뿐 한계가 뻔히 보이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1982년의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프로야구팀을 기억할 것이다. 15승 65패라는 성적과 18연패라는 깨지기 힘든 기록을 가지고 있는 불행한 팀이었다. 참담한 성적을 기록하던 삼미 슈퍼스타즈는 이듬해 장명부라는 거물급 투수를 당시에는 천문학적인 1억 2천만원의 연봉으로 전격 스카우트한다.

OB 베어스의 박철순 투수가 당시 2,400만원을 받고 있었으니 삼미로서는 운명을 건 투자라고 할 수 있었다. 장명부의 영입 이후 삼미는 그 해 전기리그 2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며 장명부 효과를 톡톡히 봤다. 장명부는 60게임에 출장하여 한 시즌 30승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한 그야말로 ‘핵심인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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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례가 중소기업의 CEO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만약, 죽을 쑤고 있던 그 팀이 회사이고 CEO가 감독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선 선수들을 혹독하게 맹훈련시킬 것인가? 그런데 이 방법은 선수들의 정신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지 몰라도 우수한 성적을 내는 데는 아마 역부족일 것이다.

따라서, 회사 내부인력의 역량이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된다면, 그리고 현재 긴급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면, 과감히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하는 것이 최고이며 유일한 방법이다. 중소기업은 느긋하게 내부인력을 양성할 시간이 없다. (*이건희 회장이 이야기하는 '천재론'을 말하는 것이 아님)

만일 영입을 해야 하는데 줄 수 있는 연봉에 한계가 있다면 그 틀을 파괴해서라도 인재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CEO는 해야 한다. 당장에 연봉을 타 직원보다 많이 주는 것에 부담을 느끼겠지만 그보다 많은 수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직접 발품을 팔아 인재를 찾아 나서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인재가 나가지 않고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명부가 30승 달성시 약속된 1억원의 보너스를 받지 못하자 일부러 지는 바람에 또다시 만년 꼴찌팀으로 전락한 사례를 기억해야 한다.

현금흐름(Cash Flow)가 있듯이 인재흐름(Human Resource Flow)가 있다. CEO는 ‘인재흐름경영’을 추구해야 한다. 현금흐름이 막히면 유동성 위기로 인해 자칫 회사가 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재들이 들어와 성장하여 수익에 기여하는 흐름이 정체되면 경쟁력 제고는 기대할 수 없을 뿐더러 머지않아 회사는 도태된다.

늘 새로운 능력과 시각을 갖춘 인재로 조직이 채워질 수 있도록 하고, 항상 ‘싱싱한’ 인재들이 스스로 회사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CEO의 역할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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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ism 9] Cheese Burger   

2008. 6. 1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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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하루에 3개의 치즈버거를 사.
        아침10시에 햄버거 가게가 문을 열자마자 하나 사지
        그리고 오후 1시 무렵에 점심을 위한 또하나의 치즈버거를 사고,
        저녁8시에 하나를 더 사. 이것이 나의 유일한 먹이야.

        사람들은 치즈버거를 사가지고 올 때마다 내게 이렇게 물어.
 
      하느님이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참 궁금한게 많은 동물이야.

       "이봐요, 흰돌씨. 당신은 어째서 매일 햄버거만 먹는거요?
        그건 그렇다 치고, 매번 치즈버거만 먹는 이유는 뭐요?
        내 생각은 말야, 한번은 치킨버거, 한번은 새우버거,
        뭐 이런식으로 바꿔 먹는 게  지루하지 않아 좋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
 
        '내 생각은 말야...' 이런 식의 말을 하는 인간은 딱 질색이야.
        뭔가 자신의 총명함과 거만함을 드러내고 싶을때 사람들은 매번 그렇게 말하지.

        그건 그렇고, 내가 매일 햄버거만을 먹는다는 것은 맞는 말이야.
        그러나 내가 항시 똑같은 치즈버거를 먹는다는 말은 미안하지만 틀렸어.
        사람들은 참 상상력의 부족해. 결핍된 상상력 덩어리들...
        꽉 막힌 눈으로 보면 내가 매일 매번 똑같은 치즈버거만을 먹는 것처럼 보일거야.
 
        하지만 그들은 모르지.
        갓낳은 아기 피부처럼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오전10시의 치즈버거와,
        아침의 희망이 겁탈을 당하고 작별을 고하는 듯한 모양의 오후1시의 치즈버거,
        하루의 온갖 질투와 미움과 소음 따위에 푹 젖어버린,
        싸구려 창녀의 유방같은 저녁8시의 치즈버거가
        우리 곁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거 알아? 치즈버거에도 개성과 자존심이 있는 법이야.
 
        잘생긴 치즈버거로 다시 태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반짝반짝거리는 선반위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내모습은 얼마나 멋질까.
 
        이따가 1시가 되면 치즈버거를 사러가야 해.
        오늘은 점원에게 부탁해서 허니 마스터드가 듬뿍 발린 치즈버거를 먹을 거야.
        너도 같이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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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가 건강에 좋다고? 천만에~!   

2008. 6. 1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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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터스가 올리브를 못 살게 굴 때마다 뽀빠이는 깡통에 든 시금치를 입에 털어 넣고는 부르터스를 번쩍 들어서 바다 속에 내다 꽂는다. 그런 다음 뽀빠이는 시청자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시금치를 먹으면 힘이 세진다는 뽀빠이 아저씨의 말씀~~!"

시금치는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아마 여러분도 그렇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일반 야채보다 철분 함량이 10배나 높다고 해서다. 하지만, 시금치는 배추나 브로콜리 같은 야채보다 오히려 철분 함량이 낮다. 물론 시금치를 먹어서 나쁠 것은 없지만, 먹는다고 해서 다른 채소보다 더 좋은 것은 아니다. 시금치를 먹는다고 해서 뽀빠이처럼 힘이 불끈 솟아오른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만화의 이야기일 뿐이다. 왜 이런 오해가 생겼을까?

시금치의 영양학적 효능이 실제보다 과대하게 평가된 이유는 어이 없는 실수 때문이라고 한다. 시금치의 영양 성분을 연구하던 과학자의 비서가 논문을 타이핑할 때 소수점을 한 자리 오른쪽에 찍었다. 예를 들어 0.052% 라고 해야 할 것을 0.52% 라고 잘못 기재한 것이다. 시금치가 다른 야채들보다 10배 이상 철분이 많다고 오해를 받고 있는 이유이다.

또 '말린' 시금치를 가지고 영양 성분 분석을 했기 때문에 철분 함량이 높게 나왔다는 설도 있다. 시금치는 약 90%가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말린 시금치로 영양 분석을 하면 실제보다 철분 함량이 10배나 더 많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시금치 때문에 건강해진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뽀빠이 덕에 판매가 신장된 시금치 판매상일 것이다. 오히려 아이들과 부모들은 시금치를 먹고 먹이느라 스트레스만 더 쌓였을 거다. 이처럼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들, 당연히 그렇다고 별 의심 없이 받아 들이고 있는 것들 중 상당히 많은 것들이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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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실을 '안다'라고 말하려면,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첫번째 조건은 그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1 + 1 = 2 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으려면, 답이 2임을 믿어야 한다. 어떤 사실이나 사물을 믿지 않고서는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명제가 참이라는 사실을 알려면,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죽을 것을 먼저 믿어야 한다. 시금치가 몸에 좋다는 걸 믿지 않고는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무언가를 믿는다고 해서 '아는 것'은 아니다. 앎의 두번째 조건은 그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 + 1 = 2 라는 식을 증명해서 참 또는 거짓의 여부를 판단해야 우리는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신이 존재함을 안다'라고 말하려면 일단 그것을 믿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증명을 해야 한다.

증명이라고 말하면 수학이나 과학과 같이 이론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판단을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증명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먼저 수학과 과학으로 증명 가능한지를 먼저 고민하는 것이 좋다. 수학과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데, 미신이나 신화를 먼저 끌어들여서는 안된다. 시금치가 철분이 많아서 몸에 좋다고 '그냥 믿기' 전에, 정말 그러한지를 과학적으로 먼저 증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수학과 과학만으로 모든 걸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럴 필요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믿는 바를 조리에 맞게 설명하고 이해시켜서 나와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만들면 그것이 바로 증명이다. 비록 어떤 사실이 진리라 할지라도 '내가 믿으니까 너도 그냥 믿어라' 식으로 협박한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시금치가 건강에 좋다는 걸 안다고? 그걸 믿을 수는 있겠지만, 본인이 직접 증명하지 않았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증명되지 않은 거라면 '안다'라는 말을 거둬야 한다. 무언가를 안다고 말하려면, 내가 그것을 믿고 그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앎 = 믿음 + 증명


만일 증명은 했는데 믿기가 어렵다면 우리는 그걸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1 + 1 = 2가 참임을 증명했는데도 그게 미덥지 않다면, 역시나 그걸 '안다'고 말하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알지 못했다'. 그는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여러 발견이 사실임을 인정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그걸 믿을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을 태동시킨 위대한 과학자인 그가 왜 그랬을까?

왜냐하면 '안다'는 말은 책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1 + 1 = 2임을 안다면, 믿어야 하고 증명해야 하는 의무감도 함께 생기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믿지 못하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책임을 거부했다. 따라서 양자역학에 있어 그의 '앎'의 수준은 양자역학을 들어본 적도 없는 일반 사람과 다르지 않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는 것처럼 수동적이며 정적인 행위가 아니다. 앎은 적극적이고 동적인 과정이다. 끊임없이 믿고 증명할 수 있어야 눈으로 읽는 글과 귀로 듣는 말이 전적으로 앎의 세계로 들어와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 눈에 보이는 대로 믿고 귀에 들리는 대로 믿고 수용한다면, 우리는 절대 그것을 '알지 못하며' 그때문에 불쌍한 아이들은 오늘도 시금치를 먹지 않기 위해 매 끼니마다 부모와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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