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   

2010. 2. 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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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지금 누군가를 가르치는 중입니까? 가르치면서 어려움을 느끼진 않는지요? 가르침을 직업으로 하지 않더라도 길을 묻는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일일지언정 우리는 '가르치는 자'의 위치에 자주 서게 됩니다. 오늘은 남을 잘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잘 가르치는 사람은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입니다. 눈 감고서도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의 눈에 생(生)초보가 얼마나 한심할까요? '내'가 하면 1시간이면 뚝딱 해치울 일을 1주일 내내 붙잡고 끙끙거리는 부하직원을 보면 얼마나 가슴이 터질까요? 

가르치는 자 중에서 겸손하지 못한 자는 화가 앞서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 그것도 못하냐며 윽박지르고 상대방을 비하합니다. 혹은, '네가 나의 깊은 뜻을 알기나 하겠어' 라며 업신여기거나 무시합니다. 


하지만, 가르치는 자의 이런 태도는 가르침을 받는 사람을 스스로 깨우치게 만들지 못합니다. 반발하고 저항할 뿐입니다. 인간은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낮출 줄 모르는 사람은 남을 가르치는 일에 실패하고 맙니다. 

부모가 아이를 가르칠 때 ‘이것도 모르냐’며 불같이 화를 내며 답답해 하거나 급기야 매까지 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이가 하나의 개념을 받아 들이려면 수백 번의 반복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기다려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급하게 가르치려는 태도는 자녀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게 되고 심하면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기도 합니다.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교육자인 로린 홀랜더(Lorin Hollander)는 어렸을 적에 자신에게 지나치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 세우는 선생님들 앞에 설 때마다 너무나 공포에 떤 나머지 몇 년 동안 손가락이 마비되어 펴지지 않는 증상을 앓기도 했습니다.

난방장치의 온도조절장치를 20도에서 25도로 높인다 해도 25도에 도달하려면 시간이 소요됨을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추운 날 차를 출발하기 전에 워밍업을 해야 한다는 걸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가르치거나 지도할 때는 참을성을 종종 상실하죠. “왜 내가 말한 대로 안 해?”라며 즉각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상대방의 미숙함을 자신의 지시에 대한 반항으로 오해하고 못살게 굽니다. 

올바른 가르침은 배우는 자가 습득할 시간을 기다려주는 인내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배운 바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1차적으로 가르친 사람이 져야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아이디어나 지식도 상대방을 이해시킬 수 없다면 그저 책 속에나 존재하는 이론에 불과합니다.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이룩한 업적에 도취되어 일반인들의 낮은 이해력을 비웃으며 더욱 난해한 이론의 벽을 쌓아가곤 합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달랐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위대성은 그의 가르치는 자세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그가 발견한 ‘상대성 원리’는 우리가 우주를 바라보는 직관과 배치됩니다. 관찰자의 시각에 따라 측정 결과가 달라지고 중력에 의해서 시공간(時空間)이 휘어진다는 아인슈타인의 통찰을 오늘날의 사람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죠. 

그래서 그는 일반인들이 상대성 원리를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책을 썼습니다. ‘상대성 : 특수이론과 일반이론’이란 책인데, 이 책은 지금까지도 상대성 원리의 입문서로 많이 읽힙니다. 그는 자신의 의붓딸인 마르코트에게 상대성 원리를 가르쳐주면서 그녀가 정말 이해하는지 일일이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패서디나에는 ‘파인만 도형’이라고 불리는 그림 여러 개가 그려진 자동차가 전시돼 있습니다. 그 자동차는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이 생전에 가족들과 여행을 다닐 목적으로 사용했던 누런 색 밴입니다. 

이 파인만 도형(전자와 같은 입자가 서로 접근하다가 광자를 교환하면서 상호작용한 후에 서로 멀어져 감을 나타내는 그림)은 복잡한 수학 계산 없이도 원자 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쉽게 통찰하도록 해 주는 파인만의 발명품입니다.

동료 교수이자 경쟁 상대이기도 했던 줄리언 슈윙거 (Julian S. Schwinger)가 수백 개의 난해한 수학식을 써서 유도해 낸 물리학적 의미를 파인만 도형은 간단하게 전달합니다. 이 도형은 오늘날에도 물리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데 큰 가르침을 줍니다. 파인만 도형이 없었더라면 많은 물리학도들이 골머리를 무지 썩었을 겁니다. 파인만 도형은 위대한 학자일수록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예입니다.

허나, 슈윙거는 “파인만 도형이 계산을 대중에게 주었다”라고 말하며 이 도형의 가치를 폄하하곤 했습니다. 파인만이 과학의 고귀함과 성스러움을 깎아 내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현학적인 글을 보면서 얼마나 절망합니까?

‘버스 정류장의 전형적인 월요일’ 같은 정신적 지도는 물리적 사물로 표상될 수 없다. 이러한 표상은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시간, 관계, 행동들까지 포함한 표상이다. 그러한 고등한 코드는 또 다른 면에서 인체 지도와 같다 (데이비드 베레비著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에서)

도무지 의미를 알 길이 없습니다. 글자 하나하나는 정확히 읽혀도 뜻을 종잡을 수 없습니다. 글을 읽는 사람의 이해력은 전혀 안중에 없는 오만한 가르침은 어떤 면에서 '지적 폭력'은 아닐까, 란 생각까지 하게 만듭니다.

쉽게 가르치는 것이 어렵게 가르치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인내하며 가르치는 것이 군림하고 몰아 세우며 가르치는 것보다 더 힘듭니다. 여러분이 지금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에 있다면, 가르침은 곧 겸손이고 인내임을 가르치는 내내 마음 속에 담아두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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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가 아니라면, 탈출하세요   

2010. 2.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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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대공원 내에 있는 동물원에 가면 원숭이들이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를 받아 먹으려고 철망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쉽게 봅니다. 박수를 치며 이리로 던지라고 하는 놈도 있고, 어떤 놈은 자신에게만 과자를 던져주지 않는다는 듯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지요. 

애가 타서 낑낑거리는 녀석도 있습니다. 먹이를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사육사들이 끼니 때마다 충분한 양의 먹이를 줄 텐데 놈들은 왜 그렇게 먹는 것에 탐닉할까요?


왜냐하면 매우 지루하기 때문입니다. 좁은 우리에 갇혀 있다는 구속감과 몇 안 되는 동료 원숭이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지겨움을 해소할 유일한 방법은 그저 먹는 것 뿐입니다. 원숭이들은 관객이 던져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게걸스럽게 입으로 가져가고 배가 다 차도 끊임없이 먹어댑니다. 

관객들이 던져주는 과자 받아먹기는 원숭이에게는 지루함을 이겨내는 놀이일 뿐입니다. 하나라도 더 받아먹으려고 서로 다투는 것은 경쟁 욕구를 자극할 뿐만 아니라 뱃속에 추가적인 에너지까지 저장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죠. 

원숭이가 아닌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는 대로 다 받아 먹다가 배의 압력 때문에 질식해서 죽는 곰이 있습니다. 어떤 고릴라는 고대 로마의 귀족들이 깃털로 목구멍을 간질여 먹은 것을 토해내고 다시 먹는 행위를 즐겼던 것과 똑같이 하기도 한답니다. 동물원 관리자들이 동물들에게 먹을 것을 던져 주지 말라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죠. 이처럼 동물들은 무료한 상태에 빠질수록 식욕이나 성욕 같은 ‘익숙한 자극’에 탐닉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사람도 똑같습니다. 군인들을 보면 알 수 있죠. 영내로 제한된 이동의 자유. 이성(異性)과 차단된 생활.매일 똑같은 또래집단. 지겹고 지루할 만합니다. 자유가 억압된 상태에서 동물이나 인간은 자연스럽게 본능의 충족에 집중합니다. 군인들이 사회에서는 거들떠보지 않을 초코파이를 보면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이유도 비슷한 이유 때문은 아닐까요? 

먹는 행위에 빠지는 것 이외에 동물들은 평소와 다른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사자 같은 고양이과 동물들은 지루함이 극에 달하면 죽은 새나 죽은 쥐를 공중으로 높이 던지고 나서 그것을 쫓아가서 잡아채는 행동을 반복합니다. 마치 살아 있는 먹잇감을 사냥하듯이 말이다. 원래 고양이과 동물은 이미 죽어 버린 먹이는 먹지 않고 오직 살아있는 먹이만 잡는 습성이 있습니다. 

놈들이 죽은 먹이를 공중으로 던져 ‘날도록’ 만드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살아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죽은 먹이를 날려서 잡아 채는 행위는 나름대로 무료함을 극복하려는 놈들만의 ‘스포츠’인 셈이죠.

이처럼 늘어질 대로 늘어진, 별다른 자극 없이 평탄하고 지루한 일상은 우리 몸에 무척 해롭습니다. 자극이 빈곤하고 늘 한정되어 있는 일상의 범주는 폭식과 같은 잘못된 자극원(原)에 탐닉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비만뿐만 아니라 각종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지요. 

혹은 고양이과 동물들이 그러하듯이 정신적으로 이상이 올지도 모릅니다. 지루할 정도로 편안한 일상에 액센트를 가할 따가운 자극이 없다면 우리는 익숙한 자극에 몰두할 수밖에 없으며, 심할 경우 삶의 의미를 상실하거나 부정하게 되는, 매우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지요.

누군가에게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어느 날 TV 뉴스에서 교통사고로 일가족이 한꺼번에 죽은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TV를 보던 그는 소식을 전하는 비통한 표정의 앵커를 무감각하게 쳐다보다가 “불쌍한 저 사람들 대신에 내가 대신 죽어 줄 수도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그는 신문이나 TV에서 사망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대신 죽고 싶단 생각이 들곤 했답니다.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그 자신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삶에 대해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죽음에 대해서도 일말의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지요. 삶으로부터 행복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절박하거나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의미 없이 비슷비슷한 일상이 매일 반복되는 것에 숨이 갑갑했다고 합니다. 사고로 숨진 사람들을 대신에 죽을 수만 있다면 자신을 조여오는 삶에서 탈출할 수 있으리라 믿었죠. 그에게 있어 삶은 그저 덤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가까스로 삶의 의미를 찾게 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그를 변화시킨 것은 바로 처음으로 떠난 스위스 여행이었습니다. 만년설이 머리를 덮고 있는 몽블랑 아래 드넓은 초원. 산기슭 여기저기에 띄엄띄엄 자리잡은 장난감처럼 아기자기한 샬레(chalet, 스위스 전통 가옥)들.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산을 휘감고 올라가는 빨간 산악열차의 달리는 소리. 그는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넓고 볼 것이 많구나.’ 산에서 산으로 부는 바람 속에 서서 그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촉감과 후각을 맘껏 느꼈습니다.

그는 가만히 자신에게 삶의 새로운 의미를 일깨우는 가슴 속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살아있음은 갑갑함이 아니라 기쁨이고 희열이었습니다. 더 이상 다른 이에게 선뜻 내어 줄 수 있는 덤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소중히 간직해야 할 선물이었지요. 자신이 스스로 밀어 낸 삶이 가슴을 꽉 채우는 의미로 되돌아 온 경험은 그가 고백했듯이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삶이 무료하고 갑갑하고 짜증난다면,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혼돈스럽고 무감각하다면 자신을 억류한 철창을 부수고 당장에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여행은 새로운 자극의 체득을 통해 삶의 의미를 탐색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안전한 방법입니다. 폭식이나 폭주, 혹은 마약을 통해서도 색다른 자극을 경험할 수 있지만, 그것은 말초적이고 일회적인 자극에 불과하죠. 

답답한 가슴을 활짝 열고 지금 바로 여행을 떠나세요. 싱그러운 바람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을 옮기며 새로운 풍경이 가슴을 지나 내 삶 안에 가만히 자리잡는 걸 느껴 보세요. 점심을 먹고 산책하는 공원길도 짧지만 훌륭한 여행입니다. 낯선 버스를 타고 아무 곳에나 내려서 어슬렁거려보는 것도 좋죠. 뜻하지 않는 즐거움과 행운이 거기에서 여러분을 기다릴지 누가 아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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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활의 중심이다"   

2010. 2. 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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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통제력을 잃으면 바보 된다"란 글을 올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읽어 주셨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통제력을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 보겠습니다. 요술방망이 같은 처방은 아니지만, 통제력 상실로 고민인 분들께 도움이 되면 좋겠군요.

통제력은 목표의식을 분명히 함으로써 유지됩니다. 어떤 일이 크건 작건 항상 목표를 두고 일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일의 결과뿐만 아니라 일을 수행하면서 받게 될 스트레스의 양도 다릅니다. 일이 정말 어렵고 많아서 힘겨운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또 외부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자신이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목표 몇 가지를 분명히 찾는 것이 자신의 건강과 지적 능력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올라갑니까, 아니면 내려갑니까?)


물론 그런 상황에서 통제력을 갖춘다는 것은 쉽지 않죠. “힘든데 어떻게 힘들지 않는 척 할 수 있는가?” 하지만 통제력을 유지하는 방법은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있습니다. 일의 ‘종’이 아니라 일의 ‘주인’이라는 다짐 하나만으로도 통제력은 유지됩니다. 일의 무게 때문에 어깨가 짓눌리더라도, 그 속에서 자신이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스위치’를 발견하기 바랍니다. 적어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하나쯤은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윗사람이 어려운 업무를 지시하면서 무조건 3일 안에 일을 마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업무의 난이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은 “너무 시간이 짧아요.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걸 아시잖아요.”라고 답하곤 합니다. 애석하게도 이런 방어적인 대답은 칼자루를 상대방에게 내주는 꼴입니다. 상대방이 노발대발할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칼자루를 자신이 쥐려면 이렇게 답하는 게 좋습니다. “그때까지 해보죠. 하지만 그 일에 집중하도록 다른 일은 주지 마십시오. 그래야 그때까지 끝낼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해서 자신의 업무 조건이 그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통제합니다.

이어서, “최종 완성되기 전에 보여 드릴 테니 검토 의견을 주시기 바랍니다” 혹은 “전체 중에 이 부분만은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완벽하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부분은 도움을 주십시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과 상대가 업무의 공동책임자임을 분명히 합니다. 이런 적극적인 ‘역(易)제안’은 통제력을 온전히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저의 경우는 ‘시간’이 스위치 역할을 한다. 상사나 클라이언트가 3일 안에 끝내길 원할 때 어려운 경우가 아니면 2일 안에 완성합니다. 그리고 결과물을 감춰두고 휴식을 취하거나 다른 일을 하는 데에 남은 1일의 시간을 사용하지요. 기한은 타인이 정했지만 나의 시간은 나만이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만일 3일 안에 하란다고 거기에 맞추는 사람은 통제력을 잃는 겁니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만의 스위치를 찾는다는 것은 순발력과 냉정함을 필요로 합니다. 상사의 터무니없는 지시에 욱해서 통제력이고 뭐고 그만 방어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남이 먼저 승진하면 ‘내가 상사를 싫어해서 그렇다’라고 해야 통제력을 잃지 않는데도, 냉정함을 잃고 ‘상사가 나를 싫어하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하며 좌절하는 것이 보통이지요. 

그런 경우가 쌓이고 쌓이면 어느덧 직업 자체에 대한 회의에 젖게 됩니다. ‘뭐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나?’는 자괴감이 온몸을 휘감습니다.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게 되죠.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아무런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통제력의 마지막 스위치는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찾는 겁니다. 적성에 맞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직업이라면 의식하지 않아도 의미를 찾겠지만, 아마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일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자신이 직업이 소망하던 꿈과 정반대의 것이라면, 그럼에도 거기서 탈피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면, 의미를 찾는 것 자체를 사치로 여길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철학자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바꿔 말해, 왜 일해야 하는지 의미를 아는 사람은 모든 상황을 견딜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라도 해도 일의 의미는 항상 존재합니다. 적어도 일을 통해 돈을 벌고, 돈으로 자신과 가족이 원만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만일 아무리 생각해도 의미를 찾지 못한다 해도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질문을 하는 자가 남이 아닌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 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의미 자체보다는 의미를 찾기 위한 부단한 과정이 자신의 삶을 더 잘 통제하도록 이끕니다.

건강하게 살려면,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서 통제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켤 수 있는 당신만의 스위치, 당신만의 목표와 의미를 발견하기 바랍니다. "내가 생활의 중심이 되는 법"을 찾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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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블로그에서 보내온 선물   

2010. 2. 13.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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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체통을 들여다 보니, 노란 봉투가 눈에 띄더군요. 겉면을 보니 올블로그에서 온 우편물이었습니다. "이게 뭐지?" 

처음엔 무엇인지 몰랐는데, 열어보니 알겠더군요. '5th  allBlog Top 100'에 선정된 기념으로 보내 온 선물이었습니다. 작년 말에 결정된 일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지요.


포장을 푸니, 제 이름이 새겨진 볼펜이 들어 있습니다. "Top 블로그라...."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직 파워 블로거는 아니지만,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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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플래닝, 꼭 해야 합니까?   

2010. 2. 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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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시나리오 플래닝에 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저에게 시나리오 플래닝에 대해 문의하는 분들이 예전보다 많이 늘어난 것으로 보아 2010년의 기업환경에 대해 많이들 불안하게 느끼나 봅니다.

그런데 고객 분들이 문의를 할 때마다 "시나리오 플래닝이 좋은 기법이란 것은 알겠는데, 우리 회사가 시나리오 플래닝을 할 만한 상황인가요?", "우리 회사에게 시나리오 플래닝이 꼭 필요할까요?"란 질문을 항상 곁들입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의 필요성과 유용함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간단하게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 봤습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 다음의 각 항목이 여러분의 회사에 해당하는지 체크해 보기 바랍니다.


"우리 회사에 시나리오 플래닝이 필요한가"  체크 리스트

1. 지금까지 해 왔던 예측이 자주 빗나가서 타격이 컸다.

2. 조직이 관료적이고 부서 간 벽이 높다.

3. 기능 통합적인(Cross Functional) 조직이 잘 운영된 적이 없다. 

4. 산업이나 회사 내부에 중대한 변화가 예고되어 있다.

5. 그런 변화가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감잡을 수 없다.

6. 미래 환경의 변화를 탐색하는 씽크탱크 조직이 없거나 미약하다.

7. 환경과 경쟁사가 변하고 난 후에야 뒤따라가는 경영 관행이 존재한다.

8. 의사결정이 임박한 중대한 사안이 있다.

9. 전략 방향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하고 그 차이가 크다.

10. 경쟁사가 시나리오를 통해 의사결정하는 중이다.

11. 매년 사업계획이 요식적으로 이루어지고, 돌발변수를 대응하지 못한다.

12. 미래에 대한 '집중적인'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다.

13. 외부의 힘(정부, 경쟁자, 고객, 공급자 등)들이 가하는 위협이 크다.

14. 산업의 특성상 매출이나 이익의 등락이 심한 편이다.


이 14개의 항목에 대해 '그렇다'라고 답한 개수가 8개 이상이면, 시나리오 플래닝을 도입하여 조직의 '미래 대비 역량' 강화하고, 전략의 환경 불일치로 인한 '전략 리스크'를 대비할 것을 권합니다.

전략 리스크 대비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기업들은 오래 전부터 간단한 의사결정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전략 수립에 시나리오 플래닝을 활용합니다. 로열 더치 셸, 아스트라제네카와 같은 다국적 기업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들 기업의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 되어 시나리오 플래닝을 할 만한 역량이 된다고 흔히들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회사는 뭐, 작은 회사인 걸요?"라고 말하면서 뒤로 물러납니다. 하지만, 그들의 오늘을 만든 성공요인 중 하나는 바로 전략 리스크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 즉 시나리오 플래닝이었습니다. 

"회사가 역량이 되어야만 시나리오 플래닝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시나리오 플래닝을 함으로써 미래의 적응 역량을 키우고 경쟁력을 강화하자"라는 방향으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적극적으로 불확실성을 끌어 안고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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