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이라는 색안경을 끼세요   

2009. 6. 3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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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트에서는 현상 중에 '문제가 벌어지는 상황'을 기술하기 위한 관찰을 살펴보면서 순수하게 객관적인 관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현상의 나머지 부분인 '문제 발생의 잠정적 원인'과 '문제 속에 내재된 해결책의 실마리'를 관찰을 통해 어떻게 파악할지를 설명하겠습니다.

현상이란, 
1) 문제가 벌어지고 야기하는 상황   --> 어제 다룬 내용
2) 문제 발생의 잠정적 원인
3) 문제 속에 내재된 해결책의 실마리

문제가 벌어지는 상황을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문제 발생의 잠정적인 원인들을 함께 파악합니다. 비유하자면, 지붕에서 비가 새는 문제를 관찰할 때 '아, 저기에 구멍이 생겨서 그렇구나'라며 원인을 알아차리는 것과 같습니다. '직원들이 태만하고 불평불만이 심하다'는 문제라면 왜 직원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함께 보고 듣게 됩니다. 월급이 적어서, CEO가 너무 강압적이라서, 혹은 직원들 모두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등등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또한 관찰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잠정적 해결책에 대해 힌트를 얻게 됩니다. 비록 잠정적이지만, 파악된 문제의 원인을 뒤집어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제거하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가정 하에 잠정적인 해결책을 구상할 수 있습니다. 월급이 적다면 월급을 올려주거나 업무량을 줄여주는 해결책을, CEO의 강압적인 리더십이 문제라면 CEO에게 리더십의 변화를 주문하거나 용퇴를 권하는 해결책을 생각할 수 있겠죠.

물론 관찰을 통해 파악된 원인과 해결책은 확정적이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잠정적이고 실마리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원인이 실제로 그러한지, 그 해결책은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절한지 검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검증의 과정을 '실증(Proof)'라고 합니다. 기억하겠지만, 관찰을 통해 습득한 현상(Situation)은 실증의 관문을 통과해야 '사실(Fact)'로 인정받습니다. 실증의 체에 걸리면 현상은 사실이 아니라 거짓이 되는거죠.

문제 발생의 잠정적 원인과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관찰을 실행할 때 '그냥 들여다 보면 알겠지'란 자세는 그다지 권할 만한 방법은 아닙니다. 물론 생전 처음 접하는 종류의 문제이거나 아무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경우엔 무작정 관찰하는 방법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가설이란 색안경을 끼고 폼나게 문제를 해결합시다!


하지만 능력 있는 문제해결사라면 관찰에 앞서 '가설(Hypothesis)'을 반드시 마련해야 합니다. 이는 필수적인 전제조건입니다. 가설이란, 이러이러할 것이라고 답을 미리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월급이 적어서 직원들이 태만할 거야', '매출이 오르지 않는 건 제품에 하자가 많아서야'라고 원인의 답을 단정적으로 선언하는 것이 바로 가설이죠. 

문제의 원인을 단정적으로 선언한다? 아마도 이 말이 불편한 느낌으로 다가올 겁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입견과 편견을 배제해야 하는데, 이렇게 색안경을 끼고 문제를 관찰한다면 잘못된 방향으로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냐 우려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가설 설정은 선입견이나 편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편향으로부터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방법이 가설 설정입니다. '월급이 적어서 직원들이 태만할 거야'라는 가설을 가지고 관찰에 임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직원들과 CEO를 인터뷰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이 가설이 성립되지 않는다(틀렸다)면 미련 없이 가설을 버리고 새로운 가설을 세우면 됩니다. 

비록 문제해결사 본인이 일반적으로 직원의 태만은 월급이 적기 때문이라는 고정관념을 평소 지녔다 해도 그 가설을 실증적으로 검증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편견을 채택하지 못합니다. 가설 설정이 없으면 관찰의 초점이 흐릿하기 때문에 슬그머니 자신의 편견을 반영할 위험이 오히려 큽니다.

이렇게 해서 계속 가설을 선언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에 바짝 다가갈 수 있습니다. 만일 가설을 세우지 않는다면 문제해결의 과정이 무척 더디게 진행됩니다. '직원들이 태만한' 원인과 잠정적 해결책의 풀(pool) 전체를 다 따져봐야 하는데, 그럴려면 시간이 무한정 소요될 수밖에 없습니다.

해결책의 효과 뿐만 아니라 해결의 신속성도 문제해결의 품질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일단 가설을 세운 다음 검증해서 '살리거나 버리는'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 문제해결의 시간을 상당 부분 단축할 수 있습니다. 문제해결사가 베테랑이냐 애송이냐의 차이는 가설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설을 설정하면 왜 문제해결의 시간이 단축될까요?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어떤 선생님이 1부터 100 사이의 숫자 하나를 혼자서만 생각해 둔 다음, 학생들에게 그 숫자를 맞혀 보라고 합니다. 가설 설정에 능한 학생이라면 이렇게 묻겠죠. "50보다 큽니까?" 선생님이 아니라고 대답하면 또 이렇게 묻습니다. "25보다 큽니까?" 그렇다는 선생님의 대답에 "37보다 큽니까?"

이런 식으로 가설을 설정해서 묻고 선생님으로부터 검증을 받아나가면 숫자를 빠르게 찾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숫자가 27이라면 6번만 질문하면 답을 말할 수 있지요. 가설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운이 나쁠 경우 100번이나 질문과 대답을 반복해야 하므로 선생님이나 학생 모두 지쳐 버릴 겁니다.

관찰을 진행하는 동안 가설의 진위 여부가 금새 드러납니다. 관찰의 절차가 모두 끝나고 나서야 검증이 완료되는 가설은 거의 없습니다. 경험 많은 문제해결사들이 하나 같이 말하듯, 관찰하는 동안 가설의 기각과 새로운 가설 수립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관찰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의 근본원이에 도달합니다. '월급이 적어 직원들이 태만하다'는 가설을 가지고 인터뷰를 진행해보니 5명 중 아무도 그런 원인을 언급하지 않고 다른 이유를 더 성토한다면 그 가설을 곧바로 폐기하거나 제쳐두고 다른 가설을 세우면 됩니다. 굳이 50명의 인터뷰를 다 끝낼 때까지 기존의 가설을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편견을 배제하고 문제해결 과정을 신속히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을 알아도 가설의 설정이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이는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래 '가설 사고'는 과학자들이 현상을 탐구할 때 사용하는 방법으로서 아주 오래 전부터 유용성이 증명돼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과 문제풀이만을 주입식으로 교육하던 중고등학교 과학 시간 덕택(?)에 정작 사회생활에 더 유용하게 쓰이는 가설 지향의 사고방식을 제대로 습득할 기회가 없었지요.

가설 설정에 익숙해지려면 견문과 경험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처한 상황만 조금씩 다를 뿐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겪은 문제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문제란 하늘 아래 별로 없습니다. 직원들이 게으르고 생산성이 낮아서 고민했거나, 매출이 급락해서 위험을 겪은 조직들이 과거에도 지금도 존재합니다.

그런 조직들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원인 때문이었는지 또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살펴보면 '직원들이 이런이런 이유 때문에 태만할 것 같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또한 문제해결사가 경험이 많으면 자신의 데이터베이스에서 해당 문제에 연관된 잠정적 원인들을 가설로 뽑아낼 수 있지요. 

만일 전혀 배경지식이 없는 특이한 문제에 봉착했다해도 일단 가설을 세워보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억지스럽더라도 가설을 세우는 편이 그렇지 않는 것보다 문제해결을 신속히 진행할 수 있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관찰이란 현상을 파악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실증의 관문을 거쳐야 현상이 사실로 격상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관찰과 실증이 시간적으로 선후관계에 있다고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관찰을 먼저 행하고 실증이 그 다음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러나 관찰과 실증은 종종 동시에 일어납니다. 관찰할 때 행하는 가설 검증이 곧 실증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실증을 행할 때 다시 관찰의 과정을 거치기도 합니다. 관찰과 실증은 선후관계를 따질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입니다.

관찰에 의해 일단 검증된 가설일지라도 뭔가 미심쩍거나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월급이 적어서 직원들이 태만하다'는 가설이 인터뷰에 의해서 '거의 그렇다'라고 나왔다면 좀더 확실한 검증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직원들이 인터뷰할 때 실제를 왜곡해서 대답하거나 질문자의 편견 때문에 그런 답변이 나오도록 유도질문을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것들은 아직 확정된 사실이라 보기 어려우므로 심도 깊은 실증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실증은 다음에 다루겠습니다.

관찰은 '주관적으로 결정되는 객관적 사실'이라는 말의 의미는 관찰을 행할 때 가설을 가지고 임해야 함을 뜻합니다. 가설이라는 색안경을 끼십시오. 맨눈으로 관찰한다면 쓸모없는 데이터 더미에 깔려 문제해결이 매우 더디다는 점을 기억해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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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히 '객관적인 관찰'은 없습니다   

2009. 6. 29.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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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트에서 논증의 구조와 문제해결의 구조에 대해 논했습니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논증의 절차에서 가장 먼저 오는 단계가 '관찰'입니다. 오늘은 문제해결 과정의 첫단추이자 핵심이기도 한 '관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언급했듯이, 관찰(observation)이란 현상(situation)을 파악하기 위한 활동입니다. 대부분의 문제해결사들은 의뢰인의 제시한 문제를 둘러싼 상황과 정황(context)를 되도록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효과적인 문제 해결의 열쇠임을 압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현 상황을 모르고 어떻게 바람직한 해결책을 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능숙한 문제해결사라면 문제가 야기하는 상황을 단순히 스케치하는 것에서 관찰을 멈추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활동만을 관찰이라고 생각하지 않죠. 문제해결 과정의 초기일지라도 그들은 문제해결을 염두에 두고 관찰을 행합니다. 문제가 벌어지는 상황을 기록하고, 그것으로부터 문제의 원인을 가늠하며, 나아가 문제에 대한 잠정적인 해결책을 미리 구상해보면서 문제의 해답에 다가가려 합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그래야 문제해결이 신속하게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다음과 같이 관찰은 상당히 적극적이고 주관적인 과정입니다. 

1) 문제가 벌어지는 상황을 기록하기 위한 관찰
2) 문제의 원인을 가늠하기 위한 관찰
3) 문제 속에 내재된 잠정적인 해결책을 미리 구상하기 위한 관찰

위에서 관찰은 현상을 파악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현상'을 보다 자세히 정의 내리면 '문제가 벌어지는 상황', '문제의 원인', '문제 속에 내재된 해결책의 실마리' 모두를 일컫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귀로 들리는 것만이 현상이 아닙니다. 이를 주의하십시오.

현상이란, 
1) 문제가 벌어지고 야기하는 상황
2) 문제 발생의 잠정적 원인
3) 문제 속에 내재된 해결책의 실마리


"저기 좀 보세요!"


이 3가지 종류의 현상 중에서 첫번째(문제가 벌어지고 야기하는 상황)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어떤 회사의 직원들이 매우 태만하고 불평불만도 심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의뢰인(아마도 CEO)이 여러분에게 이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을 내렸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먼저 '누구의 문제인지' 문제의 주인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난 포스트에서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이 경우엔 CEO의 문제라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렇다면 CEO의 입장에서 '직원들이 매우 태만하고 불평불만이 심하다'라는 문장이 이 회사의 문제로 정의되겠죠.

이제 문제해결사인 여러분은 CEO의 요청에 따라 관찰을 진행합니다. 직원들이 진짜 태만하고 불만이 많은지 옆에서 지켜보거나, 문서로 된 데이터와 자료를 검색하거나, 설문지를 돌리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관찰에 동원합니다. 그 중에서 인터뷰는 가장 널리 쓰이면서 문제해결 때마다 필수적으로 적용되는 방법입니다. 의뢰인의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듣는 것부터 시작하여 직원들의 일부 혹은 전부를 만나 CEO가 제시한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원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관해 심층적으로 묻습니다. 인터뷰는 문제해결사가 갖춰야 할 매우 중요한 스킬이므로 나중에 따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직접 관찰이든, 인터뷰든 여러분이 관찰을 행할 때는 항상 '측정(measurement)'의 문제에 직면합니다. 직원들이 CEO의 생각처럼 진짜 태만하고 불만이 많은지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측정 방법이 정해진 후에는 어느 정도를 태만하다고 볼지, 어느 수준을 불평불만이 많다고 여길지를 정해 놓아야 합니다. 

이는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닙니다. '태만하다'를 측정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직원들이 잦은 지각을 일삼는다면 태만하다고 봐야 할까요? 아니면 지시한 일을 마감시간이 넘도록 완료짓지 않는 걸 태만하다고 측정해야 할까요? 또한 지각을 1주일에 몇 회 범한 걸 태만하다 봐야할지, 마감시간을 몇 시간 넘긴 걸 태만하다고 봐야할지 어렵습니다. 짧은 단어지만 '근무태만'이라는 문제를 측정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고 측정의 척도(scale)도 다양하기 때문에 관찰은 단순히 지켜보기만 해서 끝날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보통 '관찰은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관찰의 행위에 주관이 개입되면 결과가 왜곡된다고 생각하면서 '주관적인 관찰'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냅니다. 그러나, 관찰과 측정은 필연적으로 매우 주관적인 활동입니다. 흔히 드는 예로서, 물이 1/2이 든 컵을 생각해 보십시오. 눈에 비치는 컵의 모습은 하나이지만, '컵에 물이 반이나 차 있다', '컵에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았다' 등처럼 다르게 해석됩니다. 이처럼 단순한 문제는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조직의 정성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순수히 객관적인 관찰과 측정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선 측정방법을 택할 때부터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근무태만을 측정하는 수많은 방법들을 모두 채용하지 못하므로 문제해결사 자신의 논리와 신념에 따라 그 중 몇 개를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측정의 척도를 정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정도의 지각 횟수는 근무태만이라 보기 어려워'라고 판단을 내리는 것도 주관이 강하게 개입된 결과입니다.

따라서 문제해결사들은 '근무태만'이란 상황은 '이런이런' 관점으로 '이런 정도'의 척도로 측정하겠노라고 미리 선언해야 합니다. 자신의 주관을 공개함으로써 객관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순수한 객관성에 목을 맨다면 측정 방법과 척도를 정하지 못해서 결국 문제해결에 한 발자국도 다가서지 못합니다. 객관적 학문의 총아라고 여겨지는 과학에서도 얼마나 많은 주관적 관점이 개입돼 있는지 아십니까? 관찰의 주관성은 학문의 발달 뿐만 아니라 문제해결에도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관찰 결과를 청취하는 입장에서도 문제해결사가 어떤 관점으로 관찰을 행했는지 인식할 의무가 있습니다. 계량적이지 않다, 주관적인 판단 이다, 라며 무조건 '객관성'을 외치고 문제해결사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문제해결의 본질을 모르는 헛똑똑이입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만을 일삼는 문제해결의 적입니다.

'관찰은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관찰에 사용되는 주관을 최대한 객관화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해야 합니다. 관찰은 주관적으로 결정되는 객관적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문제해결사는 자신이 어떤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는가, 어떤 색안경을 끼고 문제에 접근하는가를 먼저 깨닫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합니다. 이것이 관찰하는 자가 준수해야 할 제1의 덕목입니다.

다음에는 관찰의 나머지 목적인 두번째와 세번째에 대해 논의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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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   

2009. 6. 28.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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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여행 준비를 하느라 늦게 잠에 든 탓에 아침에 늦잠을 잤습니다. 9시에 일어나 아욱국에 밥 말아 먹고서야 겨우 정신이 들더군요. 후텁지근한 하루를 예고하듯이 창밖으로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어영부영 오전시간을 보내다가 11시쯤 집 근처의 마트에 갔습니다. 장을 볼 목적이었지만, 집에서 찐득한 더위와 싸우느니 매장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쐴 요량도 있었지요. 우리 가족처럼 마트로 피서(?)를 온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마트 주차장은 제법 차로 북적였습니다.

무빙워크를 타고 오르는데 누군가가 알은 체를 하더군요. 웬 아저씨가 손을 흔드는데 '어, 누구지?' 처음엔 정체를 알지 못해 의아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예전에 직장을 다닐 때 자주 만나던 입사 동기였습니다. 풋풋했던 시절 함께 한 이를 세월의 흔적이 깊게 패인 얼굴로 해후하니 그 느낌이 생경했습니다. 악수하던 손에서 십수 년의 세월이 우리에게 남긴 허약함이 감지되는 듯했습니다. 나중에 연락하마, 짧은 인사 후 헤어졌지요.

마트에서 가져온 물건을 냉장고와 다용도실에 채워 넣은 후, 우리 가족은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집 앞의 초등학교에서 얼마 전 개방도서관을 열었다고 해서 찾았지요. 도서관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학교 시설을 이용하여 도서관'망'을 확충하면 좋을 거라 평소 생각해왔는데, 우리집 근처에 개방도서관이 생겨서 아주 기뻤습니다.

교실 두 개 정도 되는 넓이의 작고 아담한 도서관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책들은 초등학생들이 엄마 아빠가 읽은 책을 기증하는 방식으로 확보됐더군요. 그래서 권종이 다양하지 않고 권수도 적었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은지라 오히려 그러한 아담함과 '가난함'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읽을 만한 책이 적더라도 그냥 흘려 보내기 쉬운 휴일 오후에 냉방 잘 되는 도서관에 앉아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겠다 싶으니 고마웠습니다.


도서관을 나와 집으로 가는데, 장모님과 처형네가 우리를 반깁니다.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지요. 저녁을 먹기엔 좀 이른 시각에 집 근처 삼계탕집으로 향했습니다.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빈 테이블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여름은 여름인가보다 했지요. 덥다고 찬 음식을 요즘 자주 먹었는데, 뜨거운 국물을 마시니 땀구멍이 활짝 열린 듯 땀이 흘렀습니다. 이열치열, 제대로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공원에 위치한 콩다방에서 어른들은 커피를 마시고 아이들은 잔디밭에서 공을 차게 할 계획이었는데, 굵은 빗방울이 차창을 때리더군요. 아쉽지만 그대로 헤어질 수밖에요. 공놀이할 생각에 잔뜩 기대에 찼던 아들녀석은 내내 울상이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요.

집에 돌아와 어제 널어놓은 빨래를 털고 진공청소기를 돌리니 또다시 땀이 비오듯 합니다. 샤워를 하고 에어컨을 켰지요. 그 아래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쐬며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씁니다. 언제 그랬냐는듯 피부가 보송보송하니 상쾌합니다. 맥주 한 잔 곁들이면 딱이다 싶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아까 마트에서 사온 맥주가 있군요. 이 글을 포스팅하고 시원하게 들이켜야겠습니다.

"지민군, 이제 잘 시간이에요~~!"   
"아빠, 안녕히 주무세요~~!"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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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할까?   

2009. 6. 2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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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회사는 이산화탄소 배출 1위 기업입니다. 죄송합니다. 내년엔 1위가 절대 되지 않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광고가 나오면 그 회사에 대한 이미지가 오히려 올라갈 텐데... 왜 안 할까? 솔직한 기업에게 호감을 더 보내는 법이다.

2. 호텔이나 콘도에 가면 열쇠를 꽂아야 전원이 들어온다. 일반 주택에도 그걸 설치하면 에너지를 절약하는 데 아주 좋을 텐데... 왜 안 할까? 물론 항시 전원이 들어가야 하는 가전제품(예:냉장고)을 위한 장치가 필요하겠지만, 배전을 잘 하면 되지 않을까?

3.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SMS가 날라온다. SMS에 결제 내역 뿐만 아니라 "당신의 OO포인트는 얼마입니다. 이 포인트로 '자전거'를 살 수 있습니다" 라는 안내를 추가하면 사람들이 신용카드 사용을 더 늘릴 텐데... 왜 안 할까? 단, 악용하면 안 된다.

4. 책 구입 비용에 대해 소득공제를 해주면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을 테고 국민들의 교양 수준도 높아지고 고사 직전의 출판사도 구할 텐데... 왜 안 할까? 문화부 장관은 대한늬우스에 돈 뿌리지 말고 이런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얼마나 좋을까?

5.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의 이름을 임시로 '부실기업 OO사'라고 하도록 강제하고 공적자금 회수가 어느 정도 되면 꼬리표를 떼어 주는 법을 시행하면 어떨까? 애초부터 부실하게 경영하지 않으려 할 테고 하루라도 빨리 부실에서 회복하려고 노력할 텐데... 왜 안 할까? 공적자금은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니까 그 정도는 요구할 권리가 있지 않을까?

6. 도서관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나라다. 동네 어디에나 있는 미국의 도서관이 부럽다. 그렇다면 학교시설을 활용하면 어떨까? 일반인들에게 학교 도서관을 개방하면 부족한 도서관 시설을 확충할 수 있고 주민들의 만족도도 높일 수 있을 텐데... 왜 안 할까? 교과서 편향 논란만 일으키지 말고 생산적인 고민을 좀 했으면 한다.

7. 4대강 정비사업에 들어갈 돈 22조원을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에 투자하면 얼마나 좋을까? 토건사업은 기껏해야 10년 먹을거리지만, 과학기술은 우리나라를 100년 동안 먹여 살릴 텐데... 왜 안 할까? 삽이 닳아야만 깨달을 건가?

대체 왜 안 할까?
 

소년은 궁금하다. 왜 안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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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증(論證), 그까이꺼 아무것도 아닙니다   

2009. 6. 2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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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주장할 때(혹은 자기자신에게 확신을 심어줄 때) 어떤 방법과 절차를 사용합니까? 개인별로 설득력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현상, 실증, 사실, 이미 증명된 결론, 타인의 의견 등을 동원해서 상대방을 납득시키려고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조금 어려운 용어로 '논증(論證, Reasoning)'이라고 말합니다.

논증이라고 말하니까 논리학이나 과학에서만 쓰는 용어인 것 같아 거리감(혹은 거부감)이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에서 수십 번, 수백 번 이상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논증을 펼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논증의 의미를 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뼈마디가 쑤시네. 비가 올 거 같아"라는 간단한 문장도 논증입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뼈마디가 쑤실 때마다 비가 오더라'는 축적된 경험을 적용하여 '비가 올 거 같아'라는 결론을 도출했기 때문입니다. "저 남자는 탤런트 뺨 치게 잘 생겼어. 바람둥이임에 틀림없어.", "왜 부장님이 하루종일 저기압이지? 분명히 사모님과 한판 했을 거야", "트위터가 버벅거리네. 중요한 사건이 터졌나 보군" 등등의 문장에서 논증이 발견됩니다.

논증과 문제해결은 그 과정이 서로 동일합니다. 논증이 남에게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고 납득시키기 위한 과정이듯이, 문제해결의 최종 목표도 의뢰인(문제의 주인)이 해결책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문제해결사'들은 논증을 행하는 올바른 방법을 숙지해야 합니다.

논증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상 --> 사실 --> 결론

논증이 가진 무게감에 비해서는 매우 간단한 구조입니다. 그러나 각 단계를 거치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습니다. 그걸 하나씩 뜯어 보겠습니다.

먼저 현상에서 사실로 넘어가는 단계를 보기 바랍니다. 아마 몇 분은 '현상과 사실이 동일한 의미인데 왜 따로 썼지?'라며 의문을 던질지 모르겠군요. 일상에서 서로 혼용해서 쓰는 경우가 많으나 이 두 용어는 논증의 과정에서는 그 의미가 확연히 다릅니다. 

현상(situation)은 말 그대로 지금 벌어지는 일이나 나타나 있는 지금의 상태를 뜻합니다. '고객들의 불만이 많다', '사장님이 머리를 감싸쥐며 소리를 지른다', '매출이 줄었다' 등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기술한 것이 현상입니다. 현상은 감각기관을 사용한 관찰(觀察, Observation)을 통해 나오는 아웃풋입니다. 

이때 관찰은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파악하는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사장님이 분명 화난 것 같다', '우리 회사 망할 거 같애'라는 말은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됐으므로 관찰에 의한 현상 기술이 아닙니다. 어렴풋이 그럴 것 같다, 그런 감이 느껴진다, 라는 투는 올바른 관찰이 아닙니다. 물론 주관성을 완벽하게 배제하고 관찰하기란 쉽지 않지만, 문제해결 과정에서는 누구나 납득할 만한 수준의 객관적인 시각으로 현상을 기술해야 합니다. 인터뷰, 현장 시찰, 데이터 수집 등이 관찰의 영역에 속합니다. 

논증의 구조를 더 정교하게 만든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관찰 --> 현상 --> 사실 --> 결론

그렇다면 사실(Fact)은 현상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사실은 '증명된 현상'을 의미합니다. 관찰을 통해서 기술한 현상이 실제로 그러한지 증명되어야 사실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매출이 줄었다'라는 현상이 사실이 되려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매출 추이를 그려봄으로써 '아하, 정말 그렇구나'라고 증명해야 합니다. 

이러한 증명 과정을 '실증(實證, Proof)'라고 합니다. 실증을 위해 과학에서는 실험(實驗, Experiment)을 하고 기업에서는 '분석(分析, Analysis)'을 실시하지요.

현상을 꼭 실증하지 않아도 곧바로 사실로 격상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관찰이 곧 실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저 두 사람은 손과 발을 사용해 서로를 가격한다'라는 현상으로부터 '저 두 사람은 싸운다'라는 사실을 도출하기 위해 매번 실증을 시도한다면 우스꽝스럽고 바보처럼 보일 겁니다. 일상적인 것까지 실증하려다간 꽤 피곤한 삶을 살겠지요.

그러나 조직 내의 문제처럼 중요하고 복잡한 과제를 논증할 때는 반드시 실증을 통해 현상과 사실을 가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실증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사실을 기반으로 올바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직원들이 나태하고 능력이 없다'라는 현상을 인터뷰(관찰의 일종)를 통해 얻었다면 실제로 그러한지를 객관적인 방법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조직의 실권자만 그리 느낀다면 이 현상은 실증될 수 없습니다. 조직의 실권자가 직원들의 역량을 못마땅해 하는구나, 정도만 실증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논증의 구조에 한 단계가 더 추가되는군요.

관찰 --> 현상 --> 실증 --> 사실 --> 결론

논증의 바다에 푹 빠져보시겄습니까?


이제 실증을 통해 모아진 사실로부터 결론을 이끌어 내야 합니다. 이 과정이 가장 어렵죠. '직원들이 나태하고 능력이 없다'가 사실로 실증됐다면, 어떻게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요? 예를 든다면 '능력 안 되는 직원들을 내보낸다', '직원들에게 정신교육을 시킨다', '능력에 따라 연봉을 차등 지급한다' 등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헌데, 사실과 결론 사이를 잘 보면 '이거 너무 논리적 비약이 큰 게 아닙니까?'라고 불만이 나올 법도 합니다. 직원들이 나태하고 능력이 없다고 해서 그들을 회사에서 내보는 것이 항상 적절할까요? 나태한 직원들을 혼내는 차원에서 정신교육을 시켰는데 회사에 대한 앙심이 더 커져서 예전보다 더 태만할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많은 사람들이 '비약(飛躍, Leap)'이란 말을 부정적인 뉘앙스로 받아들이지만, 사실과 결론 사이의 논리적 비약은 없애야 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약이 필요합니다. '뼈마디가 쑤셔'라는 사실에서 멈추고 논리적 비약을 행하지 않는다면 '비가 올 거 같아'라는 결론을 결코 내릴 수 없습니다. 비약이 없다면 판단도 못 내리고 행동도 취하지 못합니다.

비약이 없다면 논증은 의미가 없을 뿐더러 재미도 없습니다. 비약을 완벽하게 제거한다면 이렇게 되겠죠. '뼈마디가 쑤신다. 고로 몸이 아프다', '직원들이 나태하다. 고로 일을 안 한다'에는 비약이 하나도 없지만, 똑같은 의미를 그저 다른 말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비약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논리적 비약은 반드시 '논거(論據, Basis)'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 두십시오. 논거란 사실에서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사용되는 근거입니다. 이미 증명된 결론, 신빙성 있는 이론, 널리 받아들여지는 생각, 개인의 경험법칙, 타인의 의견 등이 논거로 쓰입니다. '뼈마디가 쑤셔. 비가 올 거 같아'라는 논증에서는 과거의 경험상 뼈가 쑤실 때마다 비가 오는 확률이 높았다'라는 개인의 경험법칙이 논거로 사용된 거죠.

그러므로, 논증의 구조에는 한 단계가 또 추가됩니다.

관찰 --> 현상 --> 실증 --> 사실 --> 논거 --> 결론

일상생활에서의 논증('뼈마디가 쑤셔. 비가 올 것 같아')에서는 논거 자체가 증명됐느냐의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증명되지 않은 개인의 경험법칙이나 타인의 의견을 논거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문제해결과정에서는 '참'으로 증명되어야 논거로 쓸 수 있습니다. 

직원들이 나태하고 능력이 없으니 그들을 내보내야 한다는 논증에서는 '그런 직원들을 계속 데리고 있으면 회사 성과가 나빠진다' 혹은 '그런 직원들을 독려해봐야 긍정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등의 논거가 적용됐습니다. 이러한 논거가 과거의 경험이나 타사 사례 등으로 볼 때 거의 옳다면 이 논증은 성립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저 비약과 고집에 불과합니다.

논거를 채택할 때는 이미 증명된 결론(다른 사람이 이미 정립한 결론)인지 잘 살펴야 합니다. 만일 증명되지 않은 논거를 사용하려면, 별도의 논증 과정을 거쳐 그 논거를 직접 증명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논증의 구조를 살펴봤습니다. 말씀 드린대로 문제해결의 구조도 이와 동일합니다. 여러 가지 문제해결의 기법들은 모두 이 구조 속에 포함됩니다. 위의 6가지 논증의 단계를 꼭 머리 속에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좀 어려웠나요? 적어도 이번 기회에 그동안 혼용해서 썼던 용어(현상 vs 사실, 실증 vs 논거)라도 확실하게 구분했기를 바랍니다. '문제해결사'의 기본기는 여기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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