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에 기술을 걸어 봅시다   

2009. 7. 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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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인터뷰의 기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인터뷰는 문제해결 과정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과학에서 행해지는 여러 실험이 문제의 답을 알아내기 위한 과정이듯이 인터뷰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탐색하기 위한 결정적인 '실험도구'입니다.

여러분은 조직의 문제를 해결할 때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인터뷰를 해왔을 겁니다. 그러나 인터뷰의 목적과 절차, 방법 등을 숙지하지 않은 채 무조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뭔가 밝혀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감행'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과학자들은 실험을 하기 전에 철저하게 실험을 설계합니다. 특히 여러번 되풀이하기 힘들다면 실험이 잘못되지 않도록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갖춥니다.

문제가 참 많기도 합니다.


인터뷰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문제해결사들은 한정된 기간에 문제를 해결하기를 요청받기 때문에 인터뷰를 여러 번 반복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또한 인터뷰는 필연적으로 인터뷰이(interviewee)의 시간을 빼앗게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흉흉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일은 없어야 되겠지요. 문제해결이 지체되면 나중에 아무리 좋은 해결책이 나왔다 해도 구성원들이 수용하기를 거부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괴롭히더니 고작 그런 해결책이냐?"고 말입니다. 사전에 인터뷰를 잘 설계해서 진행해야 가설을 검증할 수 있고 바람직한 해결책에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인터뷰는 관찰의 일종이라고 지난 글에서 언급했습니다. 즉 인터뷰의 목적은 현상을 면밀히 관찰하는 것이죠. 문제가 벌어지고 야기하는 상황, 문제의 잠정적인 원인, 해결책의 실마리를 관찰하는 도구가 인터뷰입니다. 컨설턴트들은 프로젝트 초기에 문제가 무엇이든 간에 거의 자동적으로 인터뷰를 실시합니다. 문제해결에 부여된 기간이 3개월이라면 1개월에 가까운 시간을 인터뷰에 공을 들입니다. 

'전문가라면 척 보면 알 텐데 왜 귀찮게 인터뷰를 하지? 빨리 해결책이나 내놓지 그래'라며 짜증을 내는 의뢰인이 간혹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해결사가 신이 아닌 한 의뢰인의 말만 듣고서는 현상을 옳게 파악하지 못합니다. 노련한 문제해결사들은 가설을 빨리 내놓은 데에는 '선수'로서의 능력을 보이지만, 인터뷰를 통한 관찰 없이는 절대로 해결책을 내놓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면 다 똑같은 문제 같지만, 조직에 내재된 독특한 특징은 제각각이므로 문제의 잠정적 원인과 해결책은 다르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이 사실에 기반을 둔(Fact-Based) 문제해결을 추구한다면 인터뷰는 빼먹지 말아야 할 필수 과정입니다. 문제가 벌어지는 현장을 직접 관찰하지 않으면 의뢰인 입맛에만 맞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인터뷰는 실증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미리 설정한 가설이 실제로 그러한지의 여부를 인터뷰를 통해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직원들을 많이 뽑아 놓고는 아직까지 어떤 업무를 해야 할지 알려주지 않는다', '권한이 모두 윗사람에게 집중되어 그 밑의 직원들은 허드렛일만 한다' 등의 답변을 통해 '업무량 적어 직원들이 태만하다'라는 가설이 참인지를 검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터뷰도 사람의 일인지라 인터뷰이가 거짓으로 답변하면 가설의 참/거짓 판단이 왜곡될 위험도 있습니다. 직원들이 게으름을 피워놓고 엉뚱하게 회사 탓, 관리자 탓으로 돌릴 가능성도 충분하니까요. 하지만 노련한 문제해결사라면 심층적이고 다각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이러한 위험을 최소화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에게 부여된 공식적인 업무는 무엇입니까?", "그 업무는 아주 중요한 임무인데 수행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서론이 조금 길었는데 정리해 보면, 인터뷰는 현상을 파악하기 위한 관찰의 도구이자, 가설의 참/거짓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실증의 도구입니다.

인터뷰는
1) 관찰의 도구
2) 실증의 도구

그렇다면 인터뷰를 실행할 때 문제해결사가 지켜야 할 원칙을 알아보겠습니다. 인터뷰 스킬의 세부적인 사항(질문하는 태도, 표정, 말투, 분위기 조성 등)은 여러 책에서 이미 자세히 다루고 있으니 여기서 굳이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인터뷰이를 편안하게 해주면서 문제해결에 열의를 가지고 임한다면 손동작이나 억양과 같이 세세한 것에 지나치게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6가지 사항은 인터뷰어(interviewer)로서 문제해결사가 반드시 준수해야 할 기본 원칙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1) 사전에 문제와 관련한 배경지식을 습득한다
2) 가설 목록을 반드시 준비한다
3) 간단명료하게 질문한 후 듣는다
4) 가설 하나에 '왜'를 세번 묻는다
5) 인터뷰를 계속 진화시킨다
6) 인터뷰를 반드시 기록한다

첫번째 원칙 '사전에 문제와 관련한 배경지식을 습득한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문제해결사가 조직 내부의 사람이라 해도 문제를 둘러싼 배경지식에는 종종 무지합니다. 경영기획 파트에 근무하는 문제해결사는 예전에 근무를 해본 경험이 없으면 영업 일선의 업무 프로세스와 공장에서 운영되는 생산/물류 시스템을 잘 알지 못합니다. 문제해결사는 반드시 배경지식을 공부해야 하는데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함입니다. 때론 인터뷰인지 수업 시간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터뷰이가 인터뷰어에게 자기네 업무 프로세스와 용어를 일일이 가르치는 데 귀한 시간을 허비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정말 곤란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로 찍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라며 콧방귀를 뀌기 마련입니다. 이런 첫인상이 박히면 성의 없고 정보도 없는 답변 밖에는 얻지 못하죠. 일단 인터뷰이들이 '아, 이 사람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좀 아네?'라고 인식시키려면 완벽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배경지식을 무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심층적인 질문을 통해 관찰과 실증의 질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배경지식이 없다면 질문을 이어가기가 어렵습니다. 인터뷰이가 A라고 답변하면 '혹시 그것은 B 때문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C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재차 질문을 날려야 하지만, 배경지식이 없다면 이런 심층적인 질문은 불가능합니다. 변죽만 울리는 질문에 그쳐서 문제해결사를 통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아는 정보를 얻게 됩니다.

배경지식을 학습하는 데에 일주일 정도 투자하기 바랍니다. 먼저 문서로 된 자료를 살펴본 후에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의뢰인이나 전문가에게 물어서 꼭 숙지해야 합니다. 시간이 급박하다 해도 배경지식 습득에 쏟는 일주일의 기간은 문제해결의 완료시간을 이주일 이상 앞당기는 효과가 있습니다.

두번째 원칙, '가설 목록을 반드시 준비한다'. 이는 지난 글에서 수차례 강조했던 사항입니다. 관찰과 실증에 임하기 전에 가설을 먼저 설정하는 작업이 필수적입니다. 잘 작성된 가설 목록은 인터뷰 질문지를 대신합니다. 굳이 질문지를 따로 만드는 수고를 덜 수 있지요. 질문지가 필요한 경우라도 가설 목록을 질문으로 전환하면 그만입니다.

가설 목록은 계층을 갖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 말은 가설들을 체계없이 죽 나열하지 말고 다음과 같이 '트리(tree)' 형태로 목록을 구성하라는 말입니다. 이런 모양을 '이슈 트리(issue tree)'라고 부릅니다.

가설 1  - 가설 1.1  - 가설 1.1.1
             가설 1.2  - 가설 1.2.1
                             가설 1.2.1

가설 2 - 가설 2.1
            가설 2.2

가설 3 - 가설 3.1  - 가설 3.1.1
                            가설 3.1.2

예를 들어, '업무량이 적어서 직원들이 태만하다'라는 걸 가설 1로 본다면, 그 밑단에 놓일 세부 가설들은 다음과 같을 겁니다. 

 가설 1 : 업무량이 적다

가설 1.1 : 팀장이 직원들에게 충분한 업무량을 부여하지 않는다
가설 1.1.1 : 팀장이 중요업무를 모두 혼자 수행한다
가설 1.1.2 : 직원들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뽑았다

가설 1.2 :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
가설 1.2.1 : 타사와의 경쟁이 치열하다
가설 1.2.2 : 시장 규모가 축소되는 중이다

....

이렇게 이슈 트리로 가설 목록을 만들면 3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첫째, 어떤 가설이 포괄적이고 어떤 가설이 더 심층적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원인의 원인, 원인의 원인의 원인으로 파고 들어가면 문제를 야기하는 근본원인(root cause)과 만나게 됩니다. 이슈 트리는 그 자체가 근본원인을 탐색하는 도구로 활용됩니다.

둘째, 옳지 않은 가설을 신속하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인터뷰를 하다가(또는 자료를 분석하다가) '가설 1.2'이 거짓이라는 결정적 증거를 얻었다면, 그것에 딸린 가지는 모두 제거됩니다. 그러면 후속 인터뷰에서는 가설 1.1을 입증하기 위한 심층적인 질문에 집중하거나 이슈 트리를 더 '깊은 수준'으로 진행시킬 수 있습니다. 가설 1.2에 해당하는 질문에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셋째, 이슈 트리를 통해 입증된 가설과 거짓으로 판명된 가설, 그리고 입증이 완료되지 않은 가설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습니다. '이 가설은 참(또는 거짓)이니까 이제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돼' 혹은 '인터뷰만 가지고 아직 참/거짓을 판단하기엔 곤란해. 심도 깊은 분석을 해봐야겠어'라며 향후의 문제해결 과정을 계획하는 데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슈 트리를 만들 때는 MECE(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austive)라는 원칙을 준수해야 합니다. MECE는 그 의미는 아주 간단하지만 훈련이 안되면 실제로 준수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다음 기회에 따로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인터뷰 원칙 3번~6번은 내일 포스트에서 다루기로 하지요.오늘도 문제 없는, 아니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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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관계를 파헤쳐 봅시다   

2009. 7. 3.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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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설을 실증하는 단계로 넘어오겠습니다. 실증(proof)이란 가설의 참/거짓 여부를 밝히는 과정이고, 관찰을 행할 때 설정되는 가설은 문제의 원인에 초점을 맞춰야 좋은 가설임을 지금까지의 포스트에서 언급했습니다. 따라서 실증은 '인과관계'를 밝히는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실증이란,
1) 가설의 참/거짓 여부를 밝히는 과정
2)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과정

그렇다면 인과관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두 개 이상의 사건이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묶인다는 뜻입니다. 아주 자명해서 굳이 정의할 필요가 없다 싶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문제해결사의 자격을 취득하려면 흠결 없는 실증을 위해서 인과관계의 의미를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인과관계가 성립하려면 다음의 3가지 조건을 반드시 만족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인과관계 성립조건
1) 원인이 결과보다 시간적으로 먼저여야 한다.
2) 원인과 결과가 서로 관련이 있어야 한다.
3) 다른 인과적인 설명은 배제되어야 한다.

머리가 어지러우시죠? ^^


첫번째 조건은 너무나 당연해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원인이 되는 사건이 먼저 일어나야 결과의 사건이 벌어지지, 결과가 먼저 생겨난 다음에 원인이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문제해결사가 처음 문제를 접할 때는 결과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원인보다 앞서서 발생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 첫번째 조건을 제시하면 많은 분들이 '당연한 말을 왜 해?'라며 약간은 빈정거리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나 문제해결에 직면하여 실증을 행할 때, 이토록 자명한 인과관계의 성립조건을 망각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합니다. 시간적인 선후관계를 따져보지 않고 마음대로 인과관계란 표시를 합니다.

예를 들어, '직원들에게 충분한 양의 업무량이 주어지지 않아서 직원들이 태만하다'라는 가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충분하지 않은 업무량이 원인이고, 직원들의 태만함이 결과라고 제시된 가설이죠. 수학에서 쓰는 형식으로 이 가설을 표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충분하지 않은 업무량 → 직원들의 태만함

일할거리를 많이 주지 않으면 남아도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동료들과 잡담하거나 멍하니 자리를 지키는 것이 당연합니다. 따라서 인과관계가 성립된다고 보기 쉽죠. 허나 '당연함'에 도사린 함정을 조심해야 합니다. 과거 경험이나 타 사례를 통해 자동적으로 이러한 인과관계를 옳다고 인정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명하다는 본능적 판단을 억제하고, 충분하지 않은 업무량이 직원들의 태만함보다 시간적으로 먼저 일어났는지의 여부를 따져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직원들이 다른 이유(예:월급이 짜서)로 태만하게 일하니까 관리자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어차피 일을 많이 줘 봤자 안할 테니 이 정도의 일만 시키자'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업무량이 점차 적어졌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의 태만함이 먼저 발생했다면 위의 가설을 참이라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두번째 조건인 '원인과 결과는 서로 관련이 있어야 한다'를 살펴보죠. 이 조건도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서로 관련이 있다'라는 문구에 주의해야 합니다. 이 말을 상관관계란 의미로 오해하면 곤란합니다. 상관관계란 두 개의 사건 사이에 규칙적인 관계가 존재함을 일컫는데, 인과관계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인과관계가 성립하면 상관관계도 성립합니다. 그러나 상관관계가 성립한다고 해서 항상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 일화는 실제가 아니라,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가 자신의 저서 '풀 하우스(Full House)'에서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오인하는 경향을 비꼬기 위해 쓴 글입니다.

유명한 통계학자가 데이터를 분석해 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술주정꾼 검거 건수와 침례교 목사 수 사이에 '정(+)'의 상관관계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통계학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술주정꾼이 많아져서 그들을 계도하려고 목사들이 많아졌다." 목사가 많아진 원인이 술주정꾼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한 마디로 그의 결론은 엉터리입니다. 술주정꾼이 많아진 사건이나 침례교 목사가 늘어난 현상이나 모두미국 인구의 증가가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술주정꾼과 목사 수 사이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존재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바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상관관계가 있으나 인과관계도 있다고 주장한다면 "목사 수가 많아진 시대상황을 개탄(?)하느라 술주정꾼도 많아졌다"는 말도 우스꽝스럽게 성립돼 버립니다.

두번째 조건에서 '서로 관련이 있다'라는 말은 '원인이 발생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결과가 일어난다', 혹은 '결과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원인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를 의미합니다. '업무량이 충분하지 않으면 반드시 직원들이 태만해지고', '직원들이 열심히 일한다면 업무량이 적을 리 없다'는 뜻이죠. 상관관계를 의미하지 않음을 유의하기 바랍니다.

세번째 조건 '다른 인과적인 설명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무슨 말일까요? 이 말은 좀 어렵습니다. 천천히따져보겠습니다. '업무량이 충분치 않으니 직원들이 태만해지고, 동시에 월급도 줄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다뤄야 할 사건은 1) 충분치 않은 업무량, 2) 줄어든 월급, 3) 직원들의 태만함, 등 3개가 됩니다.

'충분치 않은 업무량이 반드시 직원들의 태만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우리가 실증할 가설임을 다시 상기하기 바랍니다. 이 가설을 증명하려면, '업무량은 태만함과 전혀 관련이 없다. 월급이 줄어들어서 직원들이 태만해졌다'라고 주장하는 또다른 인과적 관계를 배제해야 합니다. 

'줄어든 월급'이라는 인과적 설명을 배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업무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원인)에서 월급이 줄어들지 않았을 경우(배제할 인과관계)에 직원들이 태만(결과)해졌는가?'를 증명하면 됩니다. 쉽게 말해 월급이야 줄든 늘든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가 확고하다면 인과관계가 성립되고 가설도 실증됩니다.

그러나 '충분치 않은 업무량'만으로 '직원들의 태만함'을 설명할 수 없다면, 즉 '줄어든 월급'이라는 또다른 원인이 가미되어야 직원들이 태만해진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은 업무량 → 직원들의 태만함'이라는 가설은 기각되고 다음과 같이 새로운 가설을 설정해야 합니다.

(충분하지 않은 업무량) and (줄어든 월급)  →  직원들의 태만함

반증(Disproof)이란, 가설이 거짓임을 밝히는 과정입니다. 위에서 실증이란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과정이라고 했으므로, 반증은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음을 증명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반증의 실행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반증의 실행방법
1) 원인과 결과가 시간적으로 거꾸로임을 증명한다.
2) 원인과 결과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는 증거를 찾는다.
3) 대체하거나 보완할 새로운 인과적 설명을 찾는다.

요약하면, 실증은 가설의 참/거짓 여부를 증명하는 과정이고, 결국은 인과관계가 성립하는지를 밝히는 절차입니다. 위에 제시한 인과관계의 성립조건을 명확히 인지해야만 참인 가설을 거짓으로, 혹은 그 반대로 증명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습니다. 문제해결사는 이를 명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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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을 사랑하십니까?   

2009. 7. 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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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을 설정함으로써 문제해결 과정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음을 지난 포스트에서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가설이 되려면 단순한 상황 이외에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의 실마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가설은 문제해결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임을 이제 알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가설을 설정하고 검증(실증)하는 과정에서 여러분이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오늘은 가설의 실증 과정에서 가져야 할 마인드를 알아보겠습니다.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은 불굴의 발명가로서 우리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로 늘 각인돼 있습니다.지만 그도 인간인지라 한때 영욕에 눈이 멀어 아름답지 못한 행동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는 뉴욕시에서 사용할 직류 방식의 전력 공급 시스템을 발명한 후 사업을 전개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강력한 경쟁자였던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가 교류 방식을 발명하고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교류 기술을 기반으로 전력 공급 사업에 뛰어 들자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교류는 직류 방식보다 멀리 전기를 보낼 수 있고 전선이 잘 부식되지 않으며 자유롭게 전압을 바꿀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모든 가정에서 쓰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교류의 장점을 모른 체하며 자신의 직류 방식을 홍보하기 위해 끔찍한 실험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구소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산 채로 개와 고양이를 고압의 교류 전기로 태워 죽이는 실험을 여러 차례 실시해서 교류가 직류보다 안전하지 않다고 거짓으로 알리고 다녔습니다. 또한 사형 집행 도구로 교류 전기를 사용하는 ‘전기 의자’를 손수 발명함으로써 교류의 위험성을 대대적으로 부각시키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런 악의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웨스팅하우스가 전력 공급 사업권을 획득했고, 결국 그는 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에디슨은 ‘내가 발명한 직류 전기가 교류보다 우수하다’는 가설에 스스로 매몰되어 오로지 교류의 위험성을 규탄하는 데 힘을 모으는 과오를 범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일단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그것을 고수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A로 인해 B가 발생한다’라는 하나의 가설을 세우면 그 가설에 어떤 힘이 생긴다고 착각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 원자력 발전소가 세워진 직후에 자갈만한 우박이 떨어지는 이상기후현상이 나타나면,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온 방사능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웁니다. 그리고 이 가설을 실증하지도 않았으면서 그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이상 현상을 전부 원자력 발전소 탓으로 돌리기 십상입니다.

실증을 통해 가설을 참/거짓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보다, 가설의 참을 입증하는 데에 힘을 모으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설을 반대되는 증거가 나타나면 가설을 기각하기보다 오히려 그런 증거가 틀렸다고 말합니다. 가설을 반증하기보다는 입증하려는 경향이 더 크다는 뜻입니다.

이를 증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카드 네 장이 있습니다. 진행자가 한쪽 면에 모음이 있으면 반대 면에는 짝수가 있다는 규칙을 만족하는지 확인하려면 어떤 카드를 뒤집어야 하는가?" 라고 물어 본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카드를 선택해야 할까요? 답을 보기 전에 본인의 마음이 가는 카드를 집기 바랍니다.


골랐습니까? 아마 짐작이 맞는다면, 여러분들 많은 분들이 ‘A’나 ‘2’를 집어 들었을 겁니다. 맞습니까?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할 겁니다.

위에서 설정된 가설은 '한쪽 면에 모음이 있으면 반대 면엔 짝수가 있다'입니다. 사람들은 이 가설을 입증하려고만 하지 반증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A'나 '2'를 집어 듭니다. 만일 여러분이 ‘7’을 집었다면 입증이 아니라 반증을 시도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반증을 시도하는 사람은 연구 결과 4%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반증에 굉장히 약합니다. (고급 독자를 위한 설명 : ‘모음이 있으면 짝수가 있다’는 명제가 참이 되려면 대우(對偶)명제인 ‘홀수가 있으면 자음이 있다’는 명제도 참이 돼야 합니다. 완벽한 증명을 하려면 여러분은 ‘A’와 ‘7’을 함께 선택해야 합니다).

반증이 귀찮더라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일어나세요, 문제해결사여!


가설을 설정할 때는 반드시 반증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반증 가능성이 낮은 가설은 좋은 가설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 제품의 향후 매출액은 증가하거나 하락하거나 아니면 유지할 것이다"라는 가설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 가설을 반증(거짓이라고 증명)할 수 있습니까? 매출의 향후 추이를 모두 언급했기 때문에 이 가설은 항상 참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증의 여지가 전혀 없어서 실증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런 가설은 세우나 마나한 무가치한 가설입니다.

따라서 지난 글에서 제시한 '좋은 가설의 조건'에 하나가 더 추가됩니다.

1) 문제의 원인을 파고드는 가설
2) 측정 대상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가설
3) 해결책의 실마리와 방향을 제시하는 가설
4) 반증 가능성이 높은 가설

또한, 가설에 대한 실증 방법을 설계할 때도 입증과 반증의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합니다. 오로지 입증만 가능하도록 실증 방법을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제멋대로 실증 방법과 결과를 조작하여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된 사례를 알고 있습니다. 바로 '황우석 사태'입니다. 그는 자신이 세운 가설이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방법으로 실증을 행했습니다. 비윤리적인 난자 채취는 차치하고서라도 교묘한 사진 조작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능력 있는 문제해결사라면 가설이 휘두르는 힘을 누를 줄 알아야 합니다. 가설은 어디까지나 '임시로 옳다고 가정한 명제'이니까요. 문제해결의 효과를 위해 잠시 눈에 씌운 색안경에 불과합니다. 가설을 설정했다는 말은 가설이 참/거짓을 실증하라는 의미지, 그 가설이 옳음을 증명하라고 숙제를 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분자생물학자인 후쿠오카 신이치(福岡伸一)는 “지적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자기회의(自己懷疑,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가 가능한가 아닌가에 달렸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문제해결의 입장에서 다시 써보면 이렇게 됩니다. "가설의 실증을 위한 최소한의 마인드는 가설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회의적 관점을 견지하는 것이다."

가설이 틀렸다고 입증되면 과감히 그것을 폐기하고 다른 가설을 세워야 합니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인간은 자신이 진실이기를 바라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습니다. 선호가 실증의 기준은 아닙니다. 가설은 실증의 대상이지 '사랑'의 대상이 아님을 명심해야겠습니다.


* 덧붙임 : 이 글은 예전에 제가 쓴 글(http://www.infuture.kr/195)의 내용을 기초로 문제해결의 관점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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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나는 이런 책을 읽었다   

2009. 7. 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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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나는 12권의 책을 읽었다.
많이 읽은 것 같지만, 얇고 간결한 책이 3권이나 되니 자랑할 일은 아니다.

상반기(1~6월)에는 모두 45권의 책을 읽었다.
하반기에 55권을 읽어서 100권을 채울 요량이다


바람 샤워 in 라틴 : 만화가가 라틴 아메리카를 1년 넘게 여행하면서 겪은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가볍게 터치한다. 깊이가 약하고 단편적인 면이 흠이지만, 멀게 느껴지는 남미를 가깝게 느끼기에는 적당한 책이다. 스타벅스에 비치돼 있길래 읽었다.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저자가 과학의 눈으로 현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조망한다. 권력자가 과학을 홀대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저자는 왜 우리가 과학을 알아야하고 왜 진흥해야 하는지를 독특하고 설득력 있는 문체로 주장한다. 일독을 권한다.

메이저리그 경영학 : 경영컨설턴트이면서 야구 칼럼리스트이기도 한 저자가 메이저리그에서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팀 운영방식, 선수관리방식 등으로부터 경영의 시사점을 재미있게 서술한다. 야구에서는 당연한 방식이 기업 조직에서는 무시되거나 경시된다. 야구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 일독을 권한다.

대체 뭐가 문제야? : 문제해결 과정에서 '문제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이다. 책 곳곳에서 저자의 번뜩이는 시각과 아이디어를 접했다. 얇고 간결한 책이지만 속이 꽉 차있다. 재미있기도 하다.

야성적 충동 : 주류 경제학의 기반인 '합리적인 경제적 인간 모델'을 비판하는 책이다. 인간의 비이성적 심리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이야기했다. 중간중간 유익한 단편이 있지만, 잘 읽히지 않았다. 번역 탓인지 독해력의 부족 때문인지 모르겠다.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기 바란다.

가설사고, 생각을 뒤집어라 : 문제해결 과정에서 '가설 지향적 사고'가 얼마나 필수적이고 중요한지를 설명한 책이다. 아는 내용이었으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읽었다. 가설지향적 사고가 책 한 권으로 엮을 만한 분량이 되는지는 의심스러우나, 초심자들이 가설의 중요성과 유용함을 습득하기에 적절한 책이다.

스타벅스 사람들 : 스타벅스가 왜 그렇게 놀라운 성공을 거뒀는지, 그 성공요인을 설명한 책이다. 저자는 스타벅스에 대해 비판적으로 책을 썼다고는 하나 거의 모든 내용이 칭찬 일색이다. 정말 그럴까, 란 의심 속에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역시 스타벅스에 비치돼 있길래 읽었다.

논리학 실험실 : 제목을 보면 논리학에 관한 책인듯 하지만 열어보면 과학에서의 논증과 추론에 관한 책이다. 논증의 구조, 실증 및 논거의 의미 등을 명확하게 습득하는 데에 이만한 책은 없다. 과학적 논증을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된다.

악!법이라고? : 1시간만에 읽을 수 있는 아주 얇은 책. 책이라고 하기에도 좀 민망한 두께지만, 그 안에 포함된 내용은 꽤 무게가 나간다. 'MB악법'의 실체를 이해하기 쉽게 만화로 엮었다. 정부가 하는 일이 다 국민들을 위하는 일이겠거니, 생각한다면 각잡고 이 책을 읽기 바란다.

넛지 : 행동경제학의 연구 결과들이 현실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사례로 풀어준다. 실수가 잦은 행동을 줄여주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 어떻게 '넛지'해야 할까? 이 책을 읽으면 명쾌한 해답이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은 각잡고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제발 독창적인 연구를 좀 하기 바란다.

니콜라 테슬라, 과학적 상상력의 비밀 : 에디슨과 동시대를 살았던 천재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의 상상력에 대해 서술한 책. 사람들은 테슬라보다 에디슨을 더 많이 기억하지만, 테슬라는 현재 우리가 누리는 정보통신 기술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다. 평전도 아니고 과학서도 아닌, 약간 어정쩡한 책이긴 하나, 테슬라의 위대함을 아직 모른다면 일독을 권한다.

후불제 민주주의 : 문장 하나하나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었다. 명쾌하고 간결한 유시민의 문장에 홀딱 반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수백년의 역사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을 빌려와 안착시킨 민주주의다. 따라서 우리는 그 비용을 지금에서 지불(후불)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한다. 참여정부 시절에 저자를 둘러싼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 정부를 비판하면서 가까운 미래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예언하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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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가설, 명품 색안경을 쓰세요   

2009. 7. 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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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트에서 관찰을 통해 현상을 파악하기 전에 먼저 가설을 설정하는 것이 매우 필수적임을 언급했습니다. 가설을 설정해야 문제의 상황, 원인, 해결책의 실마리를 빠르게 찾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지요. 오늘은 원래 실증의 과정을 다루려 했으나, 가설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겠습니다. 그만큼 가설은 문제해결 과정에서 아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가설에도 품질이 있습니다. 좋은 가설과 나쁜 가설이 있습니다. '직원들이 태만하고 불평불만이 많다'라는 문제를 접한 문제해결사가 현상을 밝히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가설을 세웠다고 가정해 보죠.

1) 직원들이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이 많다.
2) 사적인 용무로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다.
3) 회사의 정책을 비방하는 글을 인트라넷에 자주 올린다.

이렇게 3개의 가설을 세우고 인터뷰에 임했다면 문제해결사가 현상(구체적 상황,원인,해결책 실마리)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요? 그다지 '섹시한' 가설은 아닌 듯합니다. 왜냐하면 '직원들이 태만하고 불평불만이 많다'라는 문제를 그대로 반복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멍하게 앉아있는 시간, 사적인 용무, 정책 비방 등은 모두 문제의 상황을 몇 개 예로 든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가설로도 문제의 현상 중에 '구체적 상황'에 해당하는 부분을 인식하는 데 도음을 얻을수 있겠지만, 문제를 해결한다는 입장에서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관찰이 현상을 파악하기 위함이고, 현상 중에는 문제가 벌어지고 야기하는 구체적 상황이 포함되지만, 그것에만 집중된 가설은 좋은 가설이 아닙니다. 'So What?'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질문에 할말을 잃게 됩니다.

좋은 가설 = 명품 색안경


좋은 가설이란, 문제의 현상 중에서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의 실마리'에 초점을 둔 가설을 말합니다. 그래야 문제해결의 속도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능수능란한 문제해결사라면, 가설 목록의 90% 이상을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의 실마리'에 해당하도록 구성합니다. 다음의 예처럼 말입니다.

a) 직원들에게 충분한 양의 업무가 배정되지 않는다.
b) 관리자들이 대외적인 업무가 너무 많아서 직원들의 근무태도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c) 회사 정책에 대한 홍보가 부족하고 일방적으로 지시 내리는 경향이 있다.

좋은 가설의 예를 보면 모두 문제의 원인과 관련이 있습니다. 앞의 예에서는 문제의 변죽만 울리고 말았는데 이 가설들은 직원들이 태만하고 불평불만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깊이 파고듭니다. 그래야 관찰(인터뷰 등)을 행할 때 관찰의 대상을 명확히 하기가 용이합니다. 관찰의 대상이 분명해야 올바른 척도를 가지고 측정(measurement)에 임할 수 있고 산출된 측정값을 신뢰할 수 있지요.

앞의 가설 '1) 직원들이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이 많다'를 가지고 관찰을 행한다면, 멍한 표정을 하고 앉은 순간부터 스톱워치를 작동시키기도 어려운 노릇입니다. 인터뷰로 '멍한 시간'을 파악한다는 것도 우스꽝스럽습니다. 정량적이든 정성적이든 측정이 용이하려면 업무량, 대외업무시간, 정책홍보시간 등 측정의 대상을 가설에 명시적으로 포함시키거나 충분히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가설입니다.

또한 좋은 가설은 해결책에 대한 시사점도 함께 제시합니다. 업무량이 충분하지 않아서 직원들이 태만하다면 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 업무를 찾아내어 하루 8시간 동안 충분히 일할 거리를 부여해야겠지요. 업무량을 추가부여하는 방법이 한계가 있다면 역량이 떨어지는 직원을 골라내 명예퇴직을 시키거나 일이 많은 부서로 이동시키면 됩니다. 

물론 좋은 가설이 제시하는 몇몇 해결책은 불합리하거나 효과가 떨어질지 모르지만, 해결책의 효과는 관찰 단계에서 고민할 거리가 아닙니다. 해결책의 실마리를 제시하고 더 나아가 해결책의 구체적인 방향까지 알려 준다면 더할나위없이 좋은 가설입니다.

정리하면, 좋은 가설이 되려면 다음과 같은 3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문제해결을 빨리 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좋은 가설입니다.

1) 문제의 원인을 파고드는 가설
2) 측정 대상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가설
3) 해결책의 실마리와 방향을 제시하는 가설

가설의 참/거짓 여부가 가설의 좋고 나쁨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나중에(실증 후에) 참으로 판명되거나 판명될 가능성이 높은 가설이 좋은 가설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명품 썬글라스'가 폼나고 눈에도 좋은 것처럼 좋은 가설이 문제해결의 명품 가설임을 기억해 두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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