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랬겠지만, 나도 영어를 처음 배우면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우리 땐 중학교에 가야 비로소 영어를 배웠는데(물론 알파벳 정도는 초등학교 때 다 외우지만), 12년 동안 한글에 익숙한 언어 생활에 길들여져 있던 까닭인지 영어가 어렵기도 하고, 생경한 탓에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I am Tom. I am a boy... 식으로 시작되는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 내용 중에 유독 내가 어려움을 겪었던 표현은 부정의문문이었다. 왜냐하면 부정의문문에 Yes로 대답해야 할지, No로 대답해야 할지 매번 헛갈렸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영어에서 부정의문문으로 물으면 다음과 같이 대답해야 한다.
--> (boy가 맞을 때) Yes, I am a boy.
--> (boy가 아닐 때) No, I am not a boy.
영어선생님은 부정의문문에 답할 때는 Yes가 '예'가 아니라 '아니오'이고, 'No'는 '예'를 뜻한다고 설명했다. 다음과 같이 해석해야 한단다.
--> (남자일 때) 아뇨, 전 남자인데요.
--> (남자가 아닐 때) 예, 전 남자가 아니에요.
난 그 설명에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Yes는 항상 긍정의 뜻인데, 왜 부정의 뜻으로 변하지?' 영어선생님은 영어의 표현과 우리말과 다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Yes와 No의 뜻을 뒤바꿔서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여전히 헛갈려하는 (나를 포함한) 학동들에게 '그냥 그런가부다' 생각하라고까지 하셨다.
(사진출처 : http://imagebingo.naver.com/album/image_view.htm?uid=lunaticjoey&bno=11897&nid=1926 )
이제 영어식 표현이 부정의문문에서 그렇게 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부정의문문에 답을 할 때마다 잠시 머뭇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여전히 불편하다.
물론 내가 영어에 서툰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타인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데에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위의 영어 문장에서 답자(答者)의 문장을 잘 살펴보면 '나'가 중심임이 나타난다. '내가 boy니까' 긍정의 표현인 yes가 무조건 들어와야 한다. 질문자가 긍정의문문으로 물었든, 부정의문문으로 물었든 상관없이 '내가 boy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문제다. 또한 문장 자체가 모순이 없도록 만들려면 'Yes, I am a boy'라고 답해야 한다. 'No, I am a boy'는 논리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반면, 한글 문장은 질문자와 답자 사이의 '관계'와 소통을 더 중시한다. '너 남자 아니니?'라는 질문과 '아뇨, 난 남자에요'라는 답 사이에는 '이중 부정'의 메카니즘이 존재한다. '아니니?'에 대해 '아뇨'이므로 '예'의 뜻이, '아니니?'에 대해 '예'이므로 '아니오'란 뜻이 질문자에게 전달된다.
한글 대화에서는 '아니니?'에 대해 '아뇨'라고 말함으로써 상대방의 오류를 바로잡아주고, '아니니?'에 대해 '예'라고 말함으로써 상대방의 옳음에 맞장구를 쳐준다. '아뇨, 전 남자에요.'란 문장 자체는 영어의 관점으로 보면 논리적으로는 틀린 문장이지만, 질문자를 위해 논리의 오류쯤은 포기하는 배려와 소통의 의지가 느껴진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배우는 일이 어려운 까닭은 바로 이와 같이 언어에 내재된 '컬처코드' 때문은 아닐까? 영어 완전정복을 외치는 수많은 강사들이 '묻지고 따지지도 말고' 습관이 되도록 무조건 외우라고 조언하는데, 그 말이 틀리지 않은 듯하다.
어찌됐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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