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거슬리는 동료 직원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24. 10.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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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몸담은 조직 내에 여러분의 신경을 거슬리는 직원(상사 포함)이 있지는 않나요? 지금 없다면 과거에 그런 직원과 일해본 적이 한번쯤은 있을 겁니다. 성격 차이일 수도 있고, 취향 차이일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습니다. 배우자도 아니고 애인도 아니니까요.

서로 비슷한 수준의 급여를 받고 일하는 마당에 다음의 유형 중 하나 이상 해당되는 직원이 있다면, '내가 왜 저 사람의 진상짓을 참아내며 계속 회사를 다녀야 하나? 그렇다고 저 사람보다 돈을 많이 받고 일하는 것도 아닌데.'라는 푸념이 들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바로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고, 어떤 의미에서 '고작' 그런 직원들을 보기 싫다고 해서 소중한 나의 경력을 지저분하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을 적절하게 다루며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게 현명한 조치입니다.

다음과 같이 '나의 신경을 엄청나게 긁는 직원'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힌트를 얻기 바랍니다.

 



1. 이기적이고 타인을 학대하는 직원
이들은 우호적이거나 친절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을 우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직원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평가절하하려고 합니다. 이런 직원들에게는 직접 다가가서 '야! 그만해!'라고 단호히 경고해야 합니다. 본인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다른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밟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들을 따끔하게 질타해야 하고, 타인을 학대한다면 무관용의 입장에서 처벌해야 합니다.

2. 대인 갈등 유발을 즐기는 직원
이들은 매일 ‘드라마’를 씁니다. 의사결정과 관련된 갈등은 매일 직장에서 발생하고 그 자체로는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불필요한 대인 갈등은 피할수록 좋습니다. 대인 갈등을 부추기거나 즐기는 직원들은 팀의 생산성을 급격히 떨어뜨립니다. 이런 직원이 있다면 가능하면 단독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업무를 맡겨야 합니다. '혼자서' 놀게 만들어야 하죠. 혼자서 얼마나 잘하나를 주시해 보세요.

3. 최선을 다하기는커녕 아예 노력하지 않는 직원
이들은 협력을 싫어합니다. 아이디어를 내라고 해도 무시해 버리죠. 동료를 실망시키는 행동을 해도 그다지 미안해 하지 않습니다. 이런 직원에게는 좀더 직설적으로 피드백해야 합니다. 본인의 나태한 업무태도가 다른 직원들의 성과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단호하게 말해야 합니다.
 
4. 마감을 지키지 않는 직원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신경이 거슬리는 직원 유형입니다. 이런 직원은 동료와의 약속을 우선하지 않습니다. 팀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압박도 별로 느끼지 않죠. 마감 어기기를 밥먹듯이 하면서 자기 방식을 고집하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간중간 확인을 자주 해야 합니다. 중간 산출물이 명확하게 나오고 있는지 모니터링해야 하죠. 철저히 관리감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마감 당일에 "노력했는데 아직 못했습니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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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 패치를 붙이겠습니까, 그냥 참겠습니까?   

2024. 10.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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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여러분은 소위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까? 담배를 피운다든지, 아침에 늦잠을 잔다든지, 약속 시간에 항상 조금씩 늦는다든지 등의 나쁜 습관을 줄이려고 나름대로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본 적이 있습니까?

금연을 예로 들어보죠. 담배를 끊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서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됩니다. 니코틴 패치를 팔에 붙이는 약물 요법부터 담배를 피우다가 걸리면 벌금을 낸다든지 등의 방법까지 각양각색의 조치를 취하죠. 금연에 실패하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반대되는 단체에 거액을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거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어떤 사람은 '오늘부터 담배를 끊겠어!'라고 선언한 후에 온전히 자기 의지만으로 1~2개월 만에 담배와 결별하기도 합니다. 약물이나 벌칙 따위에 의존하지 않고 그저 물을 많이 마시거나 껌을 씹는 정도로 흡연의 욕구를 견뎌냄으로써 말입니다.

금연 패치에 의존한 사람과 의지력을 발휘한 사람, 이렇게 두 사람이 모두 금연에 성공했다고 가정해 보세요. 여러분은 둘 중 누구에게 더 좋은 평가를 주고 싶습니까? 누구의 금연이 더 가치 있다고 여기는지요? 아마도 여러분 중 대부분은 의지력만으로 금연에 성공한 사람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을 겁니다. 금연 패치보다 의지력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죠. 심지어 어떤 이는 "니코틴 패치로 금연했으면서 뭘!"이라 말하면서 약물을 사용한 이의 금연을 평가절하하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두 방법 중에 어떤 것이 더 성공 확률이 높을까요? 금연을 시도해 본 적이 있는 분은 알겠지만, 아무래도 니코틴 패치 등의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 금연을 성공시킵니다. 의지력이 아무리 높은 사람일지라도 니코틴 중독을 이겨내기란 생리적으로 어려우니까요.

오늘 일기에서 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눈치챘는지요? 사람들은 나쁜 습관을 없애려고 약물이나 벌칙과 같은 외적 강제 수단을 동원할 때보다 의지력을 발휘할 때를 '더 가치있는 행동'이라고 본다는 것입니다. 결과는 동일한데도 말입니다.

의지력을 '높게 쳐주기' 때문일까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일할 때 SNS를 들여다 보는 것과 같은 나쁜 습관을 없앨 때 차단앱과 같은 강제 수단을 사용하려 하기보다 '일할 때는 절대 SNS에 눈길을 주지 않겠어!'라고 다짐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의지력을 과대평가하는 걸까요? 차단앱을 설치하는 게 나쁜 습관을 줄이는 데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인데도 말입니다.

'나쁜 습관 버리기'라는 결과에 얻었다면 의지력이 얼마나 발휘됐나를 가지고 결과의 질이나 그 사람의 인성을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결과를 얻으려고 동원한 방법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외적 강제 수단을 동원해서 얻어낸 결과도 동일하게 존중해야 합니다. 

의지력에 환상을 갖지 마세요. 니코틴 패치, 차단앱 등의 외적 강제 수단을 사용한 사람들도 어찌보면 엄청난 의지력의 소유자입니다. 중간에 제거하지 않고 계속 견뎌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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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사실 굉장히 위험한 도박입니다   

2024. 10.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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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직전, 독일과 소련은 상호불가침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조약은 서로에게 윈-윈이었어요. 독일은 서부유럽(프랑스, 영국 등)을 공략하는 것이 최우선이었기에 등 뒤에 있는 소련과 화친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고, 소련은 이제 막 혁명을 완성한 후라서 낙후된 경제를 살리는 것이 국가적 현안이었기에 전쟁을 벌일 여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하루아침에 조약문은 휴지조각이 되었고, 파죽지세로 달려드는 독일의 공격으로 초기의 소련군은 추풍낙엽처럼 쓸려 나갔습니다. 

이를 보고 많은 이들은 소련이 불가침 조약만 철썩 같이 믿고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초기 패배의 원인을 진단합니다. 당시 최고의 권력자인 스탈린이 상황 판단에 크게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진짜 그럴까요?

독일이 전쟁 준비를 착착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당시 누구나 알고 있었습니다. 독일이 베르샤유 조약의 무효를 선언하면서 징병제를 도입했고 벨기에 쪽으로 군대를 전진 배치했으니 설령 국민들은 알지 못했다 해도 스탈린 같은 위치에 있는 자가 독일의 침략 가능성을 모를 리 없었습니다. 독일이 침공하기 전인 1935년부터 1939년까지 소련은 나라의 곳간이 텅비었음에도 불구하고 무기 구입을 위해 다른 국가보다 훨씬 많은 돈을 지출했습니다. 이것이 독일이 전쟁을 일으킬 것임을 미리 알았다는 확실한 증거죠.

 



그렇다면 소련은 왜 독일에게 처음부터 ‘깨진’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리더십의 부재’였습니다.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최측근에게조차 나누려 하지 않았던 스탈린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는 자가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무자비하게 숙청하거나 투옥시켰습니다. 군대의 장성들과 고급장교들도 ‘대숙청’에 예외는 아니었죠. 주요 직위가 경험없는 장교들로 채워졌으니 초장에 ‘무참히 깨지는 건’ 당연했습니다. 

소련군이 초기에 고전을 면치 못했던 두 번째 이유는 바로 ‘혁신에 박차를 가했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 것 같은데요, 소련군의 사례를 보면 혁신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 혁신을 추진하던 도중 한방에 ‘훅’ 갈 수도 있음을 깨닫습니다.

‘겨울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39년 11월 30일에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함으로써 벌어진 전쟁입니다. 겉으로는 소련의 승리로 끝났지만(1940년 3월 종전), 핀란드를 정복하겠다는 목표는 달성되지 못했고 전쟁 내내 소련군은 핀란드군의 영리한 전략에 끌려다니며 고전했습니다. 

약소국을 상대로 고된 싸움을 벌였던 까닭으로 지적된 것이 ‘군관구’라고 불리는 소련군의 독특한 조직 체계였습니다. 각 지역에 주둔하는 군대로 자체적으로 전략 수립, 전투 수행, 행정, 보급 등을 책임지는 형태가 군관구였는데, 봉건시대의 영주가 자체 군대를 이끌던 때의 습성이 군관구로 이어진 것이었죠.

다른 군관구는 뒷짐 지고 관망한 채 레닌그라드 방면 군관구만이 핀란드와 전쟁을 벌였으니, 군사력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맥을 못 춘 거라고 판단한 소련은 봉건주의적 군 체계를 중앙집권적인 체계로 변화시키는 혁신을 감행했습니다. 1년도 걸리지 않았을 정도로 혁신의 속도는 매우 빨랐는데, 이는 스탈린 1인 독재체제가 가져다 준 장점이라면 장점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시점에 있었어요. 군관구가 폐지되고 겉으로는 중앙군 체계가 수립되었다 하더라도 그 속까지 빠르게 변할 수 있었을까요? 기업의 규모가 크건 작건 인사제도의 방향성을 바꾸고 나면 안정화하는 데까지 적어도 3년이 걸릴 거라고 보는데, 소련군처럼 거대 조직(475만명)의 체계 혁신이 1년 안에 모두 완성될 수 있었을까요? 전략 수립, 보급, 행정 등을 새 체계에 맞추느라 모두가 우왕좌왕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말았죠. 군관구를 폐지하고 1년도 안 돼 독일이 쳐들어왔으니 소련 입장에서는 혁신이 되려 악재가 된 셈이었습니다. 

‘가죽 혁(革)’자에 ‘새로울 신(新)’자를 쓰는 혁신이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기존의 가죽을 모두 벗겨내고 새로운 가죽으로 몸을 싼다는 뜻입니다. 가죽을 바꾸는 과정에서 ‘알몸’이 노출되니 병원균과 천적이 공격이라도 하면? 혁신은 매우 위험한 모험입니다. 언제나 장미빛 미래만을 약속하지는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소련의 입장에서 다행인 것은 혁신의 효과가 소련군이 독일군을 스탈린그라드에서 몰아내며 전쟁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1943년에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1940년에 실시한 혁신이 3년 후인 1943년에 효과를 발휘한 걸 보면, 크고 작은 변화가 안착할 때까지 적어도 3년이 걸린다는 것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일종의 경험법칙(rule of thumb)입니다. 이 법칙은 혁신 후에 바로 효과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도 같이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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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의 나'가 '지금의 나'를 보며 놀라는 이유   

2024. 10.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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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일기 독자라면 '더닝-크루거 효과'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알 겁니다. 예전 일기에서 다룬 심리학 용어이니까요. 모르는 분들을 위해 다시 설명하면, 실력은 별로 없으면서 혹은 아는 건 조금밖에 없으면서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는 심리가 바로 ‘더닝-크루거 효과’입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우리 속담과 궤를 같이 하죠.

더닝-크루거 효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남들에게 '질문'할 줄을 모릅니다. 본인이 척 보면 안다고 자신만만하니 질문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질문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다. 여전히 '고만고만한' 지식의 울타리 안에 머물면서 성장하지 못하겠죠. '모르는 게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니까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법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더닝-크루거 효과가 미약해지는 때가 오는 법입니다. 해당 분야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혹은 같은 분야의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구나'는 인식하기 마련이죠. 이런 깨달음이 빨리 오느냐 늦게 오느냐의 문제일 겁니다.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깨달으면 이때도 남들에게 질문하기가 두려워집니다. '넌 그것도 모르냐! 멍청하게시리.'고 남들이 흉을 볼까 두렵기 때문이죠. 혹은 남의 시간을 뺏는 것은 아닐까, 지나치게 미안해 하기 때문입니다. 

 



질문하기를 두려워 하니까 어떻게 되겠습니까? 배움이 이루어질 수 없겠죠. 배움이 없으니 성장이 없고, 성장이 없으니 전문가 수준에 오르는 시간이 더딜 수밖에요. 

무언가를 배워가는 초기에는 질문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하지 않으려는 기제가 작동합니다. 이를 매순간 상기해야 여러분이 각자 영역에서 전문가로 보다 빨리 보다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습니다. 무지를 부끄러워 하지 말고, 매일 자신의 '무지 영역'을 1밀리씩 지워간다는 느낌으로 질문을 던지세요. 

연구에 다르면, 멍청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질문을 던질수록 실제로 똑똑해진다고 합니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려는 의지가 클수록 더 빨리 배우고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고장난 워크맨 수리를 취미삼아 하고 있는데, 모델마다 메커니즘이 달라서 수리방법을 도대체 알 수 없을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이런 것도 모르냐?'라고 비아냥을 들을 각오를 하고 인터넷 카페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배터리를 새것으로 바꾸거나 나사를 조여 보라는 식의 답을 들으면 '어이쿠, 내가 이런 것도 모르다니! 창피해 죽겠군.'이라는 감정이 들기도 하지만, 다음번엔 동일한 실수를 하지 않을 테니 몇 초 창피한 것 치고는 남는 장사라는 뿌듯함이 앞섭니다.

워크맨 수리라는 취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한 8개월 됐는데 이제 왠만한 워크맨은 두려움 없이 분해 조립할 수 있으니 그리고 수리 성공률이 50%는 넘으니, 만약 작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꽤 놀랄 겁니다. 이게 다 질문 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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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게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2024. 10.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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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신 부담을 덜기 위해 가벼운 글로 시작하겠습니다. 다음의 글을 읽어보기 바랍니다.

길동이는 자기 친구들을 여러 명 집으로 초대했다. 집에 컵이 부족해서 길동이는 컵을 사러 마트에 갔다.

아주 쉬운 문장이라 상황이 바로 머리에 들어올 겁니다. 그렇다면, 아래의 글은 어떻습니까?

길동이는 친구 10명을 집으로 초대했다. 집에 컵이 7개 뿐이라서 길동이는 3개의 컵을 사러 마트에 갔다.

비슷한 상황의 글이지만, 이번엔 아까보다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렸을 겁니다. 모자란 컵의 수, 마트에서 사야 하는 컵의 수를 계산하는 데 자신도 모르게 신경을 썼기 때문입니다. 이는 심리학 실험으로 밝혀진 사실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정확한 정보를 줄 때보다 모호한 정보를 줄 때 사람들은 뇌의 에너지를 덜 쓴다고 합니다. 에너지를 덜 쓴다는 말은 그만큼 '쉽게' 정보를 받아들인다는 뜻이죠. 그리고 정확한 정보를 접할 때보다는 모호한 정보를 접할 때 그 내용에 별로 비판적이지 않다는 게 실험 결과로 밝혀졌습니다. '상대방이 내 말을 별다른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를 '설득'의 의미로 본다면, 모호하게 정보를 전달해야 설득하기가 더 쉽다는 게 이 연구의 의미입니다.

 



좀 의아하지 않습니까? 정보를 자세하게 전달해야 상대방을 설득하기가 용이하다는 것을 상식으로 아는 분들은 고개를 갸웃할 이야기인데요, 왜 그럴까요? 인간은 가능한 한 뇌의 에너지를 '적게' 씀으로써 에너지를 보존하는 쪽으로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설득을 위해서라면 항상 상대방에게 정보를 모호하게 줘야 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연구에서 우리가 채택해야 할 시사점은 정보를 상세하게 제시할 때와 모호하게 전달할 때를 잘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득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가 아닌 것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죠. '정확히 모자란 컵의 수'가 뭐 그리 중요할까요? '컵이 부족해서 마트에 컵을 사러갔다' 정도로 표현해도 충분하죠. 중요한 것은 길동이가 파티를 준비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이해시켜야 할 핵심 메시지는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그렇지 않은 메시지들은 대략적이고 피상적으로 언급하세요. 독자의 두뇌 에너지를 낭비시키지 않고 핵심 메시지에 집중시켜야 여러분 글의 가독성이 올라갑니다. 

제가 몇 명의 실험 참가자를 대상으로 몇 퍼센트의 결과를 얻었다는 식으로 연구 논문의 데이터를 상세히 언급하지 않는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일기에 '자전거 탄 남자' 사진(위)을 올린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참고논문
Mannaioli, G., Ansani, A., Coppola, C., & Lombardi Vallauri, E. (2024). Vagueness as an implicit-encoding persuasive strategy: an experimental approach. Cognitive Processing,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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