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한일전 축구처럼 관심도가 높고 결과의 파급효과가 큰 경기를 앞두고서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내가 보면 지더라고. 그래서 안 볼 거야."라고 말이죠. '내가 시청하는 행위'가 선수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로 하는 말일까요? 그렇지는 않겠죠. 자신의 영향력이 그처럼 크다고 믿는 이는 없을 테니까요.
가장 유력하면서도 일반적인 이유는 '내가 시청할 때 경기에서 '진 기억'이 '이긴 기억'보다 머리에 오래 남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질 확률이 큰 경기만 골라보는 지지리도 운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통계적으로 ‘내가 시청했을 때 이긴 경기 수’가 ‘내가 시청했을 때 진 경기 수’와 별 차이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이익을 극대화하기보다는 손실을 회피하는 쪽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에요. 긍정적인 상황을 극대화하기보다는 부정적인 상황을 최소화하는 데 에너지를 쏟으려 하죠. 이것은 사실 인간의 생존에 굉장히 이득이 됩니다.
어두운 숲 속에서 잎사귀들이 흔들리는 모습을 관찰하면 그게 뭔지 확인하기 전에 일단은 그 자리에서 도망치거나 몸을 사리는 게 생존 확률을 높이니까요. 잎사귀를 흔들었던 존재가 토끼나 사슴 같은 먹이(이득)일 수도 있겠지만, 내 생명을 위협할 호랑이나 곰 같은 맹수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일단은 경계하고 보는 게 최고의 전략입니다.
이런 위험 회피 성향이 부정적 기억이 머리에 오래 남도록 만들었고 그에 따라 ‘내가 보면 경기에 진다’는 비합리적이면서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명제를 스스로에게 성립시키는 것입니다. 중요도와 긴박감이 높은 경기일수록 이 명제는 힘을 얻죠.
“내가 보면 꼭 지더라”는 편향은 경기장에서 열심히 뛰는 선수를 위하는 마음이라기보다 사실은 자기 마음을 덜 다치게 하려는 ‘보신 욕구’에서 나온 것입니다. 짐작컨대 “난 안 볼래. 내가 보면 꼭 지거든.”이라고 자주 말하는 사람일수록 방어적이고 감정적 내성이 무척 약한 사람일지 모르죠.
어떻게 보면 “내가 보면 경기에서 이긴다.”라고 긍정적으로 말하는 게 좋습니다. 응원하는 나의 기운이 선수들에게 텔레파시를 통해 전해져서 그들에게 아주 미세하나마나(그리고 혹시나마) 힘을 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응원하는 사람이 많고 응원 함성이 클수록 선수들이 힘을 낸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내가 보면 경기에서 이긴다. 그러니 필히 볼 테다!”라고 일부러 말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어떨까요? “내가 보면 경기에서 진다. 그러니 안 보련다”란 말은 선수들보다는 자기 자신을 더 위하는 행위임을 깨닫는다면 말입니다. 돈 드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스포츠에서 좀 지면 어떻습니까? 다음에 이기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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