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기' 잡는 경영, 과연 필요한가?   

2009. 4. 13.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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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이었던가, 잠깐 동안 호사가들의 입에 올랐던 해프닝을 기억할런지 모르겠다. 35, 36, 37, 41, 44, 45이라는 1등 로또 당첨번호 때문이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41을 제외하고는 일련번호인데다가 30대와 40대 몰려 있는 ‘맞추기 어려운’ 숫자에 무려 15명의 1등 당첨자가 배출됐다는 걸 애써 이슈화를 시켰다. 몇몇 네티즌들은 어떻게 그런 숫자에 그렇게 많은 당첨자가 나올 수 있냐며 무언가 사전에 조작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반박은 확률의 개념을 오해한 데에서 비롯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전문가들도 쉽게 속는 경향이 있다). 극단적인 일련번호인 1, 2, 3, 4, 5, 6 이 나올 확률과 무작위 숫자들이 나올 확률은 정확히 똑같다는 걸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숫자 각각이 나올 사건은 서로 독립적이고 순전히 우연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일어난 사건이 그 다음에 일어나는 사건에 영향을 미칠 거라 잘못 생각한다. ‘무작위’는 ‘고루 섞여 있음’을 의미하고, 고루 섞여 있어야 안정적이고 덜 우연적인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수용키 어려운 1, 2, 3, 4, 5, 6이란 번호도 확률의 세계에서는 충분히 무작위적이다.

사람들은 기질적으로 ‘우연’을 참지 못한다. 로또 당첨번호처럼 특이한 사건일수록 더욱 그렇다. 만일 당신이 고개를 내밀어 창문을 내다보는 데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창문에 코를 부딪쳐 코뼈가 내려앉았다고 해보자. 다음날 중요한 오디션에 나가기로 돼 있는 당신은 이로 인해 그만 소망하던 배우의 꿈을 접고 평범한 직장인이 됐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러한 불행의 모든 책임을 자신의 이름을 하필 그때 부른 그 사람에게 돌리며 한탄한다. 나아가 그 사람이 의도적으로 당신의 코가 깨질 가능성이 충분한 상황에 그 같은 행동을 취한 것이 아닐까 의심까지 들게 된다. 억지스럽더라도 우연을 필연으로 여겨야 맘이 놓인다. 자신의 재능 부족은 입도 뻥끗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복잡해지는 현대사회에서 통제할 수 없는 사건들을 수도 없이 접하면서 때로는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더욱 우연을 견디지 못하게 된다. 취업준비생들이 대기업으로만 몰리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수입, 안정성, 교육 및 복리후생 등이 중소기업보다 나을뿐더러 적어도 왔다갔다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다시 말해 ‘덜 우연적’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대기업에 들어가서도 ‘우리 회사는 원칙이 없는 것 같다. 전혀 예상이 안 되고 엉성하다.’ 등의 불만을 쏟아내는 것을 볼 때 우연에 대한 혐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경영자들도 우연을 싫어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의 의도가 말단조직에까지 착착 미치지 못한다고 느낄 때, 직원들이 업무를 체계적으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회의 때 내놓는 현황 분석 데이터들이 시원찮다든가 할 때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이 때 가장 많이 궁리해 내는 아이디어가 바로 ‘체계를 잡는 것’이다. 지시가 물처럼 아래로 잘 하달되도록 조직을 뜯어 고치거나, 일 못하는 직원을 가려내기 위한 의도로 평가제도를 강화시키거나, ERP 등 정보시스템 구축에 투자를 결심한다. 또는 실패 가능성을 줄이려 다른 회사의 성공사례를 전적으로 모방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게 우연성을 줄이고 효율성은 높이려는 시도인데, 요즘같이 불황일 때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이 오히려 우연에 맡길 때보다 더 큰 비용을 발생시키거나 더 큰 기회를 상실시킨다면, 본능적인 우연 혐오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안정적인 대기업만을 선호하는 바람에 쟁쟁한 인력 틈에서 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그렇고 그런 범용인재로 인생을 허비할 수 있다. 자아실현의 기회를 노릴 수 있는 중소기업에 입사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체계 또는 군기를 잡는다고 조직을 뜯어 고쳤다가 오히려 옥상옥의 결과만 초래한다면 의사소통은 심각한 병목현상에 빠질 수 있다. 성과 위주의 평가제도를 성급히 모방했다가 일 잘하는 직원은 회사를 떠나고 일 못하는 직원들만 남아 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보고서를 근사하게 뽑으려고 구축한 정보시스템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시스템 관리 때문에 인력만 늘어나는 꼴이 빚어진다. 우연을 회피하고자 시도하는 여러 행위들은 불확실성을 확실히 줄여주기는 한다. 그러나 그만큼의 기회 역시 줄어든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우연은 불확실성이고 불확실성은 위험이라는 단선적인 사고방식에서 깨어나야 한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태도가 지나치면 기회를 잃게 된다. 조직 운영에 있어 건강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생각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제고하려면 어느 정도의 유연함, 즉 우연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꽉 짜여진 체계에 따라 조직을 움직이고 직원들이 그 체계 하에 보호 받도록 하는 것에 마음이 가겠지만 자유로움과 규율 사이, 불확실성과 확실성 사이, 우연과 효율성 사이에 적절한 무게중심을 찾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경영자가 가져야 할 중용의 덕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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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흐드러진 동네 한바퀴   

2009. 4. 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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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따뜻하여 동네 한바퀴를 어슬렁거리며 걷는다.
봄 햇살이 간지러운 듯 수많은 흰 꽃망울들이 까르르 웃는다.
그 웃음따라 꽃비가 내린다.
마음이 가난한 사진사는 축복같은 봄에 푹 젖어 본다.

(크게 보려면 클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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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라는 이름의 지적(智的) 깡패   

2009. 4. 7.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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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병원에 가본 사람들은 안다. 특히 '특진의'를 만나본 사람들은 안다. 그들이 의사라는 하얀 가운을 입은, 지적(智的) 깡패라는 사실을. 요 며칠 병원 신세를 지면서 특진의들의 권위주의를 직접 경험하고 또 제3자로서 목격한 나는 일반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렇게 단언한다.

큰 병이든 작은 병이든, 생명에 위중한 병이든 그렇지 않은 병이든, 모든 환자들은 약해진 마음으로 의사 앞에 선다. 의사 앞에서 환자들은 언제나 약자다. 그리고 이런 약자들에게 한없이 강한 자들이 의사다. '아니다'라고 반론을 제기할 자, 얼마나 될까?



  • 집도를 했으면서 자기 과 환자가 아니라며 수술 후에 환자를 찾지 않는 의사
  • 그게 자신의 스타일이라며 잠자코 있으라며 환자에게 강요하는 의사
  • 환자의 반문에 말귀를 못 알아 듣는다며 언성을 높이는 의사
  • 급기야 책상을 내리치며 눈을 부라리는 의사
  • 환자의 불안한 심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술이 잘못되면 다시 수술하면 된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의사
  • 20년이나 넘으신 자신의 의사경력에 고마워나 하라고 비꼬는 의사
  • 마취 여부는 자신에게 묻지 말고 마취과 의사에게 찾아가 물으라는 의사


굴러다니는 잡배나 깡패와 다를 바 없다. 간혹 뉴스에서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사회지도층 인사가 포함된....' 사건이 보도되는 경우가 있다. 의사가 사회지도층이라는 말, 과연 적정한가? 빈민과 난민을 구호하는 의사라면 모를까, 일반 의사들이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주도한다고 사회지도층이란 거룩한 칭호를 붙이는 걸까?

병실에 붙은 '환자권리장전' 액자를 보며 비저나오는 비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우습게도 환자권리장전은 헌법 10조를 그대로 표절하면서 시작한다.

헌법 10조 :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환자권리장전
모든 환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권리를 가지며 이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가진다.

[환자의 권리]
1. 환자의 생명은 존중되며, 최선의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
2. 환자는 가난하다거나 그 밖의 이유로 차별 받지 아니할 권리가 있다.
3. 환자는 자신의 질병에 관한 충분한 설명을 듣고 치료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
4. 환자는 진료상의 비밀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5. 환자는 병원내의 각종 위험으로부터 신체적 안전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환자의 책임]
1. 환자는 의료진에게 정확하고 완전한 의료정보를 제공하여야 한다.
2. 환자는 의료진에 의해 제시된 치료계획을 존중하여야 한다.
3. 환자는 병원 내 공공질서를 지키고 다른 환자의 편의도 고려해야 한다.

다른 건 모르겠으나, 환자의 권리 중 2번과 3번은 너무나 쉽고 우습게 침해 당한다. 병원의 고객 마인드 교육, 친절 교육 등은 간호사와 업무직원들에게만 강요된다. 환자들이 믿고 의지해야 하는 의사들은 언제나 '열외'다.

존경 받고 돈 많이 벌고 게다가 사회지도층 감투까지 쓰신 지체 높으신 의사들이시다.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의술은 막강한 권리를 자랑한다. 이런 권위 앞에서 환자권리장전은 박제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병실을 나오며 그 액자를 깨버리고 싶은 충동을 무던히 억제해야 했다.

지적 깡패에 해당하는 의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라는 식의 판에 박힌 변론은 듣고 싶지 않다. 부당함을 당한 자에게 생각을 올바르게(?) 가지라 충고하기 전에, 먼저 지적 깡패 의사가 과연 극소수인지 세어 볼 일이다. 지적 깡패로부터 당한 자들에게 극소수 여부를 증명하라 떠넘기지 말라. 특히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를 위대하신 의사들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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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나는 이런 책을 읽었다   

2009. 4. 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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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는 모두 9권의 책을 읽었다. 몸이 안 좋아 좀 쉬면서 일을 하는데, 그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더 많아졌다. 세상엔 좋은 책이 너무 많은데, 읽을 시간이 없다고 푸념하는 내 자신을 반성해 본다.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  : 그는 파인만이 노벨물리학상을 받을 수 있게 파인만의 이론을 증명했지만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물리학자보다는 사상가로서의 그의 독특하고 약간은 반골적인 시각이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 전쟁을 없애기 위해 핵무기 개발에 참여했고, 또한 핵무기 군축을 지지했던 그의 인생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한 세계사를 반영한다.

미러링 피플 :  우리가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공감하는 이유는 뇌 속에 미러링 뉴런(거울 뉴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러링 뉴런은 인간 사회를 강력하게 묶는 매개체이고, 인간의 지능과 지혜가 발현되는 근원처이다. 과학서지만 꼭 읽을 필요가 있다.

톨스토이 단편선 :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홀짝 거리면서 2시간 내에 다 읽은 책이다. 톨스토이의 기독교주의적인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따뜻한 글로 채워져 있다. 마음이 착해지는 책이다.

책 읽어주는 남자 :  이 책을 99년에 읽은 적이 있는데, 요즘 영화화됐다고 해서 다시 읽었다. 불과 10년 전 책인데, 오래된 책 특유의 냄새가 정겨웠다. 독일문학 책이라서 그런지 철학적이고 서사적인 문장이 처음에는 껄끄러웠으나 읽다보면 그 흐름에 동화된다. 사족이지만, 한나 역으로 케이트 윈슬렛은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적확한 캐스팅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대학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탐독하며 여러 날을 허무하고 염세적인 기분에 젖었었다. 난 그가 달리기를 그렇게 사랑했는지 이번에 알게 됐는데, 나도 그처럼 달리기를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할 정도로 맛있는 문체로 잔잔하게 자신의 달리기 역사를 펼쳐간다.

발칙한 유럽산책 : 서점에서 한 두페이지 읽어 보고 너무 재미있어서 사게 된 책이다. 유머와 음담패설을 적절하게 섞어가면서 자신이 여행했던 유럽의 도시를 이야기한다. 내가 가본 유럽 도시에 대해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유쾌해지고 싶을 때, 유럽의 도시가 그리울 때 이 책을 읽는 건 어떨까?

뉴 골든 에이지 : 인도계 미국 경제학자가 쓴 경제 예측서다. 그의 스승과 그가 발견한 사회순환법칙을 적용해서 미국이란 나라의 붕괴를 예견하는 책이다. 미국은 지금 온갖 부패가 만연하고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탐획자 시대'의 말기 현상을 보인다고 한다. 그는 곧 그 시대가 마감되고 '전사의 시대'가 올 거라 예견하면서 머지 않아 미국에 황금의 시대가 열릴 거라 예언한다. 두고봐야 알 터이지만, 역사와 정치를 꿰뚫어보는 그의 혜안이 놀랍다. 읽어보기 바란다. 

서늘한 광채 : 1부는 소설 형식으로, 2부는 과학서 형식으로 구성된 책이다. 뇌과학과 현상학을 통해 의식의 근원을 해석한 책인데, 배경지식이 없으면 쉽게 읽히지 않는다. 의식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어떻게 발현되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된다.  

자유의지, 그 환상의 진화 : 인간의 자유의지는 뇌 속에 존재하는 환상이라고 주장하는 생물학자의 책이다.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선물로 내려줬다는 기독교적인 입장에서는 이 책의 서술이 마땅찮을지도 모르겠다. 자유의지라는 환상은 진화를 통해 획득한 형질이라는 진화생물학의 관점을 읽어보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독일어권(오스트리아) 책이라 관념적으로 서술된 문장이 쉽게 읽히지는 않으니 천천히 읽을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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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임금 깎아 일자리 늘리겠다고?   

2009. 4. 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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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공기업에서 시작된 잡 쉐어링(job sharing) 운동이 모든 기업으로 확산되는 중이다. 기존 직원이나 신입사원의 임금을 삭감하여 그 재원을 사용해 고용을 유지하고 신규채용을 늘리겠다는 아이디어다.

아이디어 자체만 본다면, 임금의 삭감 방식을 통한 잡 쉐어링이 작금의 경제 위기를 타개할 묘책 중의 묘책이 될 만하다. 정부가 금 모으기 운동에 이어 잡 쉐어링을 국가적인 브랜드로 양성할 포부까지 밝히고 있다 하니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아마 정부는 다음과 같은 인과고리(causal loop)처럼 임금 삭감을 통한 잡 쉐어링의 효과를 잔뜩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 정부가 기대하는 잡 쉐어링의 효과


정부의 희망사항은 이렇다. 삭감된 임금만큼 일자리가 많아지면 실업이 감소하고,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커져 기업의 수익도 증가할 것이며, 기업가치(주가)도 상승한다. 그래서 일자리가 증가하고 경기가 회복하는 선순환 고리가 완성된다. 이 얼마나 완벽한가?

그러나 나는 정부의 이같은 기대가 헛된 꿈에 불과함을 지적하고 싶다. 결론적으로 말해, 임금 삭감에 의한 잡 쉐어링은 결코 일자리를 늘리지 못한다. 오히려 실업(특히 청년실업)을 가중시키고 거품경기를 야기할 뿐이다. 그 이유는 다음의 인과고리가 설명해 준다.

* 임금 삭감식 잡 쉐어링의 진짜 효과(?)

건전한 수준의 임금은 근로자가 기여하는 생산량(혹은 생산성)에 기초해야 한다. 일한 시간이나 생산량만큼 임금이 지급됨으로써 실질임금이 생산성 증가를 따라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야 소비자의 수요와 기업의 공급이 균형을 이루어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들이 시도하는 잡 쉐어링은 임금은 깎고 노동자 1인에게 기존과 동일한(아니 그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의 일자리 나누기는 노동자 생산성을 실질임금으로 나눈 값인 '임금격차(wage gap)'을 확대시킨다.

임금격차가 커지면 노동자들은 현재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는데 애를 먹게 된다. 임금이 깎인 만큼 소비지출을 줄이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불황에다 물가가 오르는 상황(스태그플레이션)에서는 결코 녹록치 않다. 주택담보대출금, 교육비, 양육비 등과 같이 덩어리가 큰 고정지출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대출을 받아 현재의 구매력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요즘에 경기 부양을 위해 인위적으로 금리를 내리고 있는 것도 더 많은 대출을 일으키도록 부추긴다.

이렇게 되면 당장은 기업의 수익은 늘어나고 주가가 상승하여 경기가 호전된다. 그러나 늘어난 기업의 수익은 삭감된 임금을 예전 수준으로 회복시키거나 신규채용을 늘리는 데 사용되지 않고 기업 내부에 유보되거나 주주에게 배당금으로 빠져 나가기 십상이다. 그 증거가 여기 있다.

생산성은 증가했지만 임금은 그대로이니 임금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구매력 보존을 위해 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언뜻 보면 경기가 호전되는 듯 보이지만, 실은 '거품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전조이다. 결국 임금 삭감을 통한 잡 쉐어링은 '88만원 세대'를 더욱 양산하는 꼴이 되고 만다.

삭감된 임금 재원이 일자리 확대 이외의 용도로 쓰이지 않도록 정부가 감시를 철저히 하겠다지만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까지 감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주식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기업들이 포기할지 역시 의문이다. 아마 기업들은 정부가 주는 인센티브만 취하고 일자리 확대는 뒷전이지 않을까? 기업이 일자리 확대 약속을 위반한다고 정부가 딱히 제재할 방법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대안은?

정부와 기업이 건전한 경기 회복을 바란다면, 임금 삭감을 생각하기 전에 회사 내에 존재하는 불요불급한 코스트를 먼저 줄여야 한다. 비용의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된 재원을 고용 안정에 활용해야 한다. 따져보면 비용을 줄일 만한 요소가 한두가지가 아닌데 왜 임금 삭감과 같이 간편한 방법에 의존하려 하는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란 인력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나머지 영역에서 창조적으로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을 의미하지, 근로자의 뼈를 진짜로 깎아내라는 말이 아니다.

그래도 잡 쉐어링을 해야 한다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나머지 시간을 인력 양성에 투자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유한킴벌리의 문국현 전 사장이 실행해 효과를 본 4조 2교대 방식과 같은 잡 쉐어링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내부역량의 향상을 통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임금만 삭감하면 잠깐은 좋을지 몰라도 취약한 경쟁력은 나아질 기회가 없다.

백번 양보해서, 그래도 임금을 삭감해야겠다면 경영진이 먼저 솔선해야 한다. 경영진은 일반직원들보다 잉여소득이 많으니 구매력이 훼손되지 않는다. 기업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에 처해 당장 비용을 줄여야 한다면 모든 직원의 임금을 일괄적으로 깎는 방식을 써야 한다. 노조가 반대한다고 해서 힘없는 신입사원의 임금만 깎는 건 너무 염치없는 일이다. 세대 간 갈등만 더욱 키워서 나중에 큰 역풍을 맞을 것이다.

그리고 깎아서 모아 놓은 재원이 엉뚱한 데 쓰이지 않도록 노/사/정이 머리를 모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의 이익은 대주주와 경영자들에게 돌아가서 소득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뿐이다. 만약 이를 간과한다면, 이명박 정부의 잡 쉐어링 캠페인은 머지 않아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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