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나는 요즘 시나리오 플래닝의 개념을 전략 수립의 새로운 대안으로 고객들에게 제안한다. 헌데, 시나리오플래닝을 설명하러 다닐 때마다 항상 듣는 소리가 있다. 다른 기업은 시나리오플래닝을 하고 있느냐란 질문이다. 아직 우리나라 기업은 일반화되어 있지 않고 외국의 로열더치쉘, 아스트라제네카 등과 같은 회사가 전략적으로 이용해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대답하면, "에이 우리나라 동종사는 안 하고 있나보네요" 라며 생뚱맞다는 표정을 짓는다. 쫑긋 세웠던 귀를 내리고, "다른 회사에서 안 하는 걸 왜 합니까, 모르모트도 아니고, 검증 안 된 것을 했다가 손해 보면 책임질 테요" 란 반응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전략 수립방법을 도입하여 실행하는 것도 일종의 투자일 텐데, 그 투자가 실패했을 경우 입게 되는 리스크를 생각하면 다른 회사에 했는지의 여부가 중요한 판단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생리이기 이전에 인간심리가 원래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조직에 도입하고자 할 경우 기업들은 거의 반사적으로 벤치마킹을 해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보고서에 다른 회사는 이렇게 하고 있다는 내용이 부족하면, 그 아이디어가 좋고 나쁜지는 차치하고, 믿을 수 없다, 근거가 뭐냐며 보고서 작성자를 향해 공격할 채비를 한다. 뛰어난 아이디어가 무덤 속으로 묻히는 순간이다.
벤치마킹은 회귀적 사고와 쌍둥이다. 회귀적 사고란 과거에 일어난 사건과 추세가 미래에도 비슷하게 전개될 거라 판단하는 사고방식인데 과거와 미래의 사업구조가 동일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벤치마킹도 마찬가지다. 사업영역도 같고 게다가 같은 국가에 있으니까 그 회사가 하고 있는 A사업에 우리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식으로 전개하는 것이 벤치마킹적 사고방식인데, 고객, 제품, 인력 등 양사의 구조가 동일하다는 전제를 밑바탕에 두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미래의 사업구조가 절대 같을 수 있으며, 타기업과 우리회사의 구조 또한 동일하지 않다. 저 회사에서 잘 된다고 하니 우리도 잘 될 거란 보장을 누가 할 수 있겠으며, 남들 하는 걸 흉내 내서 무슨 혁신을 꾀할 수 있을 것인가? 벤치마킹은 본래 남의 장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경영기법인데, 어찌 된 일인지 모방하고 뒤쫓아 가는 것으로 잘못 쓰이고 있다. 특히 업계 2, 3위 기업들이나 중소기업들이 그런 식으로 벤치마킹을 활용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그 위치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냉정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벤치마킹의 덫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좀 오래된 이야기지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하이트 맥주를 뒤돌아 보자.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맥주는 OB맥주가 강력한 업계 1위였다. 하이트의 전신인 크라운 맥주는 OB맥주의 그늘에 가려 만년 2등의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하이트가 100% 천연 암반수라는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워 업계의 판도를 뒤집어 놓은 사례는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과 비할 수 있는 일대 사건이었다. 만약 그때 하이트 내부의 벤치마킹적 사고에 단단히 물이 든 누군가가 뒷다리를 잡았더라면 어떠했을까? 그랬으면, OB맥주는 2005년에도 여전히 잘 나가고 있을 것이고 하이트는 근근이 버티고 있거나 최악에는 외국 업체에 합병됐을지도 모른다.
벤치마킹의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벤치마킹을 하지 말라. 하더라도 참고만 하거나 아예 반대로 가라. 백전백승의 전략은 경쟁자와 ‘다른 물에서 노는 것’이다. 같은 물에서 놀아봐야 싸우느라 힘만 들고 돌아오는 몫도 탐탁치 않다. 온라인보험도 처음 아이디어를 내놓았을 때는 엄청난 벤치마킹적 사고의 후폭풍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어떤가? 다른 물에서 놀기로 작정한 이후에, 전통적인 보험산업의 패러다임을 뒤흔들어 놓았고 새로운 산업으로 성장했다.
의사결정에는 검증이 필요하므로 벤치마킹은 필수적이라고 항변한다면, 좋은 사례가 있다. 정수기 필터업체인 브리타(Brita)사는 미국시장에 진출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타당성을 알아봐야 했다. 대개의 기업들은 동종기업 사례를 수집하고 시장조사를 위해 컨설턴트를 고용하는 등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방법을 채택할 것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솔트레이크 시티에 있는 한 약국에 자사의 정수기로 걸러낸 차를 판매하는 작은 공간을 설치하고서, 지나가는 여성 소비자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었다. 불과 3일 만에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파악할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브리타사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성공하려면, 늘 다른 물에서 놀자. 좋은 전략이란, 다른 물에서 놀 수 있는 방법을 말한다. 중국의 최대기업인 하이얼의 장뤼민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훌륭한 기수는 말을 달릴 때 옆을 돌아보지 않는다.” 훌륭한 기업 혹은 성공한 개인이 되려면 남이 하는 것보다 내가 해야 할 것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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