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비 속에서   

2008. 5. 9.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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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시작되던 날, 나는 바람이나 쐴 목적으로 차를 몰고서 한강둔치에 나갔다.  강 바람이 시원했다. 도시의 매연이 섞여있을 테지만 탁 트인 강가에서 맡는 바람 냄새는 그래도 싱그러웠다. 나는 의자 시트를 한껏 젖히고 거의 누운채로 책을 읽었다. 낯선 곳에서 책을 읽으니 단어 하나하나가 맛있게 씹혔다.

한동안 더운 바람이 불더니, 어느새 사위는 한껏 어두어지고 검은 구름이 몰려왔다. 그리고 소나기 비슷한 비가 내렸다. 나는 책을 내려 놓고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굵은 빗방울들이 강물 위로 떨어져 강물과 하나 되는 모습과, 나뭇잎들이 무거운 비를 맞아 휘청대는 모습과, 자동차들이 일제히 윈도 블레이드를 작동시키는 모습과, 우산을 쓴 채 담배 연기를 뿜으며 강물을 바라보는 매점 주인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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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쌍의 남녀가 보였다. 그들은 갑자기 내리는 비에 놀라서 고개를 숙인채 '아하하~' 소리치며 비를 피할 곳으로 뛰어 가고 있었다. 아직은 그다지 가까운 사이가 아닌 듯했다. 아마 만난지 일주일 쯤? 남자는 여자의 비 맞는 모습이 안쓰러워 뭐라도 해주고 싶어하는 표정이었지만, 혹여 오해가 생길지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듯했다.

그 남자의 서툰 사랑처럼 5월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여자의 어깨를 적시듯 5월이 가슴에 스며 들었다. 5월의 비를 조용히 맞으며 5월의 풀밭 위로 피어나는 풋풋한 사랑. 나는 곧잘 그랬듯이 옛 시절을 떠올려 그 풍경 위에 겹쳐 보았다.

이제 그 시절의 아픔은 강물처럼 희석되었다. 기억은 강물 따라 흘러갔고 그 시절의 그림자는 낙수 자국처럼 여기 남았다. 나는 책 읽기를 포기한 채 주룩주룩 차 창을 흐르는 빗물을 보며 이윽고 깨닫고 말았다. 이 비 그치면 더욱 굳어버릴 땅처럼 우리 기억은 물기 하나 없이 박제되고 말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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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프로젝트는 항상 질질 늘어질까?   

2008. 5. 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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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컨설턴트 A군을 데리고 컨설팅을 진행하던 어느 날이었다.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인건비 지출의 적정성을 분석하는 작업을 A에게 지시했다. A는 그 작업을 언제까지 마쳐야 하나며 나에게 물었다. “그 작업은 하루면 충분해. 다른 일로 바빠질 것 같으니 지금 시작해 줘.”, 라고 답해줬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너무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시간을 더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마음 약한 내가 어쩌겠는가? 결국 3일의 시간을 A에게 주면서 “납기는 반드시 지켜라.”는 다짐을 받아두었다.

그런데 요놈 봐라! 처음 이틀은 빈둥빈둥 놀며 인터넷과 메신저에 빠져 키득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장에 호통 칠까 하다가 약속한 기일까지 어쨌든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때 가서 혼내줄 요량이었다. 약속한 날이 되자 A는 슬금슬금 관련 자료를 챙기고 하는 척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꼼지락대더니 저녁때가 되자 쓱 하고 뭔가를 내놓았다. 내가 지시했던 작업 결과였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알록달록 총천연색으로 장식된 문서였다. 그 문서의 모양새는 차치하고서라도, 도대체 숫자들이 서로 맞지 않았다. 급하게 한 티가 팍팍 났다. 화가 난 나는 A에게 그동안 지켜 본 바를 이야기하며 왜 빨리 분석을 시작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물었다.

A가 대답했다. “작업을 하기 전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이쿠! 속으로 불덩이가 솟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세상에, 간단한 숫자계산에 길고긴 사색의 시간이 요구된다니 어이가 없어서 나중엔 웃음만 나왔다. 그 이후에도 그런 식의 태도를 강력히(?) 견지하는 A를 결국 떠나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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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증후군?
여러분은 학창시절에 교수가 과제를 내주면 거의 습관적으로 “너무 시간이 촉박해요. 조금 더 시간을 주세요.” 라는 앓는 소리를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교수가 10일의 시간을 줬다면 처음 5일 정도는 아예 신경 끄고 다른 일을 하다가, 3일 정도는 고민 좀 해보고, 막판이 돼서야 부랴부랴 해내지 않았었나?

이것을 ‘학생 증후군’ 이라고 한다. 즉 어떤 작업을 수행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예측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실제 소요될 시간에다 여유시간(Slack Time)을 덧붙여 부풀리는 증상을 말한다. 이 학생 증후군을 ‘직장인 증후군’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회사 여기저기에 이런 증상을 보이는 직원들이 많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혹시 여러분이 그 중 하나가 아닌가?

그러면 분명 하루 밖에 안 걸리는 일에 3일이나 5일의 시간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당신에게 차를 가지고 주어진 시간 안에 잠실에서 종로까지 와달라고 지시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그 일이 여러분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해보자.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교통체증이라는 변수 때문에 어쩔 때는 30분밖에 안 걸리지만 최악의 경우 2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그에게 얼마의 시간을 달라고 요구할 것 같은가? 백이면 백 2시간 정도는 줘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작업에 소요되는 최대시간을 그 작업의 실질적인 수행시간으로 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시간이 소요될 확률은 매우 적은데도 말이다.

프로젝트가 질질 늘어지는 이유
어떤 프로젝트가 있는데, 여러분이 A, B, C 3명의 프로젝트 멤버를 거느린 프로젝트 매니저라고 가정해보자.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에 여러분이 멤버들에게 각자가 맡은 작업이 얼마나 걸릴 것 같은지 물어봤더니 A가 5일, B가 6일, C가 7일이라고 답했다. 그러면 여러분은 모두 더해서 총 18일을 프로젝트 소요시간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런데 이때 각자가 답한 소요시간에는 이미 여유시간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비율이 개인별로 차이가 나겠지만 말이다. A, B, C가 각각 1일, 2일, 3일의 여유시간을 나름대로 계산에 넣어뒀다면, 실제 프로젝트 소요시간은 4일, 4일, 4일로 총 12일이다. 18일과 비교할 때 6일의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프로젝트 매니저인 여러분은 A, B, C가 답한 결과인 18일에다 5일 정도를 덧붙여서 모두 23일 걸린다고 상사에게 보고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18일을 경과하더라도 비난을 피할 수 있겠다 생각한 탓이다. 결국 12일에 끝날 일이 11일이 더 보태져서 23일이 지나야 끝나는 불합리한 현상이 발생한다.

이 프로젝트에 관여된 의사결정자들이 겹겹이 존재하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흔히들 그러지 않는가? 부장 보고를 위해 2일 정도 여유시간을 붙이고, 부사장 보고를 위해서는 3일, 사장 보고를 위해서는 5일 정도를 늘이는 따위의 행위 말이다.

이렇게 되면 11일에 끝날 일이 33일이나 걸려 겨우 끝난다! 단계 단계를 지날 때마다 하루하루씩 늘어나는 게 뭐가 대수냐고? 조직 전체로 생각해보면 그 양은 엄청나다. 남들이 1년에 할 것을 3년이 지나야 겨우 해낸다면, 우리 회사는 그만큼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다.

무조건 빨리 빨리?
H사 회장이 연구개발센터 건설 현장을 찾아가 금일봉을 전달하면서 예정된 공기보다 앞당겨 달라는 말을 수차례 내렸다는 말이 있었다. 무슨 이유로 공기 단축을 지시했는지 모르겠지만, 연구개발센터에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하루 바삐 건립된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안 좋게 이야기하면 그의 조급증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관리자들은 프로젝트 완료 시점에 대한 예측을 일단 믿으려 하지 않는다. 직원들이 알게 모르게 여유시간을 끼워 넣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까닭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결과를 빨리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100일 걸릴 예정이라고 보고하면, 앞뒤 안 가리고 20일 정도를 줄이라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프로젝트 실무자들은 관리자의 한마디에 일률적으로 프로젝트 일정을 압축(?)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상례이다.

보통 할 일이 별로 없는 관리자일수록 결과를 재촉하길 좋아한다. 그 일 이외에는 별로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단 다그쳐 줘야 권위가 선다는 유치한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결과를 제출하여 검토를 요청하면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다. 자기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것이 무능한 관리자의 단면이다.

이러한 관리자의 습관 때문에, 아예 애초부터 125일 정도 걸릴 거라 부풀리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빨리 끝내려는 관리자의 시도가 일을 늦게 끝마치도록 유도하는 꼴이 된다. 결국 관리자나 프로젝트 실무자나 Lose-Lose 게임이 되는 것이다.

조직의 민첩성을 위해
실행력을 저해하는 요소의 첫째는 마지막에 가서야 일을 시작하는‘직장인 증후군’이고, 둘째는 겹겹이 쌓인 의사결정단계이며, 셋째는 관리자의 대책 없는 조급증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요소를 격파한다면 실행력을 높일 수 있다.

나이 먹은 직장인들이 학생들처럼 징징거리며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당장 실행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관리자가 역시 중요하다. 본인의 경험을 충분히 떠올리며 작업에 소요되는 실제 시간과 작업품질의 목표를 명료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렇다고 빨리 끝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지나치게 빠듯한 시간을 강요하지는 말라. 부하직원들이 알아서 요리조리 피할 궁리만 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복잡한 의사결정 단계가 있다면 이를 과감히 줄여야 한다. 모회사 이야기를 들어보니, CEO가 중간관리자를 거치지 않고 바로 실무자의 보고만 받는다고 한다. 조직도를 펼쳐 놓고 한번 살펴 보는 것이 어떨까? 자리를 주기를 위해 만들어 놓은 ‘장(長)’이 얼마나 많은지 볼 수 있을 것이다.실행력을 높이려면 답은 하나다. 조직을 혁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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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는데 왜 메신저로 대화하나?   

2008. 5. 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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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다.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화면에 메시지가 톡 떠올랐다. 뭔가 하고 들여다보니,  "식사하러 가시지요."라고 바로 옆에 있는 컨설턴트가 메신저로 보내온 것이었다. 갑자기 실소(失笑)가 터졌다. 왜냐하면, "5분 후에 나가자." 라고 답신을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데 말로 하면 될 것을 굳이 메신저로 의사를 전달할 필요가 있었을까? 한참동안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 웃지 못 할 촌극이었다.

나 말고도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을 것 같다. 불과 몇 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직원들이 말로 하면 될 것을 이메일을 통해 업무보고를 한다고 씁쓸한 표정을 짓던 관리자들을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관리자는 나에게, "이메일로 보고하는 걸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대일 대화가 가능한데도 그런 걸 사용하는 이유는 '당신과 대화하며 괜히 나쁜 소리 듣기 싫으니 결과만 알고 있어라' 라는 편의적인 마음 때문 아니냐." 며 푸념을 한 적이 있다.

100% 공감이 간다. 이메일, 메신저, 그룹웨어, 지식경영시스템 등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매체는 날로 정교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매체들이 커뮤니케이션의 접근편리성을 증대시켰는지는 몰라도, 과연 조직 내 쌍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키는 데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어느 회사든 진단을 해 보면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는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이 최소 50% 정도는 된다. 그 때마다 나는 '다 비슷하니까 다른 회사 보고서 슬쩍 베끼면 되겠네.' 라는 얄팍한 유혹에 솔직히 사로잡히곤 하지만, 첨단의 커뮤니케이션 도구 구축에 크게는 수십억 원을 들이고도 의사소통에 여전히 문제가 있다고 하소연하는 까닭이 도대체 뭔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문제의 핵심은 얼마나 멋진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갖췄느냐가 아니다. 매체는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지, 메시지를 조직 내에 잘 통하게 만들어 주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그런 도구들은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도 진솔하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만든다. 오히려 일방적 통보와 지시로 오용될 수 있어 커뮤니케이션을 더욱 경직되게 만들어 버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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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자결재를 꽤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결재요청을 올리고 나서 상사가 시스템에서 결재해주길 놀면서 기다리다가 제때 안 해주면 의사소통이 잘 안된다며 불평해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관리자는 관리자대로 시스템에서 결재하기 바쁘다. 대면 결재하면 금방 끝날 것을 말이다. 엄청난 낭비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의사소통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저쪽 부서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 직원들이 경영진 생각을 잘 몰라준다며 불평을 쏟아내기 전에, 지속적으로 다른 부서의 업무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지, 직원들의 진짜 생각을 알기 위해 노력했는지 자문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도 노력이 있어야 잘 된다.

즉, 조직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에도 마케팅하듯 해야 한다. 정보 홍수의 시대다. 그래서 자기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메시지이지만 받는 사람은 수많은 정보 중의 하나로밖에 여기지 않거나, 정보에 치여 미처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를 피드백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따라서 고객 대상으로 PR, 캠페인 등 갖가지 마케팅 전략을 실행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내 생각을 전달하고 필요한 정보를 전달 받으려는 노력을 실천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히 하려면 대면 보고, 간담회, 워크숍 등 다양한 오프라인 활동이 우선되어야 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직접 대면하고 공감하는 만남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패션을 따라가는데 급급하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 원칙에 충실하라. 그것이 잘 통하는 조직으로 가는 첩경이다.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해결하고자 반짝이는 화면과 윙윙대는 서버로 된 시스템을 새로 들여올 궁리를 하고 있다면, 그 계획서를 과감히 찢어라. 살 뺀다며 비싼 러닝머신을 사 놓고 몇 번밖에 안 뛰어 보고는 왜 살이 안 빠질까 이상하게 생각하는 식의 오류를 더 이상 범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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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를 잃은 리더, 이명박   

2008. 5. 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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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함 때문에 진시황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비운의 사상가 한비(韓非). 그가 쓴 '한비자'란 고전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온다.

진나라 문공(文公)이 위(衛)나라의 원(原)이라는 곳을 공격하기로 했을 때, 10일 안에 성을 함락할 테니 10일치의 식량을 준비해 달라고 대부(大夫, 귀족)들에게 말했다. 그런데 약속한 열흘이 지나도 함락시키지 못하자 문공은 대부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군사들에게 후퇴를 명했다.

부하들은 동요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흘만 시간을 더 주면 충분히 함락할 수 있습니다. 원은 지금 고립됐기 때문에 식량 부족으로 얼마 못 견딜 겁니다. 그러니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문공은 "나는 대부들과 10일의 기한을 약속했다. 함락시키지 못했다고 시간을 더 지체한다면 나는 신의를 잃게 되는 것이다. 나는 '원'을 못 얻더라도 신의를 잃진 않겠다." 라고 말하면서 병사들을 모두 물리고 떠났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위나라 사람들은 "문공처럼 신의가 있는 군주라면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며 문공에게 순순히 항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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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

국민들은 신의를 지키는 리더를 따르며, 신의를 저버리는 리더는 국민으로부터 언젠가 버림을 받는다는 걸 이 고사는 엄중히 시사한다.

이명박 대통령, 그는 어떤가? 그는 과연 신의를 지키는 지도자인가? 후보자 시절, 자신이 BBK를 설립했다는 비디오가 만천하에 공개됐을 때 나는 차라리 그가 떳떳하게 자신의 지난 과오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기를 바랬다. 그랬다면 대통령이 되어서 국민과의 신의를 지키겠다는 맹세로 인정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모른 척 하면서 발언 내용 중 '나'라는 주어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비겁한 변명에 급급했다.
 
이번 광우병 소 수입에 관한 일련의 사태에서 보여준 그의 행동은 과연 신의를 지키는 리더의 모습인가? 노무현 정권이 진행했던 일을 '설겆이'했을 뿐이라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하려는 그를 국민이 믿고 따를 리더라고 볼 수 있겠는가? 그게 진정 사실이라 할지라도, 리더로서 신의 있는 태도가 아니다.

이의관이란 사람이 쓴 '왜 이명박인가'라는 책을 보면 목차에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인물'이라고 나와 있다. 권력을 잡고 유지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인물'이라고 고쳐 써야 한다(아래 도서 정보 참조). BBK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뽑아 줬으니 광우병 거짓말 쯤은 아무 것도 아닐거라 생각하는지 참으로 우려스럽다.

왜 이명박인가(신화는 있다) 상세보기
이의관 지음 | 지성문화사 펴냄
서울의 명물이 되어 버린 청계천. 결코 우연이 아닌 이 청계선 신화의 주인공은 개혁의 상징인 전 서울특별시장 이명박이다. 저자는 그를 작은 나라지만 강한 국가를 창조해 낼 수 있는 인물, 온 국민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선사할 21세기를 여는 영웅이라고 표현한다. 먼저 지도자란 누구인가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조건을 살펴본다. 그리고 이명박 전 서울특별시장에 대해 시대의 패러다임을 아는 인물, 매사에 앞장 서는 인물


국민을 기만하고 깔보는 정부. 그리고 여론 조작과 기사 거르기를 일삼는 조/중/동을 위시한 어용 언론들. 그들에게 맡겨진 대한민국이라는 타이타닉호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빙산을 향해 돌진하고 있진 않은가? 혹 우리의 리더는 '선장'의 책무를 망각한 채 자신이 탈 구명보트의 밧줄을 풀고 있진 않은가?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취임한 지 2개월 남짓 밖에 안 된 정권 초기에 탄핵론이 불 붙은 이유를 단지 몇몇 불순분자의 선동에 바보 같은 국민들이 호도된 탓이라고 보는가? 과연 이게 그대가 말한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는' 자세란 말인가?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잘못된 정책과 협상을 바로 잡음으로써 국민을 섬기겠다는 처음의 다짐을 몸으로 실천하라. 진나라 문공이 신의를 지킴으로써 세상을 얻었다는 옛 교훈을 부디 2MB의 메모리 속 깊이 새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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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있는 동전을 살려라   

2008. 5. 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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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한번쯤 이런 기억이 있을 겁니다. 빨간 돼지저금통에 10원짜리, 100원짜리를 넣을 때 짤랑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 돼지저금통이 다 차면 '맛난 것을 먹어야지, 어디에 놀러 가야지' 하며 설레이던 때가 누구나 한번쯤은 있겠죠.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10원짜리도 꽤 유용한 돈이었습니다. 웬만한 과자 하나는 쉽게 살 수 있었으니까요. 100원짜리 몇개만 있어도 하루 종일 먹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어릴 적 동전은 그 소유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풍요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자 하나 사먹고 싶은 마음 꾹 누르고 미래의 작은 꿈을 위해 고사리같은 손으로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넣곤했죠.

그런데 요즘은 10원짜리는 어디가나 푸대접을 받습니다. 50원짜리, 100원짜리도 마찬가지죠. 그나마 대접받는 것은 500원짜리인데 그것도 점점 그 효용가치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버스나 지하철도 500원짜리가 두 개는 있어야 탈 수 있으니까 말이죠. 요즘 은행에서는 자기네 고객이 아니면 동전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기껏 돼지저금통에 열심히 동전을 모아서 은행에 가면, 옛날엔 '저축을 열심히 하는 분이군요'라는 찬사(?)를 받았었지만, 요즘엔 은행원의 차가운 시선을 안 받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몇년 전, 나는 집구석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는 동전을 모두 모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상상 외로 그 액수가 크더군요. 자그마치 5천 3백 4십원이었습니다. 그 만큼의 돈이 우리집 구석구석에서 잠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집안 곳곳에 숨어있는 동전을 찾아보세요. 애들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동전, 화장대 서랍 속에 잠자는 동전 모두를 말입니다. 만일 돼지저금통으로 동전을 저금하고 있다면 그것도 포함시켜서 모두 얼마나 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 몇천원 쯤은 족히 되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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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연합뉴스


'돈'이라는 말은 '돌고 돈다'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진 5천3백4십원의 돈은 돈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겁니다. 돈은 유통이 되면서 효용을 창출하고 교환되어야만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5천3백4십원의 돈을 잠재웠을 때의 효용은 '0'이지만, 나의 생활 속에서 유통시켰다면 적어도 5천3백4십원 만큼의 효용을 발생시킵니다. 효용을 발생시키지 않는 '죽은 돈'은 가계 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로 봐서도 '손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돼지저금통에 차곡차곡 쌓이는 동전도 죽은 돈입니다. 물론 나중에 돼지를 잡을 때쯤 제법 많은 돈이 쌓여 있어서 그것으로 더 큰 효용을 위해 쓰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어차피 돼지저금통을 은행에 가지고 가면 차가운 시선만 받을 뿐입니다. 집에서 잘 저축했다고 이자를 주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국가적으로 동전을 집에 잠재우고 있는 것은 막대한 손실입니다. 10원짜리 하나 만드는데 원가가 10원이 넘는데 그것들이 유통되지 않고 집안 곳곳으로 숨어 들어가니 그만큼의 돈을 다시 찍어 내느라 손실이 큰 것이죠. 국민 1인당 잠자고 있는 있는 동전의 액수가 1000원만 된다고 가정해도 4천8백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국가적 손실로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동전은 이제 저축의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했습니다. 즉, 이제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차곡차곡 모으는 일은 아이들에게 저축하는 습관을 길러 준다든지, 우리가 어릴적 추억을 떠올려서 재미삼아 해본다든지 등의 의미 밖에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동전을 별 생각없이 모아두거나, 아무렇게나 방치해 두지 말고 잘 써야 하지 않을까요? 동전을 집안에 잠자고 있게 하지 말고, 들어오는 즉시 잘 쓸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동전을 마구 써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의 요지는, 동전은 절대로 방치하거나 많이 모아두거나 하지 말고 효용가치가 발생할 수 있도록 제때제때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전을 써버려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마시고 싶지 않은 자판기 커피를 뽑아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동전이 쓰여야 할 곳에 잘 쓰자는 것이죠.

그 동전의 액수가 얼마정도 된다고 이렇게 호들갑이냐, 라고 하실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요즘 식당의 밥 한끼 값이 얼만데, 하시며 동전을 세고 있는 사람의 '짠돌이' 행각에 비웃음을 던지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자들의 생활 습관을 조사한 글에서 보면, '작은 돈을 잘 쓴다'것이 그들의 공통된 생활방식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작은 돈이라도 '죽어있거나', '별 이유없이 빠져나가는' 것에 대해 아주 민감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부자들은 '큰 돈'만 잘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돈'을 더 잘 다루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서점에서 책을 샀는데 점원이 책과 함께 플라스틱 캔 모양의 저금통을 함께 주더군요. 그 저금통을 이리보고 저리 돌려보니, 그 안에 동전을 모으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빈 저금통으로 남겨 두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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