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 좀 세게 하지 마슈!   

2008. 5. 16. 12:55
반응형

악수할 때 세게 쥐는 사람들이 있다. 어떨 때는 손이 얼얼할 정도로 꽉 쥐는 사람도 있다. 잡히고 난 다음, 기분이 좋지 않다. 게다가 그사람의 손이 축축한 상태라면 바로 화장실로 가서 손을 벅벅 씻고 싶어진다.

어떤 사람은 처음엔 약하게 쥐다가 점점 강도를 높여서 세게 쥐면서 마무리를 짓기도 한다. 이 경우도 기분이 안 좋다. 마치 내 손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불쾌하다. 또 어떤 이는 이성이나 아이의 손을 잡듯 만지작거리기도 한다. 그럴 땐 내가 먼저 손을 빼 버린다. 민망하거나 말거나 그렇게 한다. 그래야 버릇을 고칠 테니까.

왜 그렇게 세게 쥘까? 약하지도 세지도 않게 딱 적당한 강도로 악수를 하면 안 되는 걸까? 처음 만나 악수를 하면서도 기(氣)싸움에 지지 않으려는 의도인 것 같다. 기선 제압을 위해 악수처럼 좋은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이봐, 까불지 말라고. 난 당신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이야.' 라는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강하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수를 이용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그것은 좋지 않은 방법이다. 상대방을 제압해야 좋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 못하고 무조건 악수를 세게 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악수 때문에 자칫 일을 그르칠 수 있다.

민감한 협상을 하기 전에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상대의 기를 꺾을 의도로 세게 잡는 건 그럴 수 있다해도, 친목을 다지기 위한 만남에서 조차 손이 얼얼할 정도로 잡고 흔드는 사람들은 자신의 악수 습관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내 손을 꽉 쥐는 사람을 만날 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어, 이 사람 나를 제압하려고 하네? 하지만 어림 없어!' 라고 내 쪽에서 역공을 취할 태세를 갖춘다. 미안하지만, 그 사람은 내게 한 수 접고 들어 온 것이다.

악수야 그 사람 마음이겠지만, 그나저나 악수 좀 세게 하지 마세요! 손 아프거든요!


반응형

  
,

미국이라는 깡패국가   

2008. 5. 15. 19:05
반응형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한지 불과 2개월 만인 지난 4월 18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취임 초기는 지난 정권의 정책을 인수 받아서 국정 운영의 새 방향 등을 수립하기 위해 꽤 분주하고 번다한 시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 시절부터 부시를 만나지 못해 안달하다가 망신만 톡톡히 당한 이명박 대통령은 뭐가 그리 급해서 방미를 서둘렀을까? 임기가 6개월 정도 밖에 남지 않아서 레임덕에 허덕이는 부시 대통령에게 무슨 이유로 쇠고기 전면 개방이라는 초대형 선물을 안겨줘야 했을까?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미국이라는 '상왕(上王)'께 제일 먼저 안부인사를 여쭙고 조공의 예를 갖춰야 한다는 의무감이라도 들었는가?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과 사업의 기조를 보면 미국의 그것을 모방하려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경제를 살린다는 미명 하에 추진하겠다는 대운하 사업은 고리짝 같은 미국의 뉴딜 정책을 배낀 듯한 냄새가 난다. 또한 건강보험과 공공기관의 민영화 추진에는 경쟁을 통한 효율성 추구라는 미국적 실용주의를 밑바닥에 깔고 있다. 그 밖에 여러 정책 발의의 배경 근거들로 하나같이 '미국이 그렇게 하기 때문'이라는 식의 사대주의적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시점에서 우리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과연 그토록 동경하고 경외할 대상일지 생각해 봐야 한다. 왜 미국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것인가? 과연 미국의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이 우리가 따라야 할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생각하는가? 알다시피 소련의 붕괴로 미국은 유일무이한 초강대국이 되었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미국이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 또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여전히 막강하다.

하지만 미국이 지병에 시달리는 늙은 코끼리라는 증거는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 제1의 경제대국답지 않게 미국의 10대 임신률과 영아 사망률에 있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평균수명에 있어서도 77.5세로서 상위 25개국 안에 들지 못한다. 반면 한국은 78.5세로 미국보다도 높다.

경제학자인 리처드 윌킨슨(Richard Wilkinson)은 그 원인을 의료보험의 민영화 등으로 심화된 소득 양극화에서 찾고 있다. 상위 1퍼센트의 소득이 최하위 40%의 전체소득보다 많은데, 이는 일본이나 유럽 국가보다 훨씬 격차가 큰 것이다. 윌킨슨은 소득의 격차가 불만을 야기하고 신뢰를 무너뜨려서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에게 스트레스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미국의 사회적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고 말한다.

이같은 소득 양극화가 발생한 근본적 이유는 과도할 정도로 경쟁을 권장하는 미국 사회의 시스템과 문화적 유전자, 즉 밈(meme)에 있다. 미국은 개인주의라는 밈이 일종의 종교처럼 숭상되는 나라이다. 개인은 독립된 개체이므로 모든 결정은 개체 자신이 독자적으로 내리며 각자가 발생시킨 성과는 개인에게 내재된 능력으로부터 나온다는 믿음이 강하다.

예를 들어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를 각각 독자적으로 진행했던 두 진영의 대표자들은 누가 업적의 주인공인지를 놓고 자기네들끼리 한동안 옥신각신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수많은 과학자들의 직간접적인 기여를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지, 몇몇 대표자가 혼자 힘으로 어느 날 갑자기 성취해 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개인주의는 항상 ‘1명의 아이콘’을 옹립하기 위해 애쓴다.

개인이 내리는 의사결정의 대부분은 집단 내 타인과의 상호작용과 문화적인 조건반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개인의 성과는 많은 부분 숨어있는 타인들의 기여와 이타적 행동의 덕택이라는 점을 미국 사회는 기질적으로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미국의 개인주의는 서부 개척 시대 때부터 미국인들의 피에 자연스레 흐르고 있는 것으로서, 개척자적인 성향은 개인 간의 무제한 경쟁을 권장하고 미화하는 방향으로 이미 변질되어 있다. 미국 국민의 건강 수준을 후진국 수준으로 떨어뜨린 주범으로 지목 받고 있는 의료보험 서비스의 민영화는 집단 전체의 이익(국민의 건강)을 높이기 위한 메커니즘이 하위집단(민영 의료보험사)끼리의 무한경쟁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확고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집단 전체의 이익을 얼마나 해치는 것인지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국의 개인주의는 지구의 환경까지 위협하고 있다.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8% 이상이라는 막대한 양을 차지하는 미국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합의된 ‘교토 의정서’ 가입을 거부하는 이유는 상위집단(세계)의 이익보다는 하위집단인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개인주의가 보여주는 이기심의 절정이며, 세계 제1의 강대국답지 않은 부끄러운 행동이다.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Ernst F. Schumacher)는 “세계 인구의 6%를 지탱하기 위하여 세계 1차 자원의 40%를 사용하면서도 인간 행복, 복지, 평화 또는 문화 수준에 이렇다 할 개선의 자취가 보이지 않는 데 누가 미국 경제를 효율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은 전혀 효율적이지 못하다. 그렇다면 그들의 시스템과 정책 기조를 답습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제1의 강대국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이라크 침공과 같은 깡패짓을 서슴지 않으며 우방국가에게 썩은 고기를 강매하려는 그들이 과연 우리가 조아려야 할 상국(上國)으로서 마땅한가?

5월 13일자로 방영된 PD수첩에서 어느 미국 상원의원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모든 종류의 쇠고기를 개방하지 않으면 FTA 비준은 절대 없다"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가 동경하고 경외해야 할 나라가 절대 아니라, 질 나쁜 깡패이고 탐욕스럽고 개걸스러운 '개'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됐다. 그리고 그런 '깡패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졸졸 따라 다니는 우리 정권의 무조건적인 짝사랑이 지극히 안타까웠다.

(위의 글 중 일부는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에서 발췌했습니다)

반응형

  
,

이명박 씨, 농담도 잘 하시네!   

2008. 5. 14. 19:40
반응형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정직'의 의미를 이처럼 명확하게 제시한 말은 없는 듯하다.

"과학적 사고는 전적으로 정직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실험을 했다면, 여러분에게 불리한 것까지 모두 말해야 한다. 유리한 것만 말해서는 안 되며, 다른 방식으로 설명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중략)....여러분의 해석에 미심쩍은 점이 있다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다 말해야 한다. 여러분은 자신의 이론에 잘 맞는 사실 뿐만 아니라 잘 맞지 않는 사실까지 모두 알려 주어야 한다."

요즘 하도 사건 사고가 많아서 신문이나 뉴스를 멀리 하고 있지만(너무 머리가 아파서..), 어깨 너머로 짬짬이 훑어보니 미국 쇠고기가 안전하다며 정부가 내세우는 논리가 아래와 같이 3가지 정도로 정리된다.

헌데 논리적으로 따져보니, 하나같이 모두 오류 투성이다.

1.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니 '안전하다'고 믿어라?
정부 측은 외국 여행을 하지 않은 미국인 중 광우병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이유를 들어 월령이 30개월 이상인 소도 SRM 부위만 제거하면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미국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안전하지 않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위험 여부가 증명이 되지 않았으니 안전한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이는 궤변이다.
(* 미국에서 3명의 광우병 환자가 발생했었으나 외국을 여행한 사람이란 이유로 통계에서 제외해 버리는 정부 측의 센스!)

2. 위험을 입증하지 못할 거라면 '안전하다'고 믿어라?
또한 정부 측은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을 반대하는 측에게 미국 쇠고기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강요하면서, 그걸 입증하지 못한다면 수입 개방을 반대하지 말라는 역공을 펴기도 한다. 증명의 부담을 수입 개방 반대측에 떠 넘기는 수법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증명은 정부의 몫이지 국민의 몫이 아니다. 정부의 논리는 상한 음식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그 음식의 위험함을 입증하라고 강요하는 꼴과 같다. 이는 크게 잘못됐다.

3. 권위 있는 단체에서 말하는 것이니 '안전하다'고 믿어라?
정부 측이 수입 개방의 근거로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것이 OIE의 기준이다. 국제기관인 OIE, 즉 권위 있는 기관에서 제시한 기준이 그러한데 왜 수입 개방을 반대하느냐는 논리로 몰아 붙인다. 그러나 PD수첩에서도 지적했듯이, OIE의 기준은 일본, 프랑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따르지 않고 강제사항이 아니라 권고안에 불과하다. OIE의 기준이 권고안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 최대로 '느슨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느슨한 기준을 제시한 OIE의 권위(?)에 은근슬쩍 기대어 수입 개방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미국 쇠고기의 안전 여부는 일단 차치하자. 그보다 먼저, 정부 측 스스로 미국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증거만 내세우려하는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는지 반성하라. 미국 쇠고기가 광우병을 일으킬 추호의 위험 가능성이 있다면 99%의 안전성만을 고집스럽게 이야기할 게 아니라, 1%의 위험도 함께 알리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왜 '되지도 않는 궤변 논리'를 내세우면서 불리한 증거를 감추려 하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리처드 파인만 (사진출처 : 네이버)


지금이라도 정부는 균형을 잡아야 한다. 무조건 안전하다고 말하지만 말고 위험한 경우도 똑같은 비중으로 검토하고 그것을 국민에게 바르게 알려야 한다. 공무원들이 뇌물을 안 받고 골프를 안 친다고 '정직한' 정부가 되지 않는다. 파인만의 말처럼,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을 동등하게 알리려는 노력해야 정직한 정부가 될 수 있다.

또한 결정은 얼마든지 번복될 수 있다. 아직 미국 쇠고기가 수입되기 전이니 재고의 여지는 충분하다.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바꿀 수 없다는 사고의 '관성'을 제발 깨주길 바란다. 국민의 안위에 관련된 사안이라면 국가 간의 이해 관계를 초월해 재검토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만일 정부가 위와 같은 궤변 논리를 고집하면서 국민들을 잠재적인 위험에 빠뜨리려 한다면, 파인만은 아마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Surely You're Joking, Mr. Lee!"
(이명박 씨, 농담도 잘 하시네!)

반응형

  
,

다수의 무지에 빠진 정부 관리들   

2008. 5. 13. 12:03
반응형

광우병 사태로 정부가 우왕좌왕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보도자료에서 동물성 사료 사용 금지 '완화'를 '강화'로 잘못 번역한 사건을 보면서 허탈함을 금할 수 없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아니 적어도 그러리라 기대되는 정부의 많은 이들이 어째서 그런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그렇게 중요한 사안을 왜 아무도 확인하거나 검증하려 하지 않았을까? 참으로 무지(無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그것은 다수의 행동이나 의견에 조직의 행동전략을 일임해 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몇몇 사람이 '완화'를 '강화'로 잘못 해석해 냈을 때, 이를 본 다른 사람들은 각자 '저 사람들(다수)가 저렇게 말했으니까 옳을 거야. 확인할 필요가 없겠지?'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정부 관리들의 잘못을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 나는 이와같이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한 원인이 '다수가 항상 옳다'는 사고의 관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개인 혹은 집단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아보기 위해 심리학자들이 한 가지 실험을 고안했다. 어떤 사람을 시켜 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60초 동안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 보도록 했다. 관찰 결과, 대부분의 행인은 그냥 지나치고 4% 정도만이 그 사람을 따라서 하늘을 올려다 봤다.

그런데 실험자(하늘을 올려다 보도록 지시 받은 사람)의 수를 늘릴수록 따라 하는 행인의 비율이 점점 커졌다. 15명의 사람에게 하늘을 올려다 보도록 하면 행인의 40%가 그들을 따라서 했다. 이 실험을 통해 사람들에게는 다수의 행동이나 의견을 별 고민 없이 옳다고 믿는 경향이 있음이 증명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같이 다수를 기준으로 나의 행동이나 의견을 판단하는 것을 ‘사회적 증거(Social Proof) 현상’라고 하며, 다수의 의견을 따라가다가 잘못된 선택하는 경우를 ‘다수의 무지’라고 부른다.

다수의 무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을 예로 들어 본다. 제노베스라는 20대 후반의 처녀가 뉴욕시 퀸스지역에서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괴한에게 칼을 맞아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강력범죄가 많은 뉴욕시에서는 단신에 불과할 사건이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켰는데, 그 이유는 38명에 달하는 목격자들이 한 여자를 세 차례나 습격하여 칼로 찌르는 장면을 물끄러미 구경만 하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대도시 생활의 인간성 파괴와 TV 폭력 등의 탓으로 돌리며 분개했으나, 실은 인간의 복잡한 심리에 의해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38명이나 되는 목격자들은 불쌍한 제노베스가 공격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경찰에 신고할까 말까에 대한 갈등에 쌓이게 됐다.

이 때 각 목격자들은 그와 같은 불확실한 상황 하에서 독자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려 행동에 옮기기 보다는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목격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먼저 관찰했다. 목격자들은 자기 이외에 목격자들이 짐짓 무관심한 듯 창을 닫고 불을 끄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똑같이 행동했던 것이다. 제노베스가 죽어 가는데도 태연히.

이 이야기는 로버트 치알디니가 쓴 '설득의 심리학'에 나온다. 저자는 불확실한 상황 - 신고할까 말까의 상황 - 에 놓이게 되면 사람들은 옳은 방법을 마련하기에 집중하는 것보다 불확실한 상황 그 자체로부터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 해결책으로 주변인들을 관찰하여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이른바 '다수의 무지'라는 모순적 현상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정부 관리들도 미국의 압박과 국민들의 저항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몰라 우왕좌왕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 불확실하고 불안한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내놓은 동물성 사료 사용 금지 '강화'라는 말이 얼마나 반가웠을까? 잘못 해석했으리라는 생각은 눈꼽 만큼도 하지 않은 채 그걸 굳게 믿고 국민에게 미국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선전하고 말았다.

상황이 급박하고 불안정할 때는 이런 '다수의 무지'에 빠질 위험이 매우 크다. 정부 관리들은 빠른 대처를 한답시고 자신들의 '똑똑함'에도 불구하고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게다가 대통령 특유의 밀어붙이기 식 의사결정이 판단력을 흐리게 했을지도 모른다. 배가 폭풍우에 흔들릴 때 어찌해 보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단단한 기둥을 잡고서 대처할 방법을 차분하게 '생각'하는 게 먼저다.


반응형

  
,

내부의 적, 그들은 누구인가   

2008. 5. 11. 22:30
반응형

내부의 적, 그들은 누구인가? 조직 내에서 너무나 많은 내부의 적들이 우글거리고 있음을 아는가? 그들이 조직의 경쟁력을 까먹고 있다는 것도 아는가?

내부의 적은 첫째, 무슨 일이 있든 절대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 의사결정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이면 내부의 적들이 보이는 일관된 행동이 있는데, 바로 의사결정에 관련된 자들을 회의로 소집하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의사결정에 따른 리스크가 매우 클 경우에는 관련된 사람들의 중지를 모으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 유용하며 실제로 리스크를 줄이는 효과가 크다.

그런데 내부의 적들은 의사결정의 경중에 상관없이 거의 자동적으로 회의를 소집하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의사결정의 결과가 잘못됐을 경우 혼자 ‘독박’ 쓰지 않겠다는 안전장치를 만들기 위해서다. 일이 순간 잘못 틀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관련자들을 비난하고 일이 잘된다싶으면 자신의 업적인 양 사방에 떠들어 댈 요량인 것이다. 내가 어느 회사에서 목격한 내부의 적은, 회의를 하기 전에 어떻게 회의를 진행할지를 먼저 회의해야 한다며 목청을 높여서 두손 두발을 다 들게 만들었다.

이런 유형의 내부의 적이 상사로 있다면 부하직원들은 무척이나 피곤할 것이다. 온갖 회의에 허덕여 일 하나 제대로 할 수 없고, 의사결정을 위해 근거를 마련해야 한답시고 이 자료 저 자료 별 쓸모도 없는 데이터를 모으라고 닦달해 댈 테니까 말이다. 업계에서 특출한 성과를 못내는 회사일수록 항상 회의실 예약이 꽉 차 있고 프린터와 복사기가 쉴 틈이 없다. 바로 내부의 적들이 활개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내부의 적들은 ‘언제나 이렇게 해왔다’며 핀잔을 주는데 앞장선다. 전통은 기업의 훌륭한 자산이다. 물론 ‘좋은 전통’일 때 그렇다. 요즘은 분리되었지만, 인화(人和)를 중시하는 LG그룹 구씨와 허씨 양 가문의 전통은 지금까지 LG가 성장해 온 밑거름이 되었다. 그런데 내부의 적들이 말하는 전통은 진짜 전통이라 말하기 어렵다. ‘언제나 이렇게 해왔다. 그렇게 해도 문제가 없었다.’ 라는 말을 파고 들어가면 진짜로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그렇게 해 온 것'이 바로 내부의 적 자신만이 즐겨 사용해왔기에 익숙한 절차와 방법에 불과하거나, 아니면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변명을 하려고 내두른 말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제나 이렇게 해왔다’라고 말하는 내부의 적이 있다면 '언제부터 그렇게 해왔냐‘며 당당히 맞대응하라. 아마 내부의 적은 겉으로 화를 내겠지만 속으로는 다른 변명을 찾느라 부심할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셋째, 내부의 적들은 ‘남들이 이렇게 했다.’ 라는 것에 대단히 민감하다.
예를 들어 경쟁사가 무슨 전략을 실행하여 성공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 사실을 거의 절대선(善)으로 믿어버리는 경향이 매우 크다. 즉, 내부의 적들은 벤치마킹의 열렬한 신봉자들이다. 벤치마킹에 집착하는 것은 전략적 사고를 막고 경쟁사의 뒤꽁무니만 쫓게 하는 시대착오적인 행동이다.

이러한 내부의 적들의 집착은 앞에서 말한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와 맥을 같이 한다. 누군가가 왜 이렇게 전략을 세웠냐고 물으면 자신의 논리를 앞세워 설명했다가는 괜히 비난을 당할까 심히 우려하여 ‘자, 여기 경쟁사도 그렇게 한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자신은 책임소재의 범위에서 슬그머니 벗어나고자 하는 얄팍한 생각 때문이다. 속지말자, 벤치마킹!

넷째, 내부의 적들은 오로지 자신의 야망에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 내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부서가 새로운 무언가를 추진할 때,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출세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방해꾼을 자처하고 나선다. 처음에는 방해꾼임을 속이고 이렇게 속삭인다. ‘그것은 나중에 해도 돼. 먼저 다른 것부터 해야 돼’ 라며 꽤나 자상한 충고자로 자신을 포장한다.

이런 1단계 공작이 먹혀들지 않는다면 곧바로 열성적인 비판자로 돌변한다. ‘쓸모없는 일이다. 실패로 돌아갈 일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며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며 자기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일부 뛰어난 내부의 적들은 상대방을 감동시킬 탄탄한 논리와 언변으로 결국 경쟁부서를 쓰러뜨리고 그것을 유유히 즐기기도 한다.

번민에 가까운 오랜 고민 끝에 수립된 전략을 들여다보면 매번 해오던 말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현상을 자주 목격한다. 기술혁신이니, 품질개선이니, 중국 진출이니, 고객만족이니, 도무지 전략적인 초점 없이 다 잘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기회가 있다면 과거에 수립했던 전략계획들을 서로 비교해 보라. 혹시 일란성쌍둥이가 아닌가? 어찌된 일인지 궁금한가? 바로 내부의 적들의 소행이다.

멋진 전략을 수립하여 멋지게 성공시키려면 내부의 적들이 누구인지를 알고 그들을 변화시키거나 조직으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 조직을 혁신하고 싶다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전쟁'이다.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