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이 좋으면 잘해야 '중박'이다   

2011. 9. 20. 09:07



요즘에 식품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시장이 커피 시장인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커피를 좋아하여 핸드 드립 세트를 구입해서 원산지 별로 다른 원두를 갈아 마시는 것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낍니다. 전자제품 매장을 돌아다니면 예전에는 없던 제품 카테고리가 눈에 띄더군요. 바로 에스프레소 추출 머신입니다. 네스카페의 돌체 구스토, 밀리타, 일리 등 여러 가지 브랜드의 머신들이 당당하게 코너를 차지하고 있고 구입 문의를 하는 고객들도 끊이지 않더군요.

그 정도로 커피 시장이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크고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방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소위 '다방 커피'로 대변되던 우리나라 커피 시장이 고급화되고 동시에 집에서도 커피를 추출해 마실 정도로 저변화되고 있는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사실 에스프레소 추출 머신은 가격도 비싸고(업소용은 천만원 대 이상) 덩치도 큰데다가 사용법도 까다로워서 가정에서 사용하기가 버거운 제품이었습니다. 이랬던 머신이 앙증맞을 정도로 작아지고 사용법도 버튼 한 두 개만 누르면 곧바로 에스프레소가 추출돼 나오니, 기술이 참 많이 발전했구나, 란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헌데 이러한 소형 에스프레소 머신 기술은 최근에 나온 게 아니더군요. 역사를 따져보니, 197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 스위스의 바텔(Battelle) 연구소까지 이릅니다. 이 연구소가 개발한 머신 기술은 네슬레에 매각되어 상용화를 위해 추가적인 개발이 1980년대 중반까지 이루어집니다. 10년 넘게 기술을 갈고 다듬어서 시장에 출시한 머신의 이름은 '네스프레소'입니다. 네슬레와 에스프레소를 더해서 작명한 것이죠.

처음 네스프레소가 시장에 나왔을 때 에스프레소 애호가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사용법이 간단할 뿐더러 맛도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네스프레소 관계자들은 잔뜩 기대감을 품었죠.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참담할 정도로 차가웠습니다. 
초기에 네스프레소가 타겟으로 삼은 시장은 지금처럼 가정용 시장이 아니라, 레스토랑이나 까페, 사무실과 같은 B2B 시장이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레스토랑과 사무실 등에 시험 설치를 해주며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바리스타들은 그런 제품을 자신들의 밥줄을 위협하는 물건이라 여기고 꺼려하는 바람에 홍보 효과도 떨어지고 판매도 지지부진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1988년에 장 폴 가이야르라는 사람이 네스프레소에 영입되어 책임자가 됩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타겟 시장을 가정용 시장으로 선회합니다. 이사회의 반발이 컸지만 그는 특유의 정치력을 발휘해서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냅니다. 그의 이러한 전략은 탁월한 선택이었지만, 가정용 시장 개척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집에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마시겠다는 니즈가 별로 없는 상태였고, 네스프레소에 들어가는 캡슐 하나의 가격도 고객들에게는 터무니하게 비싸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가이야르가 이사회의 승인을 어렵사리 얻어냈지만 네스프레소의 운명은 거기까지인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네스프레소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만든 '방아쇠'를, 가이야르의 후임인 헹크 크바크만이란 사람이 생각해 냅니다. 그것은 바로 '체험'이었습니다. 그는 네스프레소에 관심을 가지고 구매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바로 항공기의 1등석 탑승객이라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항공기 1등석에서 네스프레소로 만든 커피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들의 관심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네스프레소 머신을 체험하고 무료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네스프레소 부티크를 주요 도시 200개의 번화가에 세우고, 대형 백화점 속에 '매장 내 매장'을 설치하여 소비자들이 바로 가까이에서 머신을 작동시켜서 여러 가지 맛의 커피를 바로 즐길 수 있게 했습니다. 이렇게 소비자들로 하여금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극대화시킨 이유는 제품이 좋아도 막상 구매하려 할 때 주저하게 되는 관성을 극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에스프레소 추출 머신에 대해 막연하게 가졌던 '어렵고 복잡하고 비싸다'는 인상을 깨뜨리는 것만이 네스프레소 수요 증가에 필수적인 방아쇠라고 믿었던 까닭입니다.

결과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대성공입니다. 네스프레소만으로 연간 매출액이 30억 달러를 상회하는 성과를 달성 중이죠. 그리고 지금은 거대한 커피 소비 시장인 미국을 공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전략적 시도를 꾀하고 있습니다. 커피 시장 전체의 규모는 크지만 에스프레소를 마신다는 미국인들은 10퍼센트도 안 되는 현실에서 네스프레소가 어떻게 없는 수요를 새로이 창출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처음 제품 프로토타입이 바텔 연구소에서 개발된지 이제 거의 40년이 됐습니다. 하지만 네스프레소 머신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때는 30년이 지난 2000년대 초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시사점을 얻습니다. 제품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리고 여러 가지 제반요건이 제품이 잘 팔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해도 수요를 촉발시키는 '방아쇠'가 없으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방아쇠란, 제품을 처음 알게 된 시점과 구입한 시점 사이의 시간 간격을 최소화시키게 만드는 촉매를 말합니다. 소비자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구매 습관, 막연한 선입견 등을 깨뜨림으로써 구매로 이어지기 전에 넘어야 하는 '활성화 에너지' 수준을 끌어내리는 역할이 바로 방아쇠입니다. 네스프레소는 자신들의 방아쇠로 '직접 체험'을 발견했던 것이죠.

제품만 잘 만들면 된다는 생각은 이제 구시대적인 마케팅 전략입니다. 그리고, 소위 4P라 불리는 전술적 마케팅을 잘 하면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 수 있다는 생각도 구시대적입니다. 수소와 산소가 만나 물이 되려면 중간에 뛰어넘어야 할 활성화 에너지를 극복해야 하듯이, 소비자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관성을 파악하여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게 도와주는 '방아쇠 전략'을 고민해야 합니다. 좋은 제품이 방아쇠의 힘을 받아 시장으로 발사되도록 해야 합니다.

제품이 좋으면 잘해봤자 '중박'입니다. '대박'을 얻으려면 '방아쇠'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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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Favicon of http://blog.daum.net/gdocument BlogIcon shg 2011.10.27 17:37

    기술력이 엔진이라면 마케팅은 타이어이다. -필립, 피셔-

    어떤기술력을 가지고 있는지보다, 그 기술력으로 무슨 제품을 만드는지가 더 중요하다. -켄 피셔-

    가치 투자자의 명언이고, 저도 심하게 공감합니다만, 사실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매우 자존심상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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