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일 못하는 C-player는 있다. 농담이겠지만, "당신의 팀에 C-player가 없다면, 바로 당신이 C-player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C-Player의 정의는 무엇일까? 일을 못한다는 것은 3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자신의 역할에 필요한 역량 수준이 한참이나 뒤떨어진 경우이다. 둘째, 일하고자 하는 동기가 한참이나 모자르고 새로운 스킬을 배우기를 거부하는 경우이다. 셋째, 동료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자주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이다. 여러분 주위에서 발견되는 C-player를 살펴보고 어떤 유형인지 판단해 보라. 아마 하나나 그 이상의 유형에 해당될 것이다.(예를 들어, 역량도 떨어지고 동기도 떨어진).

조직의 리더가 C-player가 누구이고 그가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 파악해야 하는 이유는 C-player가 조직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가장 큰 영향은 업무 수행 품질이 상당히 낮아서 리더가 관여하고 동료들이 뒷받침해줘야 하기 때문에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또한 자기방어를 위한 반응인지 자신의 역량 부족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동료를 비난하고 리더의 리더십 부족을 탓하며 개선의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잘못된 이유는 모두 자신을 둘러싼 외부인들에게 있다고 간주한다. 이런 C-player와 함께 일하는 동료 직원들은 '내가 왜 이 사람의 뒤치닥거리를 해야 하지?'라며 일할 동기를 잃는다. 오죽하면 '좋은 동료 직원과 함께 일하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보상이라는 소리가 나올까? C-player 한 명의 전염성은 아주 커서 두 번째 유형(동기 저하)의 C-player가 조직 내에 퍼질 수도 있다.

 


이때 리더는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일 잘하는 직원들의 동기와 성과를 저해하는 C-Player를 팀 밖으로 내보내야 할까, 아니면 잘 가이드하고 이끌어서 중간 이상이 되는 팀원이 되도록 해야 할까? 클레어몬트 맥케나 칼리지의 제이 콩어(Jay A. Conger)는 C-Player의 유형별로 대처법이 다르다고 조언한다. 

그는 담당 역할에 비해 역량이 현저히 떨어지는 첫 번째 유형의 C-player라면 가능하면 팀 밖으로 내보내는 방향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보내라고 해서 해고를 하라는 말은 아니다. 역량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담당 역할과 보유역량 사이의 Fit가 맞지 않는다고 간주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다른 팀에 가서 다른 업무를 맡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성과를 얻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이는 어렵게 채용하고 어렵게 교육시킨 직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회사에게나 직원 개인에게나 옳다는 전제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나지 말아야 한다. 다른 팀으로 보낸 리더와 그 직원을 받아준 리더는 정기적으로 만나서 해당 직원의 성과, 동기, 태도 측면의 변화를 살펴야 한다. 만약 개선될 가능성이 엿보이지 않는다면 다시 한번 직원에게 기회를 주거나 몇 번의 기회를 제공했는데도 C-player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권고사직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고려해야 한다.

역량은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일하고자 하는 동기가 매우 저조한, 두 번째 유형의 C-player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리더의 적극적인 코칭과 피드백을 통해 동기가 떨어진 이유를 발견함으로써 다시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기 저하의 이유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본인이 발휘할 수 있는 역량 수준보다 낮은 업무를 수행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어렵고 힘든 업무를 맡고 있어서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의욕 자체가 생기지 않는 경우이다. 그런 직원들에게 어떤 업무가 동기를 일으킬지 살피고 적절하게 그 업무를 위임하는 것이 리더의 할일이다. 또한 동기를 높이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팀 의사결정에 두 번째 유형의 C-player들을 참여시키는 것은 어떨까? 자신이 참여해 결정한 사안을 본인이 담당하게 된다면 소속감과 함께 일할 의지도 커질 것이다.

 



동료들과의 인간관계에서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하는 바람에 어떤 동료도 가까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세 번째 유형의 C-player에겐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보통 이런 유형의 직원은 언행이 거칠고 남을 지배하려는 욕구가 강하며 팀워크를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오만하며 자기중심적인데, 이는 타인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저하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런 직원을 붙잡고 리더가 코칭이나 멘토링을 하는 것은 그다지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들에겐 '강하고 분명하게' 경고해야 한다. 그들의 행동이 조직 전체에 어떤 '해악'으로 이어지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계속해서 부정적인 언행을 하면 승진과 보상에 불이익이 있다는 점을 냉정하게 전달해야 한다.

C-player가 누구이고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 파악하는 일, 그리고 유형별로 단호한 조치를 취하는 일, 이것이 보통의 직원들이 리더에게 바라는 중요한 역할이다. 그렇지 않으면 리더 자신이 직원들을 'C-player화' 하는 원인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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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에 불만을 제시하는 대부분의 직원들은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일 많이 제기한다. 공정성(fairness)이란 '직원이 창출한 성과에 상응하도록 평가가 이루어진다고 믿는 정도'를 뜻한다. 평가지표 개선, 피드백 강화 등 많은 평가제도가 공정성을 높이는 쪽으로 개선이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왜 평가에 대한 공정성 이슈는 사라지지 않는 걸까? 왜 직원들은 평가제도에 계속해서 불만을 느끼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직원들이 실제로 어떻게 공정성을 인식하는지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전진석(Jinseok Chun)등 콜럼비아 경영대학원의 연구자들은 지적한다. 전진석은 평가에 대한 공정성 인식은 평가자가 직원의 성과를 평가할 때 사용하는 ‘기준점’에 좌우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다시 말해, 상사가 어떤 기준점을 가지고 직원의 성과를 평가하냐에 따라 직원이 평가에 대해 가지는 공정성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두 가지의 기준점을 가지고 평가에 대한 공정성 인식도를 분석했다. 하나의 기준점은 ‘해당 직원의 과거 성과’로서, 평가자가 직원을 평가할 때 과거의 성과와 비교하여 현재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평가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시간적 비교(temporal comparison)라고 부른다. 또 다른 기준점은 ‘다른 직원의 성과’로서, 해당 직원의 성과를 다른 직원의 성과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얼마나 나은지를 평가하는 방식이었는데, 사회적 비교(social comparison)라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자기 자신과 비교할 때와 남들과 비교할 때, 이 중 어떨 때 평가가 공정하다고 느끼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전진석은 모두 4번의 실험을 진행했다. 그 중 한 실험에서 실험 참가자들은 과제를 두 번 수행한 다음 평가자로부터 평가를 받았는데, 참가자들 중 A그룹은 2라운드의 성적을 1라운드와의 비교로 평가 받은 반면, B그룹의 참가자들은 1라운드와 2라운드의 성과를 다른 참가자와의 비교로 평가를 받았다.

과제를 수행한 후에 공정성에 대한 참가자들의 인식도를 조사하니, 본인의 과거 성과와 비교하여 평가 받은 A그룹이 타 직원과의 비교로 평가 받은 B그룹에 비해 평가가 더 공정했다고 밝혔다. “전보다 잘했다”라는 평가가 “다른 사람보다 잘했다”라는 평가보다 ‘절차적으로’ 더 공정하다고 느낀다는 뜻이었ㄷ. 또한, 평가자가 적합한 정보를 가지고 평가를 내린다고 믿었으며, 직원 각자의 상황을 충분히 배려하여 평가가 이루어진다고 평했다. 아래의 그래프에서 보듯이, 절차상의 공정성과 대인관계상의 공정성에서 모두 시간적 비교가 사회적 비교에 비해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그림 출처: 아래에 명기한 논문

 


연구를 주도한 전진석은 중국의 정보통신업체 화웨이의 예를 든다. 이 회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직원들의 역량이 어떻게 향상되는가가 중요하다는 철학을 지니고 있다. 비록 사회적 비교 방식이 일부 사용되긴 하지만, 평가의 주된 초점은 각 직원이 얼마나 성장하고 계발되었는가, 즉 시간적 비교에 맞춰져 있다. 창업자 렌 쳉페이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고 한다. “나는 어느 팀이 잘 하는지 못하는지를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앞으로 전진한다면 상관없다.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달리고 더 많이 달성하면 영웅이 될 것이다. 하지만 느리게 달린다고 해서 나는 그를 부진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미국의 리서치 업체 CEB(Corporate Executive Board)가 1,000여개의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벌였는데, 직원들 중 무려 66퍼센트가 현재 조직에서 운영 중인 성과평가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성과평가에 쏟아 붓는 돈이 직원 1인당 매년 평균 3천 달러에 달하기 때문에 이런 설문결과는 경영자 입장에서 힘이 빠지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성과평가에 대한 불만은 비단 미국의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런 불만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평가 방식을 변경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절대평가를 진행할 때 무엇을(혹은 누구를) 기준점으로 직원에게 피드백할지 어려움을 겪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직원과 비교해야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지 않겠냐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직원의 과거를 기준점으로 삼으면 어떨까?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 평가자(상사)가 해야 할 일들이 조금 많아지긴 한다. 직원 각자의 역량 개발 및 성과 창출의 과정을 기록하고 피드백한 내용도 역시 기록을 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번거롭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직원의 과거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인과의 비교를 통한 평가보다 훨씬 큰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직원들을 상대평가를 하되 비교대상은 자기자신이어야 한다.


(*참고논문)
Chun, J. S., Brockner, J., & De Cremer, D. (2018). 

How temporal and social comparisons in performance evaluation 

affect fairness perceptions.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145,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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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은 기업들이 '평가'의 폐해를 절감하고 이를 대신할 방법으로 '피드백'을 채용 중이거나 앞으로 대체할 시기를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평가의 본래 목적이 구성원의 역량 개발과 동기부여, 이를 통한 조직성과의 창출인데, 기존의 '사정형 평가'로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구성원의 동기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지적을 숱하게 받아왔다. 

그동안 이 블로그를 통해서 사정형 평가의 문제점과 피드백의 중요성을 설명해 왔기에 다시 반복하지는 않겠다. 다만, 기존 평가를 대체할 수 있는 대체물로 '활발한 피드백 제도(보통은 'check-in'이라고 명명하는 것 같다)'를 도입하고자 한다면, 또한 당초에 바라던 효과(구성원의 역량개발 등)를 구현하고자 한다면, 리더를 포함한 직원들에게 피드백을 일종의 '평가' 개념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평가를 없애는 대신에 피드백을 강화하겠다고(혹은 새로 도입하겠다고) 하면, 구성원들은 '아, 이제 피드백 방식으로 직원들을 평가하는 것이구나'라고 인식하기 십상인데, 그렇게 되면 큰 효과를 발휘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하버드 경영대학원 박사과정 학생인 윤재원(Jaewon Yoon)은 피드백이 평가의 개념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면, 개선해야 할 영역, 개선할 수 있는 방법과 제안 등을 구체적으로 제공하는 효과가 떨어진다는 실험 결과를 내놓았다. 본래 피드백은 상대방이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개선해야 하며, 장점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단점을 또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의견을 전달하는 행위인데, '피드백하라'는 말은 그런 행위를 오히려 소극적으로 만들고 상대방을 '평면적'으로 평가만 하려고 한다고 윤재원은 지적한다. 그는 피드백의 효과를 제대로 발휘토록 하려면 피드백이라는 말보다는 '상대방에게 조언(advise)하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어떻게 이런 결론에 도달했을까? 윤재원은 200명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교사직을 희망하는 지원자가 쓴 가상의 지원서를 읽고서 지원서 내용에 대해 '피드백해 달라' 혹은 '조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피드백을 요청 받은 그룹보다 조언을 요청 받은 그룹이 가상의 지원자에게 부족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더 많이 제안하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피드백 요청 그룹은 "이 사람은 지원조건을 아주 충족시키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한 경험이 있고, 가르치는 스킬을 적절하게 갖추었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한 코멘트를 쓴 반면, 조언 요청 그룹은 "나라면 아이들을 가르쳤던 과거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겠다. 본인의 '가르치는 스타일'을 자세하게 서술하고 왜 그런 스타일을 가지게 됐는지 더 설명하면 좋겠다. 왜 아이들을 가르치고 했는지, 무엇을 최종 목표로 생각하는지 등을 추가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식으로 지원서에서 무엇이 부족한지, 어떻게 지원서를 보완할지를 상세하게 코멘트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났다. 통계적으로, 조언 요청 그룹은 피드백 요청 그룹보다 '개선 영역'을 34퍼센트 많게 코멘트하고 '개선 방법'을 56퍼센트 많게 제안했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이와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윤재원은194명의 정규직 직원들에게 동료의 최근 업무성과에 대해 '피드백' 혹은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동료의 업무는 '제품에 라벨을 붙이는 일'에서부터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난이도를 달리했다. 실험 결과, 피드백을 요청 받은 직원들은 조언을 요청 받은 직원들보다 구체적이지 못하고 실천가능하지 못한 코멘트를 더 많이 제시했다. 이를테면 "업무에 대해 불평 한마디 없이 아주 좋은 성과를 냈다"는 식이었다. 이런 피드백을 받으면 칭찬이라서 기분은 좋겠지만,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잘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강사의 강의가 끝나고 '피드백' 혹은 '조언'을 해달라고 교육생들에게 요청했던 실험도 결과는 비슷했다. 피드백을 요청 받은 교육생들은 "이 강사의 교육내용과 강의 스타일이 아주 좋았다"라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코멘트했던 것이다. 

 

 

 



'피드백해 달라'는 말과 '조언해 달라'는 말이 이렇게 의외의 차이를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피드백하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상대방의 '과거 상황과 과거의 성과'를 떠올리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피드백을 상대방의 성과를 '심사(judge)'하는 행위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피드백이란 말이 이런 방향의 '넛지(nudge)'가 되어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는 미래지향적 코멘트를 덜하게 만들어 버린다. 반면, 조언해 달라는 말을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이 앞으로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할 준비를 하게 된다. 심사하기보다는 '기회'를 더 알려줘야겠다는 마음이 들도록 넛지가 일어나는 것이다. 

피드백보다는 조언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피드백을 통해 얻고자 하는 효과를 더 크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데, 그렇다고 해서 평가를 대체하는 공식적 제도로 피드백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필요는 없다. 피드백이라는 말을 쓰되 그것이 과거의 성과를 평가하거나 심사하는 것이 아님을 구성원(상사와 직원 모두)에게 잘 인식시키면 된다. '직원들의 성과를 피드백하라'고 단순하게 말하지 말고 '직원의 개선점, 발전 가능성을 피드백하라'고 말하면 '직원에게 조언하라'고 말할 때와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윤재원이 실시한 후속실험에서 나온 결과인데, 가상의 지원자가 쓴 지원서를 이번에는 "개선점에 초점을 맞춰 피드백해 달라"고 요청하자 조언을 요청할 때와 거의 동일한 효과가 나왔다(아래의 그래프 참조). 피드백 제도를 운용할 때 '평가하거나 심사하려는 마인드'를 제거해 주는 것이 키포인트라는 의미다.

 

 

 

출처: 아래 명기된 논문



예전에 나는 모 조직에 동료들의 피드백을 중심으로 기존의 평가제도를 대체하라고 조언한 적이 있는데, 그때 어떤 사람이 "피드백이란 말을 들으면 부정적인 뜻이 연상됩니다."라고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으니, 그는 피드백이 '상대방이 했던 잘못을 지적하는 것'으로 느껴진다고 답했다. 그래서 누군가를 피드백하고 싶어도 잘못을 지적하는 것만 같아서 되도록이면 기분 나쁘지 않은 말을 쓰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누군가가 자신에게 피드백할 것이 있다면 그 내용과 상관없이 일단 기분부터 나빠진다고도 고백했다. 의견을 취합해 보니 그사람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피드백'이라는 단어를 양식에 표기하지 않고 대신에 '개선해야 할 점', '개선을 위한 나의 제안'이라는 두 개의 기입란을 남기도록 조정했다. 그렇게 하니,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코멘트가 사라지고 보다 건설적인 조언이 제시되는 효과를 경험했다.

평가를 피드백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피드백은 절대 만능이 아닐뿐더러 어떨 때는 오히려 직원의 동기를 꺾어 놓기도 한다(피드백이 단점 지적이라고 직원들이 오해할 때 그렇다). 그렇기에 리더들에게 '직원들의 성과를 피드백하라'는 점을 강조할 때는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언제 무엇을 어떻게 피드백해야 하는지를 가이드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피드백은 과거를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조언이어야 함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참고논문
Yoon, J., Blunden, H., Kristal, A., & Whillans, A. (2019). Framing Feedback Giving as Advice Giving Yields More Critical and Actionable Input. Harvard Business School Working Paper, No. 2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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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지능 2.0>이란 책을 쓴 트레비스 브래드베리(Travis Bradberry)는 포브스 지에 기고한 <당신은 리더인가 아니면 팔로워인가?>라는 글에서 팔로워는 다른 사람의 재능과 성취를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리더는 그걸 자산으로 바라보고, 팔로워는 변화를 문제로 받아들이는 반면 리더는 그걸 기회라고 여기고, 팔로워는 매일의 업무에 묶여 있지만 리더는 미래의 가능성에 집중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처럼 사람들은 리더와 팔로워를 서로 반대되는 유형으로 이분화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래서 훌륭한 리더가 되려면 '리더처럼 행동하라. 팔로워처럼 굴지 마라'고 흔히들 조언하곤 하죠. 팔로워처럼 행동하면 리더십을 갖춘 사람으로 인정 받기 어렵다는 뜻일 겁니다.


하지만 '리더 대 팔로워' 혹은 '리더십 대 팔로워십'이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에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이 퀸즈랜드 대학교의 킴 피터스(Kim Peters)와 그의 동료 알렉스 해즐럼(Alex Haslam)에 의해 제기되었습니다. 그들은 영국 해병대의 신병훈련소에서 관찰한 결과를 통해 '훌륭한 리더가 되려면 먼저 훌륭한 팔로워가 돼라'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팔로워십이 없으면 리더십도 없다'는 것이죠.




피터스와 해즐럼은 218명의 신병(모두 남자, 평균 20.9세)들에게 설문을 돌려 스스로 본인을 얼마나 리더로 생각하는지(리더 정체성, leader identity), 얼마나 스스로를 팔로워라고 평가하는지(팔로워 정체성, follower identity)를 평가했습니다. "나는 천성적으로 리더라고 생각한다"와 같은 문항으로 리더 정체성을, "다른 사람이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으면 나는 그걸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할 준비를 한다"와 같은 질문으로 팔로워 정체성을 평가한 것이죠. 또한 지휘관들에게는 각자 통솔하는 신병들의 리더십과 팔로워십을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고, 신병들에게는 동료들의 리더십을 평가해 달라고 했습니다. 신병 훈련이 진행되는 32주 동안 이러한 평가가 모두 5번 진행되었죠. 


신병 훈련이 종료되고 나면 신병들과 지휘관들 모두가 참여해 '가장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한 자'를 투표로 결정하여 '특공대 메달(Commando Medal)'을 수여하는데, 피터스와 해즐럼은 과연 스스로를 리더라고 여기는 자가 표를 얻는지, 아니면 자신을 팔로워라고 생각하는 자가 많은 표를 얻게 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분석해 보니, 스스로를 천성적인 리더라고 여기는 신병들(자신의 리더 정체성을 높게 평가한 신병들)은 동료들에게 그리 느껴지도록 하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시 말해, 본인은 스스로를 리더라고 생각하더라도 동료들은 그의 리더십을 높게 평가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팔로워라고 생각하는 신병들(자신의 팔로워 정체성을 높게 평가한 신병들)이 동료들로부터 리더십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리더가 되기를 원하면 동료들에게 '봉사하는' 팔로워가 되려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면에 지휘관들은 리더 정체성을 높게 평가한 신병들(즉 리더처럼 행동하는 신병들)에게 더 높은 리더십 점수를 부여했습니다. 동료들의 평가 경향과는 달랐죠. 집단 내부에 있느냐(동료들) 집단 외부에 있느냐(지휘관)에 따라 리더십을 다르게 평가하는 건 흥미로운 결과입니다. 동료들은 팔로워 정체성이 높은 사람을 리더로 여기지만, 집단 밖의 지휘관은 리더 정체성이 높은 사람을 리더로 생각하니 말입니다. 




피터스와 해즐럼의 연구 결과는 기업 조직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첫 번째 시사점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리더가 되려면 먼저 좋은 팔로워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동료들에게 좋은 팔로워라는 평가를 받아야 리더로 인정받을 수 있고 리더가 되어서도 리더십을 잘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는 앞으로 리더로 성장하려는 꿈을 지닌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교훈입니다. 동료들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고 동료들을 도우며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리더가 진정한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요. 또한 기업에서 행해지는 리더십 교육의 방향도 리더로서가 아니라 팔로워로서 정체성을 먼저 형성하도록 만드는 쪽으로 설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 시사점은 조금은 안타까운 현실을 드러냅니다. 최고경영자들은 리더처럼 행동하려는 자를 리더로 선발하려고 하는 반면, 직원들은 그런 사람보다는 팔로워로 좋은 면모를 보이는 자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최고경영자가 리더로 선발하는 사람을 직원들은 리더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직책자 임명 결정이 덜 민주적일수록(최고경영자에게 집중되어 있을수록) 이런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큽니다. 리더 임명에 동료들과 부하 직원들의 의견이 반영된다면 이런 괴리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로부터 미국 육군사관학교(West Point Military Academy)는 교육의 방향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팔로워가 되라는 가르침부터 시작한다"라고 말합니다.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기꺼이 책임을 지며 집단에 봉사하려는 팔로워가 동료들로부터 리더로 인정 받고, 그렇게 해서 실제로 리더가 된 사람이 신뢰를 통해 동료들을 훌륭하게 리드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았던 것입니다. 리더가 되려면 먼저 팔로워가 되어야 합니다.



*참고문헌

https://www.forbes.com/sites/travisbradberry/2015/08/18/are-you-a-leader-or-a-follower/#2f1cbc136091


Peters, K., & Haslam, S. A. (2018). I follow, therefore I lead: A longitudinal study of leader and follower identity and leadership in the marines. British Journal of Psychology. DOI: 10.1111/bjop.1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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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상 고객사의 직원들과 인터뷰를 할 때면 제법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식의 말들입니다. "팀장의 문제를 윗사람(그 위의 임원)이 잘 모른다", "문제가 많은데도 CEO는 팀장이 아주 일을 잘하고 능력이 있는 줄 안다.", "팀장은 아랫사람한텐 나쁜 행동을 서슴지 않지만 윗사람들에게는 아부를 잘해서 그런 것 같다" 


성희롱이나 언어 폭력, 부당한 업무 지시, 은근한 따돌림 등 나쁜 행동을 저지르는 팀장이 있다면 분명 그 위의 임원이나 CEO가 분명 알아차릴 만도 한데, 그러지 못한다고 털어놓는 직원도 간혹 접하곤 합니다. 분명 뭔가 커넥션이 존재한다는 음모론을 펴는 직원을 만난 적도 있습니다. 이미 팀내 혹은 팀 주변에서 공공연한 비밀(open secret)이 된 팀장의 바람직하지 않은 언행을 윗선이 모른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고 고개를 젓기도 하죠.


팀장(여기서는 단위조직의 장을 의미함)의 나쁜 행동이 윗선까지 전달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직원들의 말처럼 아랫사람들에게는 매우 부적절하게 행동하면서 윗사람들에게는 그런 행동을 정당화시키거나 눈에 띄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감추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수직적 위계구조의 특성상 애초부터 그런 '악행'을 발견해 내는 데에 어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여기에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행동과학자 인시야 후세인(Insiya Hussain)가 제시한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일 겁니다. 후세인은 윗사람들이 팀장의 나쁜 행동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직원들 모두가 그런 악행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 외에 다른 직원들도 이미 잘 인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수록 팀장의 악행은 팀 외부로, 회사의 top management로 고발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책임감의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 이게 바로 방관자 효과입니다. 


후세인은 수브라 탄지랄라(Subra Tangirala)와 함께 진행한 여러 번의 실험으로 방관자 효과가 가장 그럴듯한 이유임을 밝혔습니다. 후세인은 서로 거리가 먼 학교 건물 사이를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부족하다는 이슈를 163명의 학부생들에게 읽게 한 다음, 그런 문제를 학교 이사회 측에 제기할 권리가 있음을 알려줬죠. 그런데, 어떤 참가자들에게는 다른 동료들도 이 이슈를 잘 인지하고 있다고 전한 반면,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본인만 알고 있는 이슈라고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나 말고 다른 친구들도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구나'라고 생각한 참가자들은 책임감의 분산 현상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혼자만 이슈를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한 참가자들이 2.5배나 많이 학교 이사회 측에 문제 제기를 하겠다고 했으니까 말입니다.


440명의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후속실험에서는 자기네 조직에서 만드는 실제 제품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읽도록 한 다음, 이전 실험과 같은 실험조건을 조성해 봤습니다. 예상했듯이, '나 말고 다른 팀원들도 제품에 문제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라는 조건의 실험참가자들이 제품상의 하자를 경영진에게 자발적으로 보고하려는 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했습니다. 문제 제기를 할 만한 책임감을 덜 느꼈다는 것이죠. 포천 지 선정 500대 기업 중 하나인 전자회사(인도 지사)에서 근무하는 132명의 직원들과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면밀한 분석에서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문제 제기를 한 후에 자신이 감당해야 할 주변의 시선과 스트레스, 해당 팀장의 반격 혹은 보복, 혹은 문제를 제기했다라는 이유만으로 오히려 처벌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등이 예상되는 상황일수록(즉, 조직문화가 위계적이고 보수적일수록) 이런 방관자 효과는 더욱 강해집니다. "나 말고 다른 직원들도 잘 알고 있으니 누가 나 대신 문제 제기를 하겠지"라고 말입니다. '나 말고 다른 직원이 적극적으로 행동할 때까지 기다리면 되지 괜히 내가 나섰다가 나만 바보되는 거 아니야?" 이것이 바로 팀장의 바람직하지 않는 행동이나 단위조직 내의 이슈, 아니 회사의 문제가 외부로 고발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런 방관자 효과를 피하기 위해 경영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방관자 효과는 나 말고 누군가가 말하겠지, 혹은 누군가가 이미 말했을 거야, 라는 '지레 짐작'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지레 짐작을 하지 않도록 경영자는 "문제가 있다면 뭐든지 바로 말하라. 다른 사람이 이미 문제 제기를 했다고 간주하지 마라"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문제를 말하는 직원의 목소리에 늘 귀를 열어야 합니다.


또한 직원들이 적극적인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문제 제기한 사람을 조직에 평지풍파를 일으킨 사람으로 오인하여 벌 주는 조직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죠. 문제 제기한 사람을 제거하는 것을 문제 해결의 방법이라고 여기는 조직이 의외로 많습니다. 실제로 제 주변 사람들 중 하나가 문제 제기를 해서 조직을 시끄럽게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회사를 떠나야했습니다. 문제 제기가 조직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귀중한 자가치료라고 인식하고 그에 보상하는 조직문화가 방관자 효과를 몰아낼 수 있겠죠.


따지고 보면, 팀장의 나쁜 행동이 팀 외부로 나가지 못하는 까닭은 직원들이 외부에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직원들을 탓하기보다는 직원들의 입을 막는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경영자와 관리자의 도리이겠죠.



*참고논문

Hussain, I., Shu, R., Tangirala, S., & Ekkirala, S. The Voice Bystander Effect: How Information Redundancy Inhibits Employee Voice.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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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머리 속에 그려보자. 당신이 마이크로맥(MicroMac Inc.)라는 가상의 회사에 입사하고자 하는데, 이 회사는 전반적인 지능 테스트, 인성 테스트, 수학 및 계산 스킬 테스트, 언어 구사 능력 테스트, 성취 동기 테스트, 인사 담당자와의 면접 등을 지원자들에게 요구한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이 회사에 들어가고자 하는 욕구가 큰 나머지  부담을 감수하고 여러 가지 테스트를 받았다. 테스트를 마치고 1주일이자 지나자 마이크로맥은 당신에게 '불합격'이라는 아쉬운 결과를 통보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테스트를 받았는데도 어떤 테스트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 이메일을 열어보니 생뚱맞게시리 테스트에 대한 상세한 결과가 도착해 있었다. '떨어뜨려 놓고서 이제 와서 이건 뭐지?'라며 혼란스러워 하는 당신 앞에 갑자기 '펑' 소리를 내며 심리학자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심리학자는 아무런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당신에게 설문지를 내민다. 설문지에는 "이 입사 절차가 얼마나 공정했다고 생각하십니까? 7점 척도로 답해 주세요."라는 문항이 적혀 있었다. 당신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까? 공정했다고 답할까, 아니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쓸까? 




이 장면은 네덜란드 레이덴 대학교(Leiden University)의 심리학자 키스 반 덴 보스(Kees van den Bos)와 동료들이 실시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주어진 상황이었다. 164명의 참가자들 중에서 이렇게 불합격 통보를 먼저 받고 나중에야 입사 테스트 결과를 받는 상황에 처해진 참가자들은 이 입사 절차가 대체적으로 공정하지 않았다고 답했다(3.6점). 하지만, 먼저 각각의 테스트 결과를 받고난 다음에 불합격을 통보 받은 참가자들은 비록 불합격이라는 아쉬운 통보를 받았지만 입사 절차의 공정성을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했다(5.2점).


연구자들은 실험 참가자들이 직접적으로 절차의 공정성을 경험하도록 후속 실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모니터에 나타난 180개의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물체를 보고 그 중 검은색 정사각형의 수를 어림짐작으로 맞혀야 했다. 이런 테스트를 모두 10회 진행한 다음, 합격/불합격 여부를 알려주고 합격한 자에게는 상금을 주었는데(사실, 합격/불합격 여부는 무작위로 결정했다),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로 결과를 통보하는 순서를 다르게 해보았다. 자세히 말해, 합격/불합격 여부를 먼저 통보하고 테스트별 점수를 알려주는 경우와, 테스트별 점수를 일러주고 그 다음에 합격/불합격 여부를 통보하는 경우로 나눠서 실험을 진행했다.


절차의 공정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니, 불합격한 참가자들은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로 중간 과정보다 결과를 먼저 통보받을 때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드러냈고(3.8점) 테스트에 대해 낮은 만족도(3.4점/7점)를 보였으며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는 욕구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표출했다. 하지만 불합격했다 하더라도 중간 과정(테스트별 점수)을 먼저 받고 그 다음에 불합격 결과를 통보받으면 절차가 꽤 공정했다고 평가했다(6.5점).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합격을 통보 받은 참가자들의 경우, 과정을 먼저 알려주든 나중에 알려주든 공정성 점수가 높았다는 것이다(6.5점으로 동일). 합격의 기쁨이 공정성 이슈를 '덮어버리는(override)' 셈이었다.




이 연구는 조직에서 매년 적어도 한 번 이상 실시하는 평가의 공정성에 대해 분명한 시사점을 전달해 준다. 공정한 평가가 되려면,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직원들에게 '평가가 공정하다'는 인식을 높이려면, 평가 결과를 통보하기 전에(혹은 연봉 인상 결과를 통보하기 전에) 중간 과정을 상세하게 피드백해야 한다는 점이다. 연중에 별다른 피드백이 없다가 연말에 가서야 "자네는 C야. 왜냐하면 이러저러 해서야."라고 알려주면, 평가 결과가 그렇게 나온 이유를 아무리 설명해도 직원들은(특히 평가 결과가 낮게 나온 직원들은) 평가의 공정성에 강한 의심을 품게 된다. 또한 이 실험에서처럼, 평가 결과를 수용하지 않고 이의를 더욱 강하게 제시하려 할 것이다. 평가 결과가 잘 나온(S나 A) 직원들은 기쁨 때문에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진다고 여기겠지만 미심쩍은 마음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올해 한번만 평가 받고 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평가의 공정성은 평가지표의 객관성에서 오지 않는다는 점을 이 연구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어느 정도의 평가를 받겠구나"하는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평가의 공정성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해 목표 달성 과정을 점검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런 노력없이는 공정한 평가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하지만 이처럼 평가의 공정성을 높이는 간단한 방법이 있을까? 계량적이고 객관적인 평가지표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쉽지 않은가? 요즘 평가 시즌이라 평가의 공정성 이슈가 조직 전체를 흔들어 대는 조직들이 많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평가 시즌이 도래한 지금, 이제와서 공정성 이슈를 해결하기에는 좀 늦었다. 이 연구가 시사하는 바를 곰곰이 음미하여 내년부터라도 평가의 공정성을 높이는 일상적인 노력을 경주하기 바란다.



*참고문헌

Van den Bos, K., Vermunt, R., & Wilke, H. A. (1997). Procedural and distributive justice: What is fair depends more on what comes first than on what comes next.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2(1),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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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미국의 코칭기업인 베터업(BetterUp)은 직장에서 느끼는 '일의 의미'와 그 효과에 관한 설문조사를 벌였습니다. 26개 산업에 걸쳐 총 2,285명의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분석 결과가 나타났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직원들은 자신의 일에서 100 정도의 의미를 얻고자 하지만, 50 정도 밖에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 의미 있는 일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직원들은 더 높은 직급에서 더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더 오랫동안 회사를 다닌다.


-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느끼는 직원들은 더 오랜 시간 일하고 결근을 덜 한다.


- 직장에서 '사회적 지원(Social support)'를 경험하는 직원들이 일의 의미를 더 크게 느낀다.


- 직원들은 자신의 일의 의미 있다고 느낄 때 더 높은 생산성을 보인다(1년 평균 5,437달러 더 높은 생산성).


-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직원들이 더 높은 보상을 받고 더 높이 승진한다.



이런 결과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지만 이제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들 말고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다음과 같은 결론이었습니다.


- 직원들은 일의 의미를 위해 자신의 돈을 기꺼이 포기한다.


이 결론에 대해서 BetterUp은 "90퍼센트 이상의 직원들은 직장에서 더 큰 의미를 얻기 위해서 자신이 일생 동안 벌어들일 소득의 일부를 기꺼이 내놓고자 한다"라고 설명합니다. 부연하면, 의미 있는 일을 찾을 수만 있다면 평생 벌어들일 소득의 23%를 포기하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옮겨 갈 수 있다는 것인데,  이 조사에 응답한 직장인들의 소득 정보를 대입해 보면 이는 매년 21,100달러(한화로 약 2,300만원)을 은퇴할 때까지 기꺼이 희생하고자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만약 은퇴할 때까지 20년이 남았다면, 40만 달러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고 '의미 있는 일'을 선택하려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지금의 일 혹은 지금의 직장을 버리고 이 정도의 금액을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까? (비록 BetterUp의 조사는 미국의 경우지만) 40만 달러라는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일의 의미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보나요, 아니면 그래 봤자 일에서 의미를 찾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 괜한 돈을 지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각자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면 BetterUp의 설문조사 리포트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설문조사 결과뿐만 아니라, 리포트의 44페이지부터 '어떻게 하면 일의 의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지'에 관한 조언도 적혀 있으니 함께 읽어보기 바랍니다). 



*참고문헌

<Meaning And Purpose At Work>, BetterUp, 

https://get.betterup.co/rs/600-WTC-654/images/betterup-meaning-purpose-at-work.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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