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해결사(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는 문제를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문제를 일으킨 잠정적인 원인이 어떨지 대강의 이미지를 그리게 됩니다. 직원들이 태만하고 불평불만이 심하다는 문제에 직면했다면, 직원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함께 보고 들으며 ‘월급이 너무 적다’든지 ‘CEO가 너무 강압적’이라든지 ‘직원들 모두 건강에 이상이 있다’ 등의 잠정적인 원인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가설이며, 이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문제원인 밝히는 가설

가설이란 문제의 원인이 ‘이러이러하다’고 미리 답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월급이 적어서 직원들이 태만할 것’이라거나 ‘매출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제품에 하자가 많아서’라는 식으로 문제를 발생시킨 원인을 단정적으로 선언한 문장이 가설입니다. 단정적으로 선언한다는 말은 가설 설정이 곧 문제의 근본 원인을 예단한다는 말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일종의 기술임을 뜻합니다.

가설로 세우지 않고서 무작정 근본원인을 밝혀내겠다고 덤벼드는 일은 바위를 깨는 작업을 하면서 어떤 도구를 쓸지 궁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의 원인으로 짐작되는 사항을 여러 개의 가설로 수립해 놓는다면, 그것들을 하나씩 실증하면서 참과 거짓 여부를 가리는 방식이 효율적입니다. ‘월급이 적어서 직원들이 태만할 것’이라는 가설을 실증해 거짓이라는 결과를 얻었다면 두 번 다시 그 가설은 살필 필요가 없으므로 다른 가설에 역량을 집중하는 효과를 얻기 때문입니다.



#가설 설정의 효과

가설을 설정하면 문제해결사와 의뢰인이 가진 편견을 차단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직원의 태만은 월급이 적기 때문’이라는 고정관념이 조직 전체에 팽배하더라도 그것이 실증되지 못한다면, 문제의 근본원인으로 채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설 설정의 과정이 생략되면 실증의 초점이 흐릿하기 때문에 문제해결사와 의뢰인이 슬그머니 자신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반영할 위험이 큽니다. 또 ‘문제의 원인을 단정적으로 선언하라’는 말은 실증 과정을 통해 문제의 근본원인에 빠르게 접근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해법의 효과뿐만 아니라 해결의 신속성도 문제해결의 품질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가설을 설정하면 어떻게 문제해결의 시간이 단축되는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선생님이 1부터 100사이의 숫자 하나를 마음속에 생각해 둔 다음 학생들에게 그 숫자를 맞혀보라고 합니다. 가설 설정에 능한 학생이라면 “50보다 큽니까”라고 물을 겁니다. 선생님이 아니라고 대답하면 학생은 “25보다 큽니까”라고 묻고, 그렇다는 선생님의 대답에 “37보다 큽니까”라고 질문을 이어갈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가설을 설정해서 묻고 선생님으로부터 검증을 받으면서 숫자를 빠르게 찾아냅니다. 만약 선생님이 생각해 둔 숫자가 27일 경우 6번 정도만 질문하면 답을 맞힐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릴 적에 많이 했던 ‘스무고개 넘기’ 게임도 전형적인 가설 설정 게임입니다. 


#품질 좋은 가설을 찾는 법

스무고개를 하는 것처럼 인터뷰, 자료 분석 등을 통해 실증을 진행하는 동안 가설의 진위 여부는 금세 드러납니다. ‘월급이 적어 직원들이 태만하다’는 가설을 갖고 직원 5명과 인터뷰했지만 아무도 그런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다른 이유를 더 성토한다면, 그 가설을 폐기하거나 제쳐놓고 다른 가설을 세우면 됩니다. 유능한 문제해결사라면 굳이 50명의 인터뷰를 다 끝낼 때까지 기존의 가설을 붙들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가설이 좋은 가설은 아니기 때문에 품질 좋은 가설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직원들이 태만하고 불평불만이 많다’는 문제를 접하고 다음과 같이 3개의 가설을 세웠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직원들이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
△사적인 용무로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다
△회사의 정책을 비방하는 글을 인트라넷에 자주 올린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것들은 나쁜 가설입니다. 왜냐하면 ‘직원들이 태만하고 불평불만이 많다’는 문제를 그대로 반복한 문장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가설이 되기 위해 가장 으뜸인 조건은 문제의 근본원인을 파고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야 가설 설정의 목적 중 하나인 문제해결의 속도를 극대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문제해결에 능수능란한 사람이라면 의도적으로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는 다음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에 초점을 맞추려는 노력으로 좋은 가설을 세웠을 것입니다.

△직원들에게 충분한 양의 업무가 배정되지 않는다
△대외업무가 너무 많아 관리자들이 직원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회사 정책에 대한 홍보가 부족하고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린다.


#단순 접근으로 해법 제시해야

무엇보다 좋은 가설은 해법의 실마리를 제시합니다. 여러분이 여행을 떠나려고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데 무슨 이유인지 시동이 걸리지 않는 문제에 처했다면 ‘배터리가 방전돼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배터리를 충전시키면 시동이 걸리리란 해법과 연결되므로 좋은 가설이지만, 만약 ‘나에게 앙심을 품은 누군가가 차를 이상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가설이라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 문제의 해결과 직접적으로 연결짓기 어렵습니다. 차를 망가뜨린 범인을 색출하는 일이 중요할지 모르나 설령 범인을 밝혀낸들 자동차를 수리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일과는 거리가 멉니다. 따라서 이 가설은 문제해결의 관점에서 좋은 가설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다음으로 좋은 가설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합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였던 오컴의 윌리엄(William of Ockham)은 “보다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일은 헛수고”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소위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말입니다. “조건이 같다면 가장 단순한 것이 더 진리에 가깝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가설을 수립할 때 오컴의 면도날을 날카롭게 들이대야 합니다. ‘직원들이 태만하다’는 문제의 발생 원인에 대해 ‘직원들의 뇌 구조가 일반인들과 다르다’는 가설을 세웠다면 과학자에겐 유용할지 모르겠지만, 지식과 장비가 없는 여러분의 입장에서 실증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있으나마나 한 가설입니다. 

결국 좋은 가설이 되기 위해서는 문제의 근본원인을 파고들어 해법의 실마리를 제시하며, 최대한 단순해야 합니다. 가설이 참이냐 거짓이냐는 가설의 좋고 나쁨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실증을 통해 참으로 판명되거나 참이라고 판명될 가능성이 높은 가설이라고 해서 좋은 가설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참과 거짓을 실증하고 나아가 근본원인을 밝히는 데 얼마나 효과적이냐가 좋은 가설의 여부를 결정함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한국경제신문 2011.12.9일자에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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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Favicon of http://hyoya20.tistory.com BlogIcon 효야 2012.04.20 01:41

    와우~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군요!
    스무고개라는 말에서 확 이해가 되네요!
    가설을 세우고 문제를 해결하는 건 프로그래밍 할때는 당연했던 것인데 정작 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때는 그렇게 해보지 않았던 것 같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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