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보상하면, 오히려 반대가 는다   

2012. 3. 26. 13:10
반응형



어느 날 여러분이 사는 마을에 정부 관리가 찾아와 중저준위 방사능 폐기물 저장소 건설을 위한 설문조사를 벌인다면, 여러분은 그 계획에 동의하겠습니까? 아마도 여러분 각자가 처한 상황, 가치관, 방사능에 대한 생각 등에 따라 의견이 갈릴 겁니다. 어떤 이는 님비(NIMBY)를 외치며 강하게 반대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공공 서비스(전력)를 이용하는 시민의 의무라는 생각에 찬성 의사를 보이기도 할 겁니다. 헌데 정부 측에서 폐기물 저장소를 짓는 것에 대해 주민들에게 보상을 한다고 제안하면 어떻게 될까요? 최초의 찬성률이 높아질까요, 아니면 낮아질까요?

1993년에 스위스 정부는 울펜쉬에센(Wolfenschiessen) 지역을 중저준위 방사능 폐기물 저장소 건설의 후보지 중 한 곳으로 선정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지역은 스위스 중부에 위치해 있고 640가구에 2,100명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알다시피 방사능 폐기물 저장소 건설은 주민들의 반대가 워낙 심하기 때문에 스위스 당국은 최종 선정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겠죠. 그런데 브루노 프레이(Bruno S. Frey)와 펠릭스 오베르홀쩌-기(Felix Oberholzer-Gee)는 후보지 선정 발표가 있기 6개월 전, 울펜쉬에센 지역의 주민들을 만나 인터뷰를 벌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305명을 만나 방사능 폐기물 저장소 건설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각각 1시간씩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국민투표에서 찬성과 반대 중 어느 쪽에 표를 던지겠습니까'라고 주민들에게 질문을 던지자 주민들 중 50.8%가 찬성 입장을 보였습니다. 스위스는 시민의 의무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찬성 의견이 나온 것이라 짐작됩니다. 프레이 등은 스위스 정부가 주민들에게 저장소가 운영되는 기간 동안 매년 일정 금액을 보상금을 지급한다면 찬성률이 어떻게 변할지 알고 싶었습니다. 매년 2,175달러를 지급하면 찬성하겠냐고 질문하자 주민들의 찬성률은 24.6퍼센트로 뚝 떨어졌습니다. 보상이 없을 때에 비해 반이나 찬성률이 줄어든 겁니다.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이상한 현상입니다.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에서는 시민의 의무를 이행한다고 느끼는 주민들의 가치에 보상이 더해지면 방사능 폐기물 저장소와 같은 혐오시설을 더 기꺼이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합니다. 즉, 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면 그만큼 선호도가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론과 다르게 나타납니다. 보상금액이 적기 때문이었을까요? 주민들에게 보상금을 2배 높여서 매년 4,350달러면 어떻겠냐고 질문했지만 찬성률은 변하지 않았고, 최초 제안금액의 3배인 매년 6,525달러를 제안해도 주민들은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보상금액의 증가는 찬성률 증가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주민들은 보상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으면 그때부터 머리 속에 계산을 하기 시작합니다. 보상금 이야기가 없을 때는 혐오시설에 대한 호오 여부와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각자 따져 답변하지만, 보상금이 제시되면 혐오시설이 마을에 들어옴으로써 자신이 겪을 불쾌함을 가늠하고 보상금액이 과연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는가를 계산하게 됩니다. 저장소 건설에 찬성한 사람의 머리 속에는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가 돈이라는 이기심으로 치환되어 그만한 보상금으로는 불쾌함을 감수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자리잡습니다. 이때문에 보상금 제안이 오히려 찬성률을 떨어뜨리고 보상금을 올려 준다 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죠.

이 사례는 지난 번에 포스팅한 '탁아소 벌금 사례'와 동일한 맥락을 갖습니다. 사회적 책무나 도리에 의해 원활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돈이 개입되면, 시장규범이 사회규범을 압도해 버리고 오히려 원치 않는 반대의 상황이 강화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해야 할 이유가 늘어나면 그 행동이 더 강화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더해지는 이유 중 하나가 돈이라면 행동을 약화시키는 강력한 동기가 발생하고 만다는 교훈을 이 사례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헌데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프레이와 올베르홀쩌-기가 울펜쉬에센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1년이 지난 후, 주민들 중 5분의 3은 스위스 정부가 40년 간 매년 가구당 4,687달러를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수용하고 방사능 폐기물 저장소 건설에 찬성했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1년 전, 설문조사를 벌일 때는 보상 금액을 높여도 한번 낮아진 찬성률이 올라가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프레이와 오베르홀쩌-기는 이런 현상을 소설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ürrenmatt)가 쓴 '노부인의 방문(The Visit of the Old Lady)'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노부인은 어느 날 중부 유럽에 있는 귈렌이란 마을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젊었을 때 그곳에서 살며 알프레드 일(Alfred Ill)이란 남자와 사귀다가 임신까지 한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알프레드는 아버지 노릇을 요구하던 그녀를 거부했고 증인들을 매수하여 어쩔 수 없이 그녀와 동침하게 됐다며 그녀에게 누명을 씌웠습니다. 그녀는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마을을 떠났고 여러 곳에서 창녀 생활을 전전하다가 운 좋게 아르메니아의 석유 재벌과 결혼했고, 남편의 사망으로 엄청난 부를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이 마을을 찾은 이유는 알프레드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놀라운 제안을 합니다. 알프레드를 죽여 준다면 마을에 5억 파운드를 기부하고 마을 사람들 각자에게는 5억 파운드를 골고루 나눠주겠다는 것이었죠. 이 제안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그녀의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알프레드는 그 마을의 학교 이사장으로서 꽤 명망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죽여 달라는 그녀의 비도덕적인 제안은 아무리 큰 보상금을 준다 해도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불길한 제안을 받은 이유에 마을 사람들의 행동은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10억 파운드가 자기네 돈이 된 양 비싼 물건을 구입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죠. 심지어 알프레드가 운영하는 상점에 들러 돈을 써댔습니다. 호화로움은 공짜가 아닌 법, 마을 사람들 각자 상당한 빚을 지고 생활이 어려워지자 알프레드를 옹호하던 분위기는 적대감으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어느 날, 알프레드는 누군가에게 목 졸라 살해 당하고 맙니다. 사람들은 알프레드가 심장마비로 죽은 것이라며 사건을 은폐해 버리고 그녀가 건네 주는 거액의 수표에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암울한 불안감과 자책감이 마을 사람들을 감싸며 이야기가 끝납니다. 

울펜쉬에센 주민들은 방사능 폐기물 저장소 건설 후보지로 선정된 후에 정부의 보상계획을 접했을 겁니다. 프레이와 오베르홀쩌-기가 논문에서 자세하고 확실한 데이터를 제시하지 않았으나, 정부의 건설계획이 발표된 후에 주민들의 소비 행태가 변한다는 정황들이 포착되었습니다. 저장소가 건설되면 근로자들이 거주하게 될 터이니 집을 증축할 계획이라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개발계획으로 인한 보상금을 미래의 확실시되는 소득으로 받아들인 셈입니다.

울펜쉬에센 사례는 이렇게 이중적인 시사점을 우리에게 줍니다. 보상금이 시민의 의무를 대체하여 찬성율을 떨어뜨렸다는 것, (비록 확실히 증명되지는 않았으나) 보상금의 존재가 사람들의 소비심리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상을 도입하여 구성원들의 일하고자 하는 동기를 촉진시키려 할 때 이 사례가 주는 시사점을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이 글은 방사능 폐기물 저장소 건설에 대한 글쓴이 개인의 찬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참고 논문)
The Old Lady Visits Your Backyard: A Tale of Morals and Markets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