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전략이 단기전략에 밀리고 무시되는 까닭   

2012. 3. 2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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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앞으로 예상되는 2가지 사건의 위험 수준을 수치로 근사하게 측정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두 사건의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책정된 예산이 정해져 있을 때, 두 사건에 각각 얼마씩 예산을 배분해야 할까요? A사건의 위험도가 10점 만점에 8점이고 B사건의 위험도는 4점이라면, 당연히 A사건에 더 많은 예산을 책정하는 것이 합리적이겠죠. 가령 예산이 1억 원이면 A사건에 6,600만원을, B사건에는 3,300만원 가량을 배분하면 됩니다. 예산 배분의 정도가 각 사건의 특성이나 그 사건으로 느껴지는 '감정'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고 최대한 계량적으로 측정된 위험도에 근거해야 할 겁니다.

그러나 로빈 윌슨(Robyn S. Wilson)과 죠셉 알베이(Joseph L. Arvai)의 실험 결과는 우리가 감정과 인상에 크게 좌우되고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함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가상의 자연공원에서 벌어질 수 있는 두 가지 사건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는 공원을 방문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강도나 상해와 같은 범죄 사건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슴 수의 급격한 증가였습니다. 윌슨과 알베이는 참가자들이 두 사건을 '감정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알기 위해 두 상황을 얼마나 부정적으로 느끼는지와, 각 상황을 관리한다고 할 경우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참가자들에게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참가자들은 사슴 수 증가보다는 범죄 사건을 더 부정적이고 더 위급한 상황이라고 인식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사슴 수 증가 상황은 머리에 떠올리기 어려울 뿐더러 그 위험이 가슴에 와닿지 못하는 까닭이겠죠.



공원 관리의 역할이 주어진 참가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가상의 예산은 10만 달러였습니다. 윌슨과 알베이는 참가자들에게 공원에서의 범죄 사건이 관광객들에게 상해를 입힐 정도가 3점, 재산상의 피해를 줄 위험 4점, 자연환경을 훼손할 위험이 4점이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사슴 수의 증가는 각각 4점, 5점, 5점이라는 정보를 전달했죠. 물론 수치가 나오게 된 근거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수치를 보면 범죄 사건보다 사슴 수의 증가가 더 큰 위험을 지녔기에 사슴 수를 통제하기 위한 조치에 더 많은 예산을 배분하는 것이 합리적일 겁니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을 둘로 나눠 첫 번째 그룹에게는 범죄 사건만을, 두 번째 그룹에게는 사슴 수 증가 상황만을 알려준 후에 10만 달러의 돈을 얼마나 각 사건의 관리에 지출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각 그룹의 참가자들은 범죄 사건 관리에는 43,469달러를, 사슴 수 통제에는 41,828달러를 지출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두 가지 상황을 서로 비교하지 않고 둘 중 하나만을 인식한 채 내린 의사결정이기에 이 정도의 금액 결정은 그런대로 합리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두 상황을 비교하여 평가를 내리게 한 세 번째 경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범죄 사건에는 43,567달러를, 사슴 수 통제에는 30,380달러를 배분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사슴 수 증가라는 상황이 수치 상으로 더 큰 위험을 초래한다는 것이 수치로 전달됐음에도 말입니다. 객관적인 위험 수준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의 크기와 상황을 떠올릴 수 있는 용이함이 참가자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렇다면 두 상황의 위험도 차이를 더 크게 벌려 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윌슨과 알베이는 후속 실험에서 범죄 사건의 위험도를 원래대로 3점, 4점, 4점으로 유지한 반면, 사슴 수 증가의 위험은 9점, 10점, 10점으로 크게 설정한 다음 동일한 방식으로 참가자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두 상황 중에서 범죄 사건 관리의 경우만 예산을 배정하도록 요청 받은 참가자들은 43,222달러를, 사슴 수 통제 상황만을 본 참가자들은 41,080달러를 지출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첫 번째 실험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결과였습니다. 두 상황을 모두 알지 않고 한 가지 상황만 접했기에 위험도를 비교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겠죠. 

두 상황을 함께 놓고 비교 평가하여 예산을 배분하라고 하면 사슴 수 통제에 월등하게 많은 돈을 배정하리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비록 참가자들은 31,464달러 대 36,213달러로 사슴 수 통제에 더 많은 돈을 배정했지만, 그 차이는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위험도와 상관없이 동일한 금액을 양쪽 상황에 배분했다는 뜻입니다. 이것 역시 사건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한다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실험은 기업에서 여러 가지 전략과제의 우선순위나 예산을 결정할 때 각 전략과제의 효과와 비용(혹은 예상되는 리스크)에 따라 합리적인 결정이 훼손될 가능성이 큼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매출 하락의 대처와 선행기술 투자라는 두 가지 전략과제 중 무엇을 더 빨리 실행에 옮겨야 할지, 무엇에 더 많은 노력과 예산을 투여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때, 참석자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쉬울까요? 

각 전략과제를 따로 평가해서 선행기술 투자가가 더 중요하고 회사의 존립에 더 시급하다고 판단됐다 하더라도, 여기에 매출 하락이란 상황이 나란히 놓이면 참석자들은 감정에 영향을 받기 시작합니다. 매출이 하락 추세에 있다는 그래프가 눈에 들어오고 그로 인한 위험이 곧바로 회사의 재무제표와 참석자 자신의 연봉에 영향을 끼치리란 상황이 자동적으로 연상됩니다. 반면 선행기술 투자는 그것이 아무리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해도 초기 투자의 시점에서는 그 기술의 이미지가 모호하고 성공 여부도 불안하기 마련이라 매출 하락과 같은 단기적이고 '생생한' 상황 대처보다 후순위로 밀리고 적정 투자액을 얻을 가능성이 낮아지고 맙니다. 여러 회사에서 장기전략은 그저 문서로만 존재하는 근사한 말 뿐이고 실제 실행은 발등에 떨어진 단기전략에 집중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기전략과 관련된 상황이 더 쉽게 떠올려지고 그 위험이 더 빨리 감정을 흔들기 때문입니다.

기업에서 행해지는 여러 의사결정이 이처럼 감정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모든 참여자들이 의사결정 순간에 떠올릴 수만 있다면, 즉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어렵다는 점을 공감할 수 있다면, 적어도 객관적으로 더 위험하고 더 효과가 큰 사안을 옆으로 치운 채 단기적인 사안(대개 눈에 잘 그릴 수 있는 사안)에 필요 이상의 비중을 두는 오류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조직에서 이런 오류에 빠진 적은 없는지, 그리고 앞으로 없을 것 같은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참고 논문)
When Less is More: How Affect Influences Preferences When Comparing Low and High-risk Op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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