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는 직원을 승진시키면 안 되는 이유   

2012. 5. 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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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의 법칙'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캐나다의 심리학자인 로렌스 피터(Laurence J. Peter)는 자신의 경험적 관찰을 통해 "조직의 서열 구조 속에서 모든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무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위치까지 승진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을 좀더 쉽게 서술하면 "구성원들은 자신의 무능이 완전히 드러날 때까지 승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결국 조직 전체의 역량 수준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런 결론을 내린 까닭은 어떤 직급에서 요구되는 역량과 한 단계 위의 직급에서 필요한 역량이 서로 독립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피터의 관점이 맞는다면, 어떤 사람이 현재의 직급에서 아무리 높은 수준의 역량을 보이더라도 그가 상위 직급에 오른 후에도 높은 역량 수준을 나타내리라 장담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구성원들이 상위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무능함이 드러난다고 생각한 겁니다. 



물론 하위 직급의 역량과 상위 직급의 역량이 독립적이라는 피터의 가정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조직의 특성상 피터의 가정처럼 직급의 역할이 설정된 곳도 있고, 하위 직급과 상위 직급 간의 요구역량이 서로 의존적인 조직도 있을 테니까요.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로 플루치노(Alessandro Pluchino)와 동료들은 컴퓨터를 통해 피터의 가정 하에서 어떤 식으로 구성원을 승진시키는 것이 좋은지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직관과 반하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이 공로(?)로 2010년에 '이그 노벨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플루치노는 컴퓨터 상에 6단계 직급을 가진 피라미드형 조직을 만들어 놓고 160명의 가상직원을 배치했습니다. 가장 높은 레벨에 1명(사장을 의미), 두 번째로 높은 레벨에는 5명... 이런 식으로 가장 낮은 레벨에는 81명을 배치했죠. 플루치는 각 구성원에게 역량 수준과 연령이라는 두 개의 속성을 부여하고, 정규분포를 따르도록 무작위로 1에서 10까지의 역량 값을, 18세에서 60세까지의 연령을 지정했습니다. 윗 직급으로 승진시킬 포지션을 만들기 위해 구성원의 역량이 4보다 낮거나 60세를 넘어서면 퇴직시켰습니다. 또한 공석이 발생하면 바로 아랫직급에 있는 구성원들 중에 한 명을 승진시켜서 채우고, 제일 낮은 직급에 공석이 발생하면 새로운 구성원을 채용하기로 정했죠. 

플루치노는 아랫직급의 직원을 윗직급의 공석으로 승진시키는 방식을 세 가지 로직으로 다르게 설정했습니다. '베스트 승진'은 아랫직급에서 가장 높은 역량을 보이는 구성원을 승진시킨다는 것이고, 반대로 '워스트 승진'은 가장 역량 수준이 낮은 구성원을 승진시킨다는 것이었죠. '무작위 승진'은 아랫직급에서의 역량과 관계없이 무작위로 한 사람을 뽑아 올리는 로직이었습니다.

플루치노는 아랫직급의 역량과 윗직급의 역량이 서로 의존적('윗직급의 역량은 아랫직급 역량에서 10% 이내의 변동을 가진다')이라는 '상식적인 가정' 하에서 세 가지 승진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초기의 조직 전체의 역량 수준은 69.68%이었는데,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베스트 승진'은 9%가 높은 79%로 수렴된 반면, '워스트 승진'은 5%가 떨어져 65%로 수렴되었습니다. 아랫직급에서 일 잘하면 윗직급에서도 일 잘할 거라는 가정 하에서 출발한 시뮬레이션이었기에 이는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헌데 아무나 뽑아 올리는 '무작위 승진' 방식도 초기 역량 수준을 2%P 끌어올렸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결과였습니다.

이번엔 피터의 가정 하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기로 했습니다. 즉, 아랫직급의 역량과 윗직급의 역량은 서로 독립적('아랫직급에서 일 잘한다는 것이 윗직급에서의 성공적 수행을 담보하지 못한다')이라는 조건 하에서 세 가지 승진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베스트 승진'보다 '워스트 승진'이 조직 전체의 역량 수준을 높이는 데에 훨씬 좋았으니 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베스트 승진'은 조직의 역량을 10%P 까먹는 반면, '워스트 승진'은 12%P 향상시켰습니다. 피터의 가정 하에서는 아랫직급에서 제일 역량이 떨어지는 직원을 승진시킬 때 조직 전체의 역량 수준이 높아졌던 겁니다. 아랫직급에서 역량 수준이 가장 높은 직원을 뽑아 올리면 종국에 조직 전체의 역량이 떨어진다는 결과는 참으로 당혹스러웠습니다. 한편  '무작위 승진'은 1%P의 역량 향상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직급의 역할과 요구역량이 '상식적인 가정'에 들어맞을지 '피터의 가정'에 들어맞을지 모르는 상태라면, 아랫직급에서 일 잘하는 사람을 윗직급으로 뽑아올리는 승진 방식('베스트 승진')이 항상 좋은 전략은 아니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피터의 가정이 들어맞을 경우 '베스트 승진'은 오히려 독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차라리 무작위로 뽑아올리는 것이 조직 전체의 역량 수준을 보호하는 안전한 전략임을 플루치노의 시뮬레이션은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승진심사 없이 공석이 생기면 아무나 뽑아올려서는 안 되겠죠. 절차와 형식도 중요하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아랫직급에서 기록한 역량평가 결과에 높은 비중을 주어서는 안 되겠죠. 평가센터(Assessment Center) 운영 등을 통해 윗직급에서 얼마나 일을 잘할지 평가하여 승진을 결정하기도 하나, 여전히 아랫직급에서의 역량에 높은 비중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역량평가에서 '죽을 쑨' 직원에게는 승진심사 자격 자체가 박탈되거나 기회가 늦게 주어지니까 말입니다. 허나 아랫직급에서 죽을 쒀도 윗직급에서는 일을 훌륭히 수행할지 모릅니다. 반대로 아랫직급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도 윗직급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일지 모르는 일이죠. 

물론 플루치노의 시뮬레이션은 현실을 단순화한 모델에 근거합니다. 그러나 윗직급에서 요구되는 역량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에 맞는 사람을 제로 베이스에서 뽑아올려야 하지, 아랫직급에서 일 잘한다고 그에게 높은 점수를 주거나 우선순위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우리에게 일깨운다는 측면에서 충분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것은 피터의 법칙이 강조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피터의 법칙에서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만약 자유롭지 못하다면, 아랫직급에서 일 잘하는 사람을 뽑아올리는 일이 결국 조직의 역량을 떨어뜨리는 지름길일 수 있습니다. 그냥 무작위로 승진시키는 게 나을지 모릅니다. 직관에 반하는 일이지만, (현 직급에서) 일 잘하는 직원을 승진시키면 안 됩니다.


(*참고논문)
The Peter Principle Revisited- A Computational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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