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한때 "중국은 인구가 13억이 넘으니까 시장에서 1퍼센트만 차지해도 그게 얼마야?"라고 이야기하며 중국에서 사업하면 아무리 못해도 매출이 몇 억 원은 족히 될 것이라는 상상에 부풀던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언뜻 들으면 매우 솔깃한 말이죠. 요즘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전체 시장 규모가 이 정도니까 우리가 1퍼센트만 점유해도 매출이 짭짤하겠는데?'라는 가정을 하고 사업을 계획하는 예비 기업가들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1퍼센트를 먹어도 된다'는 발상을 자세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특정 산업에서 매출 순으로 꼴찌부터 1위까지 나열해 보면 그 분포는 어떤 모양을 띨까요? 만일 정규분포의 모양을 떠올렸다면 여러분은 틀렸습니다. 기업의 분포는 매출 상위의 기업들이 거의 대부분의 매출을 가져가고 중위부터 하위의 기업들은 그보다 훨씬 못한 매출을 기록하는 모양을 띱니다.
(출처 : http://office.microsoft.com/ko-kr/images/)
로버트 액스텔(Robert Axtell)은 미국 기업들의 규모가 '지프 분포(Zipf Distribution)' 혹은 '지프의 법칙(Zipf's Law)'을 따른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지프(George K. Zipf)는 성경이나 문학 작품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영어 단어는 두 번째로 자주 쓰이는 단어에 비해 사용 빈도가 두 배나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영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인 'The'는 사용 빈도가 7%인데, 두 번째로 자주 등장하는 'of'는 사용 빈도가 3.5%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지프의 법칙은 이렇듯 사용 빈도의 순위가 낮아질수록(the → of → and → to ...) 사용 빈도가 급감한다는 점을 설명하는 규칙인데, 액스텔은 기업의 규모도 비슷한 패턴을 나타낸다는 점을 규명했습니다.
지프 분포(멱함수 분포라고도 부르기도 함)를 따르는 기업의 분포를 그려보면 산업 전체 매출의 1퍼센트를 달성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한 시장에 1,000개의 기업이 존재할 경우 1퍼센트의 매출을 기록하는 업체가 되기 위해서는 매출 순위로 몇 위면 될까요? '800~900위 정도만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영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앤디 브라이스(Andy Brice)의 계산에 따르면 무려 13위가 되어야지 겨우 시장 전체 매출의 1퍼센트를 차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시장에 업체 수가 100개라면 좀 나을까요? 그러나 이때도 19위는 해야 1퍼센트를 겨우 먹을 수 있을 뿐입니다.
이제 막 시장에 진입한 스타트업이 과연 13위 혹은 19위로 뛰어오를 수 있을까요? 그 확률은 매우 낮을 겁니다. 만일 시장 전체 매출의 1퍼센트를 먹을 수 있다고 가정하여 장비나 인력 등에 투자했다면, 그 투자는 매우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 뻔합니다.
지프의 법칙과 브라이스의 계산은 이제 막 어떤 산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예비 기업가가 '1퍼센트만 먹어도 매출이 꽤 괜찮을 거야'란 생각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줍니다. 스타트업을 계획하거나 이미 시작한 독자가 있다면, '1퍼센트의 오류'에서 빨리 탈출해야 합니다. '1퍼센트의 유혹'에 빠진 상태에서 시작하는 사업은 곧 망할 것이고 망하지 않는다 해도 고통이 매우 클 겁니다. 투자자 앞에 가서 '1퍼센트만 먹으면 이러저러 하다'란 말을 내세우는 것처럼 바보같은 행동은 없다고 브라이스는 꼬집습니다.
사업은 달콤한 몽상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입니다. 비전을 가지되 그 비전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참고문헌)
Axtell, R. L. (2001). Zipf distribution of US firm sizes. Science, 293(5536), 1818-1820.
앤디 브라이스의 블로그 : http://successfulsoftware.net/2013/03/11/the-1-percent-fall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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