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하는 '갑'은 왜 진상인가?   

2014. 3. 2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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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은 왜 진상인가?


라면에 설익었다며 항공기 승무원의 머리를 때리고, 좋아하는 자리에 주차 못하게 한다고 호텔 직원의 뺨을 때리며, 머리가 희끗희끗한 대리점주에게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퍼붓는 등 일련의 사건들이 잇달아 터지면서 소위 ‘종속적 갑을 관계’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전국을 들썩이게 했다. 이런 어지러운 와중에 멀리 미국에서 전해온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인턴 여직원 성추행 소식은 온 국민을 멘붕에 빠지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윤창중 전 대변인은 성추행 뿐만 아니라 대변인이 대단한 벼슬이라는 듯 수석급 의전차량을 내어달라고 상관에게 떼를 쓰고 대통령과 같은 호텔에 묵어야 한다며 고집을 부리는 등 소위 ‘진상짓’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대통령의 낙점으로 일개 칼럼리스트에서 청와대 대변인으로 수직 상승했으니 얼마나 기고만장했을까?


왜 이들 ‘갑’은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을’에게 폭언과 함께 손찌검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거나, 급기야 딸뻘 되는 인턴 직원에게 알몸까지 들이대는 것일까? 갑의 위치에 올라서거나 권력을 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진상을 부리는 심리는 무엇일까? 철학자 아론 제임스는 권력의 피라미드로 올라갈수록 ‘또라이(asshole)’를 발견할 확률이 높다고 말하며 “그들은 특전을 당연하게 여기고, 행동의 바탕에는 뿌리 깊은 특권의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진상짓은 권력과 그로 인한 특권의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철학자의 말은 그저 주장이 아니라 증명된 사실이다.



출처: 불문명


권력과 특권의식


심리학자 데보라 그륀펠트는 3명의 학생 중 2명에게 사회 현안에 대 짧은 글을 쓰도록 하고, 나머지 1명에게는 다른 학생이 써 온 글을 평가하고 원고료를 결정하는 권한을 부여하여 팀 내의 상하관계를 구축했다. 그륀펠트는 간식으로 먹으라고 5개의 쿠키를 주었다. 팀원은 3명인데 쿠키가 5개가 주어졌으니 1개씩 먹고 나면 2개가 남는다. 이때 사람들은 보통 4번째 쿠키에 쉽게 손을 뻗지 못한다. 자신이 4번째 쿠키를 집어먹으면 다른 2명에게 하나의 쿠키만 남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스(boss) 역할을 맡은 학생은 다른 두 명의 학생들보다 자연스럽게 4번째 쿠키를 집어들었다. 4번째 쿠키를 먹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과시하는 듯 입을 벌리고 쿠키를 씹어대며 입 주변과 테이블에 쿠키 부스러기를 잔뜩 흘렸다.

 

비록 작더라도 권력을 가지면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려 하고 그것을 당연시한다는 것을 이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다. 다른 학생이 쓴 글을 평가하라는 권한만 주었는데 쿠키를 혼자 2개나 먹을 권한까지 부여 받았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시사점은 탐욕스러운 모습을 본인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4번째 쿠키를 먹어치우면 다른 사람들에겐 쿠키가 하나 뿐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윤 전 대변인이 기자회견에 나와 사과는커녕 자신의 결백을 뻔뻔하게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본인이 그런 파렴치한 행동을 할 리 없다고 진짜로 확신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권력자들은 스스로를 윤리적으로 고결한 존재로 믿고 싶겠지만, 심리학자 폴 피프(Paul K. Piff) 는 일련의 실험 증거를 통해 그런 믿음이 엄청난 착각이라고 일러준다. 피프는 자동차가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상징한다고 가정하고 4차선 도로에서 어떤 자동차가 자기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부당하게 끼어들기를 많이 하는지 일일이 세어 봤다. 최고급 자동차 운전자들은 30% 넘게 끼어들기를 하는 반면, 가장 낮은 등급의 자동차 운전자들은 7~8% 정도 끼어들었다. 또한 가장 낮은 등급의 자동차 운전자들은 한번도 횡단보도의 선을 밟지 않았으나, 최고급 자동차 운전자들은 무려 45% 넘게 횡단보도를 침범했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위반했는지 몰랐을 것이다. 피프는 실험 방식을 달리 하여 참가자들에게 누군가가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려는 이야기를 읽게 하고 그 행동을 얼마나 따를 가능성이 있는지 적도록 했다. 그 결과, 스스로를 상류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비윤리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았다. 


상류층 사람들이 속임수를 잘 쓴다는 사실은 모니터 상에 띄운 가상의 주사위 실험에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났다. 참가자들은 주사위를 모두 다섯 번 던질 수 있었는데, 나오는 숫자의 합이 클수록 돈을 딸 확률이 높았다. 참가자들은 나오는 숫자를 자율적으로 기록해야 했는데, 사실 주사위 숫자의 합은 항상 12가 되도록 사전에 조작돼 있었다. 상류층으로 평가된 사람일수록 합계를 속이는 비율이 더 많았다. 별다른 거리낌도 없어 보였다. 왜 이런 경향이 나타날까? 상류층 사람들은 사회적인 제약이 적은 탓에 비윤리적 행동으로 인한 제재를 대수롭지 않게 인식하기 때문이고, 비윤리적 행동을 합리화할 만큼 목표 지향성이 지나치기 때문이라고 피프는 설명한다.


‘갑’은 자신의 권력을 활용하여 사익을 추구하려 한다. 공적인 목적으로 써야 할 법인카드를 사적 용도로 사용한다든지, 윤 전 대변인처럼 차량을 업그레이드해 달라고 땡깡을 부리는 행위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권력자라고 해서 모두 사익에 눈이 머는 것은 아니다. 토론토 대학의 캐서린 드첼레스(Katherine A. DeCelles)는 실험을 통해 ‘도덕적 정체성’이 낮은 사람일수록 권력을 가졌을 때 사익을 추구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도덕적 정체성이 낮은 권력자는 사익을 위해 공익을 해친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도덕적 정체성이 낮은 사람에게 큰 권한을 부여할 경우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행동을 자극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윤 전 대변인의 도덕적 정체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대통령의 입’이라는 중책을 맡긴 것은 엄청난 실책이었다.


특히 자신 밖에 모르는 나르시시스트가 갑의 위치에 오르면 사익 추구의 도가 지나쳐 화이트 칼라 범죄까지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독일 본 대학의 게르하르트 블릭클레(Gerhard Blickle)는 심각한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질러 수감 중인 76명의 죄수를 대상으로 자기통제력, 쾌락주의 성향, 성실성, 나르시시즘 성향 등 4가지 특성을 측정하여 그 특성과 화이트 칼라 범죄와의 연관성을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리더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나르시시스트적일 때 화이트 칼라 범죄를 범할 가능성이 높았다. 특이한 점은 화이트 칼라 범죄자들이 일반 관리자들보다 성실성 점수가 높았다는 사실이었다. 이 결과는 성실성이 높으면 법에 저촉되는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낮다고 주장하는, 기존의 연구 결과와 반대되는 것이었다. 화이트 칼라 범죄자들이 갑의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 전략상 평균 이상의 성실성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고,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지르는 데 요구되는 기술적인 능력이 성실성을 바탕으로 갖춰지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성실성은 높지만 진실성(integrity)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출처: 불문명



갑은 왜 그렇게 가혹한가?


그렇다면 왜 갑은 을에게 가혹할까? 그 이유는 ‘테스토스테론’이라 불리는 호르몬의 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 테스토스테론은 자신감, 공격성, 대담성, 그리고 심지어는 광기를 유발하는 호르몬이다. 다른 무리를 이루는 붉은원숭이들은 서로 서식지가 겹치면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서식지를 지키는 일은 먹이와 암컷들을 확보하는 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치열한 싸움 끝에 결국 한 무리가 다른 무리를 제압하면서 서식지를 독차지하게 되고 두 집단은 하나로 통합됩니다.  현장을 관찰하던 동물행동학자 캐론 쉬블리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패배한 원숭이들은 예전보다 적게 싸움을 벌이고 유순해진 반면, 승리한 원숭이들은 예전보다 더 포악한 행동을 나타냈다. 쉬블리가 양측 원숭이들을 포획해 호르몬의 변화를 측정했더니, 승리한 원숭이들에게서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게 상승했지만 패배한 원숭이에게서는 그 수치가 떨어졌다. 쉬블리는 서식 조건이 갑자기 좋아지면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촉진되고, 분비된 테스토스테론이 원숭이들의 공격적인 행동을 강화시킨다고 결론 내렸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테스토스테론을 투여 받은 참가자들은 플라시보를 투여 받은 자들에 비해 다른 사람들이 게임에서 돈을 벌지 못하도록 훨씬 많이 방해하는 등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사건을 일으키기 직전 왕희성 상무나 윤창중 전 대변인 같은 ‘슈퍼갑’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측정해 봤다면 아마 최대치가 아니었을까?


갑이 을을 가혹하게 대하는 까닭은 테스토스테론 때문이기도 하지만 갑의 ‘도덕적 선명성’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스콧 윌터무스(Scott S. Wiltermuth)는 ‘권력자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판단함에 있어 더 엄격하고, 그렇기 때문에 권력자들은 더 심한 벌을 주려 한다’고 말한다. 타인의 별것 아닌 행동에도 필요 이상으로 엄격히 대한다는 것이다. 라면을 충분히 익혀서 내오지 않은 승무원의 행동을 보고 보통 사람들은 ‘조리 시설이 변변치 않은 비행기라서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넘어가거나 불만을 제기하더라도 심하게 닦달하지 않지만, 자신이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하는 대기업 임원이기에 서비스를 마음대로 누릴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승무원의 사소한 실수조차 ‘비도덕적 행동’이라 오해하며 노발대발한다.


‘라면 잘 끓이기’를 목표로 본다면 권력자는 기내에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제약요소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이것도 갑이 을을 하대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텍사스 주립대의 제니퍼 위트슨(Jennifer A. Whitson)은 권력을 가지면 ‘목표 제약 정보’에 둔감하게 된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밝혔다. 위트슨은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각각 ‘권력자’와 ‘약자’로 인식케 한 다음 ‘아마존 밀림지대로 여행 가기’란 목표를 부여했다. 모두 18가지의 관련 정보가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참가자들에게 제시되었는데, 그 중 9가지는 목표 촉진 정보(예 : ‘예전에 정글을 탐험한 적이 있다’)였고, 나머지 9가지는 목표 제약 정보(예 : ‘토종 동물들에 대해 두려움이 있다’)였다. 


위트슨은 참가자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잠깐 다른 활동을 하게 한 후 얼마나 많은 정보를 기억하는지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그 결과, 권력자와 약자 모두 목표 촉진 정보에 대한 기억력은 차이가 없었으나, 권력자는 약자에 비해 목표 제약 정보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이는 권력자가 약자에 비해 목표 달성을 쉽게 생각한다고 해석되는 결과다. 남양유업 영업팀장이 대리점주에게 험한 욕설을 퍼부으며 대리점 운영의 어려움을 무시한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출처: 불문명



사실 남양유업 영업팀장과 같은 ‘중간 갑’은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짐작컨대 그는 자신의 갑인 경영자로부터 영업 목표를 달성해 내라는 엄청난 압박에 시달렸을 것이다. 심리적 차원에서 볼 때 그의 언행은 이라크 아부 그레이브 감옥에서 행해진 가혹행위와 뿌리가 같다. 이반 프레드릭 상사를 비롯한 여러 병사들은 왜 나약한 포로들을 대상으로 그렇게 잔인한 행위를 저질렀던 걸까? 무엇이 그들을 ‘악인’으로 만들었을까?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나약함에 대한 불안’, 즉 ‘노출 불안’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짐바르도는 ‘스탠포드 감옥 실험’이라는 유명한 연구를 통해 평범한 사람이 악인이 되는 이유는 그가 원래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지는 역할과 상황 조건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부 그레이브 교도소에서 병사들은 쥐들이 들끓고 변기가 흘러넘치는 더러운 환경에서 근무해야 했다. 게다가 교도소 바깥에는 적대적인 이라크인들이 호시탐탐 자기들을 노리고 있었고 폭탄 공격을 당하기까지 했다. 제대로 된 식사와 편안한 잠자리는 엄두도 내지 못했고 늘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노출 불안'이란 자신의 나약함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날까 염려하는 심리를 말한다. 자신이 지배적인 위치에 있을 때 지배를 받거나 통솔을 받는 사람들로부터 약한 사람이라고 인식될까 두려운 마음이 커진다. 특히 돌아가는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을 때 노출 불안은 극에 달해 자신도 모르게 악인으로 돌변한다. 이는 우리가 남양유업 영업팀장 개인만을 무조건 비난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권력을 행사하되 폭력과 특권의식을 배제하는, 도덕적 정체성이 높은 자가 우리의 갑이 될 수는 없는 걸까? 한창 인기를 끌었던 <아내의 유혹>이란 드라마에서 주인공 구은재는 얼굴에 점 하나를 찍고 자신을 죽이려 한 남편 앞에 나타나 다른 사람인 양 행동한다. 짐바르도는 이와 비슷하게 이마에 점 하나를 찍어 보라고 제안한다. 그렇다고 구은재처럼 처절한 복수를 하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하루 종일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됐다고 가정하고 본인의 행동과 말을 관찰하며 반성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스스로 아웃사이더가 되어 본인을 객관화하면 을의 처지에서 자신을 인식해야 하고 자신이 갑으로서 을에게 얼마나 가혹하게 구는지를 깨닫으며 잘못된 언행을 교정해야 한다. 이것은 을이 갑에게 요구할 수 있는 갑의 의무이고 책임이다. 본인이 남들은 가질 수 없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될 때마다 자신의 행동을 조심스럽게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권력자가 아닐까? 다시는 ‘갑질’하는 갑을 보고싶지 않다.



(* 이 글은 과학동아 2013년 6월호에 게재된 저의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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