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들은 어떻게 사고할까?   

2016. 6. 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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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대 출신이다. 처음에는 과학도가 되고 싶은 꿈에 생명과학과로 입학했지만 중간에 산업공학과로 과를 옮겼다. 군대 갔다 온 후에 갑자기 기운 가세 탓에 적어도 석사 정도는 따야 밥벌이를 할 만한 과학 분야에서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는 이유가 제일 컸다. 이렇게 외부적 이유로 공학의 세계를 접하게 된 나는 좀 어리둥절하고 혼란스러웠다. 


가장 혼란스러운 단어는 ‘최적화’라는 개념이었다. 최적화의 뜻을 묻는 나에게 산업공학과 친구들은 “과학은 100퍼센트 옳은 정답을 구하는 학문이지만, 공학에서는 70~80퍼센트만 맞아도 정답이거든. 그게 바로 최적화야”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친구들의 말이 완벽한 정의가 아니라 70~80퍼센트 옳은 ‘공학적 정의’였지만, 공학은 현실세계의 여러 제약조건 하에서 트레이드오프를 규명하면서 ‘수용 가능한’ 해결책에 접근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친구들이 내린 정의는 충분히 납득이 갔다.




산업공학과로 전과가 결정됐을 때 나는 미래의 한국 노벨상 수상자를 위해 학교 마당에 설치해 둔 빈 좌대를 보며 이제 내가 노벨상을 받을 확률은 더욱 낮아졌다고, 내딴에 심각한 비련감에 휩싸인 적이 있다. 생명과학과에 있을 때의 확률이 0.0001퍼센트라면 이제 0.0000001퍼센트로 떨어졌다고 말이다. 돌이켜 보니 실력은 생각치도 않고 그날 비장했을 내 표정이 우습고 창피하지만 과학에 비해 공학을 경시하는 분위기를 어렸던 나도 느꼈던 바였다. 거의 모든 문헌에서 ‘과학과 공학’이라는 말을 ‘과학과 기술’이란 문구가 대체한다는 사실만 봐도 공학에 대한 경시가 뿌리깊음을 보여준다.


페니실린 발견자인 플레밍은 정작 절실히 필요할 때는 페니실린을 대량생산하지 못했다가 마거릿 허친슨의 대량생산 성공으로 페니실린의 효능이 널리 인정 받자 다른 두 명의 과학자와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수상했다. 이들에겐 수많은 명예가 답지했지만, 허친슨과 그의 동료들은 페니실린의 역사책 속에서 간단히 처리돼 있을 뿐이다. 국가 영웅이란 칭호를 얻은 플레밍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졌지만 허친슨은 자택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여성에 대한 차별도 한 몫 했겠지만 아마 공학(엔지니어링)을 과학보다 아래에 두는 시각도 크게 작용했으리라. 


최초의 창조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현실에 응용하고 개선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 않을까? 어쩌면 공학이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진 않을까? 구텐베르크가 포도 착즙기를 목판 인쇄에 활용하는 ‘공학적 발명’으로 지식혁명이 촉발됐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한 마디로 공학은 우리가 접하는 현실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학문이다. 실험실에서는 깔끔하게 나오는 결과도 현실의 여러 가지 제약조건 때문에 적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공학은 허친슨이 그랬듯이 재조합하고, 최적화하고, 때론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유용한 해결책에 접근하게 한다. 주위를 둘러보라. 장담컨대 공학의 손길이 닿지 않은 물건과 시스템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마거릿 허친슨



나는 지금 공학이 아니라 경영학의 세계에서 먹고 산다. 클라이언트에게 해결책을 조언할 때나 컨설팅 보고서를 쓸 때 내가 학습했던 공학적 접근방식이 꽤나 유용함을 여러 번 느낀다. 그렇다고 최선의 답을 찾지 않고 70~80퍼센트 가량 ‘대충 맞는’ 답을 준다는 뜻은 아니다. 여러 이해관계자들(직원, 경영자, 고객 등)의 요구사항들을 조율하는 과정은 공학자(엔지니어)들이 제약조건 하에서 최적화 모델을 구축하는 것과 유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은 공학자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시제품화(프로토타이핑)와 비슷하다. 심리학 연구 결과를 차용하고 ,타사의 사례를 조합하고, 신뢰도 높은 데이터를 확보하는 과정이이야말로 ‘경영공학’이 아니겠는가?


원제가 그렇듯 이 책은 ‘공학자들의 사고방식’, 즉 ‘공학적 사고’의 핵심을 다룬다. 아이작 뉴턴이 우주의 물리 법칙을 발견했지만 공학자들은 태양계 바깥으로 탐사선을 띄워 보냈다.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를 규명했지만 줄기세포 응용 기술은 공학자들의 업적이다. 이 책은 베일 속에 가려진 여러 공학자들을 소개하며 공학적 사고가 실생활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그리고 우리 곁에 가까이 있어야 하는지를 웅변한다. 이 정도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이 글은 제가 번역한 신간 <맨발의 엔지니어들> (RHK코리아)에 실린 '옮긴이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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