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겐 진정한 친구가 있습니까?   

2008. 7. 1.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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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았던 난제 중의 난제였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350년만에 증명해 낸 영국의 수학자 앤드루 와일즈(Andrew Wiles)는 만일 친구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류의 수렁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17세기 때 법학자이자 아마츄어 수학자인 피에르 페르마(Pierrede Fermat)가 자신이 읽던 책의 여백에다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겼다.

"3 이상의 자연수 n 에 대해서  an + bn = cn 을 만족하는 0 이 아닌 정수 a,b,c 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 명제에 대해 경이적인 증거를 발견했는데, 불행히도 이 책 여백은 그것을 다 적기에 너무 좁다"

아마 그는 그 메모가 350년간 많은 수학자들을 고민에 빠뜨릴 줄 몰랐을 것이다. 한평생 이 문제에 골몰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으며 너무 고민한 나머지 자살을 하는 수학자도 여럿 있었다.  엔드루 와일즈가 그 무모한 레이스에 동참하기로 한 것은 10살 때 도서관에서 '마지막 문제'라는 책에서 페르마의 메모를 보게 되면서였다.

그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그는 1986년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했다. 그는 논문 발표도 소홀히 하고 학회나 심포지엄에 나가지 않으면서 오로지 이 정리를 증명하는 데에 모든 시간을 집중하는 바람에 수학자이길 포기했다는 악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수차례 좌절의 순간을 맞기도 했지만, 7년째에 접어들면서 연구에 많은 진전이 있었고 특히 동료 교수인 닉 카츠(Nick Katz)의 도움을 받아 증명에 완벽을 기할 수 있었다. 그는 1993년 6월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뉴턴연구소에서 열린 강연을 통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드디어 증명해냈다고 선언했다. 언론들은 앞다투어 20세기 최대의 수학적 사건과 새로운 천재의 등장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증명에 조그만 오류가 발견되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를 칭송하던 언론은 맹렬하게 비난을 퍼부었다. 와일즈는 과거에 수많은 도전자들이 그랬듯이 하루 아침에 세계적인 천재에서 수학 사기꾼으로 추락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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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루 와일즈


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지금껏 혼자 진행해 왔던 연구 방식을 버리고 제자이자 동료 교수인 리처드 테일러와 공동작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여가 지나고 연구를 시작한지 8년 만인 1994년 9월 19일 월요일 아침, 마침내 그는 증명을 완료한다. 그는 1908년에 볼프 스켈이라는 사업가가 2007년 9월 13일을 기한으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자에게 수여하기로 약속한 10만 마르크(약 20억원)의 상금을 받게 됐다.

엔드루 와일즈의 업적은 분명 놀랍고 위대한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동료의 도움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가 6년째 되던 해까지 미궁에 빠져 있다가 증명의 실마리를 풀 수 있었던 계기는 카츠 교수의 도움으로 '수론기하학'을 증명에 활용하면서부터다.

또한 증명에 오류가 발견되어 위기에 빠졌을 때 테일러 교수와의 공동작업이 큰 힘이 됐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와일즈는 테일러로부터 격려와 충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 받으면서 언론와 주변 사람들의 비판을 견딜 수 있었고 혼자만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가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 때 테일러가 틀을 깨주지 않았다면, 증명의 오류는 풀리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와일즈의 이야기를 보면서 친구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친구란 내가 가진 생각의 틀을 깸으로써 나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존재이고, 또 그래야만 진정한 친구다.

친구 = 나의 틀을 깨는 사람


역사적으로 유명한 과학자와 발명가들 대부분은 외로운 천재가 아니었다. 심리학자 키스 사이먼턴(Keith Simonton)이 2,026명의 과학자와 발명가들의 경력을 조사해 보니, 그들에게는 사심 없는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고 때로는 문제를 제기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만일 그들에게 친구라는 '틀 파괴자'와 '증폭제'가 없었다면 창조적인 발상과 노력이 현실화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시면서 유쾌한 농담을 주고 받는다. 그러면서 삶의 고독과 고단함을 친구들로부터 위안 받는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친구들 앞에서는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다. 인생살이에 윤활유가 되는 친구들과의 사교가 필요하긴 하지만,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왠지 모를 허전함이 드는 이유는 뭘까?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술친구들과의 행동과 대화는 판에 박혀 있고 너무 뻔하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단체로 모여 텔레비전을 보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그런 식의 사교는 진정한 친구 관계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거의 제공하지 못한다. 좋은 친구 관계란, 공동으로 추구할 수 있는 도전적인 목표를 함께 갖는 것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만일 오로지 술친구에 둘러싸여 있다면, 그들은 내 자신의 꿈과 열정에는 별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즐기고 위안 받고 싶을 뿐이다. 진정한 친구는 껍질 속에서 안전하게 머물러는 우리 자신의 프레임을 깨뜨려 주는 친구다. 모험과 발견을 함께 하면서 협소한 생활의 범주를 함께 넓혀갈 동반자가 진정한 친구다.

항상 우울하고 슬픔에 빠진 친구,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아서 만나기만 하면 그런 이야기를 쏟아내는 친구는 피해야 한다. 그는 나의 틀을 깨뜨리기는커녕 단단하게 조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에게 동조하다 보면 자신의 에너지만 소진될 뿐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세네카는 "항상 모든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고 한탄하는 사람은 마음의 적"이라고 말했다. 부정적인 에너지는 서로를 망친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받아야 진정한 우정이다.

친구가 많다고 좋아할 일도, 친구가 적다고 슬퍼할 일도 아니다. 나의 틀을 깨주는 친구 한 사람이면 족하다. 그와 함께 함으로써 나의 세계를 넓힐 수 있고 내가 성장할 수 있다면 단 한 사람의 친구라도 소중하다. 당신에게는 그런 친구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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