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는 동물 사체가 썩어 생긴 걸까?   

2008. 10. 1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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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유정식)


과학사를 들여다보면 기존 체계에 도전했다가 곤욕을 치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꽤 찾을 수 있다.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대표적인 예이다. 막강한 교회 권력은 그를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단자로 매도하고 목숨까지 위협했다.

영원히 침묵할 것을 맹세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뻔했다. 교회로 대표되는 시대정신은 갈릴레이가 오랜 기간의 연구 끝에 정립한 이론의 옳고 그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그가 얼마나 이단적인 생각을 품었는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그들에게 갈릴레이는 진리의 안내자가 아니라 그저 불온한 이단자에 불과했다.

이단이냐 아니냐의 여부는 ‘밈(meme)’에 반하느냐 동조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밈은 리처드 도킨스가 주창한 개념으로, 사상, 선전 문구, 옷의 패션, 건축 양식 등 한 사회 내에 문화적으로 동질성을 갖는 요소들을 일컫는다.

도킨스는 밈이 마치 유전자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로 전달되면서 다음 세대로 복제되고 매우 이기적인 특성을 지녔다고 말한다. 성질이 다른 밈을 가진 사람이 고유의 영역을 침범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연대를 강화하여 공격을 가하고 심할 경우 잔인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교회 권력이 갈릴레이에게 가한 위협 역시 이러한 밈의 잔혹한 특성 때문이다.

갈릴레이의 경우처럼 목숨을 위협 받는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밈의 꾐 때문에 과학의 발전이 정체에 빠진 사례는 더 많다. 천문학자인 토미 골드는 석유가 지구의 맨틀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것으로 생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이색적인 주장을 펼쳤다. 오래 전에 살던 동물들이 죽은 뒤 그 위에 긴 시간 동안 퇴적물이 쌓이고 높은 압력과 열을 받아 부패되면서 석유가 만들어졌다는 학설이 밈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이론은 많은 전문가들의 비웃음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04년에 카네기 연구소에서는 맨틀에 존재하는 세 가지 물질을 혼합하고 맨틀의 온도와 압력을 가하는 실험을 통해 석유와 천연가스의 주성분인 메탄이 다량 산출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토미 골드의 이론이 맞을 수도 있음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완벽한 증명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런 사실을 전달받기 불과 3일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석유의 기원에 대한 이론 이외에도 그는 평생 남들의 비웃음을 살 만한 주장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생각은 대개 옳은 것으로 판명됐다. 학계의 밈이 그의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수용하고 검증했더라면 과학의 진화는 속도를 더했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엉뚱한 길에서 헤매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밈의 편협함이 과학의 발전을 종종 저해했듯이 기업의 밈 역시 자신의 발전에 스스로 뒷다리를 걸기도 한다.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문화적 동질성을 구축해가며 고유의 밈을 형성한다.

조직의 밈은 구성원의 연대를 강화하고 목표에 집중케 하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미는 자가 있다면 내부인이건 외부인이건 상관없이 가차 없이 처벌을 가하려는 냉혹하고 불합리한 면도 지녔다. 조직의 발전을 위해 마찰을 각오하면서까지 옳은 주장을 펼치는 것이라 해도 그런 충심은 수용되기는커녕 무시되거나 축출되기 십상이다. 이성적인 수용보다 괘씸함이 앞선다.

그러나 이단을 수용할 때 발전과 도약이 가능함을 수많은 사례가 증명한다. 아인슈타인이 뉴턴의 결정론적 우주관을 뒤엎는 상대성 이론을 정립했듯이 과학의 도약은 대개 이단적 발상을 통해 이루어졌다. 기업도 이와 같다. 조직 혁신의 동력은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충심 어린 이단자들로부터 나옴을 기억해야 한다.

르네상스를 화려하게 꽃피운 이탈리아의 영광이 순식간에 몰락한 결정적 원인은 바로 갈릴레이를 영원히 침묵하게 만든 것이라고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은 간파했다. 변화에 저항하며 달콤하게 속삭이는 자들을 물리치고 이단자의 ‘거친’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충고다. 용기 있는 이단자들을 포용하고 활용하라. 그것이 지속경영을 가능케 하는 경영의 덕이자 지혜임을 명심하자.


(본 칼럼은 광주일보 2008년 10월 10일자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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