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쉬어가는 차원에서 문제해결과 관련되지만 그렇다고 핵심은 아닌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핵심이 아니라고 말하면, 이 포스트를 건너뛰고(또는 이 블로그를 닫아 버리고) 넘어갈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전 믿습니다. 문제해결사로서 역량을 키우고자 하는 분들은 반드시 이 글을 끝까지 읽으리란 것을. 그렇지 않습니까? 

'모순(contradiction, 矛盾)'이란 말 아시죠?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입니다. "이렇게 쉬운 걸 설명하다니 진짜 쉬어가려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죠? 'contradiction'이란 말은 라틴어의 'contradicere'에서 유래했는데요, 'speak againt' 즉 '반대하다, 대항하다, 욕하다'의 뜻입니다. 글쎄요, 모순의 의미로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모순의 정확한 의미는 영어의 어원보다는 한자어의 유래에서 찾는 게 더 낫겠군요. 알다시피 모순이라는 한자어는 중국 초나라 때의 고사에서 기원합니다.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이 시장에서 이렇게 구경꾼들에게 외쳤다죠.

"이 창으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제 아무리 두껍고 튼튼한 방패라도 여지 없이 뚫어버리는 괴력을 가진 창입니다요. 에~또, 이 방패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세상의 모든 창을 능히 막을 수 있는 방패다, 이겁니다. 자, 애들은 가라. 어른들은 떠나지 말고 부디 남으시오. 무슨 방패든 다 뚫어버리고, 무슨 창이든 다 막아내는 방패를 구경들 하시오."

이를 재미나게 보고 있던 구경꾼이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면 이 창으로 이 방패를 뚫을 수 있소?"

상인         :  당근이지요. 헤헤
구경꾼 왈  :  이 방패는 뭐든지 다 막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소?
상인         :  이 아저씨, 당근을 못 먹어보셨나? 당근 당근 또 당근이지요. 헤헤
구경꾼      :  이보쇼, 앞뒤가 안 맞잖소! 에이, 사기꾼 같으니...

창을 뜻하는 모(矛)와 방패를 뜻하는 순(盾)이 더해진 이 단어는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할 때 사용되는 일상어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또 하나의 예


모순은 또한 논리학에 쓰이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논리학에서는 모순을 어떻게 정의할까요? 그냥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라고는 정의하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모순의 의미는 까다롭습니다. 우리가 모순이라고 말하려면 두 개 이상의 명제로 이루어진 진술(statement)이 있어야 합니다. "이 창은 무슨 방패든 다 뚫는다"라는 하나의 명제만 있을 때는 모순인지 아닌지 판단이 불가능합니다. "이 방패는 무슨 창이든 다 막아낸다"라는 또 하나의 명제가 추가되어야 모순인지 아닌지를 규명할 수 있는 거죠.

다행히 모순의 고사에는 두 개의 명제가 존재합니다. 두 개의 명제를 아래처럼 다시 기술하겠습니다.

첫번째 명제 : 이 창은 무슨 방패든 다 뚫는다
두번째 명제 : 이 방패는 그 어떤 창에도 뚫리지 않는다

첫번째 명제가 '참'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명제는 참일까요, 거짓일까요? 첫번째 명제에서 모든 방패를 다 뚫어버리는 창이 존재한다고 했으므로, 두번째 명제는 명백히 거짓입니다. 이번엔 첫번째 명제가 거짓이라고 가정해보죠. 그렇다면 두번째 명제는 명백히 참이 됩니다. 반대로, 두번째 명제가 참이면 첫번째 명제는 거짓이 되고, 두번째 명제가 거짓이면 첫번째 명제는 참이 됩니다.

자, 이제 모순의 정의가 눈에 들어오는지요? 모순이란 다음과 같이 정의됩니다.

모순 = 두 개의 명제 A와 B가 동시에 참일 수도 없고, 동시에 거짓일 수도 없다

문제해결사가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자료를 조사하다 보면 "이건 앞뒤가 안 맞는데? 모순이구나" 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때 모순이라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상에서 쓰는 '말도 안돼'의 의미가 모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 개의 명제가 동시에 참이 될 수 없고, 동시에 거짓이 될 수도 없는지 검증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단어 하나 쓰는데도 일일이 따져야 합니까? 도대체 왜 그래야 하죠?" 또는 "에이 귀찮아서 문제해결사 안 할래"라는 강한 불만이 가슴 속에서 용솟음 친다면 다음의 예를 보며 분기(?)를 누르시기 바랍니다. 다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 명제 : 사장님이 총애하는 유일한 직원은 A이다
두번째 명제 : 사장님이 총애하는 유일한 직원은 B이다

자, 이 두 개의 명제는 서로 모순일까요, 아닐까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모순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려면 두 개의 명제가 동시에 참이 될 수도 없고, 거짓이 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첫번째 명제가 참이라면, 두번째 명제는 거짓이어야 합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우리 회사 직원은 모두 100명이라고 전제하겠습니다.

총애하는 유일한 직원이 A가 맞다고 하면 두번째 명제는 명백히 거짓이 됩니다. 그런데 첫번째 명제가 거짓이라면(총애하는 유일한 직원이 A가 아니다) 두번째 명제가 참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장님이 실은 C를 총애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두번째 명제는 거짓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두번째 명제를 참이라고 가정하면 첫번째 명제는 명백히 거짓이지만, 거짓이라 가정하면 첫번째 명제는 거짓일 수도 있지요.

인터뷰 등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건 앞뒤가 맞지 않아. 그러니 모순이야'라고 말하기 쉽지만 모순의 정의에 따르면 이같은 상황은 절대 모순이 아닙니다. 두 명제 사이의 이런 대립적인 관계를 '반대(contrary)'라고 명명합니다. 그 정의는 아래와 같습니다.

반대 = 두 개의 명제 A와 B가 동시에 참일 수 없지만, 동시에 거짓일 수 있다

위의 반대는 상대적으로 강한 반대입니다. '동시에 참일 수 없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거짓일 수도 없다'고도 말하는 반대도 있는데요, 이를 소극적인 반대라는 의미로 '소반대(subcontrary)'라 부릅니다. 그 예는 아래와 같습니다.

첫번째 명제 : 어떤 직원들은 열심히 일한다
두번째 명제 : 어떤 직원들은 게으르다

이 말도 언뜻 보면 모순처럼 느껴지는 상충되는 의견들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첫번째 명제를 참이라고 가정하면, 두번째 명제는 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떤 직원들은 열심히 일하는 반면에 다른 직원들은 동시에 게으름을 피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첫번째 명제를 거짓이라고 가정하면(즉 모든 직원들은 게으르다) 두번째 명제는 거짓이 아니라 명백히 참이 됩니다. 따라서 소반대의 정의는 아래와 같습니다.

소반대 = 두 개의 명제 A와 B가 동시에 참일 수 있지만, 동시에 거짓일 수 없다

자, 이제 모순의 의미와 모순이라고 잘못 알기 쉬운 상황을 이해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모순과 반대, 그리고 소반대의 정의를 올바르게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문제해결사가 인터뷰를 하거나 자료를 조사할 때 아주 빈번하게 직면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조직에 있으면서도 이 직원이 하는 말과 저 직원이 하는 말이 서로 다릅니다. 사장이 보는 시각과 일반직원들이 느끼는 감정이 서로 부딪히지요. 

의견이 상충되는 상황을 접할 때 각자의 목소리가 모순인지, 반대인지, 아니면 소반대인지를 가릴 줄 안다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명백한 모순이라고 판단되면, 두 개의 명제 중 참인 것 하나를 가려내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게 좋습니다. 창이 강한지 방패가 강한지 서로 부딪혀보면 모순의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 테니까요.

'반대'라는 상황이면 두 개의 목소리(명제 혹은 집단)가 동시에 거짓일 수도 있음을 밝혀서 적대적인 마음과 오해를 풀어 화해하는 방향의 해결책이 적절할 겁니다. 그리고 '소반대'의 상황이면 두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참일 수 있으므로 상충되는 현상으로부터 합의안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모순'이면     →  시시비비를 가리는 '결정적 분석'을 실시한다
'반대'이면     →  오해를 풀고 화해하는 방향의 해결책을 구상한다
'소반대'이면  →  합의안을 유도한다

모순을 해소하기 방법으로 '결정적 분석'을 언급했는데요, 간단하게 말해서 창과 방패를 서로 부딪혀 보는 실험처럼 '한방에 모순을 날려버리는' 분석을 의미합니다. 이는 중요한 개념이므로 다음 글에서 보다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편안하게 쉬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나요? 머리가 더 아팠다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허나 문제해결사는 항상 의심해야 합니다. 쉬어가는 코너라고 글쓴이가 얘기해도 "음, 과연 그럴까?"라고 회의적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교훈(?)을 잊지마시고, 다음 글에서 또 만나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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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개똥철학 2009.07.17 11:37

    모순 관련해 늘 드는 생각인데 '막아낸다'는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 불만입니다. '뚫지 못한다'라면 모를까, 비록 방패에 아주 작은 구멍이 났더라도 타격을 줄만큼 충분히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면, 예를 들어 딱 1mm 만큼만 뚫고 들어왔다면, 방패는 그 역할을 다했기에 창을 '막아냈다'고 해도 무리가 없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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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9.07.18 02:15 신고

      네, 엄밀하게 말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얼마나 뚫고 막느냐란 문제보다 모순의 의미만 취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의견 감사합니다. ^^

  2. Favicon of http://happylion.co.kr BlogIcon 즐거운 사자 2009.07.17 13:52

    사실 마지막까지 읽어 내리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의 문제해결에 적용하는 기본원칙까지 읽고 나니, 앞서의 딱딱한 설명에 수긍이 가고 끝까지 참고 읽기를 잘했구나 싶어집니다. ^^ 나름대로 써 먹으려면 제 나름대로 좀더 생각을 가다듬어야 하겠지만, 업무를 하면서 부딪히는 상황들을 객관적으로 바라 보는데 분명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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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9.07.18 02:16 신고

      네. 모순이나 반대, 소반대의 의미를 아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같은 상황에서 문제해결을 어떻게 해나가느냐가 더 의미가 있겠지요. ^^ 앞으로 (장담은 못하지만) 그런 방향으로 써갈 예정입니다. ^^ 감사합니다.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oolistenoo BlogIcon BrightListen 2009.07.17 16:51

    하지만, 가정이 없이 이뤄지는 실질적인 영역의 모든 문장은 거짓이죠. 사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영역, 부분에서의 '모든' 이라는 범위 설정은, 그 자체가 모순입니다. 대신에 모순의 논리는 시점의 차이로 인해 모순점이 희석되기도 합니다. 어제와 오늘, 내일에 따라 참과 거짓의 문제가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이죠. 어쩌면, 임의의 논리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마련된 수단에 불과할 지도 모릅니다. 문제의 본질이나, 진실은 저 넘어에 있을지 모르는데 말이죠. 순간을 잡아 보고 싶은 인간의 불안과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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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9.07.18 02:21 신고

      네. 말씀하신 사항은 옳습니다. 절대적인 기준이란 환상이기 때문이죠. 허나 일일이 가정을 하다보면 아마 가정만 하다가 끝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절대성을 포기하고서) 논리를 바라보면 어떨까요? 문제해결의 관점에서는 일일이 가정을 하지 않고서도 암묵적으로 합의된 가정과 틀이 있으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

  4. Favicon of http://as3.kr BlogIcon 우야꼬 2009.07.17 18:54

    아 좋은 내용이네요.
    이런 뜻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_-)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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