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미스 김'을 찾자   

2009. 9. 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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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겠지만, 문제는 '기대하는 상태와 현 상태와의 갭'이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문제를 발생하도록 만든 것들을 원인(Cause)이라고 부릅니다. 원인은 눈에 보이는 원인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원인은 말 그대로 상황을 들여다 보면 무엇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는지 금세 눈에 띄는 원인을 말합니다.

원인의 2가지 종류
1) 눈에 보이는 원인
2)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

눈에 보이지 않은 원인을 들여다 봅시다


예를 들어 최 대리가 바닥에 넘어진 상황을 목격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최 대리가 안전하게 걷는 상태와, 넘어져서 고통을 느끼는 상태 사이의 차이라고 정의되겠죠. 문제해결사의 본능을 타고난 여러분은 그에게 달려가 어떻게 그가 넘어졌는지 살펴볼 겁니다.

여러분은 최 대리가 고통스럽게 엉덩이와 무릎을 연신 문지르는 모습을 안쓰럽게 쳐다보다가 바로 옆에 바나나 껍질이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아하, 저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진 거로군!' 라고 쉽게 원인을 지목할 수 있지요. 게다가 바나나 껍질이 누군가에게 밟힌 듯한 모양으로 짓이겨져 있다면 더욱 확실할 겁니다. 이때 바나나 껍질은 눈에 보이는 원인입니다.

여러분이 최 대리에게 바나나 껍질을 흔들며 "바로 이것 때문이야! 좀 보고 다녔어야지"라고 충고할 때 문 뒤에서 옆 부서의 미스 김이 불안하면서도 고소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바나나 껍질은 그녀가 일부러 바닥에 떨어뜨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최 대리와 미스 김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사내 커플이죠. 하지만 회사 문화상 사내 커플임을 당당히 드러내지 못하고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야 안심하고 만날 수 있었죠.

헌데 최 대리가 새로 입사한 미스 정에게 필요 이상의 친절을 베푸는 게 아니겠습니까? 미스 정은 늘씬하고 얼굴도 예뻐서 같은 여자가 봐도 끌릴 외모였죠. 최 대리를 괘씸하게 생각한 미스 김은 꾀를 생각해 냈습니다. 그녀는 "최 대리님, 바나나 좀 드세요." 라고 정수기 근처로 최 대리를 끌어 내는 데 성공했지요. 그와 공적인 이야기를 하는둥마는둥 하다가 그녀는 자신이 먹던 바나나 껍질을 몰래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는 최 대리가 그걸 밟는 타이밍을 정확히 포착하여 있는 힘껏 그를 밀고 문 뒤로 숨어버렸던 거죠. 사건의 전말은 이랬습니다.

미스 김의 계략은 바로 여러분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입니다. 최 대리는 바나나 껍질을 흔들어대는 문제해결사의 의기양양한(고소해 하는) 표정을 보면서 '실은 미스 김이...' 라고 할 뻔하다가 급히 입을 닫을 겁니다. 커플인 게 들통나면 안 되니까요. 최 대리는 사라진 미스 김이 어디 있는지 두리번거리겠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여러분은 '그만 일어나고 일 해'라며 핀잔이나 주겠지요. 그래서 미스 김의 귀여운 폭행(?)은 영원히 미결의 사건으로 남습니다.

여러분이 뛰어난 문제해결사라면 최 대리에게 바나나 껍질을 들이대기 전에 바나나 껍질 이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이 존재하지 않을까 의심을 '자동적으로' 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원인은 대개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으로부터 시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우리 회사의 매출액이 급감하는 문제는 '경쟁사의 대대적인 신제품 출시'라는 눈에 보이는 원인 때문이지만, 고객들이 저가보다는 세련된 디자인을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에서 기인했을지 모릅니다.

문제의 근본원인(Root Cause)을 찾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분석의 초점을 맞추기를 권합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근본원인은 대개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원인이 확실하게 문제를 일으킨 주범이라는 확신이 들어도 그 이면에 미스 김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이 숨어있지 않은지 계속 의심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근본원인  =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패밀리 레스토랑의 주방에 작은 화재가 나서 2백만원 가량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일차적인 원인은 화염감지기가 고장이 나서 스프링쿨러가 작동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고 해보죠. 현장에 투입된 문제해결사는 화염감지기 관리를 소홀히 한 매장 매니저에게 일단 호통을 칠 겁니다. 그리고 본사에 보고해서 이 매장의 화염감지기를 새로 설치할 것을 건의하면서 원래의 자리로 물러나겠지요.

그런데 불과 며칠 후에 다른 매장에서 또다시 작은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역시 작동되지 않은 화염감지기 때문에 화재가 초기에 진화되지 못했습니다. 문제해결사는 관리 책임을 물어매장 매니저를 해고할 것을 상부에 보고합니다. 그리고는 전국의 매장에 화염감지기를 일괄적으로 새것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건의를 올리겠지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문제해결사는 이제 더이상 화재가 발생하지 않을 거란 믿음으로 '문제 해결 완료!'를 속으로 외칠 겁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면 문제해결사의 자질을 다시금 생각해야 합니다. 화염감지기를 판매하는 OO사의 CEO가 이 회사 CEO의 친동생이라서 소요되는 물품을 독점적으로 납품한다는 사실을 모르면 또다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CEO의 친동생이라는 특권을 이용해서 품질은 엉망이고 제품을 비싸게 팔아넘긴 관행이 지속됐기 때문에 화염감지기를 새것으로 일괄 교체한다 해도 개선될 여지가 전혀 없겠죠.

이처럼 눈에 보이는 원인보다는 근본원인이 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을 탐색하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백날 화염감지기를 교체해 봤자 소용이 없듯이, 근본원인을 찾지 못하면 해결책은 그저 미봉책에 불과할 겁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원인을 탐색해 들어가야만 근본원인을 발견할 수 있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근본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말은 당연한 것 아냐?' 라고 약간 비꼴지 모르겠군요. 허나 제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원인에 그치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 중에서도 1차적인 것만 찾은 다음에 곧바로 해결책 마련에 들어가는 경향이 큽니다. 이유가 여러 가지지만, 근본원인을 끝까지 탐색해서 찾아냈다고 해도 그것을 실증(참 또는 거짓이라 증명)하는 데에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근본원인일수록 근거를 찾아내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거죠. 주위 사람들이 근거에 대해 공격을 가할 거란 생각에 누구나 인정하는 원인, 즉 눈에 보이는 원인을 근본원인으로 잘못 채택하려는 유혹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 버립니다.

또, 위의 예처럼 CEO 끼리의 유착관계를 겉으로 드러낼 용기가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했다가 짤리는 것 아냐?'라는 두려움 때문에 매장 매니저들에게 대대적으로 교육 시키거나, 소방시설을 새것으로 일괄 교체하는 방법은 전시효과 밖에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효과는 있겠지만 문제의 뿌리는 터질 때를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을 뿐입니다. 문제해결사의 존재 목적은 문제의 해결이므로 대충 눈에 보이는 원인만을 미봉책이란 이불로 덮어 버리고서 의뢰인을 속이면 안 되겠죠. 문제 해결로 인해서 의뢰인을 기분 나쁘게 할지언정 자신감 있게 문제의 근본원인에 접근하여 캐내기를 바랍니다.

   근본원인을 탐색하는 것은 두려운 일

1) 근거를 대기가 어려울 거란 선입관 때문
2) 근본원인을 밝히면 의뢰인이나 이해관계자를 화 나게 만들 거란 생각 때문

오늘은 근본원인을 탐색함에 있어 문제해결사가 가져야 할 마인드를 말씀드렸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찾아 낸 여러 가지 '후보 원인' 중에서 진짜 원인을 찾는 논리적인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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