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 군기 잡기, 왜 하십니까?   

2011. 3. 3. 09:00



기업을 둘러싼 산업 환경이 비우호적으로 변하고 동시에 회사의 성과가 큰 폭으로 하락하거나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을 때 위기의식은 조직 전체에 빠르게 퍼집니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난국을 타개해 나갈 묘책을 이끄는 동력으로 작용하면 좋으련만, 대개의 위기의식은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의 분위기를 몰고갑니다.

'허리띠 졸라매자', '마른 수건도 다시 짜자'라는 구호와 함께 비용 절감 방안이 위기를 극복할 방책으로 제일 먼저 등장합니다. 이면지를 재활용하라는 '부드러운' 지침부터 시작해서 출장비 지출 등에 통제를 가하기 시작합니다. 예정됐던 직원 교육은 취소되고 본사와 공장을 오갈 때 사용하던 공용 자동차 사용도 대중교통 이용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이런 식의 각종 비용 절감 아이디어들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단골손님처럼 등장하기 때문에 그리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사실 매우 진부하고 따분하죠.



하지만 위기가 좀더 심각해지거나 불확실성이 쉽게 사라지지 않으면, 비용 절감책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소위 '군기 잡기' 방안들이 삽시간에 조직 전체를 장악해 버립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죠. "전 직원이 앞으로 밤 9시까지 이유를 막론하고 연장근무에 들어간다", "공장에서 딴청 피우는 근로자들이 없는지 매 시간 순찰을 돌겠다", "근무시간에 사적인 용무로 자리를 비우면 즉각 시말서를 쓰게 하겠다" , "드레스 코드를 비즈니스 캐주얼에서 정장으로 통일한다" 등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군기 잡기 방안들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한눈 팔지 못하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 직원들이 오로지 업무에만 집중하게 될 테니 성과가 오르지 않겠냐는 논리가 군기 잡기 방안들에 깔려 있습니다. 비용 절감책은 조직문화 측면에서 그다지 파괴적이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비용 효율성을 제고할 기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군기 잡기 방안들은 애써 구축한 긍정적인 조직문화를 빠르게 파괴할 뿐만 아니라 조직의 창의력을 말살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위기를 진정으로 극복하고 싶다면 비즈니스 모델 전반을 재검토하는 총력적인 변화가 우선되어야 하지만,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 지금 하던 것마져 나쁘게 되리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런 용기를 가지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나서서 획기적인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고 외쳐도 '되는' 이유보다는 '안 되는' 이유만이 득세를 합니다. 찬성보다는 반대가 더 쉽기 때문이죠. 이러한 인식의 '정체' 속에서는 근본적인 위기 타개책보다는 직원들에게 눈을 부라리는 방법이 최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군기 잡기를 내세운다는 것은 위기를 타개할 아무런 대책이 없음을 자인하는 꼴이죠.

그렇다면 이러한 '군기 잡기 경영'이 살아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이유는 그런 방법이 과거에 효과적이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업력이 제법 오래되면 크고 작은 위기의 순간들을 잘 넘어왔을 겁니다. 위기를 넘길 수 이유들은 아마도 다양했겠죠. 경쟁사에 대항할 제품을 발빠르게 출시했다든지, 거시경제가 우호적으로 변화했다든지, 정부가 산업을 살리기 위해 각종 지원책을 발동했다든지 등 그때마다 여러 가지였을 겁니다. 아니면 시간이 흘러서 별다른 이유 없이 위기가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군기 잡기 경영이 위기를 타개해 나갈 때마다 몇 번 실행된 적이 있다면, 회사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들은 생각이 잘 안 나고 조직에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는 방법들만이 기억에 남습니다. 급기야 '직원들의 군기를 잡으면 위기를 견딜 수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한다'는 식으로 논리가 변질됩니다. 하늘에서 일식(日蝕)이 벌어질 때 북을 치니 일식이 사라진다고 해서 북을 치는 행위가 태양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군기 잡기 경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이처럼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으로 착각하는 '잘못된 원인의 오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군기 잡기 경영이 살아남은 두 번째 이유는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경향 때문입니다. 조직이 위기에 빠졌다면 그것은 환경과 적합성이 떨어지는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한 조직 전체의 책임입니다. 조직 전체의 책임이 아니라면 유가, 환율, 금리 등 국내외 경제시스템의 책임이겠죠. 하지만 우리는 뭔가 문제가 발생하면 시스템 전체의 오류나 부적합성을 따지기보다는 책임을 떠넘길 희생양을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경영자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장 쉽게 다룰 수 있는 직원들에게 성과 저조의 책임을 묻습니다. 개인들의 성과 책임을 강조하는 성과주의 문화가 일반화된 탓도 있습니다. 여기에 일제 강점기 때 잘못 뿌리를 내린 군대식 문화가 더해져 상승효과를 일으킵니다. 직접적으로 "너희들 책임이다"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무조건 밤 9시까지 근무하라"는 말 속에는 개인들의 나태함이 위기를 불러일으킨 주범임을 직원들의 무의식 속에 강하게 심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모 교과서에 IMF 환란 위기가 닥친 이유가 국민들의 과소비 풍조 때문이었다는 문구가 실려 있다고 해서 한 때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시스템의 실패를 개인들의 책임으로 얼마나 전가하는지를,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이 얼마나 과장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이고 충격적인 사례입니다. 실패한 경제 정책, 투기 자본의 공격에 대한 미온적 방어 등 시스템의 실패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기보다 '국민들 잘못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손쉽고 명료한(?) 말이 어디 있을까요?

위기가 닥치면 의례껏 시행되는 비용 절감책과 군기 잡기 방안들은 그저 완화책에 불과합니다. 완화책은 그저 위기의 강도를 약화시킬 수는 있어도 위기를 타개할 근본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완화책들이 실시되면 그것이 위기 극복책인 것마냥 착각을 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위기를 타개하려는 절박감이 사라지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리라 기대심이 높아집니다. "전 직원들에게 연장 근무를 의무적으로 시켜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모든 사람들이 친환경 제품을 구입하면 지구온난화 현상이 금세 없어지리라 막연하게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용 절감책과 군기 잡기 방안들은 위기를 직시하지 않고 모래 속에 얼굴을 파묻는, 일종의 자기최면에 불과합니다.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하고 아무것도 진화시키지 못하죠. 급기야 레베카 코스타가 문명 몰락의 2가지 징후라고 지적한 '정체 상태'와 '믿음이 지식과 사실을 대체하는 상태'에 여러분의 조직이 매몰될지 모릅니다.

만일 그렇다면, 모래 속에 파묻은 머리를 이제 들어 올리고 현실을 직시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조직 내부에서 옹색하게 머무는 눈을 조직 외부의 거대한 변화의 흐름으로 돌려 놓는 중용의 시각입니다.


(*참고도서 : '지금, 경계선에서', 레베카 코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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