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일 때 졸업하면 안 되는 이유?   

2011. 7. 18. 09:00
반응형



알다시피 IMF 환란 사태가 발생했던 때가 1997~1998년 께였습니다. 당연히 정치, 경제, 사회 전반적으로 매우 힘들었던 시기였죠.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의 위기가 우리나라 경제의 구조를 혁신시키고 어느 정도 면역력을 키우게 한 계기를 제공한 듯합니다. 물론 위기 극복 과정에서의 공과 과실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리나라가 IMF라는 국가적 위기를 유연하게 그리고 모범적으로 극복했냐는 아닙니다.

'IMF 세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IMF 위기 때인 1998~1999년에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죠. 이들은 불행히도 오늘날 구조적인 문제로까지 심화된 '청년 실업'의 시작이었습니다. 불과 1년 전인 1997년 2월에 졸업한 사람들과 취업률 상에서 큰 차이를 보였죠. 외환보유고는 고갈 위기에 처하고, 부동산 가격이 전국적으로 '반값'으로 내려앉고, 기업들은 몸집을 줄이려 인력을 감축하고자 하는 마당에 신입사원들을 위한 일자리가 생길 리 만무했습니다. 좁아진 문을 통과하여 어쩌다가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도 전보다 낮아진 임금에 만족해야 했죠. 그래서 시기를 잘못 만나 1998~1999년에 졸업을 하게 된 학번들은 스스로를 '저주 받은 학번'이라고 말하며 탄식하기도 했습니다.



예일 경영대학원의 리사 칸(Lisa Kahn)은 불황가일 때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의 소득과 호황기 때 졸업한 학생들의 소득을 비교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그녀는 1979년부터 1989년 사이에 졸업한 학생들의 향후 20년 간 소득을 종단면적으로 분석했습니다. 그랬더니 불황기 때 대학을 졸업한 사람의 초기 소득은 6~7% 정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이러한 소득 상의 불이익은 점점 줄어들긴 하지만, 졸업 후 15년이 지나고도 여전히 다른 사람들보다 소득에서 2.5%의 손해를 본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또한 불황기 때 졸업한 사람들은 평균보다 높은 학력을 보인다는 점도 밝혔죠. 그만큼 '학력 인플레'의 희생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차이 때문이 아니라 어쩌다가 불황기 때 졸업하게 된 '작은 차이'에 의해서 이러한 소득 상의 격차가 생겨났으니 억울하게 느껴질 일입니다. 신입사원 때 뿐만 아니라 15년 이상 지속되니, 더욱 그렇죠.

2009년에 공기업을 중심으로 신입사원들의 임금을 대폭 삭감시킨 바가 있습니다. 인건비를 줄여서 그만큼 대학 졸업생들을 위한 일자리를 늘려 보겠다는 의도에서 시작했죠. 그래서 그때 공기업에 입사한 사원들은 1년 먼저 입사한 사람보다 적게는 5%, 많게는 20%나 적은 연봉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능력이나 노력 차이가 아니라 그저 1년 늦게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이런 연봉 상의 불이익이 금세 보전될까요? 그들에게 연봉의 불이익을 보전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렇게 받기로 하고 회사에 들어왔으니 보전해 줄 이유가 없다. 그들을 채용한 것 자체가 회사의 배려다" 라는 의견도 팽팽하게 대립해 있습니다. 씁쓸한 일입니다.

누군가가 소득이 평균보다 높거나 낮을 때 우리는 보통 그 사람의 능력이나 노력에서 그 차이의 원인을 찾으려고 합니다. 물론 능력이 뛰어나고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은 다른 이들보다 많은 소득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을 칸의 연구가 시사합니다. 또한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의 특이한 사회현상도 그런 점을 지지합니다. 누군가가 남들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리는 이유는 어쩌다가 시기를 잘 만난 것이 더 클지 모릅니다. 또한 동일한 대학과 학과를 나왔는데도 직장이 변변치 못하고 소득도 별볼일 없다면 그 까닭은 그 사람의 능력과 노력 부족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을 둘러싼 환경의 작은 차이가 그 사람의 미래를 '거의 결정한다'는 사실은 불쾌하지만 인정해야 할 우리의 현실입니다. 예전에 올린 포스팅 '승자와 패자는 우연히 결정된다'에서 동전을 던져서 어쩌다가 앞면을 먼저 얻은 사람이 계속해서 앞서 나가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능력과 노력 뿐만 아니라 '운'도 성공에 큰 작용을 합니다.

한 개인이 경력 초기에 남들보다 조그만 이득을 얻으면 고유의 소질과는 무관하게 '구조적인 이익'을 얻습니다. 그게 씨앗이 되어 더 큰 이득을 끌어 당깁니다. 그런 씨앗을 얻을 기회를 초기부터 차단 당한 사람들은 불이익을 오랫 동안 감내해야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여러분의 눈에 별볼일 없게 보인다 해도 "당신의 능력이 모자라고 노력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힐난해서는 안 될 입니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행동과 태도를 변화시키고 원하는 결과를 얻으라고 자못 엄중히 경고하지만, 그런 '꾸짖음'은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개인에게 부당한 책임을 전가하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논문 : The Long-Term Labor Market Consequences of Graduating from College in a Bad Economy )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