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만한 전문가를 믿으면 안 되는 이유   

2012. 1. 2.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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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이 여러분이 어떤 예측치를 제공하면서 '이 예측이 맞을 확률은 100%나 된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라고 장담하면, 여러분은 그 예측을 믿고 따를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반면, 다른 전문가가 자신의 예측치를 말하면서 '이 예측치가 사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60% 정도이다'라고 덧붙인다면, 여러분은 그의 예측에 귀를 기울일까요? 자신의 예측치를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는 전문가와 소심하게 드러내는 전문가, 이 둘 중에 여러분은 누구의 말을 더 신뢰하고 경청하게 될까요?

카네기 멜론 대학의 조셉 래드제비크(Joseph Radzevick)와 돈 무어(Don Moore)라는 심리학자들은 98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 실험은 참가자들에게 사진 속 사람의 몸무게를 예측하여 맞히도록 하는 간단한 과정이었지만, 예측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사람들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에 충분했습니다.



래드제비크와 무어는 실험 참가자들을 '결정자(Guesser)'와 '조언자(Advisor)'로 나눴습니다. 조언자들은 사진 속 사람의 몸무게를 10파운드 단위로 예측한 다음, 그 예측치에 자신의 자신감 수준을 퍼센테이지로 표시했습니다. 예컨대 '사진 속 사람의 몸무게가 170~179파운드일 가능성이 70%가 된다'라고 적어야 했죠. 조언자들은 이러한 예측치를 사진 한 장에 대해 최대 3개씩 내놓을 수 있었는데, 자신감의 수준은 모두 합해 100%가 되어야 했습니다.

결정자들은 사진 한 장에 제시될 때마다 4명의 조언자들이 제시한 자신감 수치만을 보고 누구의 조언을 따를 것인지 선택했습니다. 조언자들은 결정자들이 자신을 얼마나 많이 선택할지에 따라 돈을 받았고, 결정자들은 몸무게의 실제값을 맞힘에 따라 보상을 받았습니다. 

실험의 결과는 흥미로웠습니다. 조언자들은 모두 8장의 사진을 제시 받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감의 최대치가 상승하는 경향이 발견되었습니다. 첫 번째 사진이 제시될 때는 평균 52%였으나 8번째 사진이 제시될 때는 평균 65%로 상승했습니다. 이 결과는 사진 속 인물의 몸무게를 추정하는 간단한 과제를 많이 수행한다는 것이 그 과제에 대한 자신감의 수준을 높인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런 경험의 축적과 그로 인한 자신감의 상승이 실제로 예측의 적중률을 높혔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신감의 수준은 높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측의 적중률은 결코 높아지지 않았으니까요. 자신감과 예측력은 상관성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자들은 예측력보다는 조언자들이 얼마나 자신감이 충만한가에 따라 영향을 받았습니다. 즉, 자신감 넘치는 조언자의 의견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 것이죠. 예컨대 '170~179파운드에 90%, 180~189파운드에 10%'라고 의견을 낸 조언자가 '160~169파운드 30%, 170~179파운드 40%, 180~189파운드 30%'라고 추정한 조언자보다 선택될 가능성이 높았던 겁니다. 이렇게 결정자들이 자신만만한 조언자를 선택하는 경향이 높자 조언자들은 처음에 보였던 신중함을 버리고 점차 과감하게 예측하려는 추세로 이어집니다. 그래야 다른 조언자들보다 더 자주 선택되어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보상에 대한 경쟁이 과도한 자신감을 부추긴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무언가를 자신만만하게, 100%에 가까운 가능성으로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 말이나 수치가 적중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반대로 어떤 예측치를 신중하게(나쁘게 말해, 우유부단하게)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틀리리라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 합니다. 의사결정을 할 때, 더군다나 그 의사결정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을 때, 자신만만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예견을 피력하는 사람의 말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것이 우리의 행동방식입니다.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저렇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가 있다면, '면피하려고 한다'고 폄하하거나 그 사람을 무능한 전문가로 분류해 버립니다. 이것 역시 전문가들로 하여금 다른 전문가들보다 과감해지도록 자극하는 요인이 됩니다.

우리가 접하는 여러 종류의  많은 전문가들이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의견이 좀더 많은 매체나 사람들에 선택되기를 바랍니다. 선택을 받아야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려면 자신의 의견이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야 합니다. 설득력은 전망이나 예측의 적중률을 통해 높아질 수 있겠죠. 하지만,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전문가들의 예측력은 일반인들보다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전문가들이 쌓아온 지식과 경험에 비하면 그 차이가 아주 미미하다고 합니다. 즉 경쟁력을 갖추는 데 있어서 예측의 적중률은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없고 되지도 못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전문가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채택하는 것이 바로 자신만만함입니다. 갖가지 근거를 끌고 와서 자신의 의견이 진짜 맞다고, 절대 틀릴 수 없다고 강한 어조로 이야기할수록 사람들의 선택을 받기가 쉽습니다. 게다가 사람들로부터 높은 신뢰까지 받으니 자신만만함은 전문가가 살아남는 데 필요한 필수조건이 되고 맙니다. 

어떤 사람의 자신감이 높으면 그 사람이 옳을 거라고 믿는 경향을 '자신감 휴리스틱(Confidence Heuristic)'이라고 부릅니다. 이 휴리스틱은 머리 속에서 무의식에 가깝게 일어나는 비합리적 현상이라서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을 이끌 때가 매우 많습니다. 

201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장미빛 희망으로 출발해야 할 2012년이 북한의 정세 변화, 유럽발 금융위기의 지속, 국내 정치 상황의 혼돈 등으로 매우 불확실한 것이 사실입니다. 점집만이 호황을 누리는 세태가 작금의 불확실성을 대변합니다. 딱 부러지게 '기면 기다, 아니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점쟁이를 용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자신만만한 전문가들(하지만 실력은 그리 높지 않은)에게 귀가 솔깃해잡니다.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신뢰하여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경계해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참고논문 : Competing To Be Certain (But Wrong): Social Pressure and Overprecision in Judgm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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